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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사찰음식’ 하면 무엇을 떠올리나요? 푸릇푸릇한 푸성귀나 야채, 나물들로 구성된 밥상을 먼저 생각할 수 있겠고요. 부처님오신날 나들이 삼아 절에 가면 공짜로 내어주는 산채비빔밥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고기류가 들어가지 않은, 어쩐지 허전한 음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고요. 혹 템플스테이에 참여해봤거나 불교대학에 다녀서 배운 바 있다면 “오신채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라고 외칠 수도 있겠습니다. ‘오신채가 뭐더라? 파, 마늘, 부추, 달래… 또 한 가지가 있었는데.’ 헷갈리기는 해도 말입니다. (남은 하나는 ‘홍거’입니다. 인도에서 주로 나는 식재료지요.)
사찰음식의 공식적인 정의랄까요.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표방하고 있는 사찰음식 캐치프레이즈는 ‘모든 생명에 대한 감사와 온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음식’입니다. 지혜롭고 자비로운 마음자세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우리의 몸뚱이입니다. 음식은 수행하는 육체를 보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인 셈이지요. 불가에서는 단순한 생존이나 감각적 쾌락을 위한 미식(美食)으로써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의 일환으로 식사하고 그 과정이자 결과로써 지혜와 자비를 세상에 내보입니다.
음식문화의 대안, 발우공양
식사하는 행위 자체가 수행이기에 일반 가정과는 다른 독특한 의식 혹은 격식을 차리게 됩니다. ‘발우공양’입니다.
발우는 그릇을 뜻하는 불교식 표현입니다. 부처님 당시, 밥 먹는 그릇을 파트라(patra)라고 불렀다 하는데요. 이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음역하면서 발우(鉢盂)가 되었습니다. 국그릇, 밥그릇, 물그릇, 찬그릇 등 4개의 그릇을 한 번에 포갤 수 있는 형태로 전해지고 있지요.
요즘은 뷔페식 또는 일반식 공양을 하는 사찰이 많기에 절에서 공양을 하더라도 발우공양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발우공양이라고 하면 단무지로 그릇을 설거지하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어린이들이 템플스테이에 가기를 꺼리는 이유가 되기도 했지요. 발우공양하는 것을 더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단무지로 대변되는 발우공양의 거북스러운 이미지가 발우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이미지가 막연히 언짢을 뿐, 실제 발우공양을 해본 경험도 드물뿐더러 단무지나 김치 조각으로 그릇에 여남은 음식물을 깨끗하게 닦아내는 것은 지극히 친환경적이며 깔끔하게 식사하는 예절의 일환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대체로 모든 것이 과잉인 시대입니다. 배곯지 않는 일은 당연하고 풍성한 먹거리마저 시시하다는 듯 미디어에서는 더 자극적으로 더 많이 먹는 것을 전시합니다. 이런 시대상에 일말의 불편함을 느끼지만 어떤 가치를 기준점으로 세워야 할지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발우공양 정신이 그 대안이 될 수 있겠습니다.
발우공양의 5대 정신으로 평등공양, 청결공양, 절약공양, 공동공양, 복덕공양을 꼽습니다. 사찰음식은 식재료를 가급적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먹는 전체식(全體食)이자, 식사를 마치는 것과 동시에 식사 전의 상태를 유지하는 청결한 공양이며, 먹음으로써 한없는 공덕을 성취하는 공양입니다.
최근 요식업계에서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용기내 챌린지’에서 복덕공양을 엿봅니다.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는 대신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쓰는 다회용 용기에 음식을 담아오는 일입니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피부로 체감되는 이 시절에 나의 조그만 용기(勇氣/容器)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하나라도 줄일 수 있다면 모두를 위한 복덕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2004년 정토회가 주창한 ‘빈그릇 운동’은 절약공양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재료를 온전히 써서 요리하고 먹을만큼 덜어서 음식을 남기지 않겠다는 생활 속 실천 운동이었습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아이디어를 낸 ‘3소식 캠페인’도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모든 음식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소식(笑食), 과식을 삼가고 건강을 유지할 최소한의 양만 먹는 소식(小食), 가능하면 육식을 삼가고 채식을 실천하는 소식(蔬食)이 그것입니다.
