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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사 이순신, 경상우수사 원균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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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25년(1592) 2월, 원균은 경상 우수사에 부임하였다.


이순신과 원균은 인연이 깊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그들은 조선의 무관으로서 함경도에서 여진족을 상대로 싸움을 벌였다. 그때도 직접 간접으로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 두 사람의 인생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다름 아닌 “시전부락(時錢部落)”의 여진족이었다.


무과에 급제한 뒤 두 사람 모두 함경도에서 긴 세월을 보냈는데, 원균은 함경도 조산만호(造山萬戶) 시절에 여진족을 물리친 공적으로 부령부사(富寧府使)에 발탁되었다. 얼마 뒤에는 종성부사(鐘城府使)로 자리를 옮겼다. 바로 그때 함경도 병마사 이일(李鎰)을 도와 시전부락(時錢部落)을 습격해 큰 승리를 거두었다. 18세기 전반에 대사헌 김간(金幹) 이 쓴 <원균행장(元均行狀)>에 기록되어 있다. 이 행장의 제목은 <통제사 증 좌찬성 원공 휘균 행장(統制使 贈 左贊成 元公 諱均 行狀)>이라 하였고, <<원성원씨세보(原城元氏世 譜>>(영조 25년, 1749), 상권 8b~13b 에 실려 있다. 아래에서는 <원균행장>이라 부르겠다. 참고로, 이 행장의 번역문이 원문과 함께 이재범의 <<원균정론>>에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재범, <<원균정론>>, 계명사, 1983, 277~294쪽.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4년 전의 일이었다.


선조 21년(1588) 1월 27일에 북병사(北兵使,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올린 <장계(狀啓)>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경원(慶源)의 번호(藩胡) 가운데는 녹둔도(鹿屯島)에서 작적(作賊, 침략을 자행함)한 ‘시전부락(時錢部落)’이 있습니다. 이달 14일에 제가 본도(本道)의 토병(土兵) 및 경장사(京將士) 2천 5백여 명을 거느리고, 길을 나누어 그곳으로 쳐들어갔습니다. 이경(二更)에 행군을 시작해 삼경에는 강을 건넜습니다. 15일 평명(平明, 동틀 무렵)에 그들의 궁려(窮廬, 주거지) 2백여 좌(坐)를 분탕(焚蕩, 불태움) 하였습니다. 또, 적의 머리 3백 80급(級)을 베었고, 말 9필과 소 20수(首)를 참획(斬獲, 죽이고 사로 잡음)한 다음에 전군(全軍)이 무사히 돌아 왔습니다.” <<조성왕조실록>>,선조 21년 1월 27일.


여기서 보듯, 우리 군사는 시전부락을 완전히 초토화한 다음에 작전을 마치고 무사히 귀대하였다. 대승을 거두었던 것인데, 그때 원균은 종성부사(종3품)로 승전의 기쁨을 함께 맛보았다. 그 전투에는 이순신도 함께 참전하였다.


그럼 병마사 이일(李鎰)이 언급한 ‘녹둔도 침략 사건’이란 무엇인가. 이순신을 궁지에 빠뜨린 사건이었다. 선조 20년(1587) 10월에 이순신은 조산만호로서 녹둔도를 관리하였다. 그때 시전부락의 여진족이 급습하여,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였다. 그때의 사정을 이일은 조정에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적호(賊胡, 여진족)가 녹둔도의 목책(木柵)을 포위했을 때 경흥부사(慶興府使) 이경록(李慶祿) 과 조산만호(造山萬戶) 이순신(李舜臣)이 군기를 그르쳤습니다. 우리 전사(戰士) 10여 명이 피살되었고, 1백 6명을 헤아리는 백성과 15필의 말을 끌어갔습니다. 국가에 치욕을 주었으므로, 이경록 등을 수금(囚禁, 옥에 가둠)하였습니다.”<<조선왕조실록>>, 선조 20년 10월 10일.


결과적으로 이순신은 ‘백의종군(白衣從軍, 보직해임)’이란 중벌을 받았다. 하지만 이순신의 서술에 따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는 녹둔도에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것이 병마사 이일이 지원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점을 바꾸어, 이순신과 원균의 관계에서 시전부락 소탕 사건을 다시 보자. 선조 20년 초겨울에 두 사람은 한때 이순신을 곤경에 몰아넣은 시전부락을 상대로 속 시원하게 복수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순신은 불명예스러운 ‘백의종군’ 상태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 사건 이후 원균과 이순신 두 사람 모두 함경도를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순신은 정읍 현감에 부임하였는데, 선조 22년(1589)의 일이었다. 그보다 이미 6년 전인 선조 16년(1583)에 원균은 경상도에서 거제 현령을 지낸 터였다. 그런데 일본이 조선과의 관계에서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이자 조정에서는 그들이 전라좌도로 침략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조정은 남해를 지킬 수군절도사를 발탁하는데 신경을 몹시 곤두세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선조 24년(1591) 2월에 조정에서는 원균을 전라 좌수사(정3품)에 임명하였다. 이것은 승진 발령이었다. 그러자 사간원이 그 점을 깊이 따지고 들었다. 다음은 사간원의 주장이다.


