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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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이야기

0 개 803 박명윤

창립 25주년을 맞은 구글(Google)이 지난 12월 11일 ‘올해의 검색어’를 발표했다. 올해 전 세계인들이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레시피(recipe, 음식 조리법)는 우리나라 ‘비빔밥(Bibimbap)’이었다. 이는 한식(韓食)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증명한 것이다. 비빔밥의 뒤를 이어 스페인 꼬치 요리인 에스페토(Espeto), 인도네시아 죽요리 파페다(Papeda) 등이 순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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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이 구글 레시피 검색량 1위에 오른 건 한국 드라마 등 K 콘텐츠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실제 구글에 힌디어로 ‘비빔밥’을 검색하면 ‘태양의 후예에 나논 비빔밥 조리법’과 같은 게시글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에 나오는 한식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증가한 것이 글로벌 검색량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비빔밥이 세계에 알려진 계기는 1997년 대한항공(KAL)이 기내식(機內食)으로 비빔밥을 제공하면서부터라고 본다. 웰빙(well-being) 기내식으로 주목받아 1998년 ‘세계최고 기내식 상(賞)’을 받았다. 요즘도 대한항공 국제선에서 연간 300만개 이상 비빔밥이 소모된다. ‘팝 황제’ 마이클 잭슨이 대한항공 기내식으로 처음 맛보곤 ‘비빔밥 마니아(mania)’가 됐으며, 그가 머물던 신라호텔에선 비빔밥만 찾은 그를 위해 고추장과 육류가 안 들어간 ‘마이클 잭슨 비빔밥’ 레시피를 개발했다.


비빔밥은 같은 ‘밥’ 문화권인 일본과 중국에는 없는 독특한 음식이다. 비빔밥은 식약동원(食藥同源) 즉, ‘음식과 약은 뿌리가 같다’는 한국 음식 철학이 담긴 균형식(均衡食)이다. 다양한 식품을 제공하는 비빔밥은 식재료 배합에 따라 저열량 ‘다이어트식(食)’이 될 수도 있다. 비빔밥은 궁궐에서 임금으로부터 일반 백성까지 두루 먹는 우리 민족의 대표음식이다.


필자는 비빔밥을 즐겨 먹는다. UNICEF(국제연합아동기금)에서 1965년부터 25년간 근무하면서 보건(health)과 영양(nutrition) 관련 국제회의에 많이 참석했다. 국제회의에서 만난 외국인들에게 웰빙(well-being)한식으로 비빔밥을 소개하곤 했으며, 친분이 있는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식당에서 비빔밥을 대접하곤 했다. 외국인들은 탄수화물•단백질•지방 3대 영양소가 고루 들어 있는 비빔밥을 고추장•참기름을 넣고 직접 비버서 먹는 이색 체험을 좋아한다.


비빔밥의 대표적이 레시피는 흰 쌀밥에 각종 나물을 넣고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고 비빈다. 대표적으로 고추장을 넣지만, 간장이나 된장, 쌈장을 넣어서 비비기도 한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는 음식을 먹을 때 음(陰)과 양(陽)의 오방색(五方色)을 사용한다. 우주를 구성하는 흰색,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검은색의 다섯 가지 색이 모두 이상적이라는 예기다. 즉 탄수화물은 흰색, 단백질은 빨간색, 지방은 노란색, 채소는 파란색, 발표식품은 검은색이다.


우리나라 밥 요리인 비빔밥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다. 부빔밥, 제삿밥, 골동반(骨董飯), 교반(攪飯)으로도 부르며, 궁중에서는 비빔이라 불렀다. 음식을 담는 그릇이 많이 없는 집 밖에서 산신제나 동신제를 지낼 때 신인공식(神人共食)이라는 생각에 따라 그릇 하나에 이것저것 받아 섞어 먹던 것, 또는 조상을 위한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을 빠짐없이 음복(飮福)하기 위해 밥에 여러 가지 제찬(祭饌)을 고루 섞어 비벼 먹던 것에서 발달하였을 수 있다.


