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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오랜 친구가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다가 지난해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매우 애석하게 생각한다. 필자가 이 친구를 처음 만난 것을 1940년대 왜관국민학교(초등학교) 3학년 때였으나, 이듬해 대구중앙국민학교로 전학을 왔기에 연락이 끊어졌다. 1960년대 성인이 되어 파인트리클럽(PTC)에서 필자는 한국PTC 총재로, 친구는 대구PTC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만나 우연히 옛날 초등학교 이야기를 하다 동창인 것을 알게 되어 서로의 친분이 돈독하게 되었다.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이란 병명(病名)의 유래는 1817년 영국 의사 제임스 파킨슨(James Pakinson)이 손 떨림, 근육 경축, 보행이상, 구부정한 자세 등의 특징적 양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떨림마비’라는 이름으로 보고하면서 처음으로 이 병이 세상에 알려졌다. 파킨슨병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100만명이 넘는 파킨슨병 환자가 발생하며, 우리나라에도 12만명이 넘는 환자가 있다. 1000명당 약 2명이 파킨슨병을 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파킨슨병으로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는 11만1,311명으로, 2016년 9만6,499명보다 약 15.3% 증가했다. 파킨슨병의 유병률은 65세 이상에서 약 1-2%로 알려져 있으며, 연령이 증가할수록 유병률과 발병률이 증가한다. 파킨슨병 자체가 기대수명을 단축할 정도로 치명적인 것은 아니지만, 진행 과정과 치료 중에 생기는 합병증(合倂症)이 수명에 영향을 주게 된다.
‘파킨슨병’과 ‘파킨슨 증후군(파킨슨증)’을 혼용해서 쓰거나 혼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파킨슨증후군(Pakinson syndrome)이란 파킨슨병을 포함하여 파킨슨병의 증상들을 보이는 여러 질병을 아우르는 말이다. 즉 안정떨림(resting tremor), 운동완만, 경축, 자세불안정, 구부정한 자세, 보행동결(보행정지) 등의 증상이 있으면 파킨슨 증후군 또는 파킨슨증이라고 한다. 파킨슨 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에는 파킨슨병, 비전형적 파킨슨 증후군(파킨슨 플러스), 이차성 파킨슨 증후군 등이 있다.
‘파킨슨병’은 뇌간(腦幹)의 중앙에 존재하는 뇌흑질(substantia nigra)의 도파민(dopamine)계 신경이 파괴됨으로써 움직임에 장애가 나타는 질환을 말한다. 도파민은 뇌의 기저핵(基底核, basal ganglia)에 작용하여 우리가 원하는 대로 몸을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신경전달계 물질이다. 파킨슨병의 증상은 도파민계 신경이 60-80%정도 소실된 후에 명확하게 나타난다.
‘파킨슨 플러스(Parkinson plus)’는 파킨슨병과 비슷한 증상들을 보이는 다른 신경퇴행성 질환을 말한다. 즉 흑색질 손상 이외에도 뇌의 다른 부분들이 손상되기 때문에 파킨슨병의 증상뿐만 아니라 다른 신경계통의 이상으로 인한 증상들이 동반된다. ‘이차성 파킨슨 증후군’은 약물이나 독성물질, 두부외상, 뇌혈관성 질환, 정상압 수두증(定常壓水頭症), 뇌염(腦炎)과 같은 중추신경계 감염 등 이차적인 원인에 의해 파킨슨증이 발생하는 경우다.
파킨슨병은 일부에서만 가족성으로 발생하고 유전적인 요인이 밝혀진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원인 불명의 특발성(特發性)이다. 파킨슨병의 환경적 요인에 대한 연구에서는 살충제, 중금속(망간, 납, 구리), 일산화탄소, 유기용매, 미량 금속 원소 등의 독소 노출, MPTP(테트라하이드로피리딘), 두부 손상 등의 요인을 파킨슨병 발병 원인으로 지적하였다. 도파민계 신경이 파괴되는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환경 독소,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 불필요한 단백질 처리 기능 이상 등이 이를 유발한다는 가설(假說)이 있다.
