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라 쓰고 ‘오지랖’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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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라 쓰고 ‘오지랖’이라 읽는다

0 개 1,240 이정현

속상한 일이 생겼다. 영어를 가르치고 있던 남매의 어머니와 작은(?) 마찰이 생겨 수업을 중단하고 환불을 해준 것. 시작의 발단은 어머니가 내게 다른 학생을 소개해 주면서 시작됐다. 사실, 자신의 친구 자녀라고 소개를 해 줬을 때, 크게 고맙거나 달갑진 않았다. 영어 과외는 내 본업이 아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퇴근 후, 시간을 따로 내서 수업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머니를 봐서 수업을 시작하게 됐다. 


이게 문제가 됐다. 그 어머니의 맘속엔 마치 내게 큰 도움을 줬다는 생각이 생겼던 모양이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내게 과외를 소개해 줬는데도 내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고, 소개를 해준 대가로 자신의 자식들 수업료 할인 등의 혜택도 없으니 불만이 쌓인 듯했다. 참다가 내게 장문의 문자로 불만을 터뜨렸고, 난 내 입장을 말해가며 반응하기 싫어서 바로 그냥 환불해 드렸다. 내 입장은 이렇다. 내가 소개를 부탁한 것도 아닌데, 본인 맘대로 소개를 해주고는 왜 댓가를 바라는가. 오히려 내가 어머니를 봐서 무리하게 수업 하나를 더 늘린 것이니 어머니가 내게 고마워 해야하는 일이 아닌가. 


이와 비슷한 일이 대학원 시절에도 있었다. 지도교수님이 조교를 뽑는다고 공고를 내자 나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지원했다. 조교를 하면서 지도교수님의 신임을 얻으면 논문심사 때도 유리하고, 장점들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도교수님은 지원서도 내지 않은 내게 조교 자리를 권했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내게 돌아올 불이익이 두려웠다. 괜히 한국에 “교수 갑질”이라는 표현이 있겠는가. 거절했다가는 내 졸업을 막을까 걱정스러운 맘에 울며 겨자먹기로 난 지도교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우리 두 사람 맘엔 정반대의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도교수님 맘에는 ‘많은 지원서도 무시하고, 다른 제자들도 마다하고 내가 널 선택해 줬어. 어때? 황송하지?’라는 생각이 깃든 것 같았다. 그리고 반대로 내 맘속엔 ‘원하지도 않았고, 정말 하기 싫은 조교를 교수님 제안 하나 때문에 하게 됐어요. 어때요? 눈물겹도록 고맙죠?’ 이런 우리가 잘 지낼리 만무했다. 교수님은 늘 화가 나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오죽했으면 동기들이 내게 조언이랍시고 한다는 말이 교수님 화병의 원인은 나니까 스승의 날에 혈압약을 선물하라고 했을까.    



그런데 과거에도 현재에도 나는 이 두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크게 잘못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내가 과외 소개를 부탁하지 않았고, 내가 조교를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 그들 기준에서 ‘호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인한테는 ‘호의’가 아닐 수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정형화된 호의나 친절이 타인에게는 버거운 부담일 수 있다. 


내게 그들의 ‘호의’가 ‘오지랖’으로 다가왔던 거처럼. 나의 친한 지인들은 이렇게 조언한다. 고마움을 느끼지 않더라도 빈말로 감사를 전하면 이런 마찰이나 갈등을 빚지 않을 거라고. 나는 이렇게 반박한다. 고맙지 않은 일에 고마워하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그러면 그들은 부연 설명을 한다. 한국 문화에는 ‘빈말’이라는 게 있는데 어쩌구 저쩌구... 아니, 문화 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뉴질랜드에서는 “thank you” 또는 “sorry”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만큼 자주 사용했지만 항상 그렇게 느꼈던 상황에서 사용했다. 가끔 내게 문화 차이라는 핑계로 엉뚱한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의 ‘호의’는 가끔 내게 ‘오지랖’으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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