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좋은 삶, 늦복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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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좋은 삶, 늦복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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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개 605 오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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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정사진을 찍었을 때가 육십대 후반 칠순을 목전에 두었을 즈음이다.


친구들이 앞다투어 몰려가는데 나는 사실 가고싶지 않았다. 마음은 아직도 새파란 청춘인데 영정 사진이라니?. . .


벌써부터 죽음과 관련지어지는 그런게 싫었다. 관심끊고 매일 골프에만 더 열중하며 지냈다. 건강하게 좀 더 살아보자는 욕망이었다.


어느날 문득 친정 올케의 생각이 떠올랐다. 예순 둘 한창 나이에 갑작스레 오빠를 홀아비 만들고 훌쩍 저 세상 가버린 사람이다. 아무것도 준비된게 없는 나이에 가족들은 황망했다. 사람들은 정말 한치 앞을 모르고 살아간다.


사랑하는 딸 결혼식 날 신혼여행 보내고 바로 부부여행을 다녀온 건강한 사람들이었다.


딸 결혼식 사진이 나오기도 전이다. 예식장으로 달려가 급속히 영정사진을 만들어와 장례를 치뤘다.


남들 하는 것 고집으로 버티는건 괜한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운동을 끝낸 오후, 땀도 씻지 못한 채 한복을 싸들고 그 곳으로 달려갔다. 가는동안 내내 마음이 편치않았다.


말로 표현할수 없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현실감을 잃고 있었다. 그 때의 기분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온 세상 천지 만물이 전부 부러운 시선으로 느껴졌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생동감 넘치는 푸른 나무잎들. 그 이파리들을 흔들어 놓으며 불어대는 바람. 찬란하게 내리비치는 태양빛. 자유로이 달리는 분주한 차량들. 모두가 보통 때와 다른 감동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바로 이런걸까? 복잡한 감정에 휘둘리며 슬픔이 밀려들었다.


건물 입구서부터 흘러나오는 웃음 소리가 요란했다. 누구누구의 목소리까지 확인이 될만큼 큰 소리였다.


갑자기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그냥 막연한 준비일 뿐이야. 마음을 추스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 사진은 잘 나왔네. 누구는 어떻고. 먼저 나온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깔깔거리고 있는 모습들이 아무렇지 않았다.


내색을 않는 것 인지, 정말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사람들인지 . . . 오직 나만 못나서 그랬던 것 같아 슬며시 창피했다.


소금기 밴 얼굴을 닦고 끈끈한 몸에 한복을 갈아 입었다. 굳었던 얼굴에 표정관리가 쉽지 않았다.


자신없는 인물을 속임수없이 드러낼 솔직한 기계 앞에 주눅이 들었다. 그렇더라도 잘 나와주기를 기대하는 속마음은 누구나와 같았다. 별수없는 속물근성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 같아 스스로 민망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인생 아닌가. 매일을 더더욱 충실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돌아왔다.


그렇게 긴장으로 잔뜩 굳은 표정의 사진이 영정사진 1호였다.


그로부터 2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 때의 영정사진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분들이 몇사람이나 될까? 여러 친구들이 벌써 하늘나라 여행을 떠났다.


두번째 사진이 생겼을 때 먼저 것을 한국의 작은 딸에게 보냈다. 영정사진으로 찍었다는 말을 한게 마음에 걸렸다.


옛날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혹시라도 엄마가 지루하게 너무 오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어 혼자 웃는다.


두번째 기회가 왔을 때는 오년쯤 세월이 더 지나간 다음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늙었는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는지 참 많이 궁금했다.


삶의 한 과정일 뿐 특별한 감정도 없으니 그냥 무덤덤했다. 긴장감도 내려놓으니 표정관리도 여유로워졌다. 유난히 빠져나간 볼살이 불만이어서 작은 알사탕을 양볼에 살짝 밀어넣어 보는 꼼수까지 . . .ㅎㅎ


솔직한 기계가 속아줄리가 없다. 나 아닌 다른 인물의 내가 너무 낯설었다. 부질없는 치졸함만 보였을 뿐이다. 


집에 돌아와 혼자서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모른다. 현재 잘 사는 일이 중요하지 죽은 다음에 사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    


지금은 누구라도 들고다니는 핸드폰으로 자신을 찍어 볼 수가 있어서 좋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자주 자신을 체크 할 수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며칠전 영정사진의 기회가 또 찾아왔다. 이 삼년전에 이미 잘 찍어 둔게 끝인줄 알았는데 . . .


신참 아우들의 유혹에 말려들고 말았다. 쉽게 유혹에 말려든 이유가 나름 있긴 했다. 전과 다른 어떤 자신감 같은거랄까?


이제 인생을 살만큼 살았다는 뿌듯한 자부심이다. 현실과 맞선 팽팽한 긴장에서 벗어난 해방감. 모든걸 내려놓은 후반인생의 느긋함이 있다. 무슨 일이건 자유로이 맞이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들은 늙어서 누리는 행복 중에 행복이다.


켜켜이 쌓여가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아이같이 순수함으로 살아가니 그것이 늦복이다.


지금의 내 표정이 얼마나 편하게 변해있을지 많이 궁금했다.


이제 내 또래에 영정 사진을 찍는 사람은 거의 없는것 같다. 한 나이라도 젊어 얼굴 팽팽할 때 찍어두었기 때문이다.


세상 많이 산만큼 주름살도 늘었을 뿐인데 굳이 그것을 드러내고 싶지않은게 누구나의 마음일 것이다. 나도 공감한다.


최고령자를 찍는다는 말씀이 일순 바늘처럼 마음을 찔렀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주름살 깊이 패인 얼굴이지만 누가 뭐래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어느때보다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 앉으리라. 


내면 깊숙한 느긋함이 행복한 표정으로 나타날께 분명하다는 기대 그것이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아무것에도 탐닉없는 최고로 편안한 표정,두려울 것 없는 앞으로의 남은 인생, 지금 이 순간까지의 건강함이 오직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함께 뜻한바대로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고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겁도없이 찐한 핑크톤의 쟈켓을 꺼내 입은건 특별한 뜻이 있어서다. 화사함을 나타내기 위함도 있었지만 이 세상에 안계신 언니를 그리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같은걸 두개 사서 쌍둥이처럼 나눠입고 좋아하던 울언니.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며 옷 컬러만큼이나 화사하게 웃던 언니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했다.


젊었을때 옷이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사진에 꼭 그 옷을 남기고 싶었다. 세번씩이나 버스를 바꿔타야 하는 거리이지만 그것도 문제를 삼지 않았다.


아직 다리 건강하니 운동삼아 내 차를 쉬게 했다. 나 스스로의 약속이지만 지키는데는 철저하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잘 늙어가는 소확행 내 철학 아니던가.


촬영장에 들어갈 때 반겨주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주름위에 덧발라주는 화장을 받으며 젊은이의 정성스러움에 감동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 비교되는 늙음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얼굴 주름을 나이테라고 간단히 생각하니 견딜만 하다.


고목을 보고 흉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나도 온갖풍상 비바람 잘 견디고 버틴 한그루의 고목이고 싶다.


사실 사진이란 겉모습만 찍힐 뿐이다. 기왕이면 속 마음도 찍을 수 있다면 세상이 좀 더 밝고 신선해 질텐데 . . .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안하고 충실하게 열정적으로 아름다운 막바지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인생을 바르게 사는 지혜와 태연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게 현명한 철학이라고 말한다.


내 삶의 전부가 여과없이 드러난 이번 영정사진 이 내 마지막 준비의 일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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