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자주 꾼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정도.
원래 인간들은 대체로 거의 매일 꿈을 꾸고, 기억을 못 하는 것뿐이라고들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다행일 것이다. 내가 꾸는 꿈은 선명하거나 확실하진 않아도 매우 기분 나쁘고 불쾌한 류가 보통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는 것만 기억할 뿐이다. 늘 나를 불안하게, 심란하게 하는.
점이라던가, 꿈이 미래를 알려준다거나 하는 것은 믿지 않는다. 꿈은 그저 무의식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내가 꾸는 꿈들이 나에 대해서 무엇을 알려주는 지도 이해하고 싶지 않다. 내가 꾸는 꿈처럼 그것들도 썩 유쾌하지 않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거의 항상 내 꿈 속은 노이즈가 낀 것처럼 파직파직하고 흐리멍텅하다. 기괴할 때도 있고, 내용은 어린 아이가 만든 모자이크처럼 조악하기 짝이 없어도 꿈 속에서 느낀 감각만큼은 소름 끼치게 선명할 때가 종종 있다.
소리나 음성은, 만약 대화가 있다면, 그것도 들리지 않다시피 한다. 마치 귀마개를 쓰고 안개 속을 달리는 것처럼. 꿈 자체도, 그리고 나중에 떠올리는 꿈의 기억도 매한가지다.
내가 꾸는 꿈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것 하나는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다. 꿈을 꿀 때면 높은 확률로 나는 뛰고 있다. 도망간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정작 무엇에 쫓기는 지는 알지도 못하고, 그냥 달리는 경우가 많다. 괴물일 때도 있고,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일 때도 있다. (여담이지만, 가장 압권이었던 꿈 속의 추격자는 화난 엄마였다. 점점 눈이 관자놀이까지 찢어지고 커지면서 뼈가 울툭불툭 튀어나오더니, 별안간 인간 모양의 껍질을 찢고 거대한 인간-사마귀 하이브리드로 변신해 바닥을 마구 찍으면서 날 쫓아왔다. 실화다.)
잡힐 때도 있고 무사히 도망칠 때도 있지만 어차피 잡혀도 꿈은 끝나지 않는다. 나를 쫓던 자에게 죽임 당할 때도 있지만 죽음은 꿈을 끝내지 않는다. 일종의 환생처럼 내 의식만은 뚜렷하게 다른 상황으로 치환된다. 하지만 ‘죽을 때’의 그 기분, 아주 불유쾌하고 상상만으로 대신해야 하는 고통의 부재는 끔찍하다.
또다른 꿈이라면 떨어지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높은 곳을 좋아하긴 하는데 꿈 속에선 유난히 떨어지는 경우가 잦다. 그것도 정말 싫다. 떨어질 때의 일시적인 무중력, 차라리 끝없이 낙하한다면 모를까 언젠간 이것도 멎어버리고 만다는 그 느낌. 상황이 바뀌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 바뀐 상황도 익숙해질 틈 없이 금방 끝나버리고 만다는 게. 꿈에 가까운 주변 인물들이 나올 때도 있지만 꿈 속의 그들은 대부분 어딘가 뒤틀려 있어 교묘한 위화감을 들게 한다. 익숙하지만, 퍼즐 조각 하나가 잘못 끼워진 듯한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나는 현실에 종이 한 장만큼 가까운 꿈을 꾸고, 꿈 속에서도 어렴풋하게 그렇게 느끼면서도 정작 꿈 속에선 이것이 꿈에 불과함을 자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자각몽, 루시드 드림(lucid dream)이라고 하던가. 자각몽 속에선 - 그만큼 불쾌하고 민감하긴 해도 - 자신의 꿈 내용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꼭 한 번쯤은 꿔보고 싶지만 말이다.
꿈의 기억도 오래 가지 않는다. 아무리 인상적이어도 하루나 이틀, 그 이상을 지나버리면 아주 조각난 편린만이 남고 전체적인 스토리나 배경은 날아가버린다. 아쉬울 따름이다. 종종 꿈에서 영감을 받을 때도 있긴 하지만 그 기억이 없어져버리니, 좋은 소재도 같이 사라지는 셈이니까.
쫓기는 것과 떨어지는 것. 왜 맛있는 걸 먹거나 하는 둥의 좋은 꿈이나, 아니면 아예 꿈 따위 꾸지 않고 푸근하게 잠들 순 없는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