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지난(10월 10일) 박종환(朴鍾煥) 축구감독이 체육인들의 천국환송을 받으며 하늘나라로 떠났다. 멕시코 4강 신화를 이끈 박종환 감독이 지난 10월 7일 향년 87세에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 1년여 동안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최근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패혈증((敗血症) 증세를 보인 끝에 숨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박종환 축구감독 별세
박종환 감독의 장례가 대한축구협회장(葬)으로 치러졌다. 대한축구협회는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 4강 위업을 비롯해 고인이 청소년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한국 축구의 위상을 드높였고, 소속팀 일화 축구단의 K리그 최초 3연패 달성 등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가 있다”며 박종환 감독의 영결식을 10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협회가 주관한다고 밝혔다.
박종환 감독은 1980년부터 1983년까지 청소년대표팀을 맡아 세계선수권에 두 차례 출전했다. 특히 1983년 6월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현 FIFA U-20 월드컵)대회 땐 4강 진출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이는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에서 성인대표팀이 4강에 오르기 전까지 FIFA 주관 대회에서 한국이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한국은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우루과이를 꺾고 4강에 올랐으나, 준결승에서 브라질에 1대2로 패했다.
4강에 진출한 대표팀은 선제골을 넣는 등 세계 최강 브라질과 접전을 펼쳤지만, 아쉬운 패배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3,4위전마저 패하여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페어 프레이상’을 수상했고, 세계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멕시코 현지인들도 한국 대표팀에 매료되어 응원할 정도였다. 한국에 도착하여 박종환 감독은 서울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카페레이드(car parade)를 했다.
당시 ‘박종환호’의 조직적이면서 공격적인 축구에 국내 팬들은 열광했다. 외국 언론은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벌떼처럼 그라운드를 휘젓는 한국의 기동력에 감탄해 ‘붉은 악령(Red Furies)’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이는 후일 한국축구에 ‘붉은 악마(Red Devils)’라는 별명이 붙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다시 국가대표 축구팀을 응원하는 서포터즈인 ‘붉은 악마’ 응원단으로 재탄생했다.
박종환은 1936년 2월 9일 일제강점기 황해도 옹진군에서 태어났으며, 1945년 가족과 고향을 떠나 강원도 춘천에 정착했다. 가난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중학생 무렵까지 춘천지역 미군(美軍) 부대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하우스 보이’ 생활을 했다. 이때 축구, 농구 등 스포츠를 접하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축구로 진로를 잡고 춘천고, 경희대, 대한석탄공사에서 선수(수비수)로 뛰었다.
박종환은 30세에 은퇴한 이후 약 10년 동안 고교 축구팀 네 곳의 감독을 지내며 여러 차례 우승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1975년 실업팀인 서울시청 사령탑을 맡아 14년간 재임하면서 지도자로 명성을 떨쳤다. 박 감독은 멕시코 4강 신화를 계기로 성인 대표팀 사령탑으로 승격해 1990년대 중반까지 총 5차례 지휘봉을 잡았다. 1996년 12월 아시안컵 8강이 마지막 성적이었다.
박종환 감독은 체육훈장 백마장, 대한민국체육상, 서울특별시 문화상(체육부문), 서울특별시 모범시민상 등을 수상했다. 박 감독은 김홍삼 한국축구발전연구소장과 함께 2002년 7월에 <승부사 박종환의 축구>를 발간했다. 내용은 1장 축구는 종합예술이다, 2장 축구에 필요한 것들, 3장 시스템은 자기 스타일을 담는 그릇, 4장 축구의 전술(1), 5장 축구의 전술(2), 6장 축구를 잘하는 비결(1), 7장 축구를 잘하는 비결(2)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생을 축구에 바쳤던 그의 말년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하거나, 사기를 당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기억력 감퇴에 이어 치매까지 발병했다. 별세하기 전 1년여 동안은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패혈증(敗血症)으로 사망했다.
패혈증(敗血症, sepsis)이란 말 그대로 피(血)가 썩는(敗) 병(症)으로 치명률은 20-35%에 달하며, 패혈성 쇼크가 오게 될 경우 40-60%가 사망하는 매우 치명적인 질환(국제질병분류기호: A40-A41.0)이다. “웃고 살면 무병장수한다”고 외친, 일명 ‘신바람 전도사’ 황수관(黃樹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생리학)도 패혈증으로 지난 2012년 12월에 향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계보건기구(WHO) 2017년 총회에서 패혈증을 전세계 최우선 보건 과제로 선정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4만명 이상 사망하며, 국내에서도 매년 2500명 이상이 사망한다. 패혈증 사망률은 전 세계 평균 약 24%이며, 우리나라는 28.6%로 외국에 비해 높다. 특히 지난 2020년 서울아산병원 임채만 교수팀이 질병관리청에 제출한 연구보고서에는 국내 사망률이 약 39%로 세계 평균의 거의 2배에 육박했다.
