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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23년의 3번째 텀이 끝나고 연말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 4번째 텀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습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학생들은 크게 두가지의 부류로 나뉘게됩니다. 첫번쨰 부류는 자타공인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부류인데요. 2월에 시작된 2023년의 초중반부를 성실히 살아온 이 부류의 학생들은 이제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플랜을 세우고, 자료를 모으고, 지난 학습성과를 정리하며 막판 스퍼트를 준비합니다.
한 학년의 공부내용이라는게 징검다리 건너듯 한칸 한칸 옮겨지는 것이어서 연초에 배운 내용을 연말까지 기억하며 담아두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냇물 이편에서 디뎠던 돌덩어리를 냇물 저편에 다다를때까지 딛고 있을 수는 없는것과 같은 이치이겠지요. 그래서 이런 부류의 아이들은 파일속에서 잠자고있던 학년초의 자료들을 다시 꺼내서 먼지 한번 툭툭 털어내고는 차근차근 복습을 합니다. 내심 모두 까먹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웬걸요. 사람의 두뇌가 얼마나 신기하게 만들어져 있는지 살짝 어색한 복습의 첫 고비만 잘 넘기고나면 그 이후론 술술~~ 막히는 것 하나없이 순조로운 복습이 가능하지요. 마치 엊그제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인듯 머리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던 지식의 단편들이 명료하게 되살아납니다. 이건 그 당시에 제대로 복습을 했기때문에 학생내용이 두뇌의 적절한 장소에 보관된 까닭입니다. 이런 학생들에겐 솔직히 ‘연말시험대비 최종복습과정’이나 ‘원숭이도 패스하는 연말시험전략’ 같은 특별한 학습과정은 필요치가 않습니다. 그저 평소에 하던대로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차근차근 복습해 나가면 그뿐입니다.
그렇다고 이 부류의 아이들 모두가 NCEA 전과목 Excellence나 캠브리지 A 나 IB 40점 이상을 획득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받아야하는 최종점수를 목표로 설정하고 주체적으로 학습하며 준비해 나갈수 있다는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연말 시험을 준비하는 오늘의 나를 자꾸만 방해하고 의기소침하게하는 과거의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할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을 오늘답게, Term4를 Term4 답게 살아나갈수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는 또 다른 부류의 학생들이 매년 이 시기를 살아가는 모습과 심리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2월 초에 시작된 2023년의 초중반부를 다사다난한 이벤트들로 꽉꽉 채워온 학생들은 이제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시험날짜를 상상하며 몸서리를 칩니다. 파일속에 잠자고 있던 일년치의 자료들을 다시 꺼내어 정리를 좀 해봐야겠다.. 생각하며 집어들지만 한손으로 잡기에도 벅찬 Ring binder 안엔 불과 십여페이지의 자료 뿐.. 이렇다할 공부거리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설사 한눈에 보기에 꽤 두툼한 자료파일이 있다 하더라도 이 챕터 저 챔터가 뒤죽박죽으로 섞여있어 도무지 서로가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요. 학교 선생님, 혹은 과외 선생님이 주시는 자료들을 그냥 구멍 두개 뻥뻥 뚫어서 끼워 놓았을 뿐 제대로 살펴본적이 없으니 당연합니다. 그래도 시험준비는 해야겠다싶어 자료부터 차근차근 정리해 보지만.. 웬걸요. 사람의 두뇌가 얼마나 신기하게 만들어져 있는지 알듯 말듯한 물음표만 머리속에 한가득, 분명 보았던 공식이고 들어본 설명이건만 머리속을 둥둥떠다니는 54,000개 풍선들처럼 어떠한 개연성이나 연결고리를 찾을수 없습니다.
