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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사라졌다.
안경이 너무 오래도록 보이지 않아 이상한 느낌에 오빠의 방에 가보았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냄새에 비해 꽤 정갈한, 빛이 들지 않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오빠의 방을.. 몇 년만에 들어온 것인지. 가장자리가 닳은 나무 책상 위에는 엄청나게 두꺼운 책들이 수십권 쌓여있었다. 침대에서 자면서도 항상 이불을 개어서 한 쪽 구석에 두는 습관은 여전했다. 오빠는 없었다. 오빠의 안경도 없었다. 오빠가 없어진 것을 아빠는 아는지 모르는지, 하얀 용돈 봉투가 문지방 위에 있었다.
오빠는 늘 화장실에 안경을 벗어두고 독서실에 갔다. 5년째였다. 오빠가 집에 있는 날은 드물었지만, 가끔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려면 화장실 세면대 위 안경의 유무를 살피면 되었다. 안경의 유무. 대화나 노크조차 소스라치게 크게 들릴 정도로 집 전체는 어둑한 모서리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고 3인 나와 고시생인 오빠 탓인지, 가족 전체가 원래 대화가 없었던 것인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교회에서 간부를 맡고 있는 엄마는 랩으로 씌어놓은 밥이나 반찬으로 존재했다. 즉 평소에는 잊어버리고 있다가 먼지 쌓인 식탁 위에 무엇인가 그릇들이 있으면 아, 엄마가 있었지 하는 식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아빠의 존재는 월요일 아침마다 방문 밑으로 놓여지는 용돈 봉투로 확인했다. 우리는 32평 아파트 속의, 그림자 가족이었다.
오빠와의 마지막 대화는 여름방학 때 였다. 햇볕이 끝도 없이 내리쬐는 노을지는 저녁. 보충수업이 끝나고 교복 블라우스 앞섬을 손으로 잡고 흔들며 교문을 나오는데, 청바지에 단가라 티셔츠를 입은 오빠가 서성이고 있었다. 뭐야, 안경 벗어서 못 알아봤네. 툴툴거리며 오빠를 툭 쳤다. 웬일이래? 여기 왜 왔어? 오빠는 날 물끄러미 보더니
밥 먹자.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김밥집에 가서 우리는 묵묵히 참치김밥과 떡볶이를 집어먹었다. 오랜만에 보는 오빠는 조금 마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떡볶이가 조금 매웠다.
근데, 오빠는 왜 맨날 안경벗고 가? 눈도 나쁜 게.
오빠가 김밥을 우물거리며 약간 멋쩍은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공부할 때는 눈에 뵈는 게 없는 게 낫더라.
그러고보니, 오빠가 웃는 것을 오랜만에 보았다. 나와는 달리 오빠는 지독히도 시력이 안 좋았는데, 원래 눈이 좀 컸나 싶을 정도로 안경을 벗으니 많이 달라보였다. 시험은 언제야? 10월 5일. 야, 요번엔 좀 되라. 장난식으로 말을 했지만, 오빠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묵묵히 밥을 먹고, 거리로 나왔다. 여름의 열기는 해가 져도 가시질 않고 있었다. 무겁고 습한 공기가 수많은 인파와 헤드라이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오빠 이제 또 가? 오빠가 대답했다. 가야지. 집에 들어가라. 그 말을 끝으로 오빠는 사람들 틈으로 걸어갔고, 나는 안경이 없어서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오빠가 사람들과 계속해서 부딪혀도 오뚜기처럼 계속해서 일어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가을. 오빠는 공무원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고, 나는 수능을 한 달 앞두고 있어서 오로지 학교와 내 방만을 왔다갔다했다. 이따금씩 새벽 늦게 화장실에 가면 오빠의 안경이 사라져있곤 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그 일주일에서 닷새가 더 지났다.
오빠가 사라졌다. 분명 시험당일 일거라 생각되는 5일에는 안경이 은색 세면대 위에 있었다. 좀 붙어라. 무심한 기도 아닌 기도 후에 가방을 메고 나는 학교에 갔다. 그리고, 3일 뒤 오빠의 안경이 사라졌다.
오빠는 어디를 갔을까.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안경이 없어진 이유가 조금 더 궁금한 것 같았다(오랫동안 오빠의 존재를 안경으로 판별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안경은 대체 무엇을 보려고, 기어코 오빠를 찾아 입고 거리로 나간걸까. 늘 화장실 세면대 위에서 거울을 등지고 물때 묻은 타일만 바라보던 안경.
그 안경은 어디로 갔을까. 그림자 가족을 등진 채,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이제 오빠는, 무엇인가를, 명확히 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