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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지난 어느 날 서울에 있는 딸하고 통화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인사말로 시작했으나 작년에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던 한 강 작가가 생각나서 비꼬듯 한마디 던져봤다. “한 강 작가는 같은 한 씨이고 너하고 한 살 차이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벌써 노벨문학상을 받아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렸는데 너는 무엇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생각이냐? 너도 한 때는 중학교 다닐 때부터 교내 백일장 대회에 나가 우승상도 받았고 장래에 작가 가 될 것 같은 기대도 보여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나의 말문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트럼프는 나이도 아빠보다 몇 살 어린데도 불구하고 벌써 미국대통령을 두 번 씩이나 하고 있는데 아빠는……?”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질문이 되고 말았다.
그 후로 또 며칠이 지난 후였다. 손녀가 집에 놀러 왔다. 나이 79세가 되던 해 늦게나마 손녀를 보게 되어 기쁨에 들 떠 있던 터였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습을 보며 걸음마를 시작하자 아이가 초등 3학년 쯤 되면 손녀하고 달리기 시합을 해볼 거라고 다짐해보기도 했다. 이제 4년8개월이 된 아이는 제법 몸이 빠르게 움직이고 운동장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마침 동네 놀이터에 나가 공놀이를 하다가 달리기 경주를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아(Jia)야, 할아버지하고 달리기 시합 한 번 해볼까?”.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동의를 해주었다. 그런데 기가 막힐 현실에 부딪히고 말았다. 84세에 접어든 할아버지가 4년8개월 된 손녀한테 완패하고 만 것이다. 콤파스 폭이 몇 배 더 긴 노인은 콤파스 폭이 짧지만 발놀림이 빠른 어린이한테 뒤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손녀는 순간 가속력을 발휘해 초반부터 앞서기 시작했고 뒤를 돌아보며 여유 있게 골인 지점을 통과했다. 기(氣)가 막힐 현실에 봉착하게 되면서 인간의 생애주기는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가를 돌아보게 되고 생애주기에 맞춰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찰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냥 물러서기가 어이없어 손녀한테 제안했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졌지만 이다음에 다시 한 번 해보자. 그 때는 할아버지가 너한테 이길 거야”. 손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냉소작인 웃음을 띠며 한마디해보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꿈도 야무지셔, 지아는 앞으로 점점 더 빨라질 텐데 ……”.
달리기는 아이들 발달 과정에서 절대 빠트려서는 안 되는 운동이다. 달리기는 즐겁고 신이 나 있기 때문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여기에 약간의 목표를 설정해 주면서 달리면 더욱 즐거울 수 있다. 목표 지점까지의 시간을 설정한다던지, 친구들과 달리기 시합을 해본다던지 등……. 아이가 6, 7세에 이르면 스트라이드(Stride, 步幅)의 길이, 팔의 스윙으로 속도의 증가를 보이면서 재미를 느끼며 즐기게 된다.
인간의 생애주기로 볼 때 세 번 급속히 늙는 변곡점을 경험한다고 한다. 노화는 평생 동안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세 번의 급진적인 노화시기를 거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그 변곡점의 시기는 34살, 60살, 78살이라고 한다. 이 연구를 주도한 스탠포드대 토니 와이스 코레이(Tony Wyss Coray) 교수는 연구를 시작할 때 나이는 점진적으로 먹는 것이기 때문에 노화도 상대적으로 서서히 진행될 것이라고 가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는 단백질 수치로 본 노화 그래프가 선형 곡선이 아닌 세 개의 뚜렷한 꼭지 점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단백질 수치의 급변은 생체활동 프로그램의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큰데 34살 무렵에 노화관련 단백질 수치가 급등했다는 것이다. 생리시계를 적용해본 결과, 측정 나이가 실제나이보다 상당히 낮게 나온 사림들은 건강 상태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의 경험으로 반추해보면 70대에서 80대로 넘어 갈 때 확실히 신체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코비드 19 사태를 겪으며 70대에서 80대로 진입했고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체력적인 퇴화를 경험했다. 우선 생체에너지가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몸놀림이 무거워져서 행동이 굼뜨고 서 있을 때도 중심잡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또한 근육의 힘도 약해져서 물건을 들었다가도 떨어뜨린다던지, 병마개도 따기 힘들어진다던지,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을 때도 제대로 집어지지 않고 흘린다는 등 변화를 실감 할 수 있었다.
노화가 직접적인 질병은 아니다. 그러나 수명을 단축하는 만성질환의 위험인자인 것은 분명하므로 잠재적인 치료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노화의 치료방법으로 파라바이오시스(Parabiosis)라고 불리는 젊은 피를 수혈하는 청춘요법이 있다고 한다. 늙은 쥐와 젊은 쥐가 혈액을 공유(共有)하는 실험을 해본 결과 젊은 쥐의 피는 늙은 쥐를 젊게 만들고 소모된 근육을 재생시키며 인지능력을 회복시키는 결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노인이 젊은이와 피를 공유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노화를 지연시키는 요법은 노화를 촉진하는 낡은 혈액을 계속 유지하거나 젊은 피로 회복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차단하는 방법을 구사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결국 노화를 늦추기 위해서는 음식조절, 운동, 생활습관, 사회활동을 통한 자존감 확보가 요청되는 것이다. 성장기의 어린이와 비교한다던지, 젊은이와 경쟁을 벌린다던지 하는 일은 쓸데없는 행위일 것이다. 자기 나이를 인식하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면서 어떻게 자기인생을 경영해나갈 것인가를 기획하고 행동지침을 실천하는 일이다. 박영인 박사 - 그는 뉴질랜드 한인 역사에서도 큰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다. 1965년 콜롬보플랜으로 뉴질랜드에 유학 한 후 한국에 돌아가서도 한-뉴 협회를 운영하면서 40년이 넘게 한-뉴 관계 우호증진에 애써 오신 분이다. 평소에 등산을 좋아해 76세의 연세에 거구인 몸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활력을 보여주신 분이다. 박사님께서는 14명의 일행들과 함께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산(Mount Kilimanjaro)의 최고봉인 우후르(Uhuru) 피크를 굳은 의지로 등반에 성공했다. 그러나 기념촬영까지 마치고 하산 길에 산소 부족으로 인한 고산증상을 견디지 못하고 영면하신 것이다. 우후르 피크는 해발 5,895m로 백두산의 두 배 높이이며 아프리카의 최고봉 이다. 나이에 따른 생체리듬의 변화를 인정하고 행동반경에도 배려를 했어야 된다는 안타까움이 절실하다. 산소부족에 대한 적응 능력도 젊은이와 노인은 차이가 있는 법이다.
노인은 상실의 삶을 영위하는 세대이다. 상실의 삶을 겪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나 이를 주변 사람들과 공감능력을 높이고 더 깊이 소통함으로서 더욱 성숙된 사람으로 재탄생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젊음의 발산이 아니라 존재감을 유지하고 건강관리를 통해 행복을 추구해 나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