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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석종사 참선 템플스테이
‘5분만 바라봐’
산다는 것과 초월한다는 것
어쩌면 우리 삶의 곳곳에 놓인 블랙홀들과
경계 언저리에서 아슬아슬 살아가는 삶
그러나 언제고 꼭 한번은
훌쩍 뛰어넘고 싶은 사건의 지평선!
블랙홀과 관련된 하나의 특성으로 설명되는 사건의 지평선. 거기를 넘어서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 뒤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업장을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던져버리기만 하면, 해탈이다. 물리적으로 그곳에 도달하는 것은 아직까지 불가능하지만 정신세계에서는 새가 나뭇가지 끝에 앉았다가 흔들림 없이 날아가는 것처럼, 허공에 세운 마음의 벽 하나 허물면 안팎이 사라지는 것처럼 가볍고 쉬운 일일지 모른다. 그것을 우리는 초월이라고 부른다.
초월한다는 것
충주 금봉산 자락에 위치한 석종사는 신라시대 절터였던 폐사지에 1983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한 청년 승원이다. 시내에서 거리상으로 멀지 않은 위치이지만 삽시간에 깊어지는 산골짜기를 따라가다 보면 단단하게 갖추어진 요새를 만나게 된다. 관념으로 디자인한 추상 세계가 아닌 물리적 현실 세계에 실재하는 초월을 구현한 절은 마치 지상에 존재하는 블랙홀처럼 검은 아가리를 앙다물고 있었다. 그 안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자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도저한 중력이 빨아들이고 있다.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사건의 지평선, 부처님의 가피로 테를 두른 진한 노란빛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있는 듯했다. 과연 그 너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석종사는 제주 남국선원을 세우기도 한 혜국 스님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김범식 대목장에게 불사를 맡겨서 재탄생한 사찰이다.
금봉산 기슭의 오르막 지형에 맡긴 자연스러운 층층 형식으로 배치된 전각과 군더더기 없는 조경이 장엄함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버리지 못한 것들
아침부터 꾸물꾸물하던 날씨가 점점 괴이해지더니 절에 도착하자 촉촉하게 비가 내린다. 우주만물의 생명을 틔우는 물에 젖어들어 산사의 분위기는 더욱 깊어졌고 묵직한 압력으로 마음을 끝없이 가라앉혔다. 방을 배정받고 나서 템플스테이 지도법사인 진명 스님의 지도에 따라 ‘용서 자비’ 글을 필사했다. 엷은 회색 글자 위에 또박또박 한 획, 한 글자 정성스럽게 적으며 그 뜻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지나간 일에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지 않으며 현재의 삶을 지켜나간다면 얼굴빛은 맑고 깨끗하리.’
그중에 한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을 울렸다. 잠깐 창문을 열고 선림원 마당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과 빗물에 번지는 동심원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보이며 석종사 ‘5분만 바라봐’ 템플스테이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잠깐의 휴식 뒤 연등 만드는 시간. 진명 스님은 진흙 속에 피어나는 연꽃의 의미와 연등을 만드는 뜻에 대하여 세심하게 설명해주었다. 힘든 세상에서도 때묻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연꽃잎을 붙여 보라는 말씀 따라 종이컵을 중심으로 색색의 꽃잎을 골라가며 딱풀을 이용해 붙여나갔다. 1박2일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같이 하게 된 참가자들 모두 각자의 개성과 성정을 닮은 연등을 신중하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려 완성된 연등이 자기 앞에 놓여있다. 어떤 것은 단순하고 어떤 것은 화려하고 어떤 것은 풍성하지만 어떤 것은 소담하다. 내가 만든 것은 왠지 나를 닮아서 미워 보였다. 미워 보이는 그 마음 또한 그 너머로 던져버리지 못한 것. 푹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아직 갈 길이 먼가 보다.
사자 석상과 기시감
저녁 공양을 마치고 모두 범종각에 모였다. 저녁 예불 전에 사물을 치는 의식을 참관하는 시간이다. 먼저 법고를 울린다. 웅장한 법고 소리는 부처님의 힘으로 번뇌를 굴복시키러 돌진하는 용사들의 말발굽 소리 같다고 한다. 세 명의 스님이 돌아가면서 법고를 쳤는데, 교대를 하는 때에는 이어달리기에서 바통을 주고받는 순간 잠시 함께 뛰듯이 두 스님이 이중주를 하게 된다.
다음은 범종이다. 초침이 있는 시계를 걸어두고 타종 간격을 맞추는 것을 더러 보았는데, 석종사에서는 시계 없이 범종을 치는 당목의 진자 운동에 맞추어 타종한다. 정확히 여섯 번 움직임에 한 번씩 당목을 뒤로 크게 움직여 범종을 때리면 고통받는 중생들이 번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고 행복하라는 부처님의 범음성이 천지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그리고 목어, 운판의 순서로 불전 사물을 치는 의식을 마치고 서둘러 저녁예불이 봉행되는 대웅전으로 향했다. 목어의 둔탁한 나무울림과 이어지는 운판의 쟁쟁한 쇳소리가 귀에 잔영으로 남아있었다. 해가 길어져 이제 저녁예불을 마치고도 사위가 어둡지 않았다. 대웅전에서 계단을 내려오며 보이는 신비로운 해태 석상과 사자 석상이 낯익다.
