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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비구니회관 사찰음식 강좌에서
주호 스님과 함께 만드는 여름 사찰음식 이야기
스님을 아는 이들은 곧 자취를 감출 끝물 가죽나무순이라든가 귀한 야생 산초열매 같은 것을 보면 채취해서 스님께 보낸다. 스님의 손을 거쳐 장아찌로, 청으로, 부각으로 만들어진 음식은 공양이라는 이름의 나눔이 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그 기쁨은 다시 스님에게로, 시주한 이에게로 돌아온다. 주호 스님은 행복의 맛을 일깨우는 즐거운 사찰음식 선생님이다.
강의실이라는 공간에는 특유의 향이 있다. 서예 강의실에서 묵향이 나듯, 꽃꽂이 강의실에서 꽃향이 나듯, 서울 강남구 수서동 전국비구니회관 사찰음식 강의실에는 구수한 된장과 간장 향이 은은하게 감돈다. 그 향 위에 뭔가 표현하기 어려운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가뭄에 시들시들한 상추를 싱싱하게 되살리는 빗줄기처럼 주호 스님의 강의실은 특유의 활기가 있다.
일반적인 음식 강의와 달리 스님은 제철 채소, 곡류 등의 특징에서부터 재배법까지 나아가고 『동의보감』이나 현대 영양학 등에서 밝힌 약리효과 등도 소개하는데 이야기 갈피마다 자신의 체험이 생생하게 녹아있다. 이를테면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천에서 키운 가지는 빛깔도 깊고 형태도 각양각색입니다. 자연에서는 찍어낸 듯이 똑같은 게 없어요.”라고 하거나 “나물 하나도 깊은 맛을 내는 식재료를 선택해 보세요. 그냥 방풍이 아닌 갯방풍, 그냥 취나물이 아니라 울릉도 부지깽이, 통조림 죽순이 아니라 생죽순!” 하는 식이다. 그 말씀은 훌륭한 요리사란 자연을 잘 살필 줄 아는 눈 밝은 사람이라는 가르침으로 나아간다.
스님의 강의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스님께 사찰음식을 배운지 1년 반쯤 됐어요. 저희 집이 일산이라 비구니회관까지 왕복 4시간이 걸리는데 한 번도 강의를 빼먹지 않고 매주 나오고 있어요. 그만큼 스님의 강의는 특별해요. 김치 하나에도 이렇게 종류가 많고 놀라운 지혜가 담겨있다는 것을 배우죠.”
은밀한 비밀 하나 알려주겠다는 듯이 속삭인 주부 이득조 씨는 타임머신을 타고 여고시절로 돌아간 듯한 표정이었다. ‘사찰의 김치’를 주제로 한 스님의 강의에 눈빛을 빛내며 열심히 필기를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의 박수를 쳤다.
성큼 다가온 여름날씨가 실감나는 5월 중순, 주호 스님은 돌나물물김치, 민들레김치, 가죽순물김치, 알배기김치로 봄의 마지막 날까지 알차게 즐길 수 있는 봄 김치를 소개하는 한편, 초록이 무성한 여름의 기운이 가득한 열무김치, 고추김치, 오이김치, 가지김치, 양배추김치, 깻잎 김치, 상추대궁김치 등 여름 김치를 소개했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능가하는 사람은 그 일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김치의 재료를 다루고 양념하는 법 등을 소개하는 스님의 표정, 손짓, 추임새에 음식하는 사람만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즐거움과 기쁨이 번져서 듣는 이에게 스며들었고 신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스님의 강의를 들으면 당장 싱싱한 제철 채소를 장만해서 최소한으로 다듬고 습관처럼 쓰던 찹쌀풀 대신 여름 감자를 분나게 삶아 으깨서 풀을 만들고 아삭거리는 풋고추 넣고 김치를 만들고픈 마음이 달려나간다. 얼른 그 맛과 향을 즐기며 하나의 음식으로 완성시키고 싶은 마음이 커져 간다. 스님이 펼쳐 보이는 김치의 세계를 여행하는 맛이 재미있다.
