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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괴물’. 미디어캐슬 제공
12월의 첫 주말, 저녁 산책을 하며 한해를 되돌아보니 무엇보다 대립과 증오로 넘친 1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지구촌 두곳에서는 극심한 증오로 인한 전쟁과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또 전쟁은 아니더라도 세계 곳곳에서 문화전쟁에 가까운 서로에 대한 대립과 갈등이 커진 느낌이다. 특히 한국사회는 사회집단 간 갈등에서 유래하는 문화전쟁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곳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감성,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갈등과 분쟁이 없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 대립이 격화되어 사회의 생산적 동력과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갉아먹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타자에 대한 증오와 오해에서 비롯되는 미움의 정서, 그로 인한 상처와 우울의 감정이 이 사회에 공기처럼 떠돈다. 자신과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에 대한 배척과 경멸을 떠받치는 심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관점이 정당하다는 확고한 생각일 테다. 물론 보편적인 차원에서 수행되는 정의의 심판과 단호한 청산이 필요한 경우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차원에서 충분히 해명되지 않는 사실과 관계도 많다. 최근 접한 소설과 영화는 의도하지 않게 타인에게 주는 폭력과 상처를 되묻는다.
정찬의 소설 ‘왼쪽 눈’(창작과비평, 2023년 겨울호)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 왼쪽 눈을 실명한 K는 자신의 비정상적 시선이 타자를 경멸하는 모습으로 비친다는 사실을 오랜 세월 동안 인식하지 못한다. Q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K는 자신의 시선이 Q의 생애 전체를 경멸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통렬하게 자각한다. K에게 이런 과정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비정상적 시선으로 인해 “Q가 겪었을 고통에 비하면 아주 작은 고통”에 해당한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사이에 타자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는 자각이 이 소설의 주제이다.
최근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도 이 사안을 다루고 있다. 각본을 쓴 사카모토 유지는 “내가 알지 못한 채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었다가 깨닫게 되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타인과 세상에 대한 편견, 선입견, 증오를 지닌 당신이 ‘괴물’이라고 이 영화는 말한다. 이런 인식은 제시카 노델의 책 ‘편향의 종말’ 소개글에서 “우리 대부분은 타인에 대해 ‘공정한 마음’을 지녔다고 확신하며 편견과 차별을 행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 아래에서도 우리는 예기치 못한 편향에 빠질 수 있다”고 갈파한 김원영 변호사의 지적과도 통한다.
소설 ‘왼쪽 눈’과 영화 ‘괴물’과 달리, 내 행위가 타인에게 커다란 폭력과 상처로 다가갔다는 사실을 끝끝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나 흔한가. 의도적으로 타인의 상처를 할퀴고 정신적·육체적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많다. 흔히 정치의 세계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와 증오를 부추긴다. 그건 명백히 계산된 전략이다. 이런 입장에서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타인에게 주었다는 자각은 순진한 자의 정직성에 불과하다고 여길 테다. 하지만 잠수함 속 토끼 역할을 하는 예술가의 감성은 이런 풍토에 의미 깊은 균열을 낸다. 소설 ‘왼쪽 눈’과 영화 ‘괴물’은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관점과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예술의 힘이 이 시대 우울한 한국사회를 되비추는 장면이다.
* 출처 : 한겨레신문
■ 권 성우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