비빔밥은 조선 중기의 문신 박지혜(1569-1635)가 지은 역사서 ‘기재잡기’에 혼돈반(混沌飯)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 권상일(1679-1760)이 쓴 일기인 ‘청대일기’에 골동반(骨董飯)으로 언급된다. 실학자 이익(1681-1764)이 지은 ‘성호전집’에는 골동(骨董)으로,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청장관전서’에는 골동반(骨董飯)으로 언급된다. 골동반의 ‘골’은 섞을 골, ‘동’은 간직한 동으로 ‘골동’이란 여러 가지 물건을 한데 섞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골동반은 이미 지어 놓은 밥에다 여러 가지 찬을 섞어서 한데 비빈 것을 의미한다.


이규경(1788-1856)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채소비빔밥, 잡비빔밥, 회비빔밥, 정어비빔밥, 대하비빔밥, 새우젓갈비빔밥, 새우알비빔밥, 게장비빔밥, 달래비빔밥, 생오이비빔밥, 김가루비빔밥, 고추장비빔밥, 왕후비빔밥 등 여러 가지 비빔밥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지역의 특산물을 소개하면서 “평양의 감홍로, 냉면, 골동반”을 들기도 하였다.


19세기 후반의 조리서인 ‘시의전서’에는 비빔밥의 조리법이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肝納)은 부쳐 썬다. 각색 남새를 볶아 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 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과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계란을 부쳐서 골패짝 만큼씩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비빔밥이 있는데, 특히 ‘전주비빔밥’과 ‘진주비빔밥’이 유명하다. 비빔밥을 ‘헛제삿밥’이라고도 한다. 대구 헛제삿밥도 유명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안동의 헛제사밥만이 남았다. 실제 제사가 아니라 제사상에 주로 올리는 음식들을 요리하여, 제사가 아닌 평상시에 비벼 먹는 비빔밥을 의미한다. 실제 제사(祭祀)를 올린 음식으로 비빔밥을 해 먹을 때에는 ‘제삿밥’으로 지칭한다. 고추장 대신 간장으로 맛을 낸다.


<전주비빔밥>은 재료 중에 콩나물이 중요하다. 콩나물은 임실에서 나는 서목태(鼠目太, 쥐눈이콩)와 좋은 물로 길러서 오래 삶아도 질감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밥을 지을 때 쇠머리 고운 물로 짓고 뜸들일 때에 콩나물을 넣는다. 육수에 밥을 짓고 쇠고기, 콩나물, 시금치, 쑥갓, 고사리, 도라지, 미나리, 표고버섯 등을 얹어 고추장에 비벼먹는다. 육회가 올려 지기도 한다. 달걀노른자는 생으로 올라간다. 콩나물국과 함께 먹는다.



전주비빔밥의 주재료인 콩나물은 일제 강점기부터 전주가 가장 유명했다. 전주사람들이 콩나물을 즐기게 된 것은 19세기 말 풍토병을 막기 위해 콩나물을 상식했다고 한다. 소금으로만 간을 한 콩나물국을 술(탁주)과 함께 마시는 전주명물 ‘탁백이국’이 1929년에 언급된 것을 보면 콩나물은 전주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음식 재료였다. 전주는 콩나물과 황포묵을 길러낸 물맛이 좋고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가 풍성하게 나는 산지이다.


<진주비빔밥>은 경상남도 진주 지방의 비빔밥으로 놋그릇에 흰밥과 다섯 가지 나물을 담은 후 고추장을 얹는 데,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화반(花飯)이라고 불린다. 고추장에 다진 소고기를 넣어 볶은 소고기 고추장(약고추장)을 쓴다. 일반적인 비빔밥처럼 콩나물 대신 숙주나물을 쓰며, 해초나물과 해물보탕국 한 국자 넣고, 그 위에 소고기 육회를 듬뿍 얹어 낸다. 곁들여 먹는 국물은 선짓국을 쓴다. ‘평양비빔밥’은 전주비빔밥과 유사하지만 육회대신 볶은 소고기를 사용한다.


비빔밥은 한 가지 음식으로 우리 몸에 필요한 여러 가지 영양소를 동시에 골고루 섭취할 수 있어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다. 비빔밥 한 그릇(450g)에 함유된 영양성분은 칼로리 691.6kcal, 탄수화물 98.7g, 단백질 24.6g, 지방 22g, 당류 18.3g, 나트륨 1119.6mg, 콜레스테롤 95.4mg, 포화지방산 3.9g, 트랜스지방 0.1g 등이다. 한국인 성인(19-49세) 1일 에너지 권장량은 남성은 2500-2600kcal, 여성은 1900-2000kcal이다.


