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봉화 축서사 참선 템플스테이
깨달은 뒤에 어떻게 살 것인가.
템플스테이에 다녀와서 어떻게 살 것인가.
축서사에 다녀와서 어떻게 살 것인가.
궁금하지 않은가?
우선 마음의 고향 축서사에 가보시라고
이야기는 그다음에 하자고
말씀드리고 싶다.
비가 내리고 있다. 한 삼백 번쯤 절을 했을까. 허벅지와 종아리에 알이 배겨 욱신거리고, 무릎이 쓰라려 들여다보니 벌겋다. 한 번 절할 때마다 하나씩 꿰어 만든 백팔 염주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부처님의 일생을 떠올려본다. 절에 갈 때마다 오래 쳐다보곤 했던 팔상도(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단계로 나누어 그린 그림)가 머릿속에서 이제 제법 선연하다.
마음의 고향 축서사
도솔천에서 흰 코끼리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북인도 카필라궁의 왕자로 태어나시고, 노인과 병자와 죽어 실려 가는 시체를 보고 출가를 결심. 29세에 왕궁과 처자를 떠나 갖은 고행을 겪으며 수행하셔서 대오각성한 후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하여 5명을 귀의시키고, 이후 수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전한 후 제행무상 용맹정진을 당부하고 열반에 이르시기까지….
봄비가 내리고 있다. 아침 걷기 명상 때 보았던 진달래 봉오리가 되어 비를 맞는다. 세상 모든 행위는 늘 변하여 한 가지 모습으로 정해져 있지 않으니, 집착하지 말라는 뜻의 ‘제행무상’을 입술로 움직여본다. 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고, 꽃잎이 조금 달싹거린다.
축서사에 다녀왔다. ‘마음의 고향 축서사’라고 왼쪽 마음 위치에 수놓아진 템플스테이 법복을 벗어 곱게 개어놓고 산을 내려와 영주역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시장으로 들어가 막걸리 한 병과 순대 반접시를 시켰다. 엔딩 크레딧을 보다가 맨 앞으로 돌려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은 영화처럼, 청량리가 아니라 그곳으로 당장 되돌아가고 싶었다. 축서사는 그런 절이다.
축서사 가는 길
청량리 발 06:00시 영주행 KTX를 탔다. 시민들이 사뿐사뿐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주는 영주시를 조금 배회하다가 외딴곳에 있는 터미널에서 동행자를 만나 승용차를 타고 축서사로 향했다. 봉화 회전교차로에서 삼계리 쪽으로 꺾어져 부석사, 축서사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자 저절로 목소리가 낮춰졌다. 거기서부터 15km, 40리길. 삼계, 북지, 가평 언저리에서 부석사 가는 길과 갈라져 개단, 월계를 지나면 그 길 끝, 아니 길이 시작되는 곳에 어떤 장대한 서사를 축하라도 하듯이 축서사가 있었다.
초입부터 비현실적인 드라이브였으나, 도중에 이몽룡 생가라는 안내판을 보면서 머릿속에 휭하니 다른 세계로 가는 길이 몽롱하게 열리는 듯했다. 그리고 축서사가 있을 곳으로 짐작되는 산세가 눈 앞에 펼쳐지자 ‘후~’, 낮은 탄성이 하단전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존자암이 있는 한라산 영실에 버금가는 영지, 지혜를 상징하는 독수리가 거쳐하는 곳[鷲棲]임을 누구라도 직감할 수 있겠다 싶다.
나는 최초로 그 길을 찾아내서 그곳에 이르렀을 누군가처럼 눈을 감고 뭉근하게 잡아끄는 기운을 느껴보았다. 어느덧 차가 멈췄고, 눈을 떴을 때 탄성으로는 안 되었는지, 신음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분명 여기는 다른 세계다.
