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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화에서는 ‘부부관계’ 및 재산분할의 기본 원칙들을 거시적으로 다루었었는데요, 이번 칼럼에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재산분할 법이 적용되는지, 즉 ‘부부관계’의 시작과 끝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보통 결혼관계의 시작점을 찾는건 비교적으로 수월합니다. 최소한 결혼식을 올린 날짜부터는 관계가 시작되었을 것이고, marriage certificate서류에 결혼식 날짜가 써 있을테니 아무리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더라도 서류 한 통 떼면 쉬워지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식을 올리기 전부터 사실혼 관계를 시작했다면 (그리고 아래와 같은 이유로 그 시작점을 찾는게 중요하다면) 사실혼과 똑같이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보통 재산분할법상 결혼관계의 끝은 이혼이 아니라 별거부터이기 때문에, 사실혼의 별거 파악하는 방법과 거의 일치합니다.
사실혼 (de facto partnership)은 두 성인이 ‘live together as a couple’을 한 기간을 나타냅니다. 이 표현 때문에 착각을 할 수 있는데, 꼭 동거를 해야만 사실혼이 시작되는건 아니고 (물론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성관계를 가진시점, 재정적으로 얽힌시점 (공동명의 재산소유 포함), 서로 얼마만큼 공동생활에 대해 헌신적이었는지, 자녀 양육여부, 바깥일/집안일 나누거나 공동으로 한 부분, 다른사람에게 보여진 두사람의 모습, 총 관계기간 등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결정됩니다. 증거쪽으로 보면 둘이 주고받은 전체 문자나 SNS메세지 (이메일, 카톡포함), 전화내역 등도 빈번히 제출되곤 합니다.
별거의 경우 동거를 하다가 한 사람이 집을 나간 시점이 많이 쓰이긴 하는데, 항상 그런것은 아닙니다. 원칙적으로는 위 요소들을 고려하여 두 성인이 ‘cease to live together as a couple’이 된 시점을 별거시점으로 잡습니다.
위 요소들 때문에 고객분들의 아주 자세한 사생활을 물어봐야 하는건 물론이고, 그로인해서 아침드라마 뺨치는 기상천외한 얘기들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내 애를 낳고 키워준 사람을 소위 ‘원나잇 상대일 뿐이였다’라고 폄하하여 주장하기도 하고, 관계 중간에 다른사람과 바람피웠다는 것을 당당하게 주장하기도 하고 (바람피운 상대를 증인으로까지 소환하여 바람핀 증언을 듣기도 하고), 각각 집을 소유하여 완전동거는 한번도 안했지만 10년동안 서로의 집을 오가며 헌신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이라도 돌아서면 사실혼조차 아니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구요.
그렇다면 법적으로 부부가 언제 시작했고 끝났는지를 파악하는게 왜 중요한지도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무일푼의 성인 둘이 결혼하여 순전히 관계중에만 모든 재산을 형성했고 (그것도 공동명의로) 또한 깔끔하게 별거계약서를 작성하며 별거를 시작했다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가 않을겁니다. 예를들어 A, B 두 사람이 2008년에 만나면서 성관계는 시작했는데 2010년에 들어서야 완전한 동거를 시작했고, 근데 A가 2009년에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면 B 입장에서는 2008년부터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해야 회사에 대한 이익을 주장하기 유리해질 것입니다. 반대로 A 입장에서는 2010년부터 시작했다고 해야 B의 주장을 방어하기 유리해질것이구요.
아래 예시는 대표적인 판례 사례이고, 맨 마지막 괄호안은 판사의 결정이었습니다. 독자분들께서도 괄호안의 내용은 가린 후 판사가 사실혼이 언제 시작되었고 끝났다고 판단했을지 예측하며 읽어보셔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사례) A와 B 두사람은 10대때 (1950년대) 사귀는 사이었다가, 1980년대 말에 다시 만났습니다. B는 괌에 주로 살면서 뉴질랜드에 틈틈히 오가는 중이었고, A는 뉴질랜드에서 다른사람과 결혼한 상태였지만 관계가 소원했었습니다. 둘은 다시 만나 예전 감정에 불타올랐습니다.
A는 기존배우자와의 별거 및 (거의 빈집이었던) B의 렌탈집에 살기 시작하였고, B가 뉴질랜드에 올 때마다 성관계도 했습니다. 1990년에는 둘이 함께 집을 보러 다녔고 B의 명의로 집도 구매한 후 A는 그 집으로 옮겨살았습니다. 가끔씩 A가 괌으로 두달동안 놀러가서 B를 만나고 같이살며 성관계도 했구요.
1996년에는 A가 타우랑가에 본인명의로 집을 구매했고 (대부분 기존배우자와의 재산분할로 인한 현금) B도 $10,000을 보탰습니다. 1999년에는 A가 괌으로 아예 이주해서 둘이 동거를 했지만 A는 괌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같은 해 다시 뉴질랜드로 혼자 돌아왔습니다. 다만 둘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고, 그 해 말 B가 뉴질랜드로 와서 또 잠깐 같이 살기도 했고, B명의의 집에 대대적인 공사를 둘이 같이 계획했습니다. 2001년 말부터 2002년초까지는 B가 다시 뉴질랜드로 와서 같이 살았고, 그 직후 A가 다시 괌으로 가서 B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둘 다 다른사람들과도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A의 경우 1990년부터 2002년 말까지 계속 다른사람과의 성관계가 있었고, B의 경우에도 1999년에 (A가 뉴질랜드로 돌아간 후) 괌에서 사귀던 사람이 있었고, 2002년 7월경에는 아예 다른여자와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주변사람들의 경우 둘이 ‘on and off’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관계가 계속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A는 1990년부터 2002년 7월까지 사실혼관계가 있었다고 주장했고, B는 한번도 사실혼 관계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판결: 1996년 타우랑가 집 구입시점부터 2002년 7월까지 사실혼이었음)
이렇듯, ‘부부관계’의 시작은 위 요소들이 하나하나 점진적으로 더해지는 과정 속에 이루어질겁니다. 어떠한 계기가 되어 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데이트를 즐기게 되고, 서로의 집에 자주 들낙거리게 되고, 그 사이에 재정적으로 서로 주고받는게 생기고, 완전한 동거가 이루어지고. 즉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이미 ‘부부관계’를 시작했다고 추후에 법원이 판단할 수도 있다는 점을 독자분들께서 인지하고 계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