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제약물 복용 113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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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제약물 복용 113만명

0 개 1,689 박명윤

우리나라는 상당히 약을 좋아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본인은 왜 약을 먹는지 알지 못하고 습관처럼 복용하는 사람도 있다. 약을 복용하는 것은 기존 질환을 잘 조절하고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약의 개수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본인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본인의 약 복용 습관과 의료기관 이용 습관을 되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인은 약을 많이 먹는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의약품을 5종 이상 3개월 이상 꾸준히 복용하는 노인 비율은 70.2%였다. 2013년 67.2%에 비해서도 높아졌다. OECD 평균은 46.7%이다. 이는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진료 방향을 조정해 줄 의사(주치의)가 없기 때문이다. 노인 진료 시스템을 질병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꾸려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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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후반 여성 A씨은 지난 1년간 자택 근처뿐 아니라 서울의 병원 등에서 의사를 적어도 10명을 만난 이력이 있었다. 최근에는 다섯 의사에서 20종 가까운 약을 처방받았다. 이 약들은 어지럼증, 소화불량, 수면장애, 요실금, 기억력 저하 등에 대한 약이었다. 그의 진료 이력을 종합해 보면, 수면 장애와 어지럼증이 잘 치료되지 않으면서 약이 늘기 시작했다. 사는 곳 주변에 주치의 역할을 하며 약을 점검해줄 의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이가 들수록 만성질환의 유병률(有病率)이 증가하고 복용하는 약물의 수도 함께 늘어난다. 이에 노인 중에는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10종 이상 약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 통상 6종류 이상 약물을 먹는 경우를 ‘다제 약물 복용’이라고 한다. 지난해 국감 자료에 따르면, 두 달 넘게 10종류 이상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이 113만명으로 나타났으며, 65세 이상 노인 90만명이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10종 이상 약을 먹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기준 60일 이상 복용하는 약물이 10종 이상인 사람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45세 미만 1만5807명, 45-54세 5만4528명, 55-64세 18만9841명, 65-74세 33만9340명, 75-84세 40만694명, 85세 이상 13만569명 등으로 나타났다. 노인의학(老人醫學)에서는 보통 10종 이상의 약제를 복용하는 경우, 부작용이 적어도 한 가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100%라고 본다.


2020년 건강보험 진료비가 87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는 전년보다 4.6% 증가한 37조4,737억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43%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853만7천명으로 전체의 16.5%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는 2025년에는 그 비율이 20.3%로 늘어나 초고령사회로 전환되고, 2038년에는 30.5%에 이를 전망이다.



노인의학(gerontology)이란 노년에서 질병의 임상적•예방적•치료적•사회적인 면과 관련된 일반의학의 한 분야이다. 노인의학은 좁은 의미로 현상의 메커니즘을 해명하는데 주안점을 둔 기초노화학(biomedical gerontology), 폭넓은 의학적 견지에서 연구하는 노인의학(geriatric medicine), 노년자 질병의 원인, 증상의 특징, 치료법 등을 연구하는 노인병학(geriatrics), 사회과학적 견지에서 연구하는 노인사회학(social gerontology) 등으로 세분된다.


미국은 1988년 이후 노인의학 전문의(專門醫)를 배출하고 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노인의학 전문의가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노인의학 전문의제도 정착이 필요하다. 노인증후군 환자가 상당히 많은데 이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노인환자들은 대부분 요양병원 또는 요양시설로 간다. 이를 막는 역할의 중심이 바로 노인의학 전문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다제약물(多劑藥物)’을 복수의 약제를 동시에 투여하는 것, 혹은 지나치게 많은 수의 약제를 투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다제약물 복용이란 5개 혹은 6개 이상의 의약품을 병용 투여하는 것을 말한다.


다제병용(多劑倂用, Polypharmacy)이란 동시에 여러 가지 약물을 투여하는 것으로 과다한 양의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다. 다제병용은 사용하는 약물의 개수 차원에서 접근할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한편으로 임상적 적절성 측면에서도 접근할 수 있는 문제이다.



다제병용이 나타나는 요인에 대하여 연구자들에 따라 다르게 분류하고 있다. 

이를 관련 요인 별로 보면 

▲ 특정 질환이나 동반 상병, 

▲ 환자 연령, 

▲ 복수의 처방자(multiple prescriber) 또는 공급자, 

▲ 복잡하거나 다양한 약물 요법, 

▲ 심리 사회학적 요인(psycho-social contributions), 

▲ 특정 약물을 복용하는 것, 

▲ 약물요법의 부작용, 

▲ 처음 발행한 처방전의 약물 개수 등이다.


다제병용에 따른 문제점은 연구자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야기할 수 있으나 공통적으로 건강과 비용 측면에서의 문제점들을 언급하고 있다. 환자의 안전과 약물 사용에 있어서의 경제성이 보건 의료계의 중요한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다제병용이 지니는 사회적, 임상적 중요성이 적지 않다.


다제병용으로 인한 문제점으로 Austin(2006)은 

▲ 이상약물반응(adverse drug event), 

▲ 약물 상호작용(drug interaction), 

▲ 치료의 중복 가능성, 

▲ 의료비용의 증가, 

▲ 환자의 복약 순응도 저하, 

▲ 응급실 사용, 입원, 부가적인 내•외과적 중재의 증가, 

▲ 환자 삶의 질 저하(decreased quality of life) 등을 언급하였다.



외국의 다제병용 현황을 보면, 영국은 75세 이상의 노인의 80%가 1개 이상의 처방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36%는 4개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 환자들의 약물 복용 상태를 자주 검토하지 못하는 것이 다제병용과 불필요한 약물 복용의 원인이 된다고 보고하였다.


