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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이의 남동생이 태어났다. 출산 예정일보다 일주일 늦게 태어난 아기. 새카맣고 긴 머리카락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이 아빠를 꼭 빼다 박은 모습이다. 사위의 꿈을 이루게 한 아기.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려서의 내 딸 소원이었기도 하다.
한 번 갖은 꿈은 의식 속에서 지워지더라도 무의식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례를 이번에 내가 또 보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딸과 아들을 다 얻은 사위는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아내와 두 자녀를 돌보고 있다.
아직 낯을 많이 가리고 있는 유은이가 일 년에 한두 번 잠시 보는 외할머니를 따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집에서 어린 딸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은 고스란히 사위의 몫이 되었다.
두 살 백이, 아직까지 기저귀를 차고 있는 유은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와서 먹이고 재울 때까지의 수고가 보통이 아니었지만, 피곤한 눈에 사랑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펭귄 아빠를 연상케 해주는 사위. 펭귄 가족이 따로 없었다.
내 딸이 참 복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위에게 말하니, 자신이 복이 많아서 좋은 아내를 만났다고 한다. 서로 받으려는 마음보다 주려는 마음이 더 크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마음 또한 참 아름다웠다. 내가 복이 많아서.
오늘 사부인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두 사람 모두 다 한 마음으로 자장면과 짬뽕을 먹자고 했다. 우리 둘 다 삼선짬뽕과 삼선자장 보다는 일반 짬뽕과 자장면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부인의 입맛에 맞는 중국집에 가서 맛있게 나눠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두 사람이 가까워진 동기는 아주 간단하다. 어려서 같은 동네에 살았던 것이다. 서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곧 친근하고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이 또한 내 복이려니.
내가 올해 초부터 네트워크 마케팅을 시작했다. 다단계 마케팅이라고 말해야 하나? 네트워크 마케팅이라고는 전혀 해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내가 네트워크 마케팅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우연치곤 필연인 것 같다.
14년 된 이 기업은 한국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기업이다 만, 지구 저 반대편 뉴질랜드 시골에 묻혀 사는 나는 이런 기업이 있는 지도 몰랐었다. 14년 전이라면 나는 한창 영성에 눈을 뜨고, 양자물리학의 신비에 빠져 있었을 때이다.
나는 책과 명상 산책을 통한 사색... 등을 하면서 나름대로 신비한 경험도 해 보았고, 왜 그런 경험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려는 노력도 했다. 자잘한 깨달음이 있기도 했고, 다시 원 위치로 돌아갔을 때도 있다.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된 것 같은 일도 부지기수이다.
이렇게 내 내면에 망치질을 하는 동안 영성의 힘으로 한 기업을 키워나간 사람이 있다. 왕 신용불량자로 신용불량자들 17명을 이끌며 기업을 세워나간 사람이다. 망상처럼 느껴질 원대한 꿈을 안고 미쳐야 미친다고 부르짖으며, 결국 정상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이 정상은 그에게 있어서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내가 아버지 별세로 한국 방문을 했을 때, 그 기업의 세미나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세미나를 듣기 이전에 인터넷을 통하여 대충 어떤 기업인지 이미 알고 있었으나, 한국에서 직접 보고나서 내 선택이 그르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한국에 간 김에 임플란트도 할 수 있었고, 내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도 볼 수 있었다. 아버지가 가시면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늦복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어가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왕 사업을 시작하려면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어려운 점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 문명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던 내가 배울 것이 너무 많았다.
흰머리만큼이나 내 두뇌도 하얘져 있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했다. 영어실력은 또 어떤가? 그나마 예전에 알고 있었던 단어도 손으로 쓰려고 하니 제대로 안 써졌다. 어디 그뿐인가? 모든 것이 다 어설프고 힘들었다.
하지만 나에겐 새로 사귄 좋은 친구들이 있다. 젊고 유능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내 스폰서들이며 형제라인 파트너들인 그들이 내 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것이 천운이라는 것인가 보다. ‘늦복이 있다.’는 내 타령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매 순간이 배움의 길이다. 두 살짜리 손녀뿐 만 아니라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그 순간 나에게 가르침을 준다. 스승이 따로 없다. 그동안 늘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스승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니 이제껏 스승에 대한 내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지금은 모든 스승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져 있다. 모두 다 다르면서도 같은데, 딱히 싫어할 것이 어디 있는가? 마음의 상처 또한 입을 일이 하나도 없다. 자존심이 상할 이유도 없다. 자존심은 자존감이 낮아서 생기는 마음이다. 자존심뿐 만 아니라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이 다 그러하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품위를 높이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자존감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자존감이란 자아존중감(self-esteem)의 약어이기 때문이다.
자존심(pride)은 나의 내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주변과 비교를 전제로 한다.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면 낮아지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만나면 우쭐해진다.
자존감은 자신이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스스로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평판이 아닌 나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한다. 내가 주체이고 남들은 객체이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하여 신경을 많이 쓴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게 아니라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거기에 맞도록 행동한다. 내가 객체이고 남이 주체인 것이다.
내가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를 확실히 알게 된 건 모두다 이성연 박사님의 강연 덕분이다. 격언과 사자성어를 활용하여 재미있게 인문학 강연을 한다. 이렇듯 인문학 공부까지 시켜주는 기업은 큰 그릇의 사업자들을 배출할 수밖에 없다. 이미 그 증거 들이 수두룩하게 나타났다.
9월 3일에 나는 한국 방문을 다시 한다. 임플란트를 완성하기 위함과 동시에 사업 연수를 위한 여행이다. 추석까지 겹쳐서, 한국을 떠나온 후 처음으로 친척들과 함께 추석명절도 지낼 수 있다. 20여년 만에 명절을 한국에서 지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산모와 아기는 아주 건강하게 잘 있다.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기에, 사위가 병원과 집을 오가느라 바쁘다. 유은이가 유치원 생활에 익숙하고,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어 있지만, 엄마와 처음 떨어진 상태라 사위가 여러모로 힘들 것이다.
그래도 자상한 아빠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유은이 또한 동생의 출생을 잘 받아들여서 큰 어려움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앞으로 두 명의 자녀들과 함께 새로운 체험에 들어설 한 부부에게 축복을 보낸다. 아울러 죽는 그 순간까지 배우고 행동하면서 성장해나갈 나에게도 축복을 보낸다.
이래저래 다 축복이다. 사는 게 축복이다. 그래서 사는 것이고, 살기에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감사하다. 그 모든 것이 다 감사하다. 아자 아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