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북한’으로 변해가는 러시아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최성길
Danielle Park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크리스틴 강
들 풀
김수동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정동희
EduExperts

‘큰 북한’으로 변해가는 러시아

0 개 605 명사칼럼

d9fccf4f1508cd4644ab34920462ec7b_1718073972_9291.png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페이스북은 북한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차단돼 있지만, 주북 러시아 대사관은 여전히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한다. 이 계정을 오랫동안 열심히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요즘 들어 북-러 관계가 여태까지 전혀 관찰된 적이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유례없는 활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2~3주 동안만 보더라도 러시아 국회의 상원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고, 북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이 모스크바에 가서 여러 협정을 맺었다. 이제 상당수의 북한 유학생이나 학자들은 유학이나 연구처로 다시 러시아를 찾게 되었고, 러시아 관광객들도 북한을 찾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북한 매체들은 거의 매일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러시아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 푸틴의 입장을 따르는 기사들을 내보낸다. 심지어 북한 매체들은 남한의 역대 정권을 대개 ‘괴뢰도당’이라고 지칭해왔던 것처럼, 최근에 우크라이나 정부를 ‘젤렌스키 괴뢰도당’이라고 부른다. 즉, 그들은 러-우 관계를 남북 관계와 성질이 같은 것으로 파악하고, 자신들의 입장과 러시아의 입장을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푸틴 집권기 내내 북-러 관계는 상당히 우호적이었지만, 이 정도의 밀착은 1980년대 초반 아니면 아예 1950년대 초반을 방불케 한다.


물론 이와 같은 밀착의 현실적 배경으로 북한산 포탄·미사일의 러시아 수출이 있다는 추측이 유력하다. 한데 푸틴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히 보도하고, 푸틴의 방산 복합체에 대한 국가적 집중 투자 같은 국가 주도, 군수 기업 우선의 경제 발전 정책을 매우 긍정적으로 설명하는 북한 매체의 태도로 봐서는, 지금의 북·러 밀착은 단순히 일회성의 무기 거래 문제는 절대 아니다. 북한은 푸틴의 리더십이나 경제 정책에 대해 대단히 우호적인 반응을 보일 뿐만 아니라, 푸틴주의 이데올로기의 주요 개념, 예컨대 러시아의 독자적 영향권 구축 등을 “다극 세계의 건설을 위한 집단 서방과의 세계적 다수의 투쟁”의 일환으로 보려는 크렘린의 시각 역시 대체로 공유한다. 러시아가 내세우는 ‘다극 체제론’, 즉 중·러 블록이 서방 블록을 견제할 수 있다는 새로운 세계 질서 구축론은, ‘반미 코드’ 차원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이나 자주론 등과 통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북·러 밀착은 당장의 금전적 이익이나 거래 차원을 넘어, 가면 갈수록 북·러의 발전 노선과 체제, 이념 등이 서로 닮아간다는 차원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2022년 이후의 푸틴주의 경제 정책과 이념 등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일단 이 부분은, 19세기 말부터 추격형 발전을 이루어온 후발 산업 국가로서의 러시아의 전반적인 근현대사 궤도 속에서 분석되어야 할 것이다. 크게 봐서는, 러시아에 근대 공업이 정착된 19세기 말부터 러시아에는 두가지 개발 모델이 가능했다. 하나는 한국의 발전 궤적을 방불케 하는 외자, 선진권 기술 유치 본위의 모델이었다. 러시아는 1890년대부터 1914년까지 이 모델을 적용하여 상당히 높은 성장률을 보였으며, 러시아혁명 직후의 신경제 정책 시대인 1921~1929년, 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 시기(1980년대 말)부터 2022년까지 활용했다. 대개 비교적 유연한 연성 권위주의적 통치를 수반했던 이 모델은, 한가지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이 모델은 전란기에 원활한 전쟁 수행을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모델을 계속 운영했던 제정 러시아 정권은 제1차 세계대전 와중인 1917년에 붕괴되었다. 이후 1929년 대공황과 함께 새로운 세계대전의 가능성이 높아지자, 스탈린 지도부는 그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이 모델을 폐기하고 공업의 완전한 국유화를 전제로 한 동원형 전쟁 경제 모델을 채택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이 모델은 정보통신 부문에서 선진권에 뒤지고 전반적으로 한국 같은 신흥 자본주의 국가의 재벌 경제를 더 이상 따라잡지 못했다. 그래서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 다시 외자 유치 본위의 개발 모델이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 패권 질서가 재편되는 혼란기인 2020년대에 접어들자, 푸틴 지도부는 좀 더 국가 주도적이고 전쟁 수행에 맞춰진 경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스탈린의 모델과 달리 푸틴의 전쟁 경제는 완전한 국유화나 전체적 수입 대체를 꼭 지향하지는 않는다. 한데 푸틴의 러시아에서는 국영 및 국가가 대주주로 있는 기업들이 국민총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외자가 아닌 내자 본위로 개발이 이루어지며, 모든 사기업들도 국가의 지휘·통제를 받아 국가의 정치적 우선순위에 따라 투자를 결정한다.


