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는 한국에 비교하면 문신을 새긴 사람들이 유독 많다. 더 분방하고 개성을 중요시하는 문화 때문일까. 특히 여름날에 길거리를 걷다 보면 문신이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렵다.
자해하는 게 아니라면야 자신의 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문신도 헤어스타일이나 매니큐어와 마찬가지로 미용이나 자기 표현의 일환에 불과하므로. 그것을 침범하거나 비난할 이유는 다른 사람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건 인간으로서의 월권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문신한 사람을 보는 게 불쾌하다면, 글쎄. 문제는 그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불쾌하다고 여기는 당사자에게 있는 게 아닐까.
거의 십 년 가까이 외종 사촌 언니를 만났을 때, 언니의 몸 곳곳에 문신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좀 놀랐던 것 같다. 물론 눈에 띄는 위치에는 없었다. 발의 복사뼈나 귀 뒤, 그리고 어깨와 골반 정도였달까. 그 신중하리만치 작은 문신들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혹시 아플까 싶어 - 물론 그럴 리는 없지만 - 손끝으로 꾹꾹 눌러보고 뭐라고 쓰여진 건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물어보았다.
“이건 뭐라고 쓰여진 거야?”
“라틴어야. 유명한 명언이래.”
“그럼 이건 왜 새겼어?”
“그냥.”
몸에 그림을 그려 넣는 데엔 딱히 이유가 없어도 된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약간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내 수긍했다. 아무렴, 이건 내 몸인데.
내가 본 중에 가장 흔한 문신은 색채가 들어간 ‘전통적인’ 문신이었다. 대개 꽃이 들어가 있고, 알 수 없는 추상적인 무늬가 테두리 없는 바탕을 메운다. 더러는 - 남자들의 경우 - 해골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보통은 팔--이두근에서 팔꿈치 안쪽까지 살을 메우고 있고, 손목까지 내려오는 경우도 심심찮다. 마치 소매처럼. 어쩌다가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빤히 응시하게 된다.
나도 문신을 새기고 싶다고 종종 생각하곤 한다. 보통 문신은 지극히 개인적인 뜻과 중요성을 가진 것들이 많으니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아직 정확히 어떤 모양을, 또는 문구를 새기고 싶은진 모르겠지만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을 생의 메멘토 하나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내게 소중한 것, 또는 특별한 상징. 비록 살면서 그런 걸 정해놓지는 않았어도.
내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문신은 어떤 젊은 여성의 몸에 새겨진 것이었다. 더운 여름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매가 없거나 짧은 옷을 입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기다리던 중 내가 본 그 라틴계 여성의 문신은 바로 날개였다. 흔하다면 흔한 문신 유형이지만, 그녀의 ‘날개’ 한 쌍은 늘씬한 어깨와 날갯죽지 전체에 걸쳐 그려져 있었다. 딱히 색이 있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섬세하게 검정색 잉크로 그려진 날개는 진짜 새의 날개처럼 목 바로 아래, 등의 한가운데서부터 시작해 어깨와 이두근까지 깃털을 펼치고 있었다. 소매나 줄 없는 하얀 홀터넥 상의를 입고 있어서 더더욱 눈에 띄었던 것 같다. 내가 본 것들 중 그 어떤 것보다도 노골적이고 파격적인 자유에의 갈망이라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내 부모님은 내 몸에 펜촉을 갖다 대는 것조차 결사반대를 하시니, 대신 나는 내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 등에게 문신을 주어 대리만족을 하곤 한다. 그들이 지나온 길과 하지 않는 이야기의 역사를.
문신은 그런 뜻에서 새기는 것이니까. 사람들이 문신을 꺼려 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