“전라 좌수사 원균(元均)은 전에 수령으로 있을 적(함경도 종성부사 - 필자)에 고적(考績, 근무평가)이 거하(居下,상중하 가운데 ‘하’라는 뜻)였습니다. 그런데 겨우 반년이 지난 오늘날에 좌수사를 초수(超授, 수군절도사는 정3품으로 1등급 높임)하시면 출척 권징(黜陟勸懲, 잘함을 권하고 못함을 벌함)의 뜻이 없습니다. 물정(세평)이 마땅치 않게 여깁니다. 체차(遞差, 다른 자리에 임용)를 명하시고, 나이 젊고 무략(武略)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보내소서.” <<조선왕조실록>>, 선조 24년 2월 4일.

사헌부와 사간원이 관리의 ‘승진’을 반대하는 것이 거의 일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선조는 사간원이 원균의 기용에 이의를 제기하자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정확히 1년 뒤인 선조 25년(1592) 2월에 원균을 전라 좌수사와 동급인 경상 우수사에 보임하였다. 그때는 누구도 원균의 발탁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럼 한때는 원균의 몫이 될 듯하였던 전라 좌수사 자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간원이 나이도 원균보다는 젊고 ‘무략’ 또는 군사 전략에 더욱더 밝은 이를 보내라고 주문하였던 점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러한 언관(言官)의 요구에 부응한 선택처럼 보이는 것이 곧 이순신의 지명이었다. 선조는 일본의 침략 의도를 짐작하고, 전쟁이 일어나기 3년 전인 선조 22년(1589)부터 이순신을 비롯해 여러 명의 무관을 발탁할 결심을 굳혔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22년 7월 28일.


그러나 조정이 이순신(李舜臣)을 선택하자 이번에도 언관들의 반대가 빗발쳤다. 이순신은 아직 품계가 현감(6품)에 지나지 않는데, 좌수사로 발탁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인재가 없어서 그렇게 정하였다고는 하나, 벼슬의 남용이 이보다 심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24년 2월 16일.


무려 6등급을 한꺼번에 뛰어넘은 파격적 인사였으므로, 이런 반대가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조가 완강하게 버텼다. 왕은 자신의 결정을 다음과 같이 해명하였다.


“이순신의 일이 그렇(게 문제가 있)다는  점은 나도 안다. 그러나 지금은 상규(常規, 평시의 규정)에 구애될 수 없다. 인재가 모자라서 이렇게라도 해야만 하겠다. 그 사람이면 충분히 감당할 자리이니, 관작의 높낮이를 따지지 말라. 다시 비판하여, 그(이순신)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말라.” <<조선왕조실록>>, 선조 24년 2월 16일.


왜군의 침략이 곧 일어날 것으로 보고, 그때 조정에서는 크게 걱정하였다. 대신들은 장차 왜적이 전라좌도로 쳐들어올 가능성이 크다고 점쳤다. 훗날 선조의 발언에서 확인된다. 전쟁이 끝나고 수년이 지난 선조 34년(1601) 1월에, 선조는 국방 문제 전반에 대해 체찰사 이덕형과 논의하였다. 그 자리에서 왕은, 일본이 쳐들어온다면 전라좌도를 통해서 올라올 것으로 모두가 염려하였다는 사실을 회상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34년 1월 17일.


그런 점에서 전라 좌수사를 누구로 정하느냐는 문제는, 선조 25년 당시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 무렵에 조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신하는 영의정 류성룡이었다. 이순신과는 막역지우(莫逆之友, 친한 벗)로, 이순신이 조산보 만호로 기용될 때부터 줄곤 후원자의 역할을 다하였다. 그 사실은 류성룡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어전에서 류성룡은 이렇게 말하였다. “신의 집이 이순신과 같은 동네에 있기 때문에 신이 이순신의 사람됨을 깊이 알고…. 조산만호(造山萬戶)로 천거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30년 1월 17일.


그러나 이순신을 전라 좌수사로 기용하려는 시도는 앞에 적은 대로 언관(言官)의 저항에 부딪혔다. 그들의 반대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선조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선조 24년(1591) 2월 18일에 사간원이 거듭해서 반대 의견을 내놓자, 왕은 단호한 어조로 이순신의 기용을 기정사실화하였다.


“이순신에 대한 일은, (그대들의 주장대로) 개정하는 것이 옳다면 어찌 개정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개정할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24년 2월 18일.


마침내 사간원도 입을 다물었다. 애초 원균이 부임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자리는 끝내는 이순신의 차지가 되었다. 원균과 이순신 두 사람의 운명이 크게 엇갈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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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란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하기 14개월 전에, 이순신은 여수에 부임하였다. 그는 조정의 강력한 정치적 후원 아래 전쟁을 준비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결과적으로,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이순신은 최소한의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럼 전쟁이 일어나기 겨우 두 달쯤 전에 경상 우수사에 임명된 원균의 처지는 어떠하였을까. 그는 작전 지역인 경산도 해안을 직접 일일이 돌아보고 장비와 인원을 꼼꼼히 점검하였으나, 갑작스레 쳐들어온 적을 맞아 효과적으로 전쟁을 치르기에는 모든 것이 불충분하였다.


선조 25년 4월, 오랫동안 조정이 걱정하던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적의 침략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대규모였고, 우리 조정의 예상과는 달리 경상좌도인 부산 쪽으로 재빨리 파고들었다. 조선은 허를 찔린 것이었다 적은 우리의 사정을 샅샅이 알고 있었다. 그에 비해 조선의 당국자들은 적의 의중을 조금도 짐작도 하지 못했다. 전쟁 초기의 대혼란은 불가피한 일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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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승종 
사학자,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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