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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이 길게 늘어선 선착장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 시간이 근 30분을 넘었을 때,
하얗게 햇살 머금은 큰 여객선이 기적을 울리며 웰링톤 인터아일랜드 선착장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큰 배의 로고가 유달리 눈에 띄고 굴뚝의 색감하며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때 없는 디자인은 경이로움을 넘어 찬사까지 받을 정도로 깨끗하게 잘 어울린다.
각자의 개성으로 줄지어 있는 자동차들이 각국의 언어를 구사하는 주인들을 좌석에 앉히고 호화로운 잡담을 묵묵히 즐기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정성스럽게 축조된 방파제 검은 돌 틈 사이를 일렁이는 미역 줄기들이 잔잔하게 드나들고, 실루엣 사이로 잔고기들은 한가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페리로 연결되는 고가도로의 막연한 출입구가 여객선의 입구와 덜컹하고 연결되는가 싶었는데, 이내 커다란 입이 벌어지며 자동차를 꾸역꾸역 뱉아 내기 시작한다.
남 섬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농작물을 실은 큰 차의 트레일러는, 장난감처럼 조막만한 머리가 달린 하차전문 견인차에 의해 쑥스러운 듯 끌려 나오고, 거기에 걸 맞는 큰 트럭 본체는 주차장에서 이미 시동을 걸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
전혀 모르는 그들끼리 서로 만나 동행을 하며 전혀 모르는 도시의 어디쯤에서 임무를 마치고, 또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본체를 남기고 남 섬으로 건너갈 것이다.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각국에서 모인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잠시나마 한배를 타고 가벼운 눈짓 하나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져 가는 인생을 함축한 여행의 묘미가?!
짐 차들은 연이어 나오는가 싶었는데 달팽이처럼 큰 집을 얹은 캠퍼밴이, 멋들어진 색안경을 낀 여행객에 의해 호사스런 웃음을 지으며 달려 나오고 있다.
크게는 6-7명이 생활할 수 있는 큰 캠퍼밴으로 부터 단 2명만 생활하도록 제작된 작은 캠퍼밴까지 그들은 여행에서 얻은 것이 웃음뿐인지 연신 명랑하고 품위 있게 손을 흔들며 사라져 가고 있다.
승용차들이 나오고, 검은 가죽옷에 수건을 머리에 두른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떼를 지어 나오기 시작한다.
연인 간에 정을 더 돈독히 하려는 듯 허리를 힘껏 감싸고 2인 1조 되어 나오는 그런 팀들도 간혹 섞여 있다.
어떤 이는 핸들이 너무 높아 팔이 하늘까지 뻗어있어 거북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 모습이 꼭 중학교 때 복도에서 손들고 벌 받는 느낌이어서 키 판을 두드리는 현실의 어깨까지 뻑뻑하고 버겁다.
느낌으론 아주 지독한 자들이라 생각되는 사람들이 장단지에 힘을 주며 나오는데,
크고 작은 가방들을 바리바리 매단 자전거를 밀며 나오고 있다.
흡사 매달린 모양이 사랑채 서까래에 주렁주렁 달린 메주를 연상시키는데,
늦가을 찬바람에 불려 사라지는 낙엽처럼 순식간에 사라져간다.
아마도 그들은 수주에서 수개월을 손에 힘을 주고 다리를 휘저으며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자동차 종류에 따라 순번을 매기고 줄 서있던 우리는 안내에 따라 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옛날 고가도로처럼 좁고 날렵한 곳을 오르니 막상 들어선 길은 안정되게 넓어 보였다.
길이가 무려 150미터나 되는 큰 배의 높낮이를 맞추려 도로는 3층 높이 정도로 솟아올라 끝을 예리하게 잘라냈는데, 배의 끝부분이 중간단계와 연결되어 덜컹하는 쇳소리를 남기고 기계음이 들리는 배 안으로 들어갔다.
사회의 어두운 한 편이 밀려와 형성된 것 같은 검은 공간인 데도 가슴은 두근대고 기대감은 높아 모두가 희희낙락이다.
선실로 오르는 계단을 몇 차례 돌아 올라가니 영화관, 레스토랑, 기념품점등 온갖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 있는 대형 룸이 나타나고, 호텔로비처럼 이곳 저곳이 잘 정돈되어 있다.
배낭을 메고 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차량을 대동한 보다 더 여유 있는 사람들은 옥상에 올라 난간을 잡고 산중턱을 깎아 이룬 웰링톤 시내를 구경하느라 야단 들이다.
