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19 시대의 공부 - 적극적 숙제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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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19 시대의 공부 - 적극적 숙제완료

ksy10281
0 개 1,468 김준

자~ 지난 시간에 숙제 준 문제들 다들 풀어봤지? 그 중에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이나 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 있으면 이야기 해보자~


말은 클라스에 있는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듯 했지만 사실 제 눈은, 그리고 다른 학생들의 눈들도 또한, K에게 머물러 있었습니다. 무언가 압박감을 느꼈던 것인지 아니면 준비해 온 문제들이 너무 많아서였는지 K는 조금 쭈뼛거리는 몸짓으로 모바일폰을 집어들었습니다. 당시 최신폰으로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샀던 삼성전자의 노트8 모바일폰이 K의 책상으로 올라왔고 동시에 저는 언제나 그랬듯이 제 책상으로 가서 모니터를 켰습니다. 


잠시 후 ‘띠링’하고 K가 보낸 파일들이 Wifi를 통해 전송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들을 한 번 쓰윽 훑어본 후 차악차악 프린트를 해서 학생들에게 돌렸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이번주에도 K는 숙제로 받은 문제들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을 질문거리로 들고 왔군요. 하나하나 풀고 마킹을 한것도 모자라 자신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부분들에 깔끔하게 메모까지 남겨서 말이지요.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음이 분명한 K의 숙제는 이제 그만의 질문이 아니라 그런 질문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있던 친구들에게까지 확대 적용되어 수업의 주제가 됩니다. 


K덕분에 친구들은 ‘1차 소화’가 된 개념들을 별 다른 노력없이 습득하는 행운을 누리는 것이지요. 한 문제 한 문제 풀어가며 질문들을 해결할라치면 K는 또 서둘러서 예의 모바일폰을 가로로 눕혀놓고 손바닥보다 조금 큰 화면을 확대 했다가 축소했다가 하며 해법을 적어 넣습니다. 20여분간의 질문 해결시간이 끝날 무렵엔 그가 애용하는 노트 프로그램인 Evernote에 날짜와 과목과 챕터를 명시해서 저장합니다. 한번은 너무나 궁금해서 K가 Evernote에 저장해 놓은 전과목 학습자료들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의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 저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저는 학생들에게 전자기기를 적극활용하기를 권장하게 되었고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K의 아이디어를 이어받아 학습에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K의 남다른 숙제 완성도와 거기에서 연유된 질문과 메모들이 K 스스로나, 같은 반에서 공부하며 K의 덕을 톡톡히 보고있는 친구들에게만 유익했던 것은 아닙니다. 저 또한 그 메모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는데요.. 어찌보면 참 순진무구해 보이기까지 하는 가지가지 메모들과 지식이 박약함을 드러내는 단순한 질문들을 통해, 아이들이 문제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자주 실수하는 부분이나 논리의 전개가 한계에 부딪히는 부분들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고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빠듯한 시간을 쪼개가며 상대적으로 많은 양을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나는 이미 알고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학습과정이라는 것이 발전을 전제로 구성되어 있다보니 아이들은 매 수업시간마다 새로운 도전을 감행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이미 수십번을 가르쳐왔던 내용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하는 입장에 서게 되지요. 그러니까 매 시간의 학습내용이 아이들에겐 머리를 쥐어짜도 이해하기 어려운 난제들의 연속이 되지만 선생님들에겐 그 다음과 그 다음, 그리고 그 이후의 상위개념까지 연장되는 연결구도의 바탕인 기본내용인 것입니다. 


알고 가는 길과 모르고 가는길의 차이라 할까요? 그러니 자칫 아이들이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알쏭달쏭해 하면‘이 쉬운 내용을 왜 이해하지 못할까?’하며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지요. 어찌보면 학생의 상황에 대한 몰이해이고 또 달리보면 선생이라는 직업에 적응하며 살아온 근 이십년이 남긴 메너리즘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저의 이러한 몰이해와 메너리즘을 타파하는 계기가 되어준 것이 바로 K가 들고오는 문제들, 그리고 그가 문제지에 남긴 메모였던 것이지요. 


그렇구나.. 아이들은 2차원의 운동을 분해해서 2개의 1차원적 운동의 결합으로 인지하는 능력이 부족하구나..

