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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라면 역사가 오래된 줄은 알았지만 알아보니 정확히 올해로 환갑이란다. 그러니까 1963년 9월 15일에 삼양식품에서 라면을 출시했다. 북한에서는 라면(拉麵)을 꼬부랑 국수라고 하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이름이다. 삼양식품 창립자 전중윤 회장이 일본의 ‘묘조식품’으로부터 제조기술을 전수받아 처음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의 라면 가격은 10원이었다. 지금의 물가와 라면 가격을 비교해보아도 싸다는 느낌이다. 지금의 농심 신라면 5개들이 한 봉지 가격은 3,400원에서 4,000원 정도다. 개당 700~800원 하는 것이다. 60년 만에 단순비교로 70배, 80배 올랐다.
70년대에, 내가 군에 있을 때는 일요일 아침에 라면이 나왔다. 2개를 쪄서 정량을 먹게 하라는데 우리 부대에서는 머얼건 국물에 퉁퉁 불어 우동가락보다 더 큰 라면가락조차도 가득하지 않았다. 병사들이 먹을 라면이 어딘가로 새어 나간 것이었다. 한창 먹을 때에 허기져서 힘들었던 기억이라 잊혀지지 않는다.
면을 꼬들꼬들하게 먹는 사람, 푹 익혀 먹는 사람, 계란을 넣어 먹는 사람, 야채를 전혀 넣지 않고 먹는 사람, 면만 먹고 국물은 안 마시는 사람, 면은 두고 국물만 다 마시는 사람도 있다. 사람 만큼이나 제각각이다. 라면을 끓일 때 먼저 스프를 물에 넣고 끓이느냐, 아니면 물이 끓으면 넣느냐로 왈가왈부한 적이 있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될까. 하여간 물이 끓어야 면을 넣는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나는 맛없게 (?) 라면을 끓인다. 호박, 양파, 고추 등 야채를 듬뿍 넣고 끓이는데 면은 ¾만 넣는다. 어떤 때는 손 닿는 대로 배추나 콩나물, 버섯을 넣기도 한다. 물론 스프도 ¾만 넣고. 다 익으면 불을 끄고 계란 하나를 넣고는 남은 열에 휘저어 익힌다. 너른 그릇에 조금씩 떠서 뜨거우면 김치를 곁들여 먹으니 일품이다. 뜨거운 라면을 냄비뚜껑에 식혀가며 먹는 맛이란 그리 해 본 사람만 아는 즐거움이다.
배가 많이 고플 때는 남은 국물에 밥을 조금 말아 먹는 것도 좋다. 영양을 걱정한다면 참치나 어묵, 치즈를 넣으면 된다. 쇠고기를 넣지 말란 법도 없다. 무어라 해도 만들기 쉽고 언제 먹어도 좋으며 술 마신 뒤에 해장으로 먹는 맛을 누가 싫다 하겠는가? 컵에 담겨있어서 뜨거운 물만 부어 곧 먹을 수 있는 컵라면도 인기다. 주전부리가 없을 때 마른 라면을 과자처럼 먹어도 맛있다. 라면을 살큼 튀겨 보시라! 전자레인지에 조금 돌려도 좋다. 남는 스프를 챙겨두면 요긴하게 쓸데가 많다. 요리연구가 김영복은 냉면 반죽을 할 때 닭가슴살 가루를 섞어 성인 한 사람이 하루에 섭취해야 할 단백질을 공급하는 면을 개발하였다. 라면이 아니고 냉면이지만 남아도는 닭가슴살을 가루로 만들어 라면 반죽에 넣거나 스프처럼 넣어주면 좋겠다.
10년쯤 전, 네팔에 갔을 때 안 불편한 것이 없었지만 특히 먹는 것이 불편하였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남부의 도시 포카라에 갔는데 산악인이 아닌 관광객이 올라갈 수 있는 해발 3,000미터 급의 알프스 산장에 묵었던 적이 있다. 운 좋게도 8,000 미터가 넘는 안나푸르나가 있는 산맥의 마차푸차레봉이 귀태를 드러내 주어서 사진에 담았다. 금세 운무에 사라져 축복을 받았다는 느낌이었다. 저녁이 되자 엄습하는 추위에 장작을 사서 캠프 파이어를 즐기는데 우리의 막걸리보다는 독하고 소주에 가까운 토속 곡주를 마시면서 열을 올렸다. 춥고 배가 고파 시킨 최고의 음식이 신라면이었다. 느끼함과 섭섭함을 한 방에 날려준 그 얼큰하고 개운함이란….. 그들은 이것이 제일 귀하고 비싼 것인데 중국 식품이라고 하기에 한국제품이라고 바로잡아 주었다.
처음 삼양라면을 출시할 때는 보릿고개가 있었다. 6·25가 끝나고 10년인 때이니, 식량난이 심했고 ‘배고파서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고 외친 야당후보도 있었다. 전쟁후에 미국이 주는 밀가루와 분유는 축복이었다. 이어서 강냉이 가루도 들어왔다. 지금은 듣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 많을 ‘꿀꿀이죽’이 5원이라서 라면값을 10원으로 정했단다. 서민이 마시기 힘든 다방의 커피가 35원이고 막노동 일당이 100원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런데 맛으로, 또 편리해서 먹는 라면을 엥겔지수를 낮추기 위해,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서 찾는 사람이 늘었단다. ‘세계라면협회(WINA)’는 작년에 전 세계 100 여 개국에서 팔렸고 그중 50개국에서 1,122억 인분이 팔렸단다. 우리나라는 올해 10월까지의 수출액이 1조원을 넘어섰고 이는 전년 동기보다 15% 가까이 늘어난 것이며 해외에서 생산해 현지에 판매하는 것을 합하면 2조원은 될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라면을 2만5천 그릇 먹었다는 라면 전문가 야마토 이치로씨는 라면은 건강식품이며 각국의 입맛에 맞는 제품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에서는 국민 한 사람이 일주일에 평균 1.7회 라면을 먹는 정도란다. 전혀 안 먹는 사람이 절반이라고 생각하면 먹는 사람은 서너 개를 먹는 셈이다. 주로 면(국수)을 먹는 한중일 3국과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에서 즐기는데 카레를 먹는 인도와 남미의 멕시코 같은 나라에서도 많이 팔린단다. 태국에서는 ‘신라면 똠얌(TOMYUM)’과 ‘신라면볶음면 똠얌(TOMYUM)’이 나온단다. 똠얌을 현지화하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에서 많이 만드는 라면이 한류 붐에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아재비 떡도 싸야 먹는다 했으니 세상 사람들이 살기가 어렵기는 어려운가 보다. 그래도 많이 팔리면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니 희망이 있다.
1만 원이면 해결할 수 있었던 점심값이 오르니 도시락을 싸 가는 사람들이 늘었고 편의점의 삼각김밥이나 컵라면도 잘 나간단다. 라면을 싸게 박스로 사서 야채를 넣고 계란과 어묵, 치즈를 넣으면 영양도 만점일 것이다. 이래저래 고마운 라면이다. 스프의 소금도 줄였고 좋은 기름에 익히고 영양가가 그리 낮지도 않다고 한다. 게다가 주머니도 아낄 겸, 오늘 점심은 라면으로 해야겠다. 계란은 마지막에 풀고.
■ 조 기조(曺基祚 Kijo Cho)
. 경남대학교 30여년 교수직, 현 명예교수
. Korean Times of Utah에서 오래도록 번역, 칼럼 기고
. 최근 ‘스마트폰 100배 활용하기’출간 (공저)
. 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비상근 이사장으로 봉사
. kjcho@u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