한편에선 하얀 돛을 펼친 한껏 기운 요트들이 줄지어 떠가고, 배들은 목적지를 가리키며 한편으로 비켜간다.
넓은 만으로 이루어진 웰링톤 항구를 서서히 미끄러지듯 배가 나아가는데도 배가 움직이는 기색은 전혀 엿볼 수가 없다.
단지 가볍게 스쳐가는 작은 배들이 빠르게 멀어져 간다는 것 뿐, 간혹 보이는 등대는 이채롭고 조수는 잔잔한 듯 작은 포말만 안고 있을 뿐이다.
해안 벼랑에 지어진 호화주택들이 햇살에 빛나고 일일이 그들을 연결해주는 도로가 비탈길로 안쓰럽다.
두둥실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배가 움직이는가 싶었는데 만의 끝부분에서 본격적인 대양의 파도를 만나기 시작한다.
북 섬과 남 섬 사이를 지나는 쿡 해협의 거친 파도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입구를 통과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 열대성 저기압 윌리윌리가 타스만 해를 지나갈 때 이 배를 타고 해협을 통과한 일이 있었다.
배가 막 출발 하자마자 정복을 입은 직원들이 일일이 종이로 된 구토 봉지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영어도 잘 안되고 체면상 묻기도 그렇고 해, 늘 하는 통과 의례쯤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얘기한 이 지점을 통과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객실만 4층인 큰 배의 정면 유리창을 첫 번째 파도가 넘어갈 땐 많은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고, 배는 크게 일렁이며 거대한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안내방송은 차분하게 달래는 목소리로 역력한데 그것은 마치 비행기에서 난기류를 만났을 때 기장의 짙게 깔린 두려움을 풀어주는 여운, 그런 것이었다.
배는 요동치고 사람들은 동요하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바이킹을 타는 정도보다는 약했지만 상상은 그것에 버금 갈만큼 큰 파도의 머리를 타고 올라 곤두박질치는 오금이 저리는 상황은 연속됐다.
화가 뭉크의 절규가 아니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귀를 막고 괴로워하는 체념상태를, 여기저기서 구토봉지를 입에 대고 기를 써 대느라 야단들이다.
일행을 대동하고 다니는 체면이라는 게 대단한지 육신을 살찌우려던 저편의 찌꺼기들이 넘어오려는 기색에 얼굴은 백지장이요 체력은 파김치다.
만사가 귀찮고 죽음인들 이보다 더하랴 는 체념 속에 그래도 정신력은 두고두고 파도를 이겨 가는데, 도무지 방법이 없어 배 뒤쪽에서 노래까지 불러가며 버텼던 기억이 기십 년을 넘어 엊그제 같다.
여객선은 쾌속 항진중이다.
바다 저편에 여행객들의 시선이 따갑게 집중되며 환호소리가 날카롭다.
돌고래 떼의 이동에 너나 할 것 없이 첨단 과학으로 무장된 장비들을 총동원하며 물체들을 쫓는 소리다.
남 섬의 직사광선은 매우 강렬하다.
대기의 오염물질이 전무한 이곳에 내려 쪼이는 자외선은 수심 50미터까지 도달한다.
바다로 파고든 강력한 자외선에 수많은 플랑크톤이 독성을 내 뿜고, 그것을 먹은 홍합들은 소염진통제가 생성되어 인간에게 먹거리로 제공되는 먹이사슬이란 자연법칙이 이곳에서 성립된다.
덩치 큰 마오리 원주민들이 관절염이 거의 없다는 것에 착안한 학자들은, 이곳 홍합이 관절염에 특효라는 근거를 찾아내 쾌거를 이뤘지만, 플랑크톤을 잡아먹은 업보는 결국 인간에 의해 관절염의 특효로 전락하여, 건강을 외치는 전 세계 미식가들의 식탁을 피날레로 장식하는 와인 잔 부딪히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하늘엔 초가을 비 온 후 한국날씨처럼 파랗고 맑아 하얀 반달이 걸려있다.
뉴질랜드에서 일조량이 가장 긴 곳이 이 지역이다 보니 이정도 날씨는 당연하다는 듯 솜사탕을 뜯어 놓은 것처럼 구름은 듬성듬성 높게 지나간다.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주름진 검푸른 바다는 일순 야윈 가슴을 드러내며 여행객의 심성을 자극한다.
말보로 사운드,
드디어 일렁이는 파도에 드러나는 하얀 포말이 독수리 발톱처럼 뻗어 나온 갯바위에서 부서지며 여행객의 시선을 압도하여 버티고 있다.