그렇구나.. 아이들은 불균형 전자분포가 2단계에 걸쳐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그렇구나.. 아이들은 전자회로에서 전지의 전압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값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깨달아 알게된 내용들을 짚어가며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 주노라면 여남은개의  눈동자들은 늦은 저녁시간의 피로감도 잊은채 총기있게 반짝이곤 했습니다. 그러니 어찌보면 그 한해 동안 이루어진 학습성과의 공로는 K에게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럼 K의 진학결과는 어땠을까요? 당연히 스스로가 원하고 희망하던 대학과 전공에 무난히 합격했습니다. 그 정도의 노력과 적극성을 보였던 학생이 진학에 성공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K가 졸업을 한지 몇해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거의 잊은듯 살고있던 그를 다시 기억하는 것은 우리 학생들이 겪고있는 팬데믹의 고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학습의욕과 효율성이 저하되는 상황속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학습효과를 고양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그가 기억난 것이지요. 그래서 한동안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K가 보여주었던 열정과 노력은 무엇에서 기인했을까요? 사실 당시 K의 상황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어려운 캠브리지 과정을 공부하다가 Y12 물리시험에서 과락을 했고 그래서 제 학원에 왔을때는 자신보다 한 학년 어린 학생들과 공부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한번 떨어져 본 시험이라서 두려움이 더 컷는지 일년 내내 ‘자신없어요’라는 말을 달고 살았고 물리가 필수과목인 공대에 지원했기 때문에 뒤로 물러설수도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게다가 문과성향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해서 다른 쪽에서 점수를 올려줄 가능성도 희박했기에 죽으나 사나 물리를 재수강해서 점수를 올리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 그 심적 중압감은 참으로 어마어마 했을 겁니다. 아마 요즘 우리 아이들이 겪고있는, 연말 시험을 생각하면 막막하기 그지없는데 학교 수업이나 학사운영이 언제 어떻게 뒤집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결코 뒤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결국 K는 해 내고야 말았습니다. 연말 시험에서 ‘A’를 획득해서 소망하던 대학과 학과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지요. 사실 그 정도의 노력을 쏟아부은 학생이라면 당연히 합격을 하리라 예상하겠습니다만 워낙에 자신이 없다고 하는 통에 저까지도 덩달아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돌아보면 바로 어제일같이 생생한 K와의 시간들을 떠 올리면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두 똑같은 문제들을 숙제로 받았고 모두 똑같은 분량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는데, 그리고 같은 클라스 안에 숙제를 완수한 다른학생들도 있었는데 왜 유독 K의 숙제만이 자신과 다른학생들, 심지어는 선생님에게까지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중한 자료가 될수 있었을까요?


며칠간의 생각끝에 제가 찾아낸 것은 바로의 그의 ‘적극성’이었습니다. 능력이나 소질이나 취향이나 기본지식이나 꼼꼼함이나 기술과 같은 모든 객관적 주관적 소양들을 다 떠올려봐도 K의 성공적인 학습의 비결을 설명할수 있는 요소는 그의 적극성 밖에는 다른 이유를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K가 적극성 이외의 요소들을 만족시킬만한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성적을 향상시키는 방편으로 높은 숙제완성도를 선택했고 피동적인 해답찾기 아니라 능동적인 문제분석을, 소극적인 공식적용이 아니라 적극적인 상황분석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다각적인 접근법을 시도했고 광범위한 자료들을 적용했습니다. 이러한 문제풀이 방법은 학생들의 문제분석력과 지식적용 능력을 신장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방법 저런방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되고 결국 불안해진다는 문제점도 존재하지요. 그래서 K는 자신이 경험하게 되는 모든 불안을 해결할 또 하나의 방법을 찾아낸 겁니다. 


그것이 바로 처음에 소개해 드렸던 숙제에 남긴 메모였습니다. 솔직히 숙제를 하고 문제를 풀면서 자신의 궁금증에 대한 메모를 남기는 것은 그 의도와 행동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특별한 형식을 따라야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는 예의 적극적인 자세를 적용하여 클라스의 모든 학생들이 함께 자신의 질문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활용했고 결과적으로 자신과 친구들과 심지어는 선생인 저에게조차 영향을 끼치게 된 것입니다. 


적극성은 자세 혹은 태도의 문제입니다.


작은 자세의 차이가 어마어마한 결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들을 주변에서 종종 접하고는 하는데요. 그 중에 가장 흔한 사례는 아마도 운동이 아닐까 합니다. 많은 분들이 사랑하시는 골프도 그렇고 학생들이 푹 빠져사는 축구도 그렇고 언젠가부터 불어닥친 몸짱 열풍의 한 가운데 서 있는 Weight training도 그렇고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운동의 시작이며 동시에 끝까지 지켜나가야 할 원칙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뭐 하나 배워보려하면 3개월동안 자세만 잡는경우가 다반사이지요. 그러다가 한 순간 확 짜증이 나서 코치님에게 볼멘소리라도 한번 할라치면 돌아오는 대꾸가 흔히 이렇습니다.  



