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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4-5세기에 한반도 남해안에 작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 1640년대에 한국은 중국 청나라 왕조의 속국이 되었다”라고 외국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한다면 기절할 노릇이다. 그러나 미국의 ‘세계사 교과서’에 버젓이 실려 있는 한국의 역사이다. 우리가 1990년대 뉴질랜드로 이민 왔을 때 뉴질랜드 한 초등학생이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냐?”라고 다시 묻자 충격을 받은 일이 생각난다. 수많은 국가의 교과서들이 한국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싣고 있다. 이는 한국중앙연구원 이길상 교수가 2003년부터 40여개 국가 500여종 교과서를 분석해 찾아낸 왜곡과 오류의 사례들이다. 심지어 파라과이 ‘역사와 지리’ 교과서는 한국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지역으로 표시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고유문자가 있느냐고 의문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으며 중국문화의 속국으로 중국한자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홍보가 부족했으며 해외 170여 나라에 뿌리내려 살고 있는 750만 재외동포들의 역할도 점검해봐야 할 일이다. 21세기 들어 한류가 세계 속에 침투하기 시작했고 영화, 드라마, K-POP, 스포츠 등에서 세계인의 주목을 끌게 되자 한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덩달아 한국말과 한글이 관심을 끌게 되고 이제는 낯설지 않게 우리말과 글을 몇 마디씩 구사하는 외국인들을 만나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우리들이다. 교민사회가 2세, 3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웬만한 일터에서는 교민 직원을 만날 수 있는 기쁨도 쏠쏠하다.
우리의 위대한 민족 유산은 무어라 해도 역시 ‘한글’이다. 현재 쓰이는 문자를 분류하면 표음문자, 표의문자, 표어문자, 상형문자로 분류하는데 음을 나타내는 문자를 다시 세분하면 음절문자, 음소문자, 그리고 자질문자가 있다. 이들은 문자의 최소단위에 따른 구분인데 음소보다 더 작은 단위로 형성된 자질문자는 현재 한글이 유일하다. 그만큼 한글은 발전된 문자로 과학적이고 응용력이 다른 문자에 비할 바가 아니다. 현재 한국어 인구는 국내외 한민족 8천 5백만이라고 볼 수 있지만 21세기 들어 한류와 대한민국의 경제, 문화적 위상이 상승함에 따라 세계화가 진전되고 있다. 해외에서 운영 중인 한국어 보급 기관의 수도 약 2천개에 달하고 있으며 이 기관들에 등록 된 수강생 수가 25만여 명에 달하고 있다.
10월9일은 한글날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문자들 중 문자의 날을 가지고 기념하는 문자는 없다. 한글의 위대한 점은 창제과정이 명확하고 세계 유일하게 반포 날자가 확실하다는 점이다. 세종대왕께서는 당시 계급적이고 기득권적인 소중화(小衆化) 시대의 사대주의 사상에 메어 있는 유교 정치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몰래 한글을 연구한 지 10여 년 만에 28자의 정음(正音)을 창제한 것이다.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1446년)과 동국정운(1447년)등 편찬 작업을 계속 추진하여 모든 백성들이 언어와 문자를 활용하여 의사소통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하였는데 이는 단군조선 이래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의 정신에 바탕을 둔 배려이다. 한글은 세계 언어학자들이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로 인정하고 문자 없는 민족에게 권장하고 있는 문자이다. 앞으로 세계는 익히기 쉽고 사용하기 쉽고 모든 표현이 가능한 한글을 세계 공용어로 사용하는 날이 와야 할 것이다. 인도의 타고르 시인은 한민족이 일제 식민 치하에서 신음할 때,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한 해가 제일 먼저 뜨는 한반도에서 동방의 등불이 다시 켜지는 날이 오기를 기원하였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를 외쳤는데 우리는 해방이 되었고 한글의 세계화가 실현될 날이 올 것이다.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배워둔 붓글씨를 뉴질랜드에 와서 활용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이다. 그런데 지난 20여 년 동안 정부기관, 각 커뮤니티, 도서관, 박물관 행사, 다민족 행사, 한인 행사 등을 찾아다니며 붓글씨로 화선지에 내방객의 이름을 한글과 영문으로 써주고 때로는 격려가 될 만한 문구도 곁들여 주었다. 한자문화권 출신들한텐 한자 까지 함께 써주었는데 놀라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현대의 젊은 중국인들은 한자를 간자체로 배워 자기 이름도 정식 한자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나는 한국 출신인데도 중국 한자를 수 천자 구사하고 있는데 당신은 한글을 왜 쓸지 모르느냐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이름에 대해서는 가장 친근한 심성(心性)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자기 이름을 붓글씨로 써서 주니 더욱 감개무량 하는 듯하다. 붓의 흐름이 주는 리드미컬한 변화를 실감하고 행복에 젓는 모습도 보인다. 하기야 붓글씨는커녕 연필이나 볼펜도 만져볼 일이 없이 컴퓨터 자판이나 스마트폰 키보드로 글씨를 타자하는 현대인이다.
한글서예는 한류의 주요 구성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류를 통해서 한국어와 한글에 더 친밀하게 접근할 수 있고 한글서예와 더불어 한류의 묘미를 더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금년 한글날을 키위들과 함께 기념해보자는 뜻에서 오클랜드 글랜필드 도서관이 주최한 한글 이름 써주기 행사를 진행해보았다. 어떤 애기 엄마는 자기 자녀 4남매와 동네 키위 자녀까지 5명의 어린이를 데리고 와서 이름을 써갔는데 어린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과 흐뭇해하는 엄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 부부는 2개월짜리 영아를 보듬고 왔는데 내가 써준 이름을 성장한 아기가 펼쳐보며 특별한 감상에 젖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뉴질랜드 한국 대사관에서는 10월초 한국주간을 설정하고 웰링턴 한인회 주관 하에 K-Culture 전시, 공연, 영화제 등을 펼쳤는데 한글 특별 코너를 설치하여 이름 써주기와 한글 도해설명을 실시해 많은 외국인들이 한글과 더욱 친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세종대왕의 뜻을 받들어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세계인들과 함께하자. 세계인들이 한글과 친해지도록 우리가 노력하며 10월 9일 한글날을 함께 기념하고 UNESCO에서 한글을 1997년 10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한바 있음을 상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