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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봉정사 영산암 응진전 용과 사슴, 영덕 장육사 대웅전 사자와 코끼리
사찰 곳곳에서 만나는 동물들은
절을 아름답게 하고 이야기를 담는다.
아이가 처음 세상을 배울 때
동물 이름을 익히듯이 친근하고,
나아가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이
부처임을 알아가는 시간 속으로-.
연꽃처럼 아름답게 조성된 절은 그 자체로 부처님의 마음과 불국토를 보고 만져지게 구현한 것이어서 어느것 하나 허투루 있는 것이 없다. 특정 지점에서 보면 전각 뒤에 배경으로 보이는 산의 능선과 똑 떨어지게 어울리는 지붕의 곡선을 보면서 자애로움을 느끼게 된다.
작고 낡은 탑과 오래된 석등에 핀 돌이끼에 한참 눈이 가닿곤 한다. 누군가 이른 아침 정성을 다해 쓸었을 비질이 남긴 무늬를 보면 공손해진다. 그 간절한 공경심과 내부로 향했을 빈틈없는 탐구심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그래서 늘 절 한 구석에 단정하게 놓인 싸리비를 보면 거룩해지면서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
하얀 공작처럼 수려한 봉정사
안동 봉정사는 동물에 비유하자면 하얀 공작 같다. 빛깔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날개 깃털을 펼친 듯이 은은하고 수려한 아름다움이 그 안에 꽉차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과 툇마루와 난간이 있는 대웅전이 국보로 지정된 천년고찰이다.
안동은 편리하게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함께 있다. 그 곳에서 11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천등산 아래에 첫눈에 봐도 유서 깊은 느낌을 주는 봉정사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한국의 산지승원 7곳 중의 하나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문하여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라고 방명록에 적은 때가 1999년이다.
봉정사의 대웅전 우측 위쪽에 거의 붙어 있지만 비원처럼 은밀하게 독립된 암자 하나가 있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우화루 아래로 난 낮은 입구를 지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ㅁ’자 구조로 조성된 작은 전각들 안으로 중정이 있고 그 가운데에 바위 속에서 피어난 듯한 만 가닥 가지의 소나무가 있다. 마치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설법하시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도를 연상케 하는데 영산암이라는 이름에 걸맞다. 이 은밀하고 위대한 영산암의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신 ‘응진전’ 내부와 외부 벽화에는 여러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의도치 않게 봉정사 영산암에 지인과 그의 반려견인 ‘달’과 함께 갔다.
“개를 데리고 절에 가도 되나요?”
그렇게 물으신다면 잘 모르겠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지만 어디에도 답해진 바가 없다. 다만 사찰의 특성과 그날의 운에 따라, 그때 그곳에 방문하신 분들의 성향에 따라 다르므로 주의하며 사찰 참례를 하면 부처님이 다 알아서 하신다고 하면 답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절을 다녀보면 개와 고양이가 편하게 지내는 곳이 제법 많았다. 또 개와 고양이와 새들이 자유롭고 안락하게 서식하는 정갈하고 안온한 사찰들을 가보면 부처님의 가피를 더 크게 느끼곤 한다. ‘해탈’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와 개들도 여럿 만났다. 구례 화엄사 안내소에 앞발이 없는 고양이가 묵상하듯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서귀포 약천사에서 새벽 예불을 하고 있으면 대웅전 안으로 홀연히 날아왔다 날아가는 산새의 청아한 소리도 귓가에 생생하다. 서울의 수국사에는 사자 같은 개가 어슬렁거리며 주지스님처럼 돌아다닌다.
불교의 전통에서 화두 참선을 통해 진리를 찾는 것을 ‘간화선’이라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화두가 ‘무(無)’자 화두이다.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물었을 때 “없다(無)”라고 했던 조주 스님의 일갈은 개가 이미 부처이니 불성 따위 묻지 말라는 뜻으로, 부처님이 『열반경』에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부처가 될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을 강력하게 설하신 대목이라고 한다. 아직도 이 화두를 오직 인간만이 불성을 지닌 존재이며 부처가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안다. 오히려 지배와 소유, 전쟁과 환경 파괴를 저지르는 지구상에서 오직 인간만이 불성에 어긋나는 종족이라는 의견에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만이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한 존재,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점점 불성이 희미해지는 존재, 가까스로 불성이 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단련하고 간절하게 수행해야 하는 존재다. 그래서 이 ‘무(無)’자 화두는 ‘없음’을 확장시켜 세상 모든 것을 부처로 볼 수 있는 너른 안목을 과연 얻을 수 있을 것인가를 스스로 참구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강력한 공안이라는 철학자 강신주의 해설에 깊이 공감한다.