“처음부터 정확한 자세를 버릇들이지 않으면 나중엔 고치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자세가 부정확하면 발전에 한계가 있고 부상을 당하기도 훨씬 쉬워요. 그러니까 잔말마시고 스윙 100개 시작~!”


학습에 있어서도 작은 자세의 차이는 종종 놀랍도록 큰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자세의 차이는 능률의 차이이고 능률의 차이는 소요시간의 차이이기 때문에 자세가 바르면 결국 부족한 능력을 커버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효과를 누리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요.. 그 심리적인, 혹은 정신적인 메카니즘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하여도 적극적인 자세로 숙제와 문제를 해결하는 학생들이 급진적인 발전을 이루어낸 사례들은 손에 꼽을 수 없으리만치 많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K외에도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 많지만 그 중에 또 한명의 학생을 소개할까 합니다. 특별히 좋은 기억이 있거나 아니면 더 잘생기고 예뻐서 그런것이 아니고 ^^ 컴퓨터를 뒤져보니 그 학생이 남겼던 질문이 남아있길래 자료로 보여드릴수 있을것 같아 결정했습니다. 그럼 문제와 학생의 메모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전체문제를 다 보여드리면 좋을텐데 지면 관계상 문제의 배경부분은 제외하고 예시와 메모만 올렸습니다. 이 문제는 일본대학교를 지원하는 해외고 출신 학생들이 치러야 하는 EJU시험 중 물리시험 문제의 하나입니다. 물리 과목의 여러내용 중 기체운동론에 관련된 문제인데요. 학생은 6번이 답이라고 표시한 후 스스로 마킹을 해서 정답여부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자신의 풀이과정을 되집어 보면서 문제될만한 소지가 있는지 확인을 했지요. 그랬더니 정답을 찾아냈음에도 불구하고 풀이과정에서 너무 긴 시간을 소비했다는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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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게 또 다른 방법, 그러니까 정답을 찾아내는 정공법과 더불어서 문제의 유형에 따라 적용이 가능한 ‘지름길 해법’이 있는지 물어본 것입니다. 그 질문을 하려면 자신이 문제를 푼 과정을 제게 설명해주어야 하는데 모든 과정을 적어놓을 수는 없으니 이렇게 자신의 풀이에서 핵심적인 방향만 남겨놓은 것입니다. 그럼 저는 그보다 짧은 시간을 이용해 해답을 찾을 수 있는 풀이방법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 학생은 저와 AP 물리, EJU 물리를 공부했는데요.. 지금 기억하기엔 대부분의 숙제를 이런식으로 풀어서 제게 가져왔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준 숙제를 그냥 풀고 답 달아서 ‘저 숙제 했으니까 됐죠?’라며 가져온 것이 아니라 숙제를 완수하는 과정 자체를 제대로 된 학습의 연장선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숙제는 거의 모든 문제에 이런 요구사항, 어려움, 배운점, 적용방법등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던 것이지요. 당연히 이후 학습의 효율성이 극대화 될 수 밖에 없었고 이 친구도 K와 같이 자신이 원하던 일본의 유수한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 학생이 타고난 수재여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길고 긴 시간동안 오로지 대학합격의 목표만을 향해 매진한 때문일까요? 다행히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 친구는 마지막 학년 최종시험에서 자신이 원했던 점수를 획득하지 못했고 그래서 소망하던 대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대학교와 전공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한 뒤 고등학교 졸업 후 6개월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더 나은 성공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의 성공이 적극적인 숙제 완성과 능동적인 문제풀이에서 기인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도 익히 경험해서 알고있듯 숙제라는 것은 참 부담스러운 의무입니다. 도무지 적극적인 마음자세로 다가갈 수가 없는 시간잡아 먹는 귀신이 바로 매일 주어지는 숙제라는 녀석입니다. 하지만 돌려 생각해보면 숙제는 학습과정의 적재적소에 배치된 공부이정표이며 검증된 문제로 이루어진 표지석입니다. 


그러므로 숙제로 주어진 문제들을 능동적인 마음자세로 풀고 채점하고 검토해서 재 질문하는 적극성을 지닌다면 전체 학습과정이 확실하고 명확하고 발전적일 것임이 당연합니다. 


코비드19의 확산이 완벽히 제어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 2021년.. 바라기는 우리의 아이들이 적극적 숙제완수를 통해 더욱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공부를 해 나갈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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