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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호승(鄭浩承, 1950년 경남 하동 출신)이 1998년에 발표한 ‘수선화에게’라는 시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로 시작된다. 그러면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고 했다. 정호승 시인은 외로움은 병이 아니라 사람의 특권이요 세상 모든 만물의 특성이라 단정을 지었다. 반면에 영국에서는 외로움이 더 이상 사람의 특성이나 특권이 아닌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잔인한 전염병으로 진단하고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했다.
영국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 교수는 저서 고립의 시대(The Lonely Century)에서 현대인의 외로움을 ‘혼자 있다고 느끼는 정서적 상태라기보다 소외와 배제, 양극화와 정치적 극단주의에 내몰려 주변화되고 무력해진 느낌 혹은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느낌’이라고 정의했다.
영국은 외로움을 국가 보건정책 의제로 다루는 국가 중 가장 선두에 있다. 영국 정부에는 세계 최초로 ‘외로움’ 문제를 담당하는 장관이 있다. 지난 2018년 1월 당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트레이시 크라우치 체육 및 시민사회(Sport and Civil Society) 장관을 외로움 문제를 담당할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으로 겸직 임명했다. 메이 총리는 “외로움은 현대 삶의 슬픈 현실”이라며 “노인이나 돌봄이 필요한 이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이들이 자기 생각을 나누지 못하고 지낸 것을 막기 위해 모두가 나서자”고 제안했다.
영국에서 외로움에 대한 관심은 블랙시트(Black sea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영국 우선’을 외친 극우성향 남성에 의해 2016년 살해된 노동당 조 콕스 의원이 주도했다. 그의 사망 이후 초당적인 위원회가 구성되어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외로움 담당 장관은 외로움 관련 전략을 마련하고 폭넓은 연구와 통계화 작업을 주도하며 사람들을 연결하는 사회단체 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2017년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늘 또는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한 영국인이 900만명에 달했다. 영국 정부가 발표한 ‘연결 사회’라는 전략 보고서에는 다양한 대책이 포함되어 있다. 2023년까지 외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무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요리 수업, 산책 그룹 등을 만들어 사람들을 연결하며, 각종 미술 단체 등을 투입해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우편배달부가 배달 지역의 소외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필요한 경우 가족이나 지역사회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한국인도 ‘외로움’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87.7%가 ‘사회 전반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2022년 4월 27일부터 사흘간 전국 만 19-59세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경제적 여유 부족(37.7%)’이 주된 원인으로 나타났다. 특히 본인이 사회적으로 하층에 속한다는 사람 중에 경제적인 이유로 외로움을 느낀는 경우가 많았다. 이어 ‘딱히 만날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34,4%)’, ‘주변에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어서(33.33%)’.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과 비교돼서(30.4%)’,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듯한 느낌이어서(29.7%)’,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28.9%)’ 등의 답이 나왔다.
미국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온라인(on-line)에 의존하면서 타인과 대면하는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정부의 보건 정책을 총괄하는 비베크 머시 의무총감(Surgeon General)은 뉴욕타임스(NYT)에 “미국이 외로움 유행병(loneliness epidemic)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는 과소평가된 공중 보건의 위기”라고 했다.
비벡 미국 공중위생국장은 외로움이 치매와 심혈관 질환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외로움은 질병으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사회에서 경제적 양극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배금주의, 노인 빈곤율 등의 영향이 외로움이라는 사회적 전염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인들은 금연(禁煙)이나 다이어트에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사회적 관계를 강화는 데는 거의 집중하지 않고 있다.
미국 LA의 비영리단체(NPO)에서 일하던 30세 여성 세라는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 해고당했다. 3년도 지난 일이지만 올해 초까지도 충격과 외로움에서 헤어나기 어려웠다. 중년 남성 아널드는 아내와 사별(死別)하고 혼자 살고 있다. 자녀가 있지만 따로 산다. 아널드는 주로 친구들과 연락하고 지내며, 고독감(孤獨感)을 털어내려고 애쓴다.
포보스(Forbes) 잡지는 ‘세라와 아덜드 이야기’를 소개하며 “만성 질환부터 실직,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까지 다양한 이유로 외로움이란 감정이 미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외로움의 확산이 단순히 개인 감정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국민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오게 한다. 전문가들은 의료비가 급증하고, 기업 생산성이 떨어져 국가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 의무총감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20년까지 17년간 미국인들이 혼자 지내는 시간은 한 달에 24시간 늘었다. 즉 2003년에는 미국인들이 하루 평균 285분 혼자 있었지만 2020년에는 333분으로 늘었다. 한편 친구와 대면하는 시간은 2003년 하루 60분이었지만 2020년에는 20분으로 줄었다. 친구가 3명 이하라는 응답은 1990년에는 27%였는데 2021년에는 49%로 친구가 적은 사람의 비율이 크게 늘었다.
