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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상원사 동종 비천상
종에 비천상을 새겨 넣은 것도 슬프다.
슬픈 것도 감정이다.
모든 감정이 나타났다 사라지도록 놔둔다.
종소리, 여향, 정적…
‘혼의불서하’든 ‘석가모니불’이든 다 흩어지는 것이니
나는 허무를 터득하겠노라.
이곳이 극락이고, 서방정토구나. 부처님이 계신 깨달음의 자리구나. 범종이 울리면 공후와 생황을 연주하는 하늘 사람이 구름을 타고 나타나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고, 듣는 이들은 입체영상이 펼쳐지는 아이맥스 화면 같은 판타지 속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된다. 중생들은 적어도 지상에서 삶의 고통과 시련을 잠시 잊고 지금 이곳이 극락이 되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주악비천상에 두근두근
상원사 동종을 만들고, 비천상을 담은 이의 연출 의도는 이랬을 것이다. 그리고 1,3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마음은 생생하게 전해져 보는 사람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진 현존하는 우리나라 범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국보 상원사 동종. 종의 중심부에 양각으로 고악기를 연주하는 두 천인을 표현하여 주악비천상이라 일컫는다.
지구 밖의 존재인 E.T.는 생김새와 성질을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어서 외계인이라고 부르지만 우리가 모르는 전혀 다른 형태로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음악이 외계의 존재일 수도 있다고 상상력을 펼치곤 한다. 우리 곁에 늘 있으면서도 변화무쌍하게 제각각 다른 선율과 리듬으로 다가와서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후벼 파기도 하고, 다른 세계를 열 수 있도록 영감을 주기도 하는 음악이라는 미지의 존재. 바흐에서 비틀즈까지, 아프리카 타악곡에서 인디언 피리소리까지, 사이키델릭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에서 재즈와 구음 시나위까지 천변만화하고 다종다양한 음악이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상원사 동종을 자세히 보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조각되어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이 연꽃과 덩굴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범종은 용을 상징하고, 종을 치는 나무인 당목은 고래를 상징한다. 고래를 만나 놀란 용의 비명이 바로 종소리인 것이다. 그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지옥에 떨어져 있는 중생들까지 깨워 모두를 해탈시키는 것이 종의 목표다.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안동의 『영가지』에 의하면 안동루문(安東樓門)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에 예종의 국명에 의하여 상원사로 옮겼다고 하는데, 원래 있던 곳에 36개의 연뢰 중에 하나를 잘라 두었다고 전해진다. 상원사동종을 자세히 보면 정말로 연뢰 하나가 부러져 없는 것을 알수 있다.
공후와 생황 악기 소리
상원사 동종의 주악비천상에 등장하는 천인은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어쩌면 인격화된 음악의 신일 것이다. 1,300년 전 천인이 연주하는 악기인 공후와 생황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연주된다. 생황은 입으로 불거나 빨아 소리를 내는데 화음을 낼 수 있는 특별한 악기이고, 공후는 작은 하프라고 보면 된다. 소리를 들어보면 공후는 빗방울이 부딪쳐 내는 소리를 닮았고, 생황은 바람이 만들어 내는 소리를 연상케 한다.
맨 처음 악기들은 자연의 소리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고대인들은 자연을 신이라 여겼을 것이다. 동종에 주악비천상을 담은 것은 종소리에 신성을 깃들게 하려는 것일 터. 댕, 하는 소리에 삼라만상 모든 중생들의 해탈을 기원하는 마음에 더하여 신의 축원까지 받고자 함일 것이다.
그런데 소리는 소리일 뿐, 모든 것이 나타났다 사라지는데 소리 또한 마찬가지임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한 가운데 또 무상하게 종소리 하나를 보태는 것은 또 무슨 헛됨일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해서 영원을 추구한 것일까. 아침저녁으로 범종을 쳐서 자꾸자꾸 미망에 빠지는 중생들을 끝없이 일깨우기 위함일까. 자꾸자꾸 허무에 빠지는 인간들을 깨워서 허무를 벗어나게 하기 위함일까.
허무는 터득하는 것
영화가 끝나면 환히 불이 켜지고 한 꿈에서 깨어나듯이, 종소리가 사라지면 고통은 계속되고 지난한 삶이 되돌아온다. 그것을 안다는 것, 그래서 가장 무서운 병이 허무 병이다. 과연 이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50년 넘게 한 길을 고수해온 독일 재즈클래식 레이블인 ECM이 추구하는 음악은 ‘침묵 그 다음으로 아름다운 소리’라고 한다. 소설가 황석영은 지난해 작고한 어느 시인을 추모하는 글에서 ‘여향(餘響)’에 관해 이야기했다.
