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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두 사람이 찾은 오대산 숲과 월정사 템플스테이
월정사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는 품 너른 나무 같다.
절 앞에 즐비한 전나무에 기대어 쉬기도 하고 그 나무들이 만든 숲길을 하염없이
걷노라면 어느덧 적광전 위로 달이 뜨고 은은한 달빛이 가르쳐주는 지혜를 마음에 담을 수 있다.
학문의 길을 걸으며 지식을 쌓고 있는 두 청춘이 문수성지 월정사에서 만난 삶의 지혜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에 유학 온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한국어 실력은 막힘이 없었다. 라라(AKBARALI KYZY KLARA)와 슴밧(BORBOEVA SYMBAT)은 국토의 90% 이상이 해발 2,700m의 산악지대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 불리는 아름다운 나라 키르기즈스탄 사람이다. 라라는 키르기즈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3년 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고, 슴밧은 4년 전 한국에 와서 4개월간 어학연수를 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이들의 남다른 한국어 실력의 이유이기도 하거니와 전공도 한몫하고 있다. “저는 서강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을, 슴밧은 연세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어요. 국제사회의 흐름에도 늘 귀를 열어두어야 하고 다양한 자료를 읽고 소화해야 할 과제의 양도 만만치 않아요.”라고 라라가 말하자 슴밧이 “저희가 외국인 유학생이라고 해서 교수님이 절대로 봐주는 법이 없거든요!”라고 했고 두 사람은 같은 경험치의 웃음을 터뜨렸다.
새로움에 대한 열정
스물일곱 살의 라라와 스물세 살의 슴밧은 함께 한국정부 초청 장학생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했고 자매처럼 한집에서 산다. 두 사람은 한국의 국립국제교육원이 주최하는 정부초청외국인장학생(Global Korea Scholarship) 프로그램에 응시하여 2.5:1의 관문을 뚫고 최종 12명에 선발되었다. 우수한 성적의 비결을 묻자 두 사람은 ‘새로움에 대한 열정’을 꼽았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높은 성적의 동력이었다고 한다. 유학 이후 공부에 파묻혀 지내던 두 사람은 모처럼 시간을 내어 첫 템플스테이를 떠났다. 또 하나의 새로움을 만나기 위해 향한 곳은 평창 월정사였다.
둘이 함께 해서 좋은 것들이 있다. 눈부신 햇살에 산들바람,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그리고 자매 같은 라라와 슴밧. 6월 초, 두 사람이 템플스테이 하러 떠난 날의 날씨는 완벽했다. 게다가 밤에는 보름달을 볼 수 있으니 달의 정기를 품고 있는 절, 월정사(月精寺)에서의 템플스테이는 안성맞춤의 선택이었다. 회색 빌딩 숲의 서울을 벗어나 강원도에 들어서니 푸른 산세가 펼쳐져 눈이 시원해졌고 월정사에 가까워질수록 오대산 침엽수림에서 불어오는 청신한 공기가 저절로심호흡을 하게 했다.
공부와 공양, 지식과 지혜
월정산문에 이르는 길. 두 사람은 먼저 월정사 성보박물관을 찾았다. 불교를 알 수 있는 여행의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월정사와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말사의 불교문화재 유실을 예방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조성한 이곳에는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상원사 중창권선문의 국보 2점을 비롯해 4,000여 점의 불교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라라는 높이 약 9m, 넓이 약 5m의 삼척 영은사 괘불이 자아내는 웅장함과 생동하는 색감을 궁금해했다.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이며 석채 등 자연의 염료로 160여 년 전에 그려진 것이라고 하니 흥미로워했다.
두 사람의 발길이 오랫동안 머문 곳은 월정사 구층석탑 앞에 있었던 석조보살좌상이었다. 존경하는 대상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향공양을 하는 보살상의 은은한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도 행복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번엔 슴밧이 공양의 의미를 물었다. 불교의 불(佛), 법(法), 승(僧) 곧 삼보(三寶)께 음식이나 꽃, 향 등을 올리는 것을 말하며 식사의 의미도 있어 절에서는 식사라는 말 대신 공양이란 말을 쓴다고 하자 신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동안 먹을 음식 또한 누군가가 절에 공양한 것이라고 하니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키르기즈스탄에서 보낸 학창시절, 국제구호기구 유니셰프를 통해 틈나는 대로 자원봉사를 하고 정기적으로 헌혈을 했으며 장래에는 일을 통해 누군가를 돕기 위해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공양’의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졌을 터이다. 라라와 슴밧은 나눔을 통해 확장하는 행복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 보살이 상주한다고 알려진 오대산의 천년고찰월정사에 들어섰다.
달처럼 동그랗게 주먹 쥐고 마음의 달빛을 밝히면
오대산이 사방을 호위하듯 감싸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자아내는 월정사 경내는 잘 가꾸어진 정원처럼 누군가의 정성어린 손길이 느껴지는 향나무, 전나무 등이 전각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해발 3,000m의 산이 즐비한 나라에서 온 이들에게 주봉인 비로봉이 1,563m인 오대산의 느낌을 묻자 슴밧이 “낮은 산도 아름다워요. 이 절은 이 산과 참 잘 어울리네요!”라며 감탄했다.
템플스테이 및 단기수행 참가자 등을 위해 마련된 전통 한옥공간은 저마다 월정사에 맞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달을 가리키는 집’이란 뜻의 지월당(指月堂)을 비롯해서 ‘달을 머금은 집’이란 뜻의 함월당(含月堂), ‘비 갠 후의 맑은 달의 집’이란 뜻의 제월당(齊月堂) 등이었는데 라라와 슴밧은 지월당에 짐을 풀었다.