“양배추김치는 7월 밥상에 꼭 올려보세요. 백김치, 물김치, 양념김치 등으로 다양하게 만들 수 있어요. 잘 삭으면 ‘톡톡’ 터지는 식감이 그만이에요. 더위에 지쳤던 입맛을 일깨우기에 부족함이 없어요. 여름에 오이소박이 많이 담그시죠? 그때 제피나무 열매를 가루 내어 양념해보세요. 한결 상큼하고 새로운 맛을 즐길 수 있고 제피열매는 배탈 나기 쉬운 여름에 소화를 돕고 장 건강을 도와준답니다. 제 도반 스님께 제피나무를 선물해 드렸는데 약사여래불 앞에 심으셨다고 해요. 제피열매가 약이 되길 발원하는 그 마음이 참 아름답죠? 상추대궁이라고 하면 그냥 버리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많은데 그걸로 김치를 담그면 특유의 시원하고 쌉쌀한 맛이 아주 좋습니다. 사찰음식은 재료를 다듬어 버리는 것이 거의 없어요. 그저 흙먼지나 털고 씻어서 다 음식의 재료로 만들어요. 공양물인 식재료를 고마운 마음으로 다루니 만들어진 특징인데 현대 과학은 그렇게 채소의 모든 부위를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죠. 요즘 채소의 껍질이며 뿌리까지 다 식재료로 쓰는 마크로비오틱 같은 음식의 트렌드는 이미 1,700년 사찰음식의 역사에 면면히 흐르고 있던 것입니다.”
부처님 전 눈부신 사과 한 개
김천 송학사의 주지 소임을 맡고 있는 주호 스님은 연필을 잡기 전에 칼을 잡고 무채를 썰었다고 한다. 세 살 때부터 절에서 상노스님, 노스님, 은사스님과 함께 살았던 스님에게 어느 스님도 작정하고 음식 하는 법을 가르쳐준 분은 없었다. 스님들은 어린 스님의 많은 가능성을 따스한 눈으로 지켜보셨을 뿐이었다. 어린 주호 스님은 상노스님을 비롯한 어른스님들이 정성으로 준비하고 만드시는 사찰음식이 자아내는 아름다운 풍경에 이끌렸다고 한다. 스님은 유년시절 선명하게 각인된 풍경 하나를 들려주었다.
“상노스님께서 부처님 전에 올리는 음식들이 참 신비롭고 매혹적이었어요. 스님께서는 사과 한 개를 담아도 참 예쁘게 담으셨거든요. 어쩜 그렇게 예쁘던지! 지금도 그 눈부신 사과 한개가 떠올라요. 그렇게 공양물을 다루는 스님의 손길이 저를 사로잡았어요.”
어린 주호 스님의 눈에 공양물로 들어온 첫두릅, 첫가죽나무순 같은 ‘첫물’ 채소들도 그저 단순한 채소로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겨울을 인내하고 솟아난 새순의 그 신비한 빛깔과 청신한 기운 그리고 그 첫물을 공양하는 마음이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고 한다. ‘첫물’이 있으면 ‘끝물’이 있는 법, 가죽나무순이 끝물에 접어들면 그 섬유소가 다소 억센데 상노스님을 비롯해 노스님, 은사스님은 그것으로 장아찌를 담그거나 부각으로 만들어 섬유소를 부드럽게 만들어 먹을 수 있게 하셨다. 채소를 갈무리할 때 나오는 자투리는 채수를 내는 긴요한 재료였다. 이처럼 정성스런 채소들을 갈무리하고 음식으로 만드는 일을 비롯해서 사찰음식의 기본양념인 된장, 간장, 고추장을 만드는 기쁨을 스님은 일찌감치 맛보았다.
1997년, 세수 열아홉의 나이에 출가한 주호 스님은 청암사 승가대학에서 땔감을 장만하고 불 때는 일을 하는 부목 소임을 맡으면서 120여 명 대중의 밥을 짓고 왁저지(김치를 다시마 우린 물 등 채수를 넣고 푹 끓인 음식)를 만들고 1년 내내 녹두전을 부치며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보았다고 한다.