패혈증은 인체가 세균 및 기타 미생물에 감염되어 이들이 생산한 독소에 의해 중독 증세를 나타내거나, 전신성 염증 반응, 심각한 장기 손상 및 합병증을 보이는 증후군를 말한다. 상처, 호흡기, 소화기관 등을 통해 침투한 혈액 내 병원체가 숙주(宿主)의 면역체계를 뚫고 번식하는 데 성공하여 숙주를 이겨 버린 상태이다.
패혈증의 원인은 미생물에 의한 감염이므로 감염 부위는 신체의 모든 장기가 가능하다. 패혈증을 일으키는 병원균은 포도상구균, 연쇄상구균, 대장균, 폐렴균, 진균, 녹농균(綠膿菌), 클렙시엘라 변형 녹농균 등 다양하다. 폐렴, 신우신염, 뇌막염, 봉와직염(cellulitis), 감염성 심내막염, 복막염, 욕창, 담낭염, 담도염 등이 패혈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감염증이 발생한 경우, 원인 미생물이 혈액 내로 침범하여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다.
면역계가 항원을 인식하고 바로 염증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짧은 잠복기를 가지고, 균종과 면역 상태, 처치법에 따라 수시간에서 수일 안에 사망하거나 만성적인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한편 완치해 원만하게 회복할 수도 있다. 큰 외상(外傷)을 입었을 때 사망하게 되는 주원인 중 하나가 패혈증이다. 즉시 상처를 소독하지 않고 방치했을 경우, 미생물이 신체 내로 침투하기 매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패혈증의 공통된 증상으로는 체온이 38도 이상으로 올라가거나(발열) 혹은 35도 이하로 내려가며(저체온증), 호흡수가 정상 호흡수에 더해서 분당 24회 이상으로 증가하며(저산소증), 혈압이 떨어지면서(저혈압) 신체 말단에 공급되는 혈액량이 저하되므로 피부가 퍼렇게 보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피부가 썩기 시작하는 조직 괴사가 나타난다. 구토, 설사, 부정맥, 장 마비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패혈증의 초기 증상으로는 호흡수가 빨라지고, 지남력(시간, 장소, 사람에 대한 인지력)의 상실이나 정신 착란 등의 신경학적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균혈증(세균이 혈액 내에 돌아다니는 증상)이 있으면 세균이 혈류를 따라 돌아다니다가 신체의 특정 부위에 자리를 잡아 그 부위에 병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혈관 투과성이 증가하여 혈관 내 알부민(albumin)이 빠져나가서 혈관 내 교질삼투압(oncotic pressure)이 낮아지며, 이로 인해 환자 혈관 내의 물이 주변 조직으로 빠져나가 쇼크, 부종 등도 발생한다.
패혈증은 짧은 시간 내에 사망하는 케이스가 많으므로 패혈증 증상이 보이면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특히 환자가 자가면역질환,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당뇨병 등의 기저질환을 앓고 있을 경우 사망률이 더욱 높아진다. 패혈증에 저혈압이 동반된 경우를 ‘패혈성 쇼크(Septic shock)’라고 한다.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연구팀은 패혈성 쇼크 환자를 추적 관찰한 결과 근감소증(筋減少症) 동반 시 사망률이 최대 26.5% 증가했다.
거의 대부분의 균들이 패혈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치료법은 일단 대량의 수액 공급으로 혈압 유지, 광범위 항생제로 경험적 치료를 시작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균배양 검사를 보고 항생제를 조절한다. 세균에 따라 듣는 항생제의 종류가 달라지므로 균종(菌種)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만 원인균을 찾는다고 항생제 투입 시점이 늦어져서도 안 된다.
패혈증은 치명률이 높아 빠른 시간 내에 치료가 요구되며, ‘묶음 치료’가 사망률을 낮추는데 핵심적 역할로 꼽히고 있다. 패혈증 묶음치료(Surviving Sepsis Campaign bundle)란 패혈증 환자에게 젖산 농도 측정, 혈액 배양 검사, 항생제 투여, 수액 치료, 필요시 승압제 투여 등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중환자의학회는 2018년 지침을 통해 패혈증 환자에게 1시간 이내에 5가지의 묶음치료(1 hour bundle)권고했다.
국내 19개 상급종합병원 및 종합병원이 참여한 연구에서 패혈증 묶음치료 수행률이 패혈증 사망을 줄이는 주요 요인으로 나타났다. 1시간, 3시간, 6시간 이내 수행률 모두 예후와 유의한 연관성을 보였다. 2017년 미국 뉴욕주의 패혈증 관리 분석연구에서 묶음 치료가 3시간보다 빠르게 시작돼 완료될수록 환자의 예후가 호전된다고 밝혔다.
패혈증은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으며, 신체 장기 기능의 장애나 쇼크 등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사망률이 매우 높아진다. 그러나 패혈증은 치명률이 매우 높지만 사회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제대로 관리만 한다면 사망률을 줄일 수 있는 질병이다. 패혈증 발병 후 짧은 시간 내에 사망할 수 있으므로 증상이 나타나면 신속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패혈증 발생 시 반드시 ‘골든타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