파킨슨병 증상을 ‘운동증상’과 ‘비운동증상’으로 나눌 수 있다. <운동증상>으로 나타나는 주요 증상은 안정떨림, 경축, 운동 완만, 자세 불안정 등이다. ‘안정떨림’은 움직이거나 자세를 취할 때보다 가만히 안정된 상태에서 떨림이 나타난다. ‘경축’은 근육의 긴장도가 증가하는 증상으로 관절을 구부리고 펼 때 뻣뻣한 저항이 나타나며, 그의 대부분의 환자들에서 발생한다.
‘운동완만’은 근육의 힘이 약화되어 나타나는 마비와는 다르며, 근력저하 없이 몸의 동작이 느려지고 운동의 진폭이 작아지는 것을 말한다. 파킨슨병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인 운동완만은 초기에는 단추 끼우기나 글씨 쓰기와 같은 세밀한 작업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다가 병이 진행함에 따라 옷입기, 식사하기 등 일상적인 동작을 수행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된다.
‘자세 불안정’은 병의 초기보다는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 나타난다. 중기 이후가 되면 자세 불안정성으로 인해 넘어짐이 자주 발생한다. 작은 장애물이나 약간의 체위 변화에도 쉽게 넘어진다. ‘자세 및 보행이상’은 우선 서 있는 자세는 등이 구부정하게 굽고 팔꿈치와 무릎이 약간 굽어져 있는 형태의 자세를 취한다. 걸을 때는 한쪽 팔은 앞뒤로 잘 흔드는데 다른 팔은 움직임이 감소하여 몸통에 붙이고 걷는다.
파킨슨병의 증상은 중증도(重症度)에 따라 5단계로 구분한다.
▲ 1단계: 증상이 어느 한쪽으로 국한된 경우,
▲ 2단계: 증상이 양쪽 팔다리에 모두 나타나지만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는 지장이 없는 경우,
▲ 3단계: 증상이 양쪽 팔다리에 모두 나타나고 균형의 유지가 어려워 보행에 지장이 있는 경우,
▲ 4단계: 3단계의 증상이 매우 심하지만, 어느 정도의 독립적인 움직임이나 활동은 가능한 경우,
▲ 5단계: 독립적인 움직임이 불가능한 상태로 휠체어나 침대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경우.
<비운동증상>이란 파킨슨병은 운동증상 이외에도 인지장애 및 신경정신 증상(우울, 불안, 무감동, 피로, 환각, 망상, 충동조절장애), 수면 이상(불면, 렘수면행동장애, 과도한 주간 졸림증, 수면발작, 하지불안증후군), 자율신경계 증상(변비, 소변장애, 땀분비 이상, 기립성 저혈압, 성기능 장애), 감각증상(후각기능 저하, 통증) 등의 다양한 비운동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비운동증상 중 소변증상(빈뇨, 야간뇨), 후각이상, 변비, 기억력 저하, 우울감, 불안, 불면 등의 증상은 전체 환자의 1/3이상에서 나타나는 매우 흔한 증상이다.
파킨슨병을 확진할 수 있는 혈액검사나 뇌 영상검사는 아직 없다. 이에 뇌 조직검사에서 도파민 신경세포의 소실과 레비소체(Lewy body)가 확인되어야 파킨슨병으로 확진할 수 있다. 하지만 질병을 확진하기 위해 뇌조직 생검(生體檢査, biopsy)을 하는 것은 환자에게 이득보다는 해가 될 수 있으므로 임상 증상과 경과를 근거로 파킨슨병을 진단하게 된다.
파킨슨병을 진단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가 환자의 병력(病歷)을 듣고 환자를 진찰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파킨슨병의 경우, 병력 청취와 신경학적 검사만으로 임상적 진단이 가능하다. 그러나 파킨슨병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환자를 한 번 보고 진단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이차성 파킨슨 증후군이나 비전형적 파킨슨 증후군과 같이 파킨슨병과 혼동될 수 있는 다른 질환들이 있기에 감별진단을 목적으로 혈액검사와 뇌 자기공명영상, 핵의학 검사 등을 시행한다.