“여향은 어떤 것입니까?” 소리꾼이 스승에게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먼 산사에서 범종을 칠 때 마지막으로 당목을 때리고 나서 그치면 뎅 하는 소리가 울리고 잔음이 길게 여운을 끌며 퍼져 나간다. 데에에엥 하며 소리의 여운은 길게 아주 천천히 사라져 간다. 그리고 어느 결에 사방은 고요한 정적에 이른다. 그 고요한 정적이 여향이니라.”
침묵과 정적이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이 아이러니. 부처님은 인생이란 근원적인 허무를 뒤집어서 깨달음의 길을 걸어가셨다. 허무가 없으면 허무에서 빠져나오는 방법도 없는 것 아닌가. 우리는 허무를 딛고 허무를 통해 허무의 안과 밖을 뒤집어서 허무를 벗어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허무를 잊는다’에서 ‘허무를 터득한다’로 고쳐 써보는 것이다.
적멸보궁을 향해 한 걸음
오대산 상원사의 동종 옆에 앉아 오래도록 상념에 사로잡혔다. 그때 부산에서 왔다는 대규모의 순례자들이 경내로 들어왔다. 봄기운을 받아 참배객들의 볼은 상기되어 있었고, 말끔하게 정돈된 상원사는 비현실적인 조도로 빛나고 있었다. 저 사람들 한 분 한 분마다 사연과 상처가 있을 것을 생각하니 슬퍼졌다. 슬픔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모든 감정도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일 텐데.
몸을 일으켜 적멸보궁을 향했다. 한 발 한 발 계단을 오르면서 슬픔, 기쁨 따위들을 흘려보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감정들을 그대로 두고 그저 걸어 올라갔다. 먼저 사자암을 만나게 된다. 중대 사자암은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매우 특이하게도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층층이 전각을 지었다. 오대산은 중대로 불리는 비로봉을 주봉으로 한다. 이곳 중대에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으로 사자암을 지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두었다. 사자암에서 600m를 더 올라가면 드디어 적멸보궁이다.
“혼의불서하, 혼의불서하”
적멸보궁에 들어가 참배하는데 스님 한 분이 혼신을 다해 염불을 외고 있었다. 혼의불서하, 혼의불서하, 혼의불서하…. 온몸을 흔들어가며 열창을 하는 가수처럼 무한반복으로 외우는 그 혼의불서하의 뜻이 궁금했다. 그 뜻만 알면 조금 깨달을 것도 같았다. 적멸보궁 앞에 쪼그리고 앉아 검색 창에 적었다. 혼.의.불.서.하. 그때 알았다. 혼의불서하로는 아무 것도 검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혼의불서하’는 ‘석가모니불’이었다.
그러니까 스님은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이렇게 염불을 외고 계셨던 것이고, 누구는 혼의불서하, 혼의불서하, 혼의불서하…로 들었던 것이다. 뭣이 중한가. 석가모니불이든 혼의불서하든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나는 이것이 허무를 단번에 뒤집는 힌트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혼의불서하든 석가모니불이든 개똥지빠귀든 둥그레당실이든…. 소리는 소리일 뿐이고, 정적과 고요가 본래 자리이고 그 자리가 곧 해탈의 자리, ‘나’의 자리란 것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적멸보궁에서 내려와 다시 상원사로 갔다. 유리로 된 상자 안에 고이 보관된 동종 앞에서 눈을 감았다. 우주 같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비천상의 잔영이 어른거렸다. 종소리의 여향에서 얼핏 하늘 사람이 연주하는 생황과 공후의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누군가의 허무를 축복하는 지극한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다.
비천상은 주로 절의 범종에서 볼 수 있으나 때로는 석등, 부도, 불단 등에도 표현해 놓았다. 비천상은 천인상이라고도 하는데 천국에서 허공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추면서 꽃을 뿌려 부처님을 공양, 찬탄하는모습을 하고 있다. 상원사 동종에 새겨진 주악비천상뿐 아니라 에밀레종이라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에 표현된 것도 아름다워 자개로 표현된 기념품이 서울 조계사 앞 템플스테이 홍보관에 있다.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