두 사람은 함께 템플스테이를 하게 된 12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월정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재선 스님에게 먼저 절에서 지켜야 할 예절과 참선법을 배웠다. 두 손바닥을 맞댄 불교의 인사법에 ‘당신의 존재와 당신 안에 깃든 신성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당신과 나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음을 배웠다. 가부좌를 하고 엄지를 약지에 대고 네 손가락으로 감싸 달처럼 동그랗게 쥔 주먹을 무릎에 대고 하는 ‘금강수인’ 참선법도 배웠다. 금강수인은 갓난아기들이 젖을 먹을 때처럼 용을 쓸 때 꼭 쥔 손을 닮아있다.
그처럼 기운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생명력을 머금고 있는 참선법이다. 재선 스님은 낯선 환경에 처했을 때나 불안감을 느낄 때 금강수인을 하고 참선을 하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환히 밝혀서 용기를 북돋울 수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라라와 슴밧은 가끔 시도했던 명상을 이젠 생활 속에서 실천해보겠다고 했다.
참선법을 배운 뒤, 참가자들과 함께 월정사 경내를 산책하며 월정사 템플스테이 종사자로부터 각 전각의 존재이유와 역사 등도 듣고 적광전 뒤편에 그려진 심우도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마음의 존재를 알아차린 소년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마음과 함께 깨달음의 길을 걷는 여정이 한 권의 그림책처럼 펼쳐져 있었다. 경내 산책을 마친 두 사람은 금강루에 올라 윤장대를 돌렸다.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윤장대는 그것을 돌리기만 하면 경전을 읽지 않아도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전해져온다. 옛날, 적지 않았던 문맹인들을 위한 배려가 담겨 있어 윤장대는 따스한 에너지를 전해주었다.
해질무렵 두 사람은 종고루에서 범종도 치고 우연히 만난 월정사 문화국장 월엄 스님과 함께 만월교를 걸으며 잠시 이야기도 나누었다. 어둠이 깃든 저녁에는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의 빛을 발견하는 108 참회문에 따라 염주를 한 알 한 알 꿰며 108염주를 만들었다. 108염주를 완성하고 방사로 돌아오는 길, 하늘에는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상징하는 보름달이 그윽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지혜의 숲길을 맨발로 걸으며 나무처럼
이튿날, 두 사람은 재선 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맨발로 전나무숲길을 걸었다. 월정사 입구에서 금강교 사이에 늘어선 높이 30m가 넘는 천여 그루의 울창한 전나무 숲길은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와 초록빛의 향연, 산새의 노래, 계곡의 물소리 등으로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숲길을 맨발로 걸으며 흙과 모래, 돌의 감촉을 느끼고 계곡에서는 1급 수의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열목어 떼도 봤으며 무심하게 사람에게 다가오는 다람쥐들도 만났다. 동심 가득한 재선 스님은 소녀 같은 음성으로 “여러분 선물!”을 연발하셨다.
돌 틈에서 야생화를 발견하시거나, 이제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한 머루를 손짓하시거나, 열목어 떼를 만나시거나 하면 어김없이 재선 스님의 웃음소리와 함께 “여러분 선물!” 이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덩달아 동심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니 미처 몰랐던 선물이 세상에 참 많다는 것을 새삼 발견했다. 그루터기 의자와 그네가 있는 숲속 쉼터에서 스님은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내용의 산스크리트어 노래도 불러주셨다.
슴밧이 “나도 나무 한 그루가 된 것 같았어요.”라고 하자 라라도 공감의 미소를 지었다. 라라는 “스님께서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세상에 내보낸다고 말씀하실 때 뭉클했어요. 저도 그렇게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숲길 걷기 명상을 마치고 템플스테이 수행공간에 있는 차실에서 다함께 차담시간을 가졌다. 티마스터로 월정사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최원보 씨가 귀한 보이차를 만들어 주었다. “여러분 도달할 곳 없는 그 자리를 갖고 있는 자유롭고 완성된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삶에서 다 잃어도 자비심만은 잃지 마세요. 보리심(菩提心), 깨달음의 마음은 삶의 기둥입니다. 내 존재가 바로 서야 다른 존재를 향한 자비심이 생깁니다.” 맑고 향기롭고 은은한 차와 스님의 말씀이 어우러지며 가슴을 적셨다.
보리의 의미를 묻는 라라에게 ‘지혜’라고 말하자 생각났다는 듯이 “저는 키르기즈스탄 남부의 시골 태생이에요. 그런 제게 아버지는 ‘지식이 있으면 세계 어디서든 살 수 있고 네 꿈을 펼칠 수 있어.’라고 하시며 대도시로 나가 공부하게 하셨고 유학도 지지해주셨어요.”라고 말했다. 슴밧은 “저희 아버지도 제게 적극적으로 유학을 권해주셨어요. 아빠 역시 젊은 날 유학을 하셨고 UN기구에서 일하고 계세요. 라라에게서도 많이 배워요. 라라를 한 단어로 말한다면 ‘성실’이에요.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죠.”라고 했다. 그런 슴밧을 라라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집착 없는 태도의 화신이라고 이야기했다.
키르기즈스탄은 산악국가지만 바다처럼 드넓은 이식쿨 호수와 송쿨 호수 등이 있다. 라라와 슴밧은 모두 산보다 바다를 더 좋아한다며 한국의 바다를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 작은 샘물이 멈추지 않고 흐르면 바다에 이르듯이,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두 사람도 언젠가 깊고 넓은 꿈의 바다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