소위말하는 ‘가루공부’의 참담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상황입니다. 이런 학생들에겐 솔직히 ‘연말시험대비 최종복습과정’이나 ‘원숭이도 패스하는 연말시험전략’ 같은 특별한 학습과정이 필요치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효과가 없거나 있다손치더라도 극히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뼈를 깍는한이 있어도 고득점을 달성하겠다는 ‘절치부심’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를갈고 마음을 썩혀가며’ 판세를 뒤짚으려 달려들어도 모자랄판에 이 부류에 속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핑계를 찾기 급급합니다. 어떤 한 사건 때문에, 어느어느 학교 선생님 때문에, 그때 그 친구 때문에... 하지만 조금만 더 솔직해진다면 바로 알아챌수 있을겁니다. 지금의 고비를 연유한 그 당사자는 ‘오늘의 나’를 방해하고 의기소침하게 하는 정신머리없던 ‘어제의 나’ 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Term 3 방학을 맞이하며 연말시험의 초입에 선 학생들을 위해 무슨말을 해줘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할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할 대상을 먼저 선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냐하면 아이들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모습의 일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애매하고 범용적인 조언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뼈에 박히는 말을 해 줄수가 없을거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위에서 언급한 첫번째 부류의 학생들에게는 뭐 별로 해줄말이 없습니다. 제가 알아서 잘 하고 있는데 구지 감놔라 대추놔라하며 헷갈리게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저 복습하고 문제 풀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잘 설명해주고 올바른 개념의 다리를 세워주면 그만일겁니다. 대다수의 두번째부류 학생들에게도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시험이 4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여자친구랑 주말 온종일 데이트하며 기백불을 쓸 여유는 있으면서도 기출문제 시험지를 인쇄 할 $59짜리 프린터는 돈이 없어 못산다고 징징대고 있으니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을까요.. 그래서 그 쪽 학생들에게도 입 아프게 따따부따 할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이렇게 잘라내고 저렇게 쳐내고 나면 제가 정성을 담아 충고하고 상담하고 이끌어야 할 학생들이 남습니다. 바로 두번째 부류중 절치부심의 눈물을 찍고있는 소수의 학생들입니다. 오늘의 컬럼은 그 학생들을 위해 쓰도록 하겠습니다.
어떠한 여유로 인해서든지 한 해의 공부에 소홀했던 학생들.. 그리고 그들 중 후회하며 가슴치며 어떻게든 남은 시간을 활용해 재도약을 하겠다며 다짐하는 학생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중 첫번째는 ‘지금 당장’이라는 시간개념입니다. 자신의 목표와 현실사이에 어마어마한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나면 그 학생들은 서둘러 방법을 찾습니다. 그것이 상담이 되었던, 과외가 되었던, 자습이 되었던 무언가 상황을 개선할 방법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맵니다. 그리고 나름의 방법을 찾는 그날, 바로 그 시간부터 개선의 과정을 시작하지요. 내일부터.. 다음주부터.. 이거 먼저 끝내고.. 같은 핑계는 생각지도 않습니다. 만약 피치못하게 먼저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가 있다면 자신이 남겨두었던 개인시간을 희생해서라도 개선의 출발점을 ‘오늘, 지금, 당장’에 맞춥니다.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오늘의 내가 이 과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내일의 나 또한 그 시작을 미룰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 소수의 학생들은 주먹을 불끈쥐고 마음을 다잡고 ‘오늘, 지금, 당장’에 변화의 과정을 시작하는 겁니다. 이러한 학생들이 보여주는 두번째 공통점은 스스로의 발전 과정을 가시적으로 보고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때로는 조금 더 향상된 기풀문제풀이 점수 일수도 있고 옆자리 학생보다 확연히 앞서가고 있다는 자각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제 성적이 이 정도면 안심할만한 수준인가요?
제가 그동안 발전을 하긴 한거 같은데 어느정도 나아진걸까요?
정말로 실력이 좋아졌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나요?
연말시험에서 목표한 점수를 받을수 있을거라는 근거가 있을까요?