무여 큰스님 친견
홀렸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문수산의 중심 해발 800m 기슭에 연꽃처럼 자리한 축서사. 멀리 병풍 같은 소백산의 봉우리들이 삼존불처럼 바라보이고, 태백산맥에서 굽이쳐 내려온 산등성이가 옴폭하게 감싸 안고 있는 이곳의 단단하고 특이한 기압 때문인지 한동안 귀가 멍멍했다. 좀 더 높은 곳에 위치한 대웅전에 홀린 듯이 올라가서 부처님께 삼배하고, 보광전 앞에 있는 고려시대 만들어진 투박한 석등 옆에서 서방정토를 바라보는데, 그냥 그대로 또 하나의 석등이 된 것처럼 나는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서 있고, 있었다. 꿈을 깨라는 듯 저 아래 종무소에서 동행자가 손짓한다.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템플스테이 지도법사인 선정 스님이 부드러운 커피를 내려놓고 계셨다. 선정 스님이라니, 법명처럼 맑고 또렷한 음성으로 일정을 조목조목 알려주었다. 첫 순서는 축서사 조실 무여 큰스님을 친견하는 시간. 하룻밤 머물 방을 배정받고 단정하게 법복으로 갈아입은 뒤 무여 스님이 향기롭게 머물고 계시는 응향각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친견실로 들어가서 스님을 기다리며 둘러보았다. 한쪽 벽면에는 역대 조사님들의 사진과 작은 불상이 모셔진 불단이 있고, 그림 두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목조 반가사유상의 얼굴 부분을 그린 그림이었고, 다른 하나는 두 그루의 노송 사이로 달처럼 서 있는 학 한 마리를 그린 그림이었다. 잠시 뒤 작은 기척과 함께 스님이 미끄러지듯 학처럼 나타나셨고, 삼배했다.
눈은 아이처럼 맑았으며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서려 있었고, 양쪽 끝이 살짝 올라간 두 눈썹이 기상과 총명을 절묘하게 드러내고 있는 얼굴이셨다. 두 손은 가지런히 모아 겸손과 온화함을 풍기셨지만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문장을 읽듯이 정갈하게 정제되어 있어서 그 지혜의 깊이와 청정이 자연스럽게 전해져 왔다. 나를 찾는 방법으로 화두 참선의 중요성과 깨달음이 주는 지극한 행복에 대하여 명징하게 설명하셨고, 눈길이 갔던 한쪽 벽면의 사진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말씀해주셨다. 중국 광동성 남화선사에 모셔져 있는 1,300여 년 전 육조 혜능의 진신불 사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셨다.
그 무엇 하나 흐트러짐 없는 참된 수행자의 그림자를 친견하고 나왔을 때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응향각 앞마당에 물결처럼 쓸어놓은 빗자루 자욱이 참빗으로 곱게 빗은 할머니의 머릿결 같기도 했고, 백사장 위에 바람이 남기고 간 무늬 같기도 했다. ‘휴~’ 다시 깊은 숨을 내쉬며 내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참선 공부 시간
참선에 들어가기 앞서 선정 스님은 자세와 호흡, 집중하는 방법들을 세밀하게 설명해주었다. 그전에 축서사 전각들과 성보들을 돌며 각각의 의미와 함께 수행자의 태도 같은 것들을 요목조목 들어놔서인지 선정 스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일타강사의 강의처럼 쏙쏙 들어왔다. 자비만으로는 안된다며 지혜를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는 말씀에 별 다섯 개 표시.
저녁 공양 후 소백산 너머로 지는 일몰과 노을을 받아 붉어진 얼굴로 자기 몸이 도량이며, 죽어서 가는 극락이 아니라 내가 사는 지금 여기가 극락이 되는 것이 해탈이며 깨달음이고 나를 찾는 것이라는 말씀. 이보다 더 간결한 정의가 있을 수 있을까. 저녁예불 시작하기 전에 목어, 운판, 법고를 쳐보고, 범종도 9번 타종했다. “이 소리를 듣고 삼라만상 모든 중생들이 깨어나 해탈하기를 빕니다.”
