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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코 앞에 둔 아이들을 그래도 평소보다는 더 진지하고 더 차분합니다. 그동안 놀아재낀 시간이 미안해서일수도 있고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드신 부모님의 얼굴이 상상되어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책상앞에 모여 앉은 서넛의 아이들은 가지가지 다른 서넛의 이유를 마음에 품고서 문제지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답일지 아닐지 고민하기 보다는 자신이 시험지에 무언가 적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사뭇 고무된 표정들입니다.
이제 겨우 10대 중반을 넘긴 아이들에게 있어서 매년 되풀이되는 연말 시험은 그야말로 ‘고난’ 그 자체일수밖에 없습니다. 일년에 한번씩 그 동안의 노력과 자세와 성취를 테스트한다는 시험의 취지는 일년에 한번씩 몇날 밤을 새워가며 뜻도 모를 단어들과 공식들과 미사여구들을 무작정 외워부친다는 것과 대동소이한 것이 현실이다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연말시험의 목적이 제대로 전달되는건 어불성설인듯 싶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이노메 자슥들이 풀라는 문제는 안풀고 지들끼리 눈짓 손짓해가며 무언의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제가 뒤에 서서 내려다보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서 옆자리 친구와 키득거리더니.. 낌새를 챘는지 또 이내 조용해 집니다.
“뭐냐? 재미난거 있으면 나도 알려 줘”
경직된 분위기라도 한번 풀어볼 양으로 한마디 던졌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한 녀석이 쫑알대기 시작했습니다.
“쌔앰. 쌔앰. 이건 진~~~~짜 대박이예요. 와.... 이게 말이되요?”
반짝이는 두 눈동자를 마주하고는 흠칫 놀랐습니다. 칠판을 바라보던 퀭한 눈빛하고는 너무나도 달라서 살짝 무서울 지경이더군요. 아.. 이 아이에게도 홍채와 동공이 존재했었구나..
한 아이가 뭔가 말을 이어가려하자 옆자리의 친구가 소매끝을 부여잡으며 ‘Don’t say~ Don’t say~’를 연발합니다. 네. 여기까지만 봐도 이미 삼천리와 비디오 입니다. ‘척 할’ 필요도 없고 ‘안 봐도’ 를 시전할 필요도 없습니다. 10대 중반 여학생 둘이서 손가락 수화 섞어가며 소곤댈 건수는 세상에 오직 하나, ‘남자친구’인 것이 자명하니까요. 그래서 선수를 쳤습니다.
“왜, 그 남자애 하는 짓이 나빠?”
순간 굳어버린 두 아이들의 얼굴. 제대로 짚었군요. 지난 20년간 100명도 넘는 ‘남자친구’들을 분석해 온 김선생에게 이 정도 선견지명은 재주 축에도 들지 못합니다.
“너네 마음 휘어잡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그 녀석들 말야. 너네가 옆에 있음으로해서 지들의 가치가 더 올라간다고 느끼는 자기 중심적인 아이들인데.. 참을 만큼만 참아주다가 이건 좀 선을 넘었다 싶으면 그냥 칼같이 끊어. 구지 시간내서 만나가지고 너는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구제불능이라 부연설명할 필요도 없어. 걔들을 그게 관심이고 애정인줄 알어. 아직 썸타는 중이면 너 스스로가 아깝지는 않은지, 이 남자애가 좋은건지 걔랑 사귀는 분위기 자체가 좋은건지 잘 생각해보고. 이상 끝”
아주 짧게 요점만 정리해서 다다다닥 풀어놓고 나니 두 아이들의 표정이 가관입니다. 마치 오영은박사를 만난 금쪽이 엄마들과 같은 표정이라 할까요? 눈물도 많고 쓰림도 많고 한숨도 많은 연애사에 한줄기 구원의 빛을 찾은듯한 환희가 동그란 두 얼굴에서 넘쳐 흘렀습니다.
“쌤. 쌤. 그게요. 걔가 어땠냐면요...”
조용히 한 손가락을 펴서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 눈으로 말했습니다.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나가면 남은 수업시간은 연애학강론이 될게 뻔하기 때문이죠. 나중에 시험 끝나고나면 연애에 대해 이야기 해 주겠다고 달래서 두 아이들을 가라앉히자니 약속하라면서 손가락까지 걸자하네요. 졸지에 강연스케쥴이 잡힌 인기강사가 되었습니다. 전공인 과학말고 문외한인 연애학으로 말이지요.
여자는 나쁜 남자에게 열광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 통계를 내었는지 알 수 없고 어떠한 목적을 가진건지 또한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젊은 처자들은 ‘나쁜남자’ 한 마디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통적인 하나의 남성상을 떠 올립니다. 그리고 여성들이 묘사하는 나쁜남자에 대해 듣다보면 ‘왜 이런 사람을 좋아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것도 사실입니다. 같은 남자가 보기에는 그 여자를 좋아하진 않지만 성격상, 혹은 불확실한 연애사의 보험정도로 취급하며 그냥 마지못해 최소한의 관심을 보이는건데 말이죠.
