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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의 하루 . . .
또 한 날 선물로 받은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어영부영 보내기엔 불안하고 괜스레 죄스럽다. 컴퓨터 앞에 앉아 몇자 쓰는척 이라도 해야 위안이 된다. 이제 오래 버티지도 못하지만 뇌운동으로 시간 가는걸 잊게되니 이래저래 좋다.
이른 저녁을 먹고 천천히 산책길을 나선다. 발걸음도 무디니 쉽지가 않다. 이토록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갈줄은 몰랐다. 작년까지만 해도 느끼지 못하던 변화다. 어쩔수가 없지. 속으로 싱겁게 코웃음을 친다.
이만큼도 감사해야지. 주변에서 누가 어떻다는 안좋은 소식도 귀가 따가운데 . . . 더 이상은 욕심이기에 불만은 안하기로 한다. 수순을 밟아 조용히 따라가는 길. 거역할수 없는 인생길이다.
한낮의 더위도 한풀꺾여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온통 싱그러운 푸르름으로 침침하던 눈 또한 시원하다.
속력을 내서 달리는 차들의 속도감이 무딘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장거리는 보폭을 넓혀보려고 애를 쓰지만 자꾸 앞으로 굽어드는 허리를 펴보기가 왜 그리 안되고 아픈지. 석양의 긴 그림자를 눈길로 붙잡아본다. 장작개비 처럼 너무도 꼿꼿했던 옛모습을 찾아보려는 안까님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등 구부정한 그림자가 나를 비웃고 있다. 산책길에 세워진 키재기 눈금에서 4센치미터나 줄어든 키를 생각해 냈다. 싸한 찬바람이 한동안 가슴속을 휘저어 놓는다.
혼자 가기싫어 앙탈이라도 하는지. 믿을곳도 기댈곳도 없이 세월에 이끌려가는 인생마차에 저만치 종점이 보인다.
큰 길 건너 가판대의 수박장수가 텐트를 걷어치우고 있다.
아직도 많이 쌓여 남은 물건들을 다시 차에 싣는게 힘들어 보인다. 불황의 세월을 무게로 느끼는 그의 속은 어떨까?
그의 가슴도 지금 내가슴처럼 찬바람이 일렁이겠지. 그러나 그에겐 넉넉하게 주어진 시간들이 있다. 좀 더 기다리면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다. 그들의 미래가 부럽다.
그럼에도 따뜻한 손길로 등이라도 쓸어주며 위로하고 싶어지는 마음은 또 뭔지? . . .
부질없는 노파심이라도 있으니 아직도 자존감은 남아있구나 싶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편에선 활기로 넘치는 젊은이들의 기 자랑이 한창이다. 삶의 무게를 느끼기 전 무한대의 꿈을 펼치는 청춘들. 나도 한때 그런 때가 있었기에 부러움을 밀어낸다.
오래 걷기도 힘드니 적당한 장소에서 쉬어가기로 한다. 앉은채로 가볍게 팔을 휘둘러 근육을 풀어주며 충전을 한다.
반려견 들을 끌고나온 젊은이들의 안쓰러운 눈길이 부끄럽다. 미소를 보내는 맑고 고운 모습에 더 그렇다.
공원 놀이터에선 언제나와 같이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뛰어논다. 그들의 날렵한 모습을 보면 내 걸음은 더욱 무디게만 느껴진다.
바지 주머니에서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다. 이런 시간에 처음 있는 일이어서 긴장한다.
“누가 뭔 일일까?”
사진이 줄줄이 들어오고 있다. 서울의 딸에게서 온 것이다.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일 하는 손녀가 맨 먼저 였다. 여기에 살면서 한달간 휴가여행을 간 아이다. 두 딸들은 이마를 맞대고 전을 붙이고 있다. 만두를 빚을 땐 사위까지 둘러앉아 화기애애하다. 식구들이 함께 음식 장만을 하는 사진들이었다.
(아 그렇지! 설 명절이 임박했어, 그럼 오늘이 섣달 그믐날 ?...)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낯익은 풍경이었다. 가벼운 충격과 함께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울컥했다.