기억이 맞다면 제주 남국선원에서 눈여겨보았던 것과 똑같이 생겼다. 서귀포 한라산 돈내코 탐방로 입구 부근에 은거한 무문관이있고 시민선방이 있는 남국선원에서 받았던 엄숙함과 괴이함을 기시감처럼 느끼고 소스라친다. 남국선원과 이곳 석종사 두 절을 창건한 혜국 큰스님이 어디선가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리번거렸다.
고요로 깊어지소서
첫날 마지막 일정은 참선 수행 입문과 낮에 만든 연등에 불을 켜고 집중하는 명상 체험이다. 지도법사 진명 스님은 현대의학과 정신과학을 바탕으로 한 세세한 자료를 활용하여 참선과 명상 수행의 원리와 필요성을 설명하였다. 어디선가 슬며시 다가오는 수마를 참으면서 다른 참가자들이 열심히 경청하는 모습을 따라서 정신을 차리고 집중했다.
그때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해탈이다. 아까 저녁예불을 마치고 방사로 가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고인 빗물을 핥아먹고 있었다.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더니 쭈그리고 앉은 내 품으로 쏙 들어왔다. 해탈은 멀었지만 고양이 한 마리라도 품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해탈이는 누구라도 잘 따랐다. 정말 해탈한 고양이인가 싶은 녀석의 울음소리가 분명하다. 그러나 고양이는 고양이일 뿐이고, 우리는 지금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생활하면서 단 5분 만이라도 ‘나’를 바라보고, 고요로 깊어지는 시간을 갖으라는 스님의 말씀이다. 일상이 곧 수행이 되도록 하라는 말씀. 그리고 진언 하나를 알려주신다.
‘나와 인연 있는 모든 이가 행복하기를….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우주와 하나 되는 순간
차를 마시며 듣는 이론 수업을 드디어 마치고 우선 굽은 허리를 교정하고 바른 자세로 앉는 법부터 배웠다. 벽에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서 허리 부분에 수건을 둥그렇게 말아 끼웠다. 이렇게 S자로 곡선을 그리며 세워진 등과 허리가 되어야 건강한 몸이다.
참가자들은 진명 스님의 지도에 따라 서서 걷는 행법을 했다. 이때도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아까 알려준 진언을 되뇌라고 하셨다.
‘나와 인연 있는 모든 이가 행복하기를….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진명 스님은 이 진언을 얼마나 외웠는지 단어 하나를 발음하는 것처럼 한다.
다음은 앉아서, 누워서 명상을 했고, 마지막으로 자기가 만든 연등에 불을 켜고 ‘5분만 봐라봐’ 참선 명상으로 끝맺었다. 우리는 각자가 만든 연등을 들고 방으로 돌아갔다.
잠에 들기 전에 다시 대웅전으로 올라갔다. 템플스테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산사의 밤풍경이다. 깜깜한 밤에 혼자가 되어 경내를 내려다보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 흐린 밤하늘에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런 빛도 없이 컴컴해서 더없이 끝없고, 넓디넓으며 거친 우주와 하나가 되어본다.
허공과 마음 덕
다음날 아침 큰스님 친견 시간이 불시에 잡혔다. 혜국 큰스님의 뒤편에는 고행하는 부처님 상이 모셔져 있다. 오래전 청화 선사님을 친견했을 때 부처님 고행상을 보았던 기억도 잠깐 났다. 동행자가건강이 어떠시냐고 묻자 날씨가 오래 맑으면 흐려지듯이 나이 칠십이 넘으면 아픈 것을 벗 삼아 사는 것이라며 가볍게 말씀하신다.
혜국 큰스님은 “모든 현상이 있기 때문에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봐주기 때문에 현상이 있다는 전혀 다른 세계를 부처님은 설하셨다, 우리는 허공 덕에 살고 있다 말씀하셨다. 허공이 있어서 앉아 있고, 허공이 있어서 집을 짓고, 허공이 있어서 나무가 자라나고 우리는 허공을 1초도 떠나서 살아본 일이 없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를 떠난 마음의 언어를 설하신 성철 스님의 말씀을 더 잘 들어놓을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는 말씀도 하셨다.
젊은 시절 불과 같은 구도의 열정으로 연지공양한 혜국 스님의 손에 자꾸 눈이 갔다.
업장이 녹아내리는 환희였다던 연지공양이 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아픔과 연민으로 전해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스님은 번뇌의 손가락을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던져버린 것이겠지. 도대체 깨달음이란 무엇이기에 그러한 고통을 감내해서 이룩하는 것일까. 참선을 하는 방법은 알려줄 수 있어도, 참선에서 얻게 되는 경지와 기쁨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라는 혜국 큰스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선림원으로 내려가서 진명 스님과 108배 수행을 하고, 화엄공원에서 맨발 걷기 명상으로 석종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모두 마쳤다. 돌아오는 길에 날이 개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중간에 고속도로 표지판에서 ‘초월’이라는 지명을 보았던 것 같아 찾아보니, 경기도 광주에 있는 초월읍으로 풀 초(草)자에 달 월(月)자를 쓰고 있었다.
■ 충주 석종사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길 271-56
043-854-4505 I http://www.sukjongsa.org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