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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까지 수회에 걸쳐서 뉴질랜드 법이 부부관계를 어떻게 보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 일상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다루어 보았습니다.
이번화 부터는 부부관계만큼 흔한 관계라고 볼 수 있는 고용관계를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뉴질랜드에 이민을 오셨던, 아니면 뉴질랜드에서 나고 자라셨던, 재산이 있으셔서 처음부터 비즈니스를 운영하실 수 있는게 아니면 보통은 고용주 밑에서 급여를 받으며 근로를 하는게 사회생활의 첫걸음일테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빼면 대부분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실테니깐요. 또한 비즈니스를 운영하시게 되더라도 직원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고 운영하시는 일은 드물 것 같습니다. 독자분들께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고용주이시건, 급여를 받으시는 근로자이시건, 이 나라의 경제를 든든히 뒷받침하는 근간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분야는 이미 성태용변호사님께서 유익한 실제 판례 위주로 수년간 다루어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저는 원론적이고 법률 위주의 접근을 해보려고 합니다.
뉴질랜드에서 일반 계약법은 엄격한 보통법 (common law) 하에 있어서, ‘모든 성인은 동등하다’ 라는 전제가 붙습니다. 즉,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든 성인은 수평적 관계만 갖고 본인들이 원하는대로 계약할 수 있으니 의회에서는 그 개입을 최소화하고, 법원에서는 관계법률이 거의 없으니 계약서의 해석 위주로 초점을 맞춥니다. 이 부분은 추후에 별도로 다루겠습니다.
부부관계는 보통법보다는 형평법 (equity) 에 가까운 특수 관계로, ‘다른걸 같게’ 취급함으로서 형평성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두 성인의 신체나 자라온 배경이 다르니 그들의 역할과 재산환경이 완전히 같을 수가 없는데, 그래도 무조건 반반 나누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고용관계도 계약법의 영향이 없진 않지만 형평법에 훨씬 가까운데, ‘다른걸 다르게’ 취급함으로서 형평성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고용주에게 소위 “hiring & firing”, 즉 직원들을 (마음대로) 고용할 수 있고 해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고용주와 직원의 관계 그 자체가 절대로 동등해질 수가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고용관계법 (Employment Relations Act 2000) 등을 비롯한 다양한 법률을 제정해서 직원들을 보호하고 고용관계의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법률이 항상 계약서의 상위에 있기 때문에 “직원이 최저시급보다 덜 받기로 동의했다”, “직원이 해고당해도 이의제기 안하기로 동의했다”같은게 성립이 안되는 것이지요.
구체적으로 뉴질랜드에 어떤 법률들이 있으며 어떻게 고용관계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하는지는 앞으로 찬찬히 다루도록 하겠고, 이번 화에서는 고용법의 특별한 탄력성이 좀 흥미로운 것 같아 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영미법의 일반 계약법은 저 멀리 로마법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1600년대 명예혁명 이후부터 판례 위주로 발전해온 것을 기원으로 삼을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많이 인용되는 판례중에서는 1800년대나 1900년대 초 판례들까지 있을 정도로 유서가 깊고, 반대로 보면 발전이 비교적 더디고 굉장히 정적인 법니다.
부부관계법에 있어서 뉴질랜드는 항상 타 선진국들을 압도하는 발전을 해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800년대 후반 발빠른 여성참정권부터 시작하여 1900년대 여성인권신장과 함께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미 1976년도에 동등분할이라는 진보적인 법률을 만들었고 현재 재산분할법도 그걸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때 이름은 Matrimonial Property Act 1976). 2000년대 초중반에는 사실혼, 동성혼까지 흔해진 사회상을 포괄하기 위해 대대적인 법률개정이 있있고 (현재 이름은 Property (Relationships) Act 1976) 그 이후로는 약간의 ‘땜빵’만 이루어지고 있을 뿐 큰 수정은 없었습니다. 보수성향의 정당이 집권을 하던 진보성향의 정당이 집권을 하던 현재로서는 재산분할법이 특별히 달라질 여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법원의 해석이나 적용도 가정법원 판사 개개인의 해석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었지만 큰 틀은 항상 유지가 되었었구요.
이와 달리 고용관계법은 산업혁명때부터 급격히 발전되어 왔습니다. 처음에는 잠 잘 곳도 없이 도시로 몰려든 청년들, 심지어 아동들까지 관짝같은 곳에서 자면 다행이고 그것도 없으면 빨래줄 같은것에 몸을 기대서 (그것도 유료로) 잠을 이루면서 하루 14시간이 넘는 노예같은 생활을 하다보니 법률로서 개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 이후로 사회발전, 경제발전에 발맞추어 꾸준한 발전이 있어왔습니다. 현재 뉴질랜드 고용관계법도 2000년에 만들어진 조금은 오래 된 법이고 큰 틀은 유지되어 왔지만 의회에서 부분개정 되어왔던 내용들 및 사법기관에서 그걸 적용하는 방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 성향에 따라, 그리고 경제 상황에 따라 좋게말하면 탄력적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래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최대한 가치중립적으로 서술하겠습니다):
• 추후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Trial period는 고용주에게 유리한 조항이고, 2009년 보수성향 정부하에 처음 도입되었으며 (소규모 업체에만) 2011년 전체 고용주에게 혜택이 확대되었습니다. 2019년 진보성향 정부에서는 이걸 다시 소규모 업체로 한정시켰고, 2023년 보수성향 정부는 이걸 다시 전체 고용주에게 확대시켰습니다.
• 2022년 진보성향 정부는 Fair Pay Agreements Act 라는 산업 전반에 걸친 단체협약이 가능한 법을 만들었고 2023년 보수성향 정부는 바로 이 법을 폐지시켰습니다.
• 최근에 항소법원에서, Uber 운전자분들이 Uber와 계약한 개인사업자가 아니라 직원일 수 있다는 점을 다시한번 확인한 판례가 나왔습니다. 정부성향을 떠나 순수 고용법 측면에서 큰 획을 그은 발전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재 보수성향 정부의 고용관계 장관 (Minister for the New Zealand Workplace Relations and Safety)이 Uber 임원들과 만났었고 개인사업자들이 사법기관에서 직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을 계획중이라고 피력했습니다.
• 순전히 제 ‘뇌피셜’일수도 있겠지만, 구조조정관련 법률해석이 경기침체 기간에는 비교적 고용주에게 수월하게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2020년 COVID19 사태 초반에는, 락다운 등으로 인한 구조조정은 절차만 제대로 따랐으면 대부분 해고가 정당화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용법원보다는 고용관계청 (Employment Relations Authority)에서 좀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사업자분들과 근로자분들 모두가 뉴질랜드 경제의 근간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어느 한쪽만 편을 들 수는 없고 형평성이 한쪽으로 몰리지 않도록 아슬아슬 줄다리기를 타는 것 같았습니다. 고용법이 너무 고용주를 탄압해서 아무도 사업을 안하고 (혹은 1인사업만 하고) 일자리창출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고, 고용법이 근로자들을 보호하지 못해서 고급인력이 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도 문제일 테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