연성 권위주의도 아닌 초강경 권위주의 통치를 수반하는 이 국영 부문 주도의 전쟁 경제 모델이, 사실 러시아와 북한에서 상당히 비슷한 방식으로 지금 공유되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2022년 이후 러시아는 하나의 ‘큰 북한’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차이를 찾아보자면, 북한의 부자 세습 시스템과 달리 러시아에서는 같은 정치집단 안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정권을 물러주는 방식으로 정권이 지속된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물론 ‘큰 북한’의 사회는 한반도의 북한보다 훨씬 더 다원적이며 외국과의 연계성도, 그리고 외부적 영향에의 노출도도 훨씬 높지만, 지속되는 전쟁 속에서 이 차이도 점차 상대화되어 간다는 느낌마저 든다. 경제 노선이 대략 일치하는데다 이념적으로까지 극단의 반자유주의와 반서방 지향, 총동원 사회 모델 등을 대체로 공유하는 ‘큰 북한’으로서의 러시아와 한반도의 북한은, 자연스럽게 앞으로도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장기간, 하나의 전략적 선택으로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한국 외교의 급선무는, 이 북·러 밀착이 한국을 가상의 적으로 여기지 않는 쪽으로 대러 관계와 대북 관계를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관리하는 데에 있다. 남북한 사이에는 유엔 제재가 막지 않는 인도적 교류나 일부분의 경제 협력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가 하면, 한·러는 사실 경제적으로 상호 보완적인 구조다. 북한도 러시아도 한국을 필요로 한다면 적어도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것은 더 쉬워질 것이다. 세계적 전란기인 현재 상황에서 그 이상의 중요한 과제도 없다.


* 출처: 한겨레 신문


d9fccf4f1508cd4644ab34920462ec7b_1718074099_5843.png
 

■ 박 노자


오슬로대학교수, 한국학자, 칼럼니스트


소련의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데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다. 2001년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다. 레닌그라드 대학 극동사학과에서 조선사를 전공했고, 모스크바 대학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들을 묶은 『당신들의 대한민국』 으로 주목받았으며, 『주식회사 대한민국』 『비굴의 시대』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전환의 시대』 등은 이 연장선상의 저작이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우승열패의 신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등을 통해 역사 연구자로서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평화, 놀랄 만큼 많이 주는 행복 에너지

댓글 0 | 조회 141 | 22시간전
▲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에 온 북아일랜드 작가 애나 번스. 그는 “평화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서울 은평구에서 주관하는 이호철… 더보기

욕실 리노베이션 : 쉽지 않은 선택들

댓글 0 | 조회 446 | 22시간전
지난 호에 이어 이번에도 욕실 리노베이션, 즉 바스룸 리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욕실 리노베이션을 준비할 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이 질문은 범… 더보기

대설주의보

댓글 0 | 조회 233 | 22시간전
시인 최 승호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제설차 한 대 올리 없는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쬐그마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더보기

차생활로 삶을 향기롭고 기품 있게

댓글 0 | 조회 132 | 22시간전
예로부터 차(茶)는 일상생활에서 신체적인 유익함만을 가져다주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을 수양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곧 차(茶)는 단순히 마시는 행위로 끝나는 게 아… 더보기

선택과 집중

댓글 0 | 조회 180 | 1일전
“인생은 연속되는 선택의 과정이자 그 결정의 총 집합이다”라고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 1828-1910)는 말했다. 우리는 생애 중 끊임없는 크고 … 더보기

37. 나의 식사 적량은 얼마인가?

댓글 0 | 조회 370 | 1일전
개인적인 식사 적량은 그 사람의 장건강 상태, 몸을 사용하는 정도, 음식의 종류, 식습관에 따라 개인 차이가 있다. 연령별 또는 체중에 따라 식사량을 일률적으로 … 더보기

병을 이기는 여섯 가지 실천

댓글 0 | 조회 200 | 1일전
첫째, 마음을 편히 하십시오.둘째, 가능한 모든 세상의 진단방법을 사용하여 유혹의 실체를 확인하십시오.셋째, 가능한 치료방법을 사용하여 치료를 받으십시오.넷째, … 더보기

의대 적성고사 “UCAT” 제대로 알고 준비하기

댓글 0 | 조회 427 | 2일전
뉴질랜드에서 의대를 보유하고 있는 오클랜드 대학교와 오타고 대학교는 의약계열(Clinical Programme) 입시를 위해서는 두 학교 모두 GPA, UCAT,… 더보기

오클랜드 공항

댓글 0 | 조회 946 | 2일전
도시의 외곽에서 살아가는 나로서는, 공항 입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분주 함들 때문에 어쩌다 고국에서 오는 손님을 마중할라 치면 여간 긴장되는 게 아니다.전광판에 나… 더보기