미국에서는 65세 이상의 환자의 내원을 분석한 결과, 2종 이상의 처방을 받은 내원에 있어서 0.74%의 부적절한 약물 상호 작용(inappropriate drug-drug combination)과 2.58%의 부적절한 약물-질병 상호작용(inappropriate drug-disease combination)이 있었음을 관찰하였다.


캐나다에서는 응급실을 방문한 65세 이상의 환자들의 차트를 조사한 결과, 10.6%가 약물과 관련된 부작용이 원인이었으며, 31%의 환자는 응급실 방문 후 받은 처방전에 1개 이상의 잠재적인 부적절한 약물 상호작용이 존재했음이 조사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연구 용역을 받아 시장조사 서비스 업체인 한국아이엠에스헬스주식회사(IMS Health Korea Ltd,)가 작성한 보고서(2005)에 따르면, 10개의 조사 대상 국가 중에서 한국이 가장 높은 평균치를 보였다. 즉, 의원에서 발행되는 처방전에 한국은 평균 4.16개의 다른 종류의 약물이 처방되는 반면, 미국은 1.97개, 호주는 2.16개, 영국은 3.83개, 일본은 3.00개의 약물이 평균적으로 처방되었다.


다제병용은 특히 노인들의 이환율(morbidity)와 사망률(mortality)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보건의료 분야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 미국은 2000년도에 1,330억달러를 약물에 소비하였고, 1,770억 달러는 약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관리하는 데 사용하였다. 다제병용을 보다 잘 관리하면 환자에 대한 위험과 보건 예산의 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질병의 치료를 위하여 약물을 사용한다. 대개 한가지 약물만을 사용하여 만족할만한 치료효과를 얻기란 쉽지 않다. 최근에는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질환의 진단이 용이하며, 약물 사용에도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이에 한 가지 또는 여러 가지 질병의 치료를 위하여 2종 이상의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 흔한 현상이 되었다.


보통 2가지 이상의 약물을 병용 투여하는 것은 약효(藥效)의 증가나 부작용의 경감, 독성(毒性)의 감소를 목적으로 시행된다. 그러나 병용 투여로 인하여 때로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부정적 결과에는 약효가 증가되어 치료효과는 상승되나 부작용이나 독성 유발 가능성의 증가할 수 있으며, 한 가지 약물이 다른 약물의 치료효과를 감소시켜 치료 작용이 저하될 수 있다. 약물을 병용할 때 나타나는 변화를 약물 상호작용(drug interaction)이라고 한다.


다제약물 복용을 해결하고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대한약사회와 함께 2018년부터 ‘다제약물 관리사업’을 시범으로 실시했다.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등 만성질환 중 한 가지 이상 질환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기적으로 10종 이상의 약을 복용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고령자일수록 여러 질환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부작용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해당 사업은 주로 고령자에게 초점이 맞춰졌으며, 전문가가 약을 검토하고 정리해 주는 사업이다. 약사와 공단직원이 가정을 방문해 중복 투약, 약물 부작용, 복용 방법 등을 상담 지도한다.



다제 약물 안전성 조사 대상은 

▲ 하루에 7종류 이상의 약물 복용, 

▲ 하루에 8번 이상 약물 복용, 

▲ 하루에 10알이 넘는 약물 복용, 

▲ 복용 중인 약물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했던 환자 등이다.


다제약물에 당하지 않는 법은 

▲ 복용 약이 새로운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라, 

▲ 새로운 증상을 약보다는 먼저 생활습관 개선을 시도하라, 

▲ 새로운 의사를 만날 때는 병력(病歷)과 약력(藥歷)을 정리해서 보여줘라, 

▲ 약사에게 복약 지도를 꼼꼼히 받고 궁금한 점은 문의하라, 

▲ 노년내과나 종합내과에서 다제약물을 점검하라 등이다.


우리나라처럼 주치의(主治醫)가 없으면 환자가 스스로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할지 결정해야 하는 의료 환경에서는 처방 연쇄(prescribing cascade)가 일어날 수 있다. 처방 연쇄가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하는 최우선 방법은 육하원칙(六河原則)에 따라 이 현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확인한 뒤 악순환을 반대로 풀어내는 것인데, 이를 노인의학에서 ‘탈처방’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2016년부터 6가지 이상 약을 복용하는 환자가 2가지 이상 약을 줄이면 보상하고 있다.


연쇄 처방을 막으려면 새로운 증상을 무조건 약을 통해 해결하기보다 다른 방법을 먼저 적용해보고, 증상이 개선되지 않을 때 약을 추가하는 것이 안전하다. 명확하지 않은 증상에 대해서는 비(非)약물 치료를 우선으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복잡하게 꼬인 노인 환자의 의학적•기능적 문제를 정리하고 풀어내는 일은 해외에서는 기본적으로 노인 의학적 지식을 갖춘 주치의가 담당한다. 노인의학과 의사가 될 수도 있지만, 내과, 가정의학과 등 다양한 전문과의 의사가 주치의 시각에서 노인 의학적 진료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약으로 생긴 부작용을 약으로 막다가 다른 병을 키울 수 있다.


노인의 다제약물 복용은 단순히 많은 약을 먹는 문제에 그치지 않고 치료와 건강 회복이 아닌 노쇠(老衰)를 앞당길 수 있다. 공공의료 측면에서도 노인의 복잡한 의학적 기능적 문제를 통합으로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에 노인의학전문의, 노인주치의(主治醫) 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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