많이 들어본 질문이고 많이 고민한 대답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게된 실력향상의 그래프를 한번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향상을 열망하는 소수의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님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그래프는 4가지 Stage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나름 이름을 지어보긴 했는데.. 이해에 도움이 되실까 모르겠습니다. 관성기 - 비약기 - 불안기 - 안정기라고 이름붙여 봤는데요. 한번 그래프를 그려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관성기
관성기는 말 그대로 지난 시간의 관성에 의해 눈에 띄는 실력향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시기를 말합니다. 공부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홀딱 빠져있던 두뇌는 이미 도파민에 중독되어 재미만을 추구하고, 공부를 하거나 문제를 풀때 악영향을 미치는 온갖 습관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는 상태가 바로 이 시기의 특징입니다.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만 펄펄 끓을뿐 내적으로 외적으로 아무런 기반이 닦여있지 않아서 책상앞에 앉아있다가도 어느새 딴 생각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 스스로 머리통을 쥐어박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변화의 초기이다보니 의욕도 높고 체력도 좋아서 격려만 해준다면 몸사리지 않고 달려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란게 성취의 즐거움을 통해 동기를 일으키는 존재이다보니 이 시기가 길어지면 ‘난 역시 해도 안되나봐..’ 하며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혹시 주변에 공부를 시도했다가 금새 시들었다가 다시 시도하기를 반복하는 만년 저학력이 학생이 있다면 이 관성기를 계속 되풀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2. 비약기
해도 해도 안될것만 같은 관성기를 이 악물고 견뎌낸 학생들에게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비약기는 그야말로 ‘고진’ 후의 ‘감래’이고 ‘일취’에 ‘월장’인 시기입니다. 찐득하게 붙어있던 학습장애의 관성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씻겨나가고 결국엔 공부의 선후관계를 깨달아 알게되면서 성적이 급상승하는 시기인데요. 아직도 약간 불안하기는 하지만 문제를 읽으면 방법이 떠오르고 열심히 풀면 답이 나오는 신세계를 경험하면서 자신감도 쑥쑥 늘어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주변 친구들의 놀라움섞인 시선이나 선생님의 칭찬에 우쭐해지기도 하고 예전같으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전문직을 장래의 희망직업으로 떡 하니 정해놓고 자랑삼아 떠들어대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시기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곧 이어서 불안기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3. 불안기
영원히 계속 이어질것만 같던 비약적인 발전기를 살아가며 공부가 주는 기쁨에 도취해있던 어느날. 학교 토픽Test 결과가 처참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오래전 공부를 시작하기 이전의 수준으로 되돌아 간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기울인 공과 시간이 무색하게도 점수가 오르기는 커녕 오히려 떨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목표했던 점수까지 올라가려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여기서 벌써 고꾸라지면 안되는데.. 설마 난 여기까지인걸까..? 여러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바로 다음 Test에서는 비약기의 성적을 넘어서는 급상승이 일어나는 겁니다. 성적이 올라가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지만 뭔가 통제범위를 벗어나는거 같아 불안하기도 하고 언제 또 다시 고꾸라질지 몰라서 걱정도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성적의 급등락은 학생이 자신만의 문제해결 패턴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신호이기도 합니다. 학생이 공부를 통해 세워올린 개념의 구조물에 적절히 들어맞는 문제가 적용될 경우 만점에 가까운 점수의 급등이 이루어지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처참한 급락이 발생하는 겁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이 시기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공부를 중단해 어중간한 상태에서 머무르기도 하는데요. 고지가 바로 눈 앞이니 다시한번 심기일전해서 달려볼 양입니다. 다행인것은 계속 꾸준히 공부하다보면 학생이 가진 개념이 점점 확장되고 단단해져서 우등생의 반열에 올라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4. 안정기
드디어 길고 지난했던 3가지 단계가 지나고 안정기에 들어섰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학생은 예전처럼 열심히 공부하지 않습니다. 마치 밑이 조금씩 새는 물항아리에 가끔씩 한 바가지 물을 부어 높이를 유지하듯 잊을만하면 한번씩 들춰보는 정도로도 시험이며 과제며 무리없이 해 내게 됩니다. 어느틈에 자료파일은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었고 모르는 새에 기출문제 시험지들을 연도별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속의 지식들도 같은 모양 같은 순서로 깔끔하게 정리되지요. 이 시기가 되면 학생들은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공부구나.. 공부라는게 주어지는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허겁지겁 지식을 먹어치우는 고통이 아니라 뿌듯하게 채워진 지식의 바다위에서 관심가고 흥미있는 주제들을 탐구하고 해결하는 재미로구나’
하고 말이지요. 그리고 이 단계에 오른 학생들이 바로 이번 컬럼의 맨 처음에 언급했던 첫번째 부류의 학생들이 되겠습니다. 사실 모든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희망사항이기도 할 겁니다.
9월 말.. 이제 우리에겐 더 이상 미룰수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오늘, 지금, 당장 변화와 성장을 시작하기로 맘 먹은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일어날 앞으로의 변화과정을 미리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관성기를 지내며 포기하지 않고, 비약기를 지내며 자만하지 않고, 불안기를 지내며 흔들리지 않고, 안정기를 지내며 또 다른 발전을 모색하는.. 그런 학생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어른이 되어 새로운 환경과 직무에 맞닥뜨릴 때, 처음대하는 사람들과 사건들 앞에서 당황하게 될 때.. 다시 한번 꺼내들고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수 있는 나침반이 될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