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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 그룹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날은 여기서 공원묘지 가이드 투어가 있는 날이다. 지역신문에 광고가 났으며 참가비를 지불해야 하는 이색 묘지 투어다. Waikumete 공원묘지는 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오래된 곳으로 알려진다. 드넓은 구릉지에 잘 구획된 묘지 조성으로 정결함이 느껴진다. 참석 인원들은 안내자를 따라 묘지를 찾아다니며 이에 관해 얘기를 듣는 여정이다. 안내자의 설명은 구성지지는 않지만 묘지 주인을 설명하는 데 열중이다. 고인의 생전에 있었던 애틋한 사랑 얘기를 들려주는가 하면, 희대의 사건으로 얼룩진 살인에 관한 얘기는 사뭇 흥미롭다. 먼 미국에서 화려한 삶을 마치고 이곳에 묻힌 이의 뉴질랜드와의 인연 얘기도 들을만 하다. 이런 얘기는 주로 신문에 보도되었던 내용으로 안내자가 발굴해 낸 것들이다. 수십년 지난 후에 인연이 없는 일단의 그룹들이 모여 고인의 지난 얘기를 듣는 것이 이채롭다.
오래전 유럽으로 주말농장 운영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단체여행 때의 경험이다. 관광회사를 통한 단체여행으로 파리의 신규 특급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 호텔은 지은지가 얼마되지 않아 객실의 여유가 있어 단체 여행객을 받고 있는 고급호텔이었다. 각종 부대시설과 식단 나무랄게 없는 일류로 보인다. 아침에 창문을 열어 보니 놀라운 광경이 눈 앞에 다가온다. 공원묘지의 무덤이 즐비하다. 특급호텔에서 맞이하는 상쾌한 아침에 접하게 되는 어색한 광경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컬쳐 쇼크로 받아들여야겠지만 그 당시의 충격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필자의 고향에서는 마을에서 아주 멀리 외딴 산지에 공동묘지가 자리한다. 하지만 서양문화권의 생활 주변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쉽게 묘지를 발견하게 된다.
대부문 주변의 공원묘지에서는 묘비석과 함께 많은 꽃 장식을 흔히 접하게 된다. 묘비석이 다양하지만 꽃 장식도 각양각색이다. 묘지를 찾은 가족들이 마련한 말라버린 꽃 다발이 있는가 하면, 화병 속에서 시들어 가는 꽃송이도 있다. 어떤 묘지 앞에는 장미 또는 동백나무가 자라기도 한다. 그런데 울긋불긋하고 화려한 꽃다발도 상당수에 달한다. 이런 꽃다발은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조화로 일년내내 그 화려함을 자랑한다. 아마도 무릉도원에서 편안한 사후를 보내기를 염원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어릴 적 조상묘를 찾아 성묘를 하던 기억이다. 초가을 추석 때는 말끔히 벌초한 잔디 위해서 무릅을 꿇었고, 한겨울에는 눈 덮인 잔디 위에 언손을 모았던 기억이다. 이런 필자의 행동은 어머님의 가르침으로 이루어 졌다. “뒷산에 올라가면 묘지가 몇 개 있는데, 어느 묘는 증조 할아버지 묘이니 제일 먼저 찾아 뵙고 그 다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묘를, 이런 순서로 절은 하고 오너라. 나이가 어리고 너 혼자 성묘를 가니 제수는 준비하지 안해도 된다. 그 대신 주변에서 작은 소나무 가지를 잘라 묘지 앞에 놓고 공손히 절을 하도록 해라.” 그 당시 어린 나에게는 납득이 가는 설명은 아니었지만 누가 성묘를 마쳤는지를 알려주는 징표라 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봄이 되어 진달래 꽃을 찾아 가던 길에 묘지 앞에서 붉게 변한 소나무 가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성년이 되어 제사 때 만났던 큰집 형님께서는 필자한테 이런 질문을 주셨다. “묘지 앞에 꽃나무를 심고 싶은데 어떤 것이 좋겠는가?” 척박한 마사토로 이루어져 묘지 주변에 꽃나무는 적절치 않아 보였다. 아버님은 할아버지 묘소 양옆에 향나무를, 사촌 형님께서는 철쭉 두 그루를 큰아버지 묘소 앞에 심은 것을 확인 할 수가 있었다. 바쁜 일상이지만 묘소를 찾는 이는 어디에서나 볼 수가 있다. 살아가는 생활 공간에서 가까이에 묘소가 있게되면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좀 멀다면 그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나를 돌아보는 포즈의 순간을 마련하는 힐링의 시간을 갖게 된다. 고인을 위해 아니 기리는 이를 위해 한 송이의 꽃이든, 한다발의 꽃바구니이든 손에 들리게 마련이다.
우리의 저녁 식탁에서도 한 송이의 장미를, 한 줌의 프리지어를 마련하기도 한다. 또는 좀 오랜동안 변함이 없으라고 조화로 장식하기도 한다. 모든게 주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 될 것이다. Waikumete 공원묘지에서 만났던 화려한 플라스틱 조화의 놀라움은 아주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다. 고인의 간곡한 부탁이 아니라면 굳이 그런 화려한 장식이 필요할까하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사후에는 항상 꽃이 만발한 곳에서의 안식을 그리기도 할 것이다. 사시사철 꽃이 피고지는 그런 곳을 염원할 것이다. 하지만 사계절 내내 피는 꽃을 그리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과욕이 아닐는지. 하기야 영생을 기리는 사후세계를 그리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젊은날 부산의 어느 까페에서 나누었던 생화와 조화 대한 아주 긴 이야기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