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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토기를 만든 나라. 토기를 처음으로 발명한 것은 일본인이다. 그들은 빙하기가 끝나자 곧 토기를 사용했다. 조몬(繩文) 토기가 그것으로 규슈 지방에서는 1만 2,700년 전에 제작한 것. 그리하여 음식을 끓이거나 삶는 것이 가능해졌다. 치아가 없는 노인도 부드럽게 가공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토기의 발명으로 일본 인구는 25만 명까지 늘어났다. 농업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이었다.
수렵채집 단계에서 토기를 쓰다니!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는 농경이 시작된 지 1천 년이 지난 뒤에야 토기를 만들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이로운 일이다. 아직 농경을 시작하기 전부터 일본에서는 한 곳에 정착해 거주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참으로 특이한 일이었다. 그때 일본인은 밤과 호두 등 견과류를 주식으로 삼았다. 조몬 토기를 사용한 그들은 무려 64종의 식재료를 이용하였다.
조몬 시대의 일본은 계층화가 진행되지 않은 평등사였다. 그 시절에도 일본은 한국, 러시아, 오키나와와 약간의 물물 교류를 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근 1만 년 동안 일본은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몬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은 기원전 400년이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어와 일본어는 15%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해 지금부터 최소 5천 년 전에 서로 분리되기 시작한 언어라는 것이다. 이 계산으로 보면 조몬 시대의 초기와 중기까지는 한국인과 서로 어떤 관계였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것은 참으로 흥미롭고도 어려운 수수께끼이다.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농경이 주요 산업이었다. 쌀은 기원전 2200년부터 재배했고, 금속으로 만든 연장도 기원전 1천 년부터 사용했다. 일본의 조몬인들이 기원전 400년까지도 돌로 만든 연모만 사용하였고, 농경을 알지 못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런데도 일본인과 한국인은 생물학적으로 극히 유사하며, 언어적으로도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재레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그 당시 한국의 쌀농사는 조몬의 수렵채집 경제보다도 생산성이 낮았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굳이 한국에서 농업을 수용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400년부터 상황이 일변하였다. 일본인들도 철기를 사용해 논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야요이 (彌生) 시대가 왔다. 이제 그들의 토기도 한국의 토기를 그대로 닮았다. 한국식 도구가 일본인의 생활을 지배하였고, 가옥도 한국식 집을 그대로 닮았다. 규슈의 야요이 문화는 시고쿠, 혼슈로 뻗어 나갔다. 야요이 시대가 시작된 지 200년 만에 도쿄도 새 문화의 세례를 받았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나자 혼슈의 북쪽 끝까지 야요이 문화가 퍼져나갔다. 말하자면 한국식 문화가 일본 전체를 휘감았다.
야요이 시대의 철기는 상당량이 한국산이었다. 수 세기가 흐른 다음에는 물론 상황이 달라져 일본인들이 직접 철을 생산하였고, 그때가 되면 일본도 계층사회의 모습을 뚜렷이 드러냈다. 기원전 100년쯤이면 일본에도 지배자들의 무덤이 별도로 조성되었다. 전쟁도 잦아졌고, 사치품이 중국에서 수입된 흔적도 역력하였다. 서기 300년경에는 이른바 ‘고분’이 커지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가 찾아왔다. 비옥한 논이 많았던 혼슈의 기나이 지역이 일본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길이 450미터, 높이 30미터 가량인 엄청난 크기의 고분이 상징하는 바, 이제 일본의 지배세력은 중앙집권에 성공한 강력한 인물들이었다. 과연 그들은 한국인었을까? 아니면 한국에까지 군사적 지배권을 확장한 일본인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한 가지 역사적 사실도 있었을 법하다. 한반도보다 농사에 훨씬 유리한 일본의 남쪽 규슈 지방에 한국인이 대량으로 이주하였을 가능성이다. 수백만에서 수천 명의 이주민이 한반도에서부터 규슈로 쏟아져 들어갔고, 그 결과 야요이 시대가 열렸을 것도 같다. 이후 일본문화는 조몬 식과는 달리 한국적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일본인들은 이러한 가설을 매우 싫어한다. 역사적 진실에 다가서려면 우리는 아마도 고(古) 인골을 다수 확보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놓고 보면, 과거의 조몬인은 현대의 일본인과 공통점이 적다. 그보다는 오히려 지금의 아이누와 유사하다. 그런데 야요이 인은 현대 일본인과 흡사하고, 한국인과도 그러하다. 요컨대 한국에서 이주해온 이주민의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다. 그러나 아직은 속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오래된 인골은 수적으로 그렇게 많지 못해 연구 결과의 신빙성에 한계가 있다. 또, 현재의 일본인들은 고대에 한국이 자신의 조상들에게 끼쳤을 법한 영향을 무조건 부정하는 경향이 심해 양국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데 큰 지장을 준다.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다이아몬드는 한일 양국에 다음과 같이 젊잖게 충고한다.
“일본인과 한국인 모두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들은 인격 형성기를 함께 한 쌍둥이 형제와 같다. 양국이 과거의 유대 관계를 회복하느냐에 따라 동아시아의 정치적 미래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올여름 삼복더위를 피하는 아주 좋은 방법으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인간사회의 운명을 바꾼 힘>>(강주헌 역, 김영사, 2023)을 권하고 싶다. 마침 출간 25주년에 즈음하여 멋진 양장판이 나왔다. 이 책은 두고두고 거듭 읽어도 참 좋은 책이다. 인간과 역사에 관해 읽을 때마다 늘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