‘달’이가 가파른 계단을 깡충깡충 오르다가 우뚝 멈춰서 뒤따르는 우리를 뒤돌아본다. 그리고 마치 자기 집처럼 영산암 마당으로 들어가는데, 그이를 누구하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순간 참배객들의 마음은 간절하게 자기를 향해 있고, 부처님을 향해 있는 것 같았다.
민화처럼 친근한 동물 벽화
사찰 곳곳에서 그림과 조각품 속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열두 개의 띠 동물을 형상화한 12지신상은 물론이고 십우도 속의 소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그 밖에 상원사 동종의 용뉴에 극적으로 묘사된 용도 인상적이고, 사람과 흡사한 원숭이 4마리가 대웅전 처마를 벌서듯 받치고 있는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조각은 기이하면서 슬픈 감정을 일으킨다.
집을 지으면 마지막으로 도배를 하고 커튼을 골라 달듯 벽화는 사찰 미학의 마감에 해당한다. 거의 마지막 공사로 벽화를 그려서 절에 이야기를 담고 판타지를 입힌 것이다. 벽화에 특히 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화려함이 뛰어나 절집의 장식적인 기능으로도 큰 역할을 한다. 민간에 전래되어 온 동물의 신화와 신비가 불교와 습합해 그려진 동물화는 민중의 가슴 속에서 불성이 꽃처럼 피어나게 한다.
봉정사 영산암 나한전에는 용, 학, 봉황, 사슴, 호랑이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과 나무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까지 온갖 삼라만상이 그려져 있다. 세상 어느 곳에도 부처님의 마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모든 존재들이 부처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가르침을 그려놓은 것 같다. 특히 환상 속의 동물이지만 사찰을 수호하고 지혜를 상징하는 용을 해학적으로 그린 그림과 녹야원 설화에 등장하고 사자, 코끼리, 용과 함께 불교의 4대 상징 동물 중에 하나인 사슴 그림에 오래 눈길이 갔다. 그러고 나와 영산암 툇마루에 고요한 달과 함께 앉아 있으려니 잠깐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장육사 대웅전의 사자, 코끼리
산세가 발이 여섯 개인 거북이를 닮았다고 이름 붙인영덕 운서산 장육사 대웅전에서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와 여러 가지 그림을 보다보면 시공간의 테두리 따위는 훌쩍 벗어날 것 같다. 벽면과 천정 등 총 18점에 이르는 벽화 중에서 문수보살을 업은 사자와 보현보살을 태운 코끼리 그림이 압권이다. 지혜의 문수보살은 하늘의 진리에 도달했고, 덕행의 보현보살은 인연 따라 일어나는 이치를 밝혔다는 글도 여러 번 되뇌어본다.
불교문화에서 동물들이 그림이나 조각의 형태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친근함을 주고, 상징성도 있지만 동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대웅전에 삼배하고 앉아서 눈을 감고 그림 속 동물들과 불보살들이 그림 바깥으로 뛰쳐나와 생동하는 상상을 해본다. 여기서도 잠깐 꿈을 꾸었을까.
달의 반려인이 어쩔 때 꿈쩍 않고 있던 곳을 떠나려하지 않는 달에게 장난처럼 하는 말이 있다. “달이는 그럼 여기서 살아! 엄마는 간다.” 그 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달이는 그제야 벌떡 몸을 일으킨다. 다시 봉정사 영산암 마당, 작은 돌들을 무수히 쌓아올린 만 가지 소나무를 천천히 한 바퀴 돌고 총총히 하산했다. 달이가 벌써 저 앞에서 길을 재촉하고 있다.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