귀로 먹어도 침이 고이니
2015년 선재 스님에게 사찰음식을 배우기 시작한 주호 스님은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의 1기 사찰음식강사과정 수료생이 되었다. 노스님께서 자질을 알아보시고 적극적으로 권유해 주셨기에 도전할 용기를 내었다고 한다. 주호 스님은 사찰음식에 매진해 오신 선재 스님에게 사찰음식의 넓이와 깊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며 배움의 즐거움을 확장했다. 자연스러움이 미덕인 사찰음식이 자연의 일부인 우리들의 감각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도 알게 되었다.
“선재 스님께서 예전에 라디오 방송으로 사찰음식을 강의하실 때 잘 전달하기 위해 의성어 의태어를 많이 사용하셨다고 해요. 채소를 데칠 때 ‘담방담방’ 데친다든지 ‘찰방찰방’ 씻는다든지 하는 말씀을 하셨다고 하는데 그런 표현들을 배우면서 사찰음식은 귀로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란 생각을 했고 저도 그런 표현을 적재적소에 해보려고 해요. 미각을 일깨우는 건 느낌, 감각일 테니….”
“스님, 나도 그랬어!”
“한번은 선재 스님의 김치 중에 삼삼하고 깊은 맛이 좋은 좁쌀알타리김치를 했는데 무가 물러진 거예요. 실패한 것에 속이 상해서 스님께 전화했던 일이 있어요. 그런데 스님께서 ‘스님, 나도 가끔 그럴 때 있어. 괜찮아. 스님만 그런 거 아니야.’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때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몰라요. 자연은 그렇게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도 하고….”
아마도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주호 스님은 강의를 할 때 종종 음식 만들기에 실패한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스승님인 선재 스님으로부터 “스님, 나도 그랬어!”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주호 스님에게 실패, 실수는 구제불능의 부끄러운 상흔이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이자 성공으로 가는 신비하고 매력적인 여정과 동의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수강생들이 실패라는 값진 경험으로 성숙한 음식을 만들기를 바라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사찰음식으로 다정하게 다감하게
이날 스님이 가르친 여름 음식은 가지 간장 무침과 생죽순전이다. 작은 차이가 큰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사찰 음식을 만들 때도 불문율이다. 가지를 찔 때 면보 대신 배추겉잎을 덮어 그 향과 물이 배게 한다든가, 찐 가지의 물기를 짜지 않아 그 풍미를 살리는 것, 죽순에 입히는 물에 치자가루를 더해 색도 살리고 여름철 쉬 상하지 않도록 방부효과를 더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20명의 수강생들은 조별로 음식을 만들며 조만간 밥상에 이 음식을 올릴 기대감을 나누었다. 청일점 삼인방 중 한 명인 강영환 씨는 “정년퇴임 후 아내의 권유로 사찰음식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날 배운 건 꼭 아내에게 만들어줍니다. 사찰음식은 건강음식이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막상 배워보니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줄 때 얼마나 뿌듯한지 알게 되었어요. 우리 스님강의 들으면서 식물에 대해 공부도 하게 됐어요.”라고 했다. 그 곁에서 죽순전을 뒤집던 강철원 씨는 “외국 유학 중인 아이들에게 해줄 음식을 하나 더 배우게 돼서 즐거워요. 아이들 숙소에 찾아가서 사찰음식으로 도시락을 싸주었더니 아주 좋아하더군요. 그 모습 보니 저도 행복하고! 훗날 아이들이 사찰음식 배워서 외국 친구들에게 해줬으면 좋겠어요.”라며 기대감에 부푼 모습이었다.
다정한 마음이 담긴 사찰음식은 이렇게 세대와 국경을 넘으며 여행한다. 주호 스님이 사찰음식의 연구와 대중화를 멈추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스님은 어린이들에게 사찰의 수수경단 만드는 법을 가르치며 지구 환경을 살리는 채식으로서 사찰음식의 가치를 알리기도 하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으로 대중과 활발히 소통한다. 스님 특유의 다정함과 다감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