비빔밥에 얹어 먹는 쇠고기볶음이나, 육회, 해산물, 달걀 등에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으며, 밥을 비빌 때 들어가는 참기름이나 각각의 재료를 조리하는데 쓰는 기름에서 지방을 보충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나물에는 비타민과 식이섬유소가 풍부해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등과 같은 성인병과 변비를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이들 재료에 들어있는 폴리페놀(polyphenol)이나 플라보노이드(flavonoid)와 같은 물질이 면역을 증강시키는 효과가 있다. 고추장에 들어있는 캡사이신(capsaicin)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


구글에서 발표한 ‘올해의 검색어’에서 비빔밥이 레시피 부문 1위에 오른 것은 세계인들이 비빔밥으로 대표되는 한국 음식을 알고 싶어 한다는 증거다. 영국 유명 출판사 파이돈(Phaidon)이 지난 10월 펴낸 ‘코리안 쿡북(The Korean Cookbook)’은 세계적으로 고조된 한식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요리책이다. 코리안 쿡북은 한국인 밥상에 오르는 음식을 총망라했다.


요리책 분야에서 으뜸인 파이돈의 첫 한식 요리책의 공동저자는 20여 년간 알고 지낸 선후배 요리사인 박정현씨와 최정윤씨다. 미국 뉴욕에서 레스토랑 4개를 운영하고 있는 박 셰프는 현재 세계 미식계에서 주목받은 인물로 꼽힌다. 그가 2018년에 문을 연 모던 한식 레스토랑 ‘아토믹스’는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2개를 받았고, 올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8위에 올랐다.



최 세프는 국내외 유명 호텔과 스페인 요리과학연구소 ‘알리시아’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샘표 ‘우리맛연구중심’에서 한식 세계화를 위한 연구를 해왔다. 두 저자는 “한식이 골든타임(golden time)을 맞았다”며 “이 기회에 프랑스, 일본 음식처럼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서는 데 기여하는 마음으로 요리책 ‘코리안 쿡북’을 썼다”고 말했다.


‘한국식 밥상’을 처음 받은 외국인들은 너무나 많은 반찬에 놀란다. 무엇부터 어떻게 먹어야 할지 혼란에 빠져 당황한다. 한식의 매력은 같은 밥상에 함께 앉더라도 사람마다 어떤 순서와 조합으로 반찬을 먹느냐에 따라 식사 경험이 차별화된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삼겹살과 먹는 김치와 쌀밥과 먹는 김치는 맛과 식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양식(洋食)은 요리사가 원하는 순서대로 하나씩 주어진다. 한식(韓食)은 먹는 사람의 입안에서 완전해진다. 취향대로 맛의 조합을 창조해 먹을 때마다 맛이 달라지는 게 한국 밥상이다. 즉 요리사가 아닌 먹는 사람이 자기만의 코스를 만들어 먹는다. 이에 한식의 매력을 제대로 경험하려면 한국 밥상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뿐 아니라 먹는 법도 소개해야 한다.


뉴욕타임즈(NYT)는 최근 ‘한국 레스토랑이 뉴욕의 파인다이닝(고급 외식)을 재창조한 방법’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한 면 전체에 실었다. 신문은 “한국 셰프들이 뉴욕 고급 레스토랑을 석권하며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프랑스요리의 패권을 끝냈다”고 적었다. 한식은 세계 미식을 선도하는 첨단 트렌드로 미국에 안착했다. 지난 10월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 뉴욕’에서 별을 받은 식당 72곳 중 9곳이 한식당이며, 프랑스 식당은 7곳이었다.


한식 세계화의 일환으로 비빔밥의 산업화 및 활성화를 통해 지역경제의 발전을 도모하고 해외 인지도 제고에 이바지 할 수 있다. 또한 비빔밥의 해외 인지도 제고에 따른 국가이미지 상승 및 비빔밥 문화콘텐츠 개발을 통한 한류관광객 유입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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