갑자기 여기 나 혼자라는 외로움이 강하게 밀려들었다. 다리에 맥이 탁 풀렸다. 운동틀을 의자삼아 펄썩 주저앉았다. 연민으로 휘청대는 찰나에 보내온 사진들이 불을 붙였다. 하염없이 사진을 보고 또 보며 묻어둔 그리움을 달랜다.
가족들 풍경 한켠에 내 모습을 그려넣는다. 드디어 완성된 가족 사진을 상상하며 스스로 위로를 한다.
여기 살때는 지금 나처럼 날도 모른채 보내던 큰 딸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명절은 뒷전 여행이 먼저라며 밖으로만 돌던 작은딸 내외와 함께 차분히 명절다운 준비를 하는게 보기 좋았다. 모처럼 고국 나들이를 간 딸 에게 세시풍속을 알리려는 뜻도 있으리라. 엄마, 이모와 함께 명절을 보내는 즐거움도 좋은 추억거리가 될 손녀를 생각했다.
변함없이 정스럽게 살아가는 두 딸 애들의 모습도 흐뭇하다. 잠시 울컥했던 마음이 눈녹듯 사라진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아주 가벼워졌다.(나도 내일 아침에는 떡국을 끓여 먹으리라.) 그들이 차린 명절 아침상을 내 식탁에 펼치고 맛나게 떡국을 먹을 것이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또 전화기가 울렸다. 아까는 일하느라 사진만 보냈다는 딸의 목소리.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덕담을 나눴다. 엄마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딸의 위로가 애잔하다. 사위가 모녀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지만 늘 정스러운 사람. 진심한 사랑이 묻어나는 그대로 여전히 변함이 없다.
자식들 걱정일랑 이제 제발 하지 말란다. 돈 아끼지 말고 먹고 싶은 맛난 것 모두 사 먹고 건강하라는 부탁 부탁이 눈물겹다. 내 알뜰근성을 너무도 잘 알아 하는 간절한 부탁이다. 어머니 인생 재밌게 사시라고 제창 삼창을 한다. 그의 진심을 알기에 문득 가슴이 미어왔다. 더이상 말하면 나 눈물나려고하니 그만 하라고 끊었다.
내 딸 한결같이 사랑해주고 예쁘게 사는 것 만도 고마운 사람이다.
설날 아침. 그 어느날보다 기분이 가볍다. 외출할 일도 없는데 일찍 일어나 씻고 정성스레 화장을 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했던가. 또 한 해 365일을 오늘같은 기분으로 살아가기 위한 시범이었다.
내가 먹기에 편한 부드러운 고기 듬뿍 썰어넣고 떡국을 끓였다.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 내 앞에서 흐뭇하게 웃고있는 아이들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느긋한 커피 한잔의 향기가 코 끝에 감긴다. 문득 지나간 긴 세월이 떠올랐다. 여든 일곱해. 아득하면서도 엊그제 같기도 하다.
그 중에 혼자 살아온 세월이 절반이다. 외로움도 오래 견디니 친구가 되었다. 그보다 혼자라서 좋은 점만 생각하며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다.
원했던 모든 일들이 혼자였기에 시작이 가능했다. 누구도 말릴수 없는 날개달린 이 자유로움 . . .
이민와서 처음 아이들 곁을 떠나 독립을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쫓겨났다고 한 말들 모를리 없다. 그들이 지금은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말을 뒤집는다. 내 꿈길을 따라 살고픈 욕망은 아직도 도착지점이 멀기만 하다.
운전면허를 취득한게 첫번째 과제였다. 개인의 자격으로 무엇이든 도전이 가능하니 얼마나 좋은가. 외로움은 누구나 있는 것. 그 외로움을 친구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면 그건 내 인생 룰에서 반칙일 뿐이다.
화살처럼 지나가는 시간들 붙잡을 수는 없다. 새롭게 맞이한 오늘을 헛되이 살지 않는 것.
내가 건강해야 자식들도 따라 그리 살 것이다. 구정 명절날 아침 화이팅을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