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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무위사 ‘달빛 명상’
달이 뜨는 산, 달 아래 마을
달의 아이들이 뛰놀고
무위사 극락보전이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다
둥글게 달이 떠오르고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충일하게 다정하게
빛나는 순간이다
부처님이 보았던 달이다. 그와 나 사이의 시공간을 삭제한다면 우리는 지금 저 달을 동시에 보고 있는 셈이다. 정수리부터 등줄기를 타고 찌르르 전율이 인다. 마침내 달을 사이에 두고 그와 내가 앉아 숨을 쉬며, 생생히 살아있다.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에 달빛이 촉촉이 스며든다.
달에 관한 최초의 기억이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초저녁 무렵이었다. 차창 밖으로 엄지손톱에 가려질 만한 크기의 돌멩이 같기도 하고 찹쌀떡 같기도 한 희고 둥근 구멍이 자꾸 쫓아왔다. 낮고 창백한 건물에 가려 사라졌는가 하면 어느새 옆에 다시 나타나서는 뚫어지게 쳐다보며 따라오던 눈 하나.
서울 변두리를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창가에 앉은 한 아이를 미행하던 그것은 어쩌면 그가 맞닥뜨린 최초의 자아였을 것이다. 아이는 어지러워 엄마 무릎에 귀를 대고 누웠고, 그때부터 세상의 멀미를 시작했던 것 같다. 삶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된 순간이다.
달이 차면 나타나는 것들
월출산 월하리 무위사. 바다가 내륙으로 깊숙이 스며든 강진과 해남, 완도, 장흥, 영암 다섯 개 군의 관문인 성전면에 위치한 천년고찰. 절 이름과 지명을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명상적인 그곳에서는 한 달에 보름달이 차는 사흘만 허락되는 ‘달빛 따라 마음 여행’ 템플스테이가 펼쳐진다.
그날의 월출 시각은 오후 6시 12분. 하루 종일 날이 흐려서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저기 먼 하늘 중간 중간 퍼런 하늘이 언뜻언뜻 보이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월출 시간이 지나 천지사방이 초저녁의 푸른빛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거무스름한 구름에 가려 달은 보이지 않았지만 동쪽 어느 하늘에서 갑자기 얼굴을 내밀 것도 같았다. 절집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처럼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기대감이 고조되었을 때다. 침침해 가는 사위에서 극락보전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단단하게 나이든 소박하고 정갈한 오래된 목조 불전이 영롱하게 빛났다. 마치 청춘처럼 아미타여래삼존벽화를 배후로 아미타삼존불이 극락보전 가운데 열린 문으로 나투셨다. 오늘 당신들의 달을 기다리는 마음을 저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뜻밖의 연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황홀한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움이란 말에서 어려움과 고결함이 분절되기 전인 고대의 희랍어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다
세종 12년, 오래되어 퇴락했던 무위사를 중수하여 수륙사로 지정했다. 수륙사란 바다와 육지에서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달래는 천도의식을 지내기 위한 절이다. 그러한 뜻을 담아 정성스럽게 불전을 지었고, 이승의 존재들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아미타여래를 주불로 모셨다. 극락보전과 함께 국보로 지정된 후불 벽화와 그 뒤편의 신비로운 관음보살도를 바라보며 한이 많아 떠도는 중음신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또 빌었다.
달빛 따라 마음 여행의 첫 수행은 무위사 총무 항덕 스님을 따라서 무위사를 배우는 시간이다. 절의 역사며 전각들의 미학과 불상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고자 함이 아니었다. 수륙재를 지내는 민중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에 마음 하나를 보태는 간절함이 되어 보는 시간이다. 세상의 모든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달래는 마음…. 그 심정으로 극락보전을 다시 바라보자 그것은 불법(佛法)으로 하나하나 엮은 둥지 같았다.
눈을 감고 다짐했다. “나는 나의 마음을 믿지 못해서 마음 가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지 않겠다. 끊임없이 선의와 다정 쪽으로 마음을 챙겨 돌려야겠다.” 아미타여래의 협시불인 지장 보살과 관음 보살은 자비와 결기로 가득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세 그루의 높고 그윽한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있는 극락보전 앞마당을 가로질러 무위사 템플스테이 오인숙 팀장이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템플스테이의 다음 일정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마음의 토끼를 찾는 시간
탁 탁 탁.
허튼 생각 나부랭이 떨쳐버리고 정신 차리라고 어깨를 내리치는 주지스님의 죽비소리. 단일하게 숨만 쉬면서 눈, 코, 입, 귀, 몸, 뜻 여섯 개 번뇌의 구멍을 꽉 틀어막으면 막다른 곳으로 토끼가 뛰쳐나와 단박에 품에 안길 거라고 인도하는 무위사 주지 법오 스님을 따라 참선하는 시간이다. 숨이 들어왔다 잠시 머물렀다가 빠져나가는, 달빛을 받았다가 머금었다가 사그라트리는 무위의 존재를 일깨우려 하심일까.
아, 그러나 실재는 숨 한 번에 오만가지 생각이 틈입하고 어디로인지 모르게 빠져나갔다. 놓쳤다, 아니 토끼는 처음부터 거기 없었던 것 같고 나는 토끼를 잡을 발심조차 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을까.
큰 비가 지난 여름 쏟아졌다. 내륙으로 가는 기차의 차창 밖으로 지도에 없는 거대한 물웅덩이들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사람이 막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최악의 호우가 여기 있었고, 저기에는 최악의 가뭄이 있었다. 바닥을 드러낸 체코 북부의 엘베강에는 가뭄의 역사를 새겨놓은 기근석이 발견되었다. 중세시대 돌에 새긴 글귀는 ‘내가 보이면 통곡하라’였다라고.
탁 탁 탁.
참선의 마침을 알리는 죽비소리에 눈을 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생각을 멈추고 그저 숨만 쉬는 것이, 생각을 멈추고 그저 숨만 쉬려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법오 스님이 질문할 기회를 주셨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다정하게 달이 다가와서
이윽고 밤이 되었다. 해가 떠서 밝은 시간을 낮이라고 하는데, 달이 떠 비추는 시간을 칭하는 말은 왜 없는 것일까. 달낮이라고 하면 될까. 일 년에 단 한 번 지옥문이 열린다는 백중날이 가까운 때라 보름달이 떠 오를 것이었다.
하루 종일 흐린 날이었으나 저녁 무렵이 되어서 점차 구름이 벗겨졌다. 그때다. 잠시 잠깐이었지만 높다란 팽나무 가지 사이로 달이 얼굴을 내비쳤다. 그 순간이 너무도 짧아서 갸륵했다.
나무의 나이까지 더해 칠백 살이 넘은 무위사 극락보전이 달빛을 머금자 순간 청춘의 모습이 되었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이렇게 나중에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는 오래된 목조불전은 조만간 보수작업에 들어가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들은 달의 아이들이 되어 극락보전 앞에 앉았다. 달은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갔지만 눈앞으로 환하게 둥근 달이 다가왔다. 욕망과 폭력과 그리고 허무에게 끝없이 시달리느라 지친 몸과 영혼을 비추는 달은 그 빛과 기운이 다정했다.
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에서의 달빛 명상이 인생의 한 컷으로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달을 볼 때마다 언제라도 그 기억 속으로 달려갈 것 같다.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