선정 스님 지도로 세 번의 짧은 명상을 했다. 첫 번째로 지금 이 순간에 있는 호흡 알아차리기, 두 번째는 나의 공간성을 확장해서 우주만큼 커지기, 세 번째는 좋고 싫은 감정을 내려놓고 온전하게 쉬는 명상이다. 세상 모든 것이 생하고 멸하는 것처럼 추구했던 행복도 사라지는 것이어서 오직 괴로움만 없는 상태가 해탈이라는 말씀에도 마음의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8시부터 한 시간, 다음날 아침 5시부터 한 시간 두 번의 참선 공부에 들어갔다. 시민선방이 있는 선열당은 한밤중에도 이른 새벽에도 환하게 불이 밝았다. 일주일 일정으로 이미 사흘째, 하루 10시간씩 공부 중인 20여 명의 참선 수행자들이 내어 준 자리에 반가부좌로 앉아 두 손을 둥그렇게 감싸 툭 내려놓고,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서 숨을 들이마셨다가 잠시 멈추고 깊이 내쉬며, 호흡에 집중했다.
가끔씩 뚱딴지같은 생각이 불쑥 나타났지만 선정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다시 호흡을 알아차리자 이내 사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나타나도 다시 호흡으로 호흡으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하고 슬며시 눈을 떠서 두리번거리다가도 다시 호흡으로, 호흡만을 집중했다. 그러다 탁, 탁, 탁 어느새 방선을 알리는 죽비소리.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곳
축서사의 모든 것은 정밀한 기계식 시계처럼, 톱니바퀴들이 움직이듯 착착 돌아간다. 빈틈없고 정교한 미장센의 웰메이드 드라마 같고 서사와 플롯이 완벽한 영화 같다. 전각의 위치나 높이, 지붕의 곡선. 담장의 높이와 나무 한 그루, 석등의 위치와 수행자들의 몸가짐, 엷은 미소, 도반들이 서로 대하는 태도와 절집을 운영하는 보살, 처사님과 자원봉사자들 한 분 한 분, 공양간에 준비된 절밥의 정갈함과 밝은 웃음들, 그리고 아미타 삼존석불과 스님들의 공부방인 제일 높은 곳의 문수선원, 그 뒤로 독수리처럼 날카롭게 서 있는 문수산과 노송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마에스트로 무여 큰스님과 저 멀리 보이는 소백산까지….
축서사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이 완벽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나’를 연기하기만 하면 된다. 이튿날 새벽 예불과 108배, 참선 공부를 마치고 아침공양을 하는데 한 달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거사님이, 저 분은 축서사에서 자원봉사 한지 10여 년이 되었다며, 머리만 하얗고 아기 얼굴 같은 보살님을 가리킨다. 공양을 하고서 보살님을 쫓아가 물어보니 15년째라며 자기 집은 여기라고 맑게 웃는다. 그이는 축서사에 와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축서사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도 축서사에 와보면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후일담을 얘기하자면 축서사에서 내려와 영주를 떠나지 못하고 역 근처에서 하루 더 기거했다. 그날 밤 비가 내렸다. 축서사에서 마지막 프로그램은 걷기 명상이었다. 이때도 거사님과 보살님 한 분이 함께 해 주셨는데 우리는 소나무 숲길을 천천히 호흡에 집중하며 걸어가서 자리를 깔고 앉아 ‘이뭣고’ 명상을 하고, 여러 그루의 소나무 잎이 인드라망처럼 엮인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있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야생화에 밝은 보살님이 귀하디귀한 처녀치마 꽃을 발견하셔서 우리는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마침 정월 초하루 법회 날이어서 신도들과 함께 무여 큰스님의 팔정도를 주제로 한 간곡한 법문을 감로수처럼 들었다. 전날 밤 캄캄한 하늘에서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수없이 쏟아지는 별빛을 보았던 것도 감동적이었다. 부처님도 나도 형체가 없는 빛의 존재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영주역 근처 숙소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깜빡 잠이 들었고, 다음날 아침 씩씩하게 기차를 타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짐했다. 절 방석을 마련하여 108배 하기. 아침저녁으로 호흡 명상하기. 그리고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고 친절하기….
■ 봉화 축서사
경북 봉화군 물야면 월계길 739
054-673-9962 I www.chookseosa.org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