특히 요즘 미국 젊은이들이 연애와 결혼을 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2022년 7월 미국인 5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30세 미만 성인 중 47%는 결혼이나 동거를 하지 않은 상태이고, 진지한 연애 상대도 없다. 갈수록 인기를 끄는 데이팅 앱은 연애종말 시대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 성인의 약 절반이 데이팅 앱을 사용해본 적이 있지만, 이용자 중 12%만 데이팅 앱을 통해 진지한 연애 관계를 맺었다고 응답했다, 스마트폰에서 쓱쓱 화면을 넘기며 이성을 찾다 보니 만남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미국인의 초혼(初婚) 연령은 1970년에는 남성 23세, 여성 21세였으나, 2021년에는 남성이 30세, 여성은 28세로 각각 늦어졌다. 전문가들은 미국인들이 성관계에 부여하는 가치가 과거보다 낮아지고, 결혼 결정을 미루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외로움’ 유행병이 번지는 이유로 우선 1인 가구의 증가이다. 1960년 미국 전체의 13%를 차지했던 1인 가구가 2022년 29%로 증가하여 요즘에는 미국인 10명 가운데 3명은 혼자 살고 있다. 또한 미국에는 혼자 사는 노인이 많다. 2020년 류리처치센터가 130국의 거주 방식을 조사한 결과 60세 이상 고령층 가운데 혼자 사는 비율이 평균 16%였다. 미국은 27%로 훨씬 높았다. 미국 인구조사국은 혼자 사는 65세 이상 미국인이 1400만명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사람을 대면(對面)하기보다 소셜미디어(social media)에서 교류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많은 것도 외롭다는 감정을 더 많이 느끼게 하는 요인이다. 미국 예방의학 저널에 따르면 하루 2시간 이상 SNS에 접속하는 사람은 30분 이하로 접속하는 사람보다 사회적 고립감(孤立感)을 호소할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았다. 이는 소셜미디어에 의지할수록 외로움이 커진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한다는 미국 성인 비율은 2005년 5%에서 2019년 80%로 높아졌다.
강한 소속감을 갖게 하는 종교 활동도 줄었다. 1999년에는 미국 성인의 70%가 교회 등 종교단체에 속해 있었으나, 2020년에는 47%로 줄었다. 이는 1937년 통계를 낸 이래 처음으로 50%를 밑돌았다. 전문가들은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나쁜 영향이 심각하다고 말한다. 미국 의무총감은 사회적 연결감 부족이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보다 크다고 했다.
미국심장협회(American Heart Association, AHA)는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고 답한 심부전(心不全) 환자의 입원 위험이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68% 높고, 응급실 방문 위험은 57% 높다고 2022년 보고했다. 외로움이 건강을 해치다 보니 사회적으로 큰 비용을 치르게 한다. 연방 의무총감은 노년층의 사회적 고립이 매년 약 67억달러(약 9조원)의 메디케어(medicare, 노인건강보험제도) 초과 지출을 발생시킨다고 분석한다.
또 외로움으로 인한 결근이 고용주에게 연간 1540억달러(약 209조원) 비용을 발생시킨다. 직장인이 외로움을 타면 생산성이 저하되고 기업의 비용 지출도 늘어난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하버드대학 성인발달연구팀의 마크 슐츠 박사는 “중년에 접어들어서야 인간관계 대부분이 직장이나 자녀 위주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많다”며 “다른 사람들과 반복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사회적 연결을 회복하라”고 말한다. 미국 사회생활•건강•노화에 관한 국가 연구프로젝트(NSHAP)는 50세 이상인 사람의 고혈압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으로 사회적 관계 회복이 다른 요인을 개선하는 것보다 효과가 더 크다고 분석했다.
미국 미시간주 호프대학(Hope College) 연구팀은 사회생활•건강•노화 프로젝트(NSHAP)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 성생활이 노인들의 인지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연구결과는 노년기 성생활이 인지기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연구팀의 섀넌 센 박사는 성생활에 초점을 맞춘 것은 이것이 고령자에게 간과되기 쉬운 친밀한 사회적 관계의 형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온라인(on-line) 시대를 맞아 음식 배달이나 쇼핑도 혼자 집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바베크 머시 미국 의무총감은 개인은 친구들과 만날 때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둬야 하고, 고용주는 원격 근무를 더 신중히 결정해야 하며, 의사는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외로움 솔루션(solution)’ 스타트업(startup, 신생창업기업)에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외로움이 사회적 비용을 높이는 만큼 의미 있는 일도 하고 비용도 줄이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 업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주로 외로움을 느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알고리즘(algorithm)으로 찾아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하거나 상호간 치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돕는 등의 회사들이다.
영국은 2018년 1월,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을 신설하고 2000만 파운드의 외로움 기금을 조성했다. 일본은 코로나19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급증하면서 2021년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신설하여 저소득 여성, 미혼모, 40-50대 남성, 1인 가구, 히키코모리(은둔 형 외톨이, 방콕족) 등을 주요 정책대상자로 설정한 뒤 상황별로 맞춤형 지원정책을 마련했다. 반면, 한국은 현재 외로움 문제를 고독사(孤獨死)와 정신건강 지원을 중심으로 보건복지부가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5년간 고독사 비중이 전체 사망자 중 0.8%(2412명)에서 1.1%(3378명)로 증가했다. 이에 정부는 2021년 ‘고독사 예방법’을 제정해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기로 했다. 이상동기에 의한 강력범죄도 오랜 기간 사회적 고립상태와 정신질환 치료 등의 관리사각지대에서 발생하고 있으므로 정부가 ‘외로움’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사회관계망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