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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민족의 삶 속에는 언제든지 용이 있다. 용은 상상속의 동물이나 못이나 강, 바다와 같은 물속에서 살며, 비나 바람을 일으키거나 몰고 다닌다고 여겨져 왔다. 농경 문화권과 용 신앙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도 일찍이 용 신앙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환웅이 태백산 꼭대기에서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동반했는데 용을 의인화 한 것으로 보인다. 용은 상상속의 동물인데도 신라시대 이래 20여 차례나 출현한 기록이 있다. 그 때마다 군주의 승하나 성인의 탄생 등 획기적인 변화와 농사의 풍흉, 민심의 향배 등에 관한 큰 사건이 따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용은 길상(吉祥)으로서 큰 희망과 성취를 상징하고 있다. 용꿈을 꾸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기뻐하고 어떤 일에 대해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을 기대한다.
용은 실재하지 않는다. 십이지(十二支,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중 유일하게 현실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동물인데 상상력으로 용을 만들면서 다른 짐승들의 장점만을 취하여 힘의 끝판 왕을 탄생시켰다. 용은 아홉 가지 동물의 특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다. 각 부족 간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연합체로서의 용이 탄생했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용은 탄생과 동시에 숭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봉황, 기린, 거북과 더불어 사령(四靈)의 반열에 올랐고 최고의 지배자인 왕에 비유되었다. 임금의 얼굴은 용안(龍顔), 왕의 자리는 용상(龍床), 옷은 용포(龍袍) 등으로 격을 달리 했다.
용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것은 열 짐승들의 장점만을 가져와 탄생한 그 조화로움이다. 임금은 최고의 자리에 오른 절대자로 만백성이 경외하는 용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욕심을 냈으며 용이 가진 신(神)적인 권위를 누려보겠다는 뜻을 지녔다. 용에게 있어서 조화로움은 외모는 물론 맡은 역할에서 모두 중요한 덕목인데 권력자들은 이러한 덕목을 소홀히 하고 권력을 잡은 뒤에는 다른 생명체들을 괴롭히는 독재자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독재자의 말로가 어떤지는 세계 역사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거니와 작은 커뮤니티의 대표, 한 집안의 가장도 마찬가지여서 인간사회의 서글픈 초상화가 되고 있다.
등용문(登龍門) 신화에 용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황하 상류에 사는 잉어에서 비롯되는데 곤륜산에서 발원한 물이 적석산을 통과하면 용문폭포에 이른다. 복숭아꽃이 필 무렵 용문폭포 밑에서는 수천만 마리의 잉어가 모여서 폭포 위로 뛰어 오른다.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몸을 던지는 물고기의 무모한 도전이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의 회귀본능이 있다.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를 엮어내어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약리도(躍鯉圖, 잉어가 뛰어 오르는 그림)와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 잉어가 용으로 변하는 그림)가 탄생했다. 날개 없는 물고기가 폭포위로 뛰어 오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어려운 장애를 극복하고 목적한 바를 달성했다면 성공스토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크게 출세했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등용에 성공해서 잠용이 된 물고기가 하늘에 올라 성용이 되어 기세를 펼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의주(如意珠)를 얻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개천으로 내려가 이무기(구렁이나 뱀)로 되어 하찮은 생물로 존재할 뿐이다.
조선 정조 대왕이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제자의 영혼을 위로하기위해 중건한 절이 완공되는 날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고 낙성식에 참석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龍珠寺)’라고 지었다고한다. 사도세자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다가 아들 정조의 정성으로 좋은 마음을 품고 하늘로 올라간 것으로 본다. 한국의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은 상처투성이의 용이 경남 지리산 하늘 위를 날고 있는 태몽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평생을 외국에서 음악활동을 하다가 남북분단이 처한 현실에서 갖은 고초를 겪으며 살았지만 말년에 고국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소원도 못 이루고 세상을 떠났다. 한편 용이 떨군 여의주를 치마에 받았던 태몽으로 태어난 사람이 차를 타고 가다가 수 십 미터 낭떠러지 아래 굴러 떨어졌으나 자신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차에서 뛰어내려 나뭇가지에 걸려 살아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꿈은 수면 시 경험하는 일련의 영상, 소리, 생각, 감정 등의 느낌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희망 사항, 이루고 싶은 일, 목표 등을 일컫기도 한다. 꿈에서 좋은 일만 일어나 현실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리라고 미루고만 있다면 허황된 꿈일 뿐이다. 어떤 꿈을 어떻게 꾸었으며 주어진 꿈을 무슨 마음을 갖고 실천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가치가 있는 꿈일 것이다. 이무기처럼 비천한 삶을 탈피하고 승천하는 용이 되기 위해서는 여의주를 얻어야하는데 그 여의주가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며 스스로 만들어야 되는 것이다. 평소에 좋은 일을 염원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다보면 꿈에 어떤 계시가 일어날 것이며 그 계시를 낙관적으로 해석하고 합리적으로 실천하다보면 꿈이 현실화되는 날이 올 것으로 믿고 살아갈 일이다. 흔히 새해 덕담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는데 복을 마음대로 줄 수도 없을뿐더러 거저 받을 수도 없는 일이다. 복 받을 일을 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보라는 인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난 1월1일 새해 첫날 해돋이를 마중하기 위해 브라운스 베이에 일행이 모였다. KCS에서 주관한 이 행사에는 ‘甲辰年 靑龍 2024’ 족자를 중심으로 섹소폰, 기타, 징, 촬영 팀들이 모였다.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섹소폰 연주를 시작으로 일출에 맞춰 징 소리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처음 맞는 해돋이를 축하했다. 이어서 애국가와 뉴질랜드 국가를 합창하고 포카레카레 아나(Pokarekare Ana)와 몇 가지 가곡들을 합창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누구나 새로운 감회에 젖는 일이지만 교민들이 한국 정서를 가지고 뉴질랜드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새로운 각오로 출발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