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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 영어 자격증을 준비하는 직장동료들, 한국어를 익히고 있는 외국인들이 많다 보니 “00는 영어로 뭐라고 해요?” “00는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와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에 특히 외국인 친구들한테 한국어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시키기란 매우 어렵다. 단순히 그 단어의 뜻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쓰이고, 한국 문화에서 그 단어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엄마 친구 딸’을 줄여 이르는 말로, 집안, 성격, 머리, 외모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여러 가지 완벽한 조건을 갖춘 완벽한 여성을 뜻하는 ‘엄친딸’을 그냥 ‘a daughter of my mum’s friend’라고 알려주면 안 되듯 말이다. 그렇다 보니 한국어 단어를 영어로 알려줘야 할 때 매우 고심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영어로는 도저히 이해시키기 힘든 몇 가지 한국어 단어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효(孝)다.
영어로 그냥 “being a devoted child”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느낌이다. 그래서 결국 “키워주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자식이 부모한테 헌신하는 마음”이라고 장황하게 설명하지만 이런 설명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서양 문화와 달리, 한국에서의 부모님의 모성애는 남다르다. 자식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양인들에겐 이런 희생이 ‘자식에 대한 컨트롤’ 혹은 ‘과한 간섭’으로 받아들여지는 면이 있어서 한국의 효(孝)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정(情) 역시 마찬가지다. 사전에 나오는 ‘affection’이라고만 말해주면 정(情)이 한국인에게 뿌리 깊이 내재돼 있는 고유문화라는 뉘앙스를 전달하지 못한다. 과거 이웃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고 살만큼 정겹던 시절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하여 이사떡을 돌리는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거쳐 지하철에서 앉아 있는 사람이 서 있거나 힘들어 보이는 낯선 사람의 가방을 들어주는 마음 모두 정(情)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설명해 주면 “알겠다! 수퍼 친절한 거구나!”라는 말로 사람 맥빠지게 한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이해시키기 어려운 난이도 상의 단어는 바로 ‘텃새’다. ‘텃새’라는 단어는 영어사전에도 없다. 한국 정서로만 이해되는 이 단어는 아무리 예를 들어 설명을 해줘도 외국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나: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뒤이어 오는 사람에 대해 특권 의식을 갖고 뒤에 오는 사람을 괴롭히는 행위야.
외국인: Oh, you mean being territorial?
나: 비슷하긴 한데 어떤 영역이나 지역 다툼이 아니고 뒷사람을 은근히 못살게 구는 거야.
외국인: Being bossy?
나: 아주 아니라고 할 순 없는데 대놓고 상사처럼 지시하고 시키는 건 아니야. 우회적으로 괴롭혀서 뒷사람이 적응을 못 하게 하는 거야.
외국인: I got it! A bitch?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 같다. 요즘은 완벽하게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사람과 전문 번역가가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