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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야만 볼 수 있는 아득함이 그 곳에 있다.
현실은
교통이 발달되어 굽어 흐르는 도로 덕에 섬을 겨우 면한 반도지만,
어떤 날이든 상관없이 명암은 바다를 등지고만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곳이기에,
그럴 때면
더 이상 육지라는 현실은 외면되어 그윽하고,
회색 빛 흑백 시절처럼 오클랜드를 감돌며 섬처럼 그곳은 더욱 청처짐하게 뻗어 있다.
살아오면서 그런 분위기는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든 기억에 존재했을 법한데,
그러한 것들로 인하여 다만,
오클랜드에서 바라보는 코르만델 반도는 시절을 거슬러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그리움으로 비추이곤 한다.
특별히 서먼 하고 가슴시린 날이면 횅하니 다녀오던 곳이어서,
얼마만큼을 가야 코로만델의 끝인가를 더듬어보니 도무지 명확한 기억이 없다.
들을 지나 산을 넘는 것에 대해서는 뉴질랜드의 대부분이 그러한데,
초지가 덥힌 꼬불 길을 수도 없이 넘어가야 펼쳐지는,
유독 아주 넓은 벌판의 초입에서 코로만델의 시작은 어렴풋이 볼 수 있어 가슴만 사뭇 그윽해 진다.
안개 자욱한 날 소리 없이 줄지어 이동하는 공룡의 등을 닮은 산등성이가 벌판 넘어 지평에 서려지면,
짧은 나무다리로 앉은 좁은 강은 허리가 굽어 인사를 할 것인데,
묵묵히 흘끗 미소만 짓는다면 분명 그는 졸고 있는 것이거나 세월을 너무 오래 머금은 탓일게다.
그러면 틀어놓은 오디오를 삽시간에 한 움큼은 줄여야만 대자연의 숨결이라도 스칠 수 있는 인연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말없이 곧은 들판을 달려가야 한다.
그쯤이면 공룡의 등을 닮은 산등성이가 제법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낼 것인데,
어떤 날 시골 길을 가다보면 적당히 외진곳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새로운 다리처럼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큰 다리가 황토물을 잔뜩 머금은 강 위에 떡 버티고 서서,
움찔거리기 시작하는 자동차를 통과시키면 거기서부터 코로만델의 초입은 시작되는 것이다.
오래전 이 다리는 목재로 만들어진 외 나무 다리였었다.
그런 편도로 된 외 나무 다리는 뉴질랜드에 비교적 많은 편인데,
내 기억으로는 뉴질랜드의 외 나무 다리 중 와이호우강에 있는 그 다리가 가장 길었고 오래됐기에 명물이었고 코로만델의 자부심 이였었다.
세월은 모든 걸 변화시켰다.
예를 들자면 초창기 이민왔을 때 이 나라 운전면허증은 A4지 반장정도에 본인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라 곤 싸인 하나 달랑 해 놓은 것이 전부였다.
경찰이 불심검문이라도 하려면 자동차 뒷 트렁크 위에서 정중하게 백지에 싸인을 부탁 한후 운전면허증의 싸인과 대조해 보는게 유일한 본인확인 방법이었던 순수했던 때가 있었다.
전봇대 밑에 실수로 떨어뜨린 중요한 짐이 일주일이 지나도 그대로였던 바보같은 심성을 가진 어리숙한 사람들이 살던 나라,
갓 이민온 교민이 버스를 탔는데 운전기사의 실수로 정거장을 지나치자 당황한 버스 기사가 승객들에게 다시 돌아가서 이 손님을 내려줘도 되냐고 묻는 부탁을 하고 모든 승객의 동의하에 다시 되돌아가 기어코 전 정거장에 내려 놓고 가는 바보들이 살았던 여름날 소낙비처럼 순수했던 심성을 가지고 있던 나라,
그런 나라의 변방 코로만델 초입에 붙어있는 작은 도시 템즈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지에 내리는 비는 드넓은 평원의 묵은 때를 밀어 바다로 운반한다.
평원에서 방목되는 가축들의 배설물은 황토와 섞이며 흘러 와이호우강 하류는 온통 황토물로 범벅이다.
덕분에 바다는 황톳물로 가득하여 막상 템즈를 기대했던 여행객은 이곳 포구에서 실망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것이 곧 기우임을 알 수 있을 것인데,
황토가 오염물질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과정 중에 수많은 프랑크 톤은 생겨나고,
그 작은 먹이를 얻기 위해 멸치 같은 고기들은 큰 물고기들을 유혹하여 이곳으로 이동한다.