방학, 자녀와 함께 건강한 게임 습관을 만들어 보세요

댓글 0 | 조회 266 | 2일전
방학이 되면 청소년들이 게임에 몰두하는 시간이 늘어나곤 합니다. 게임은 즐거운 오락 활동이 될 수 있지만, 일부 게임의 설계와 사용 습관은 도박과 유사한 위험 요… 더보기

미안한 일

댓글 0 | 조회 192 | 2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여름 지내고 편히 쉬려는 낙엽을 밟고 지난 다닌 일.넓은 방을 가졌지만 더 이상 콩기름 바른 장판 냄새를 잃어버린 일.성스러운 거룩함을 찾다… 더보기

디지털 시대, 메모는 생존의 기술

댓글 0 | 조회 161 | 2일전
메모를 잘하며 살던 한 ‘수첩 공주’가 있었다. 들으면서 바로 요약해 적는 건 어찌보면 대단한 기술이다. 누군가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고 쓰고 “적는 자가 살… 더보기

보약 한 첩보다 아침식사!

댓글 0 | 조회 671 | 6일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연령별 아침 결식률(缺食率)은 12-18세 30%, 19-29세 37.4%, 30-49세 24.5%, 50-64세 10.7%, 65세 … 더보기

이런 고등학교는 피하세요

댓글 0 | 조회 1,833 | 6일전
필자가 뉴질랜드에 처음 이민 왔을 1990년대 초만해도 오클랜드 대학의 세계랭킹이 50위권 이내였고 한국은 세계 랭킹 100위권 이내에 드는 대학이 아예 없을 정… 더보기

36. 지방산, 오메가3과 오메가6의 균형이 가져다 주는 좋은 일들

댓글 0 | 조회 764 | 8일전
신체 내의 염증 반응과 관련하여 오메가3와 6의 체내 비율이 큰 역활을 한다. 오메가6의 지방산이 너무 많으면 염증을 잡을 수 없다. 염증은 암의 원인이 되고 노… 더보기

잊혀져 버린 정의, 그들을 기억하며

댓글 0 | 조회 317 | 2024.11.20
▲ 항일 투쟁과 반독재 투쟁으로 점철된 생애를 담은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의 작가 김학철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작가였던 고 김학철(1916~2001)의 인생을 다룬… 더보기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댓글 0 | 조회 192 | 2024.11.20
언젠가 TV에선 얼굴 없는 사람에 대한 얘기가 나오더군요. 미국에 얼굴 없는 사람이 있답니다. 그런데 아이입니다. 태어난 지 2년 반 쯤 되었는데 얼굴이 없답니다… 더보기

11월의 기도

댓글 0 | 조회 181 | 2024.11.20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주님!올해 겪은 놀란 일을더 여유롭게 견뎌내지 못해부끄럽습니다당신 손 놓치지 않을나를 뽑아 견디게 하셨으니슬펐지만 아름다움이었습니다기차역에서… 더보기

대자유의 맛, 다선일미의 차 명상

댓글 0 | 조회 162 | 2024.11.20
예로부터 스님들은 차를 마시며 수행을 했다. 차가 수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벽암록』의 저자인 송대 원오 극근(圓悟 克勤:1063~1135) 선사의 다선일미… 더보기

욕실 리노가 망설여지는 이유

댓글 0 | 조회 669 | 2024.11.20
최근 몇 주 동안 잘못된 욕실 설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신 고객분들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욕실은 단순히 깨끗하고 예쁘게 마감하는 것을 넘어서서, 안 보이는 곳… 더보기

사랑

댓글 0 | 조회 120 | 2024.11.20
시인 정 호승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기쁨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는 기도내 영혼이 가난할 때 부르는 노래모든 시인들이 죽은 뒤에 다시 쓰는 시모든 애인들이 … 더보기

아오테아로아 (멀고 긴 흰구름의 나라)

댓글 0 | 조회 225 | 2024.11.20
식물 줄기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삼각 돛,큰 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통나무 배,긴 나무를 균형지게 본체 좌 우측으로 동여맨 카누에 몸을 싣고,가족과 친지들을 뒤로… 더보기

전하지못한 이야기 ‘해금강’

댓글 0 | 조회 212 | 2024.11.19
지인 j 님께!H 여사와 우리 셋이 모이면 노후의 삶을 어디에서 살면 좋겠냐는 말을 자주 했었지요.서울에서 나고자라 나이먹은 사람들끼리 시골살이를 동경하는 막연한… 더보기

지피지기 백전백승! 뉴질랜드/호주 의대 제대로 도전하기

댓글 0 | 조회 839 | 2024.11.19
의대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심상치 않은 요즘, 뉴질랜드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전문직에 대한 직업 안정성과 지속성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의대 치대 약대 등의 … 더보기

고요할 수록 밝아지는 것들

댓글 0 | 조회 183 | 2024.11.19
경남대학교에서 86년부터 18년까지, 33년을 일 하다가 은퇴한 지 6년이 되어간다. 어느 사이 고희(古稀)에 들었고 앞만 보고 가려하는데, 원고 청탁을 받아 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