파킨슨병 치료에는 약물 치료와 수술적 치료가 있다. 현재 사용하는 약물들은 파킨슨병 증상을 완화시키고 조절하기 위한 것들이다. 아직까지 파킨슨병의 진행을 멈추거나 늦추는 확실한 효과가 있는 약물이나 치료법을 없다. 레보도파(levodopa)는 1960년대에 파킨슨병 치료에 도입된 이후 현재까지 가장 효과적이고 많이 사용되는 약제이다.
파킨슨병은 중추신경계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일종인 도파민(Dopamine)의 결핍으로 인해 운동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에 부족한 도파민을 약물로 보충해주면 운동증상이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도파민은 혈액과 뇌조직 사이에 존재하는 혈액뇌장벽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체내에 바로 주입하면 뇌의 신경세포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레보도파는 도파민으로 만들어지기 전 단계의 물질로 혈액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고 뇌에 도달한 이후 도파민으로 대사되어 신경세포에서 부족한 도파민의 역할을 한다.
파킨슨병 환자가 오랜 약물 복용으로 운동 합병증이 발생한 경우, 수술적인 치료를 시행하기도 한다. 파킨슨병의 수술 요법에는 조직파괴술과 뇌심부자극술이 있다. 조직파괴술은 외과적으로 특정 뇌 조직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현재는 잘 사용되지 않는 편이다. 뇌심부자극술은 특정 뇌 부위에 미세전극을 삽입하고 전극의 다른 쪽 끝을 가슴 피부 아래 심어 놓은 자극발생기에 연결하는 수술이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Swiss Federal Institute of Technology in Lausanne) 그레구아르 쿠르틴 교수와 로잔대학병원 조슬린 블로크 교수 공동 연구팀은 최근(11월 7일) 국제학술지 ‘네이쳐 메디슨(Nature Medicine)’에 발표한 논문에서 “척수에 신경 보철(임플란트)을 이식한 뒤 전기 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만성 파킨슨병 환자의 보행과 균형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영장류(靈長類) 실험을 통해 척수(脊髓) 전기 자극이 파킨슨병 증상 완화에 효과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어 30년간 파킨슨병을 앓아 온 프랑스 남성 마크 고티에(63)에게 같은 시술을 했다. 고티에는 도파민 약물 치료와 뇌자극 수술을 받은 상태였지만 길이 좁아지거나 방향을 전환하면 다리가 얼듯이 굳어버리면서 넘어지는 심각한 보행 장애가 있었다.
연구팀이 고티에에게 척수 임플란트 수술을 한 뒤 3개월간의 재활 훈련을 거치자 고티에는 다리가 굳어버리는 현상이 거의 사라졌다. 어른 새끼손가락 하나정도 크기 임플란트를 삽입했다. 이식 2년이 지난 현재 지팡이 없이 한 번에 6km를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도 가능하며, 하루 평균 8시간씩 움직인다. 고티에는 영국 BBC 인터뷰에서 “임플란트가 내 인생에 두 번째 기회를 줬다”고 했다.
파킨슨병 환자에게 좋은 운동으로는 걷기, 수영, 체조, 요가, 실내 자전거, 아쿠아로빅(aquarobics) 등이 있다. 몸의 유연성과 균형감을 향상시키는 운동과 코어(core)근육(복부와 몸통의 근육)을 강화시키는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운동 중 넘어지거나 다칠 가능성이 있다면 보조기 등 안전장치를 사용하거나 보호자가 동행하여야 한다. 현재까지 파킨슨병의 치료나 증상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음식은 없으므로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고 규칙적인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파킨슨병은 주로 노년층에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젊은 사람에서부터 노인까지 어느 연령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40-50세 이전에 발병한 환자가 전체 파킨슨병 환자의 10-15%에 달한다. 환자는 운동 능력이 소실되면서 결국 누워서 생활하게 되어, 파킨슨병은 치매와 마찬가지로 서서히 희망을 앗아가는 질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