때문에 초여름 산란기면 온 바다가 참돔 떼로 어우러지는 진풍경은 이곳에서 흔한 일인데,
좁은 도로가 매달린 반도 측면의 가파른 갯바위는 큰 바다로 이어지며,
낚시꾼들이 불러 모은 여행객들은 오래된 작은 도시 템즈에서 북적거린다.
템즈는 약 7500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이다.
이 도시에 이름이 붙여진 것은 오래전의 일인데,
1796년 탐험가 쿡선장이 와이호우강을 보고 영국의 템즈강과 비슷하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후 템즈가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쿡 시대로부터 100년 정도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코로만델에서 최초의 금이 발견된 것은 1852년 이지만 1867년에 많은 금을 체취하고부터 템즈를 중심으로 골드러시가 터졌다.
1924년 금 채굴이 끝날 때까지 도시는 번영되었는데,
그때 도시의 윤곽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어 마치 영화 속의 서부시대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를 아직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작은 도시지만 나름대로 알록달록하게 구경거리가 있어 차분히 돌아볼 일인데,
일단 중간쯤의 관광 안내소에서 숙박정보를 물어보는 게 우선일 듯싶다.
내 경우는,
키위(토착백인)가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3일을 묵은 적이 있는데,
후일 집주인과 친구로까지 발전되어 가슴 시리게 템즈가 기억에 남아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래된 건물의 내부는 혼을 통해 들여다보아야 될 일인데,
그들이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깍아 만든 웅장한 내부시설을 살피다보면,
살아가면서 보다 신중해져야겠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 구경거리로는 100여 년 전에 건축된 교회 내부에 19세기 초기 정착민들의 의상이나 풍속 등을 전시한 템즈 역사박물관과, 골드러시 때의 상황과 광석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광석 박물관,
그리고 템즈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쟁 기념관등이 있으며,
숨을 죽이고 조용히 관찰해야할 카우아에랑아 협곡은 저 만치 숲 속에서 웅크리고 있어,
얼마만큼은 숙연해져야 자태를 허락할 것이다.
토요일 오전, 도시 중심부에서 이루어지는 토요 장은 순수하기에 초라하기까지 하다.
약 200미터에 달하는 도로의 인도는 장사꾼의 좌판으로 단출하다.
집에서 손수 키운 야채 모종,
내내 빚어 만든 도자기,
집 뒤 언덕에서 채취한 천연 꿀,
심지어는 수십 년을 사용했을 성 싶은 그릇들,
컬러가 없던 시절 장터에서나 보았슴직한 도무지 풋풋하여 상품화하기엔 아직 버거울 성 싶은 것들을,
관광객들은 온몸에 칭칭 동여매며 꾸역꾸역 무언가를 들고,
그리고는 목청껏 울어 재끼는 거리의 가수 옆을 흔들흔들 지나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 사라진다.
또 다시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거리의 악사는 갈 길을 재촉하며 저녁은 그렇게 등 뒤로 찾아든다.
달빛은 서산을 넘어 어스름 도시의 외곽을 비추는데,
활동을 시작하는 등 굽은 공룡은 옆구리를 내주며 여행객의 지나온 삶을 유혹한다.
그때야 산책은 시작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카우아에랑아 계곡으로 흘러드는 도로는 야멸스럽고 푸르스름하기까지 하다.
간혹 집들은 있어 덜 적막하고,
농장 어스름 울타리엔 양들이 웅크리고 오물거리고 있다.
화등잔만하게 눈을 밝힌 큰 소가 콧김을 뿜으면,
시절을 넘어 옛 집 외양간은 다가선다.
내는 제법 좁아지며 계곡을 오르고,
힘에 겨운 물줄기가 가지런할 때 야행성 뱀장어는 눈을 부비며 활동을 시작한다.
얼마만큼을 거느린 행복인가?
깊은 계곡은 울어 재끼고,
여름을 머금은 귀뚜라미는 제법 소슬하니 귀를 간질이는데,
이만큼이면 템즈의 계곡은 더 푸르스름하여,
달빛을 시샘하는 거대한 수목들은 울음을 토해내며 바람을 불러들인다.
새벽이 찾아오고,
지도를 바로 하여 이곳을 다시 볼일인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마음이 얼굴에 붙은 사람들이 종종 이곳에 나타나서, 더불어 템즈는 아직 살아 숨쉰다고 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