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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된 새샙이(한국)
옛날 어느 고을에 새를 잡아서 먹고사는 총각이 있었다. 그는 부모도 집도 없이 오직 새총 하나를 들고 다니면서 여러 종류의 새들을 잡아 모닥불에 구워 먹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총각을 ‘새샙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새샙이는 다른 날처럼 새총을 들고 새를 잡으러 다니고 있었다. 마침 어느 집 울안에 배나무가 서 있는데 그 나무에 참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새샙이는 새총을 당겨서 참새를 명중시켜 떨어뜨렸다. 그런데 참새가 담장 밖으로 떨어지지 않고 담장 안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새샙이는 새를 가지고 오려고 담장을 타넘어 참새를 주운 다음 주변을 살펴보니 베를 짜던 처녀가 깜짝 놀라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석 자 세 치나 되는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아름다운 처녀였다. 새샙이는 모르는 척하고 마당 한구석에 모닥불을 피우더니 참새를 굽기 시작했다. 처녀는 당황했으나 아무 말도 못하고 얼른 나가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새샙이는 고기를 다 굽더니 반으로 갈라 절반을 처녀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처녀는 빨리 고기를 받아야 새샙이가 나갈 것 같아 고기를 받아먹었고, 그러자 새샙이는 미소를 지으며 담을 넘어서 돌아갔다.
다음 날도 새샙이는 배나무의 새를 잡아 처녀와 함께 먹었고, 다음 날도 또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다음 날은 베를 다 짜도록 새샙이가 찾아오지 않았다. 처녀는 돌멩이를 집어 배나무에 앉은 새를 향해 던져 보았다. 그러나 맞을 리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새샙이가 새고기 값을 받으러 왔다고 하였다. 처녀가 깜짝 놀라 자기는 가진 게 없다고 말하자 새샙이는 매일 맛있는 새고기를 구워 줄 테니 그럼 자기랑 함께 가서 살자고 말했다. 새샙이가 처녀의 손을 잡아끄니 처녀는 마지못한 듯 따라나섰고, 새샙이는 몸에 힘이 솟아 처녀를 업고 담을 뛰어넘었다. 그렇게 도망을 친 두 사람은 산속 외딴 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림을 시작했다.
새샙이는 각시 옆에 있는 게 좋아서 먹을 것이 떨어졌는데도 좀처럼 밖으로 나가 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각시가 자기가 보고 싶을 때 보라고 하며 각시의 모습이 똑같이 그려진 그림을 주었다. 그제야 새샙이는 그림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샙이는 일을 하다 말고 그림을 꺼내서 살펴보는데 갑자기 휭 하고 바람이 불더니 그림이 큰길까지 날아가 마침 길을 가던 신하 일행 앞에 떨어졌다. 임금의 명을 받고 왕비를 찾으러 나선 신하였다. 신하는 임금이 찾아오라던 머리카락이 석 자 세 치 되는 아름다운 여인이 그림 속에 있는 것을 보고 근방의 마을을 다 뒤져 막 우물에서 물을 긷던 새샙이 각시를 다짜고짜 가마에 태워 길을 떠났다. 산에서 급히 뛰어내려온 새샙이가 그 모습을 발견하고 쫓아가며 각시를 불렀다. 그때 각시가 가마에서 고개를 내밀며 새 잡아서 삼 년, 공부해서 삼 년, 뜀뛰어서 삼 년, 모두 구 년을 공부해서 찾아오라는 말을 남긴 채 속절없이 붙잡혀 갔다. 새샙이 각시를 본 임금은 자신이 원하던 짝을 만났다며 좋아했으나, 각시는 자기는 임자가 있는 몸이며 구 년이 지난 후에는 몰라도 그 전에는 임금과 결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구 년이 지났고, 임금은 이제 자기랑 결혼을 하자고 하였다. 그러자 각시가 대신 그 전에 한 가지 청이 있다며 궁궐 문을 열고 크게 한번 거지잔치를 열어 달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여 온 나라에 알려 거지잔치를 하게 되었고, 나라 안의 거지들이 궁궐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구 년 동안 공부를 한 새샙이도 끼어 있었다. 새샙이는 새털을 이어 엮은 장옷을 입은 채 궁궐로 들어섰다. 이상한 옷을 입은 새샙이는 궁궐 문을 들어오면서 춤을 추듯 훌쩍훌쩍 몸을 움직였고, 임금 옆에 앉아 있던 각시가 새샙이를 발견하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 구 년 동안 각시가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임금은 그것을 보고, 각시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단 아래로 내려가 제 옷을 새샙이에게 주고 새샙이의 새털 옷을 빼앗아 입고는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각시가 새샙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샙아 샙아 새샙아. 새 잡아 삼 년, 공부해서 삼 년, 뜀뛰어서 삼 년, 구 년 동안 무엇을 했나?”
그 말을 들은 새샙이는 퍼뜩 깨닫고 임금의 옷을 입은 채로 번개처럼 용상으로 뛰어올라 거지를 물리치라는 호령을 했다. 그러자 군사들이 달려들어 새털 옷을 입은 임금을 궁궐 밖으로 내쫓았고, 임금이 아무리 소리를 쳐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하여 왕과 왕비가 된 새샙이와 각시는 나라를 잘 다스리며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