소위말하는 가스라이팅의 대가일수도 있고 말입니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지만 여성의 심리에서는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 되는 나쁜남자.. 그래서 한번 기준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첫째로 나쁘고 좋고의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일까요? 그리고 둘째로 나쁘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나쁜남자의 기준은 여성의 취향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은 나쁜것이고 멋대로 휘두를 수 있다면 좋은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입니다.
너무 노골적으로 들릴수도 있겠지만 통계적으로 봤을때 인류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은 남성보다 더 이기적이고 덜 헌신적입니다. 더 약삭빠르고 덜 충직합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상대적인 체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생존해야 했던 여성의 적응과도 같습니다. 여성의 도전과 학습과 전수와 재도전이 만들어 낸 일련의 순환적 발전은,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동지이며 동시에 최악의 적군인 남성을 여러 종류로 분류하는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듬직한 남성이 내 편이면 한없이 든든하고 안도감이 들지만 그 듬직한 남성이 어두운 밤길에 내 꽁지에 따라 붙는다면 그것만큼 불안한 일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을 판단하고 분류하고 비교하려 합니다. 이 덩치만 산만한 동물이 끝까지 내편에 서서 날 지킬것인가, 아니면 월등한 달리기 실력으로 줄행랑을 놓으면서 나를 제물로 바칠것인가 예상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상은 과거의 물리력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고 공존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인류문명의 발전으로 보느냐 아니면 전통가치의 쇄락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다분히 개인적인 견해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새로이 도래한 신세계 속에서 여성의 권리는 예전에 비해 급격히 신장되었고 이제 왠만해선 남성의 도움을 의지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거나 남성의 폭압에 희생당한다거나 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성이 가져왔던 좋은 남자 나쁜남자의 따위의 분류는 무의미해져야만 합니다. 이 남자를 내가 멋대로 휘두를 수 있다해서 목숨줄이 여의봉마냥 쭉쭉 늘어나는것도 아니고 이 남자가 나를 보며 으르렁거린다해서 숨죽여 움츠리며 신경증에 걸릴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일인지.. 여성은 아직도 남자를 ‘나쁘고 좋은’ 두 개의 극단적 카테고리 안으로 밀어넣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세분화되고 고차원적인 선별기준을 만들어서 좋음과 나쁨의 수많은 단계로 남성을 구분합니다. 물론 이러한 좋고 나쁨의 기준이 과거의 그것과 같을리는 없겠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분류의 기준이 대중여성의 취향에 따른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학생들이 귀뜸해 준 나쁜남자의 조건은 대략 이러합니다.
우선은 외관이 호감형이어야 합니다. 키가 크고 쫘악 빠져서 수트발이 기가 막히던지 팔다리 허벅지에 근육이 튼실해서 어디 내놔도 꿀릴일이 없다던지 다른건 별 볼일 없어도 얼굴 하나 만큼은 BTS 저리가라 라던지.. 이도 저도 내세울게 없으면 옷 입는 센스라도 좋아서 같이 다니기에 창피함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는 능력입니다. 춤을 기가막히게 잘 춘다던지 혹은 노래를 가수 찜 쪄먹게 잘 한다던지 하는 요즘세대의 기준에 부합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싸움을 잘하는 일짱이라던지 혹은 조금 구태의연하더라도 공부를 무척 잘하는 실력파라던지 하는 능력의 출중함이 두번째 기준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불량스러움입니다. 남자의 본성이 선하고 악하고를 떠나서, 하고다니는 일의 결과가 바람직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일단은 불량스러워야 합니다. 담배를 꼬나물고 눈꼬리를 치껴뜨는 정도의 불량함은 지녀줘야 나쁜남자의 반열에 오를수 있습니다.
마지막 조건은 성품이 이기적이고 차가워야 합니다.
타고난 성품일수도 있고 나쁜남자로 보여지기 위해 꾸민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동기가 어떠하든 나쁜남자는 매몰차고 이기적인 구석이 있어야 합니다. 만나지 100일 되는 날, 예쁘게 차려입은 여자친구보다는 공연을 앞 둔 밴드의 리허설을 선택할 수 있는 냉정함이 나쁜남자의 기본조건 중 마지막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나쁜남자(친구)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이러한 묘사와 조건과 대처법이 꼭 사람에게만 국한되는것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라만상 모든 것에 ‘과학’이라는 필터를 덧씌우는 김선생에겐 이 나쁜남자의 특징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또 하나의 나쁜것들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바로 ‘나쁜문제’들 입니다.
과학과목에 한정된 이야기 일 수 있겠지만 NCEA는 바로 지난해인 2022년부터, 캠브리지는 2021년부터 예년에는 볼 수 없었던 나쁜문제들이 출제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쁜’ 이라는 수식어가 결고 ‘질이 낮은’ 혹은 ‘결격 사유가 있는’ 등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눈치 채셨으리라 믿습니다.