수많은 세월동안 인간의 발길을 거부한 벼랑의 나신들이 시선만을 허락한 체 요소요소에서 눈요기거리로 뱃전으로 다가드는데, 퍼뜩 놀란 뱃머리는 한껏 속도를 협곡으로 들어선다.
단지 그뿐으로 주위는 잔잔하고 고요하다.
구름에 달 가듯이 지나치는 협곡의 산중턱이 한가하여 초목들은 가지런한데 한편에서 풀을 뜯는 양떼들은 뽕잎을 먹는 누에처럼 오물거림이 쓸쓸하다.
육지로 연결되는 도로조차 없는 섬 같은 이곳에서 그들은 삶의 전부를 마감해야 이곳을 나가 야위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협곡은 연이어 뻗어있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작은 보트가 협곡사이를 향해 질주하는데, 보트 창 위에 꽂아놓은 낚싯대들은 가지런하여 아직은 낚시 포인트를 찾는 일에 주력하는 모습으로 뱃전이 가뿐하다.
이 지역의 형상은 약간의 물이 있는 곳에 외계인이 손가락을 살짝 펼친 모습이다.
손등을 산이라 가정했을 때 손가락 사이사이로 바닷물이 드나드는 그런 형상이다.
그런 곳에 나무를 심거나 초지를 조성하면 영락없는 이곳과 같을 텐데 다만 울퉁불퉁하거나 들쭉날쭉한 부분들이 많아 수많은 세월을 격은 고초를 한눈에 엿 볼 수 있는 그런 형태로 이곳은 이루어져 있다.
긴 협곡이 시작되는 마치 엄지와 검지 사이처럼 평탄한 지역에 항구가 조성됐고, 협로만 약 30분 정도 총 3시간의 항해가 끝나는 곳에 바로 픽턴 항구가 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으랴 싶다.
바다에서 이런 색이 연출된다는 것.
협곡에 띄워 올린 하늘의 빛깔 하며,
숨을 죽여 항해하는 협로의 주변 사운드와 물길이 그려내는 온화함,
첼로처럼 이어지는 잔잔한 파동의 향연,
잠시 숨을 멈추고 눈을 질끈 감아도 기분이 풀이지 않아 살짝 다문 입술에서 모든 행복을 퍼다 미간에 집중시킨 또 다른 고뇌 같은 행복,
인생과 연결되는 온갖 아름다운 조화들이 숨어들어 펼쳐 놓은 선명한 수채화 같은 발로,
이만한 행복이면 너무 무료할는지…….
그래서 분명,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시를 향해 천사의 탈을 쓴 사람으로 사라져 갈 것이다.
오래된 여행자들은 만남과 헤어짐이 연속되는 여행에서 쉽사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특별히 친근해 보이는 아시안 또는 같은 동족이 한편에서 호기심을 갖고 쳐다보는 일이 있어도, 눈인사 하나로 그냥 스쳐 지나는 게 예의로 비춰지는 게 여행자의 자세인데,
그날, 한편에서 뱃전에 턱을 괴고 마냥 먼 곳 만을 응시하는 아시안이 있어 줄 곳 눈 여겨 본 일이 있었다.
세상 온갖 번뇌를 턱밑에 달았는지 고인 손바닥은 눌려 벌겋고,
가슴의 아픔이 머리까지 차오른 듯 애연가가 내 뿜는 연기처럼 쉴 새 없이 머리카락은 바람에 치솟고 있었다.
“Excuse me, where are you from?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습니까?)
눈가에 그리움이 그렁그렁 꼭 찬 표정으로 그가 대답했다.
“I’m from Korea.”(한국에서 왔습니다.)
여행자의 당당함을 일순 접어야 했던 것은 그의 눈매를 보고 느낀 뇌의 반사작용에 의해서 였다.
단지,
서로 어색한 표정은 침묵을 유도했고 간단한 이야기로 인사를 대신하며 견우성의 눈을 가진 그와 이별을 고했다.
아마도 눈을 그리던 화가가 그의 눈매를 보았더라면 분명 대성통곡을 했으리라,
복잡한 인생길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쳤을 때 어떻게 서로를 다시 알아볼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다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 증표를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새겨주며 다정함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 고 다짐하는데,
한낮인 데도 백지처럼 하늘에 걸린 달이 서산을 부여잡고 파랗게 시위를 하며 넘겨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을 가진 남자가 선상에서 시간을 접은 체 버틴 사이,
배는 픽턴항으로 다가들며 사람의 탈을 쓴 천사가 기적을 울고 있었다.
뿌-우,(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