‘밥’공양이 아니라 ‘법’공양
지금까지 일상 속 발우공양 정신을 말씀드렸다면 이제부터는 전통 발우공양 정신을 살펴볼까 합니다. 일반인이고 재가자인 우리에게만 접근이 허용되지 않을 뿐 출가자의 발우공양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사찰은 여전히 있습니다.
발우공양을 하는 대방에는 발우공양에 참여하는 스님을 제외한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는데요. 때문에 대방밖에서는 죽비소리로만 스님들의 공양 모습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대방 안 풍경을 상상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죽비를 치면음식을 발우에 담고, 다음 죽비로 오관게를 외우고, 다음 죽비에 공양을 시작합니다. 발우공양을 하는 동안 일체의 대화는 삼가고요. 정리정돈을 의미하는 다음 죽비에 음식물 찌꺼기를 닦아 먹어 없애고, 발우의 물기를 닦으며, 마지막 죽비 일성에 합장 반배하며 공양을 마칩니다.
발우공양을 할 때 스님들의 차림새는 법당에서 예불을 보듯 가사장삼을 수한 채입니다. ‘밥’공양이 아니라 ‘법’공양인 때문입니다. 마치 부처님을 모시고 함께 공양을 하듯 소중하고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예불의식 때와 같은 차림을 합니다. 나를 먹이는 일에 지극한 의례를 갖추는 것은 나 자신의 몸뚱이가 부처님이 될 씨앗이기에 그렇기도 합니다.
대중생활을 하는 스님들은 이런 일련의 의식을 통해 식사의 경건함을 매일 환기하는 데 반해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는 일상에 치여 나를 먹이고 기르는 것에 소홀해지는 순간을 자주 마주합니다. 해야 할 일에 치여서, 급히 처리해야 할 일에 밀려서 나를 잘 대우하고 먹이는 일은 가장 후순위로 밀려버리는 날들이 있지요. 그런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궁핍했던가요. 초라하고 서글펐던가요. 아니면 그런 감정일랑 사치인 것처럼 무디고 무심했을지도요.
만약 최근의 일상에서 매 끼니를 무의미하게 때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며 발우공양의 정신을 스스로에게 대입해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나의 가장 절친한 벗이자 변함없는 동반자이자 매일매일 새롭게 눈 뜨게 만들어주는 육체. 그 몸을 부처님처럼 여기며 존중하고 공경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만일 부처님과 같이 앉아 식사한다면 핸드폰이나 텔레비전에 눈길을 뺏기지 않을 것처럼. 만일 내가 만드는 음식이 부처님이 드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대충 허투루 만들지 않을 것처럼. 부처님처럼 세상과 자연에게 자비로울 수 있도록 나를 잘 먹여야겠다 다짐해도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바쁜 일 좀 지나고 나서 말고요. 급한 일 먼저 처리하고 나서 말고요. 나중 말고 지금, 오늘 먹어야 할 몇 끼의 식사 그중 단 한 번이라도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밥 먹는 순간에도 깨어 있을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자라난 지혜와 자비의 마음이 뭇 생명을 향하여 발현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발우공양 정신을 펼쳐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 귀중한 지면을 통해 해야 하는 이야기는 불교의 철학을 담고 있는 음식이자 기후위기 시대의 먹거리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찰음식에 관한 것입니다. 늘 불교의 언저리에서 살았지만 정작 불교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거나 정식으로 사찰음식을 배운 적 없는, 그저 평범한 불자 중 한 사람인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이 책의 건너편에 앉아 계실 독자 여러분을 상상하면 모골이 송연하기까지 합니다. 다만 나이 또래 중에는 드물게 사찰에서 먹고 잔 세월이 마침 서당개의 그것과 같으니, 원론이나 철학은 말더라도 풍월 정도는 읊을 수 있지 않을까 미리 위안해봅니다.
■ 글 모지현 / 일러스트 박근덕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