오히려 더욱 고차원적이고 정형화되었던 형태를 벗어났으며 새로운 방향의 접근을 요구하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그럼 오히려 더 발전된 형태의 문제들인데 저는 왜 이 문제들을 ‘나쁘다’라고 표현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한된 시험시간동안 그 문제들에 집착했던 학생들의 성적이 제한된 10대의 시간동안 나쁜남자에게 집착했던 여학생들의 연애사와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형식의 문제들은 외모가 호감형입니다.
첫 눈에 보기에도 매력적입니다. 마치 이 문제를 풀어낸다는 자체가 학생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바로메터가 될 수 있을 것처럼 정교하고 세련되었습니다. 기존의 기출문제에서 요구하지 않던 논리적 전개가 등장하는가 하면, 그냥 그려러니 하고 넘어갔던 소소한 개념들을 파고들어 지식의 헛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 문제들은 또한 능력이 출중합니다.
고차원적인 공식의 유도를 요구하기도 하고 서너가지 다른 챕터들의 내용을 공교하게 연결하여 학생들의 확장적사고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도저히 못풀겠다 싶은 지점에 다다르면 안 보이던 힌트를 툭 던져서 다시 시작할 힘을 더해줍니다. 한마디로 학생들을 들었다 놨다 하지요.
그러면서도 이러한 나쁜문제들은 불량스럽습니다.
불량스러움이 교양의 반대개념이라 본다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교양이란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인정이고 그에 대한 존중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2021년부터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새로운 패턴의 문제들을 기존의 형식적인 고착을 타파하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는 차라리 혁신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답습’ 보다는 ‘변화’에 한 표를 던지는 사람으로서 바람직한 문제들이라 생각은 합니다만 이 혁신이 학생들의 성적에 미치는 영향만을 생각해본다면 불량스럽다는 표현이 지나치진 않은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쁜문제들은 냉정합니다.
NCEA의 경우 예년의 두리뭉실한 지식으로 풀어낼수 있었던 문제들이 대부분 사라졌고 아주 정밀한 설명을 요구하는 문제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또한 답변에서 병렬식 서술구조를 요구하는 문제가 많아졌는데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을 쓸 때는 함께 언급되어야 할 몇개의 사실들을 꼼꼼히 챙겨야지, 하나라도 누락하면 성적은 한단계 밑으로 강등되고 맙니다.
켐브리지 문제들도 그렇습니다. 특히 12학년의 객관식 시험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요. 틀린 것을 지워나가서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이 정답이라던지 과학적으로 완전한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장 근접하기 때문에 답이 된다던지 하는 ‘추론’성 문제가 많아졌습니다. 문제 자체가 냉정다기보다는 문제를 푸는 학생의 자세가 냉정해야만 한다고 말할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많아진 나쁜문제들을 대하면서 우리 학생들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만약 우리가 ‘시험’이 아닌 ‘학습’의 일환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푼다면 저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깊이 생각하며 도전해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연말 시험에서 나쁜문제들을 대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 문제들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요구하고 동시에 정답율도 낮습니다. 이 문제들만 붙들고 있다가는 뒷부분에 있는 친절한 문제들엔 손도 대지 못하고 시험을 마칠수도 있습니다.
마치 10대 후반의 찬란한 시간을 나쁜남자 하나만 오매불망 바라보다가 좋은 남자친구 만날 기회도 다 잃어버리고 마음에 생채기만 가득 쌓은 여학생과 비슷해지는거지요. 그래서 제가 권하는 자세는 ‘점수’에 치중하는 다분히 세속적인 자세입니다. 우선 문제의 진위가 잘 파악되지 않고 접해 본 적이 없는 내용을 예시로 사용하는 문제가 등장한다면 처음 읽은 뒤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메모해 놓은 뒤 다음문제로 넘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맨 마지막 문제까지 풀이를 진행하고 나서 다시 되돌아와 재도전해도 늦지 않습니다. 만약 시간이 모자란다면 차라리 잘 된일입니다. 적어도 그 빡빡한 시간에 답변이 가능한 문제들은 다 풀었다는 말이 되니까요.
이제 2023년의 각 과정별 연말시험이 그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학생들의 반응을 보자하니 자꾸만 썩소를 입에 올린 나쁜남자가 떠올라 속이 좀 상합니다. 내가 좀 더 다양한 문제들과 예시들에 적응을 시켰어야 했던걸 아닐까 하는 후회입니다.
나쁜 남자에 휘둘리면 결국 모든 피해는 여자의 몫입니다. 마찬가지로 나쁜 문제에 목을 매면 모든 오답들은 학생의 몫입니다. 부디 남은 시간동안 다양한 문제를 접하면서 문제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우리 모든 아이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