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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은 살아 있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갯벌의 생태적 가치는 숲의 10배, 농경지의 100배에 달한다고 한다. 육지에서 배출되는 각종 오염물질을 정화해서 바다가 오염되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폭우에 급속한 물의 흐름을 완화하고 저장하는 역할로 홍수에 따른 피해를 감소시킨다. 태풍이 연안 가까이 다가 올 때 그 영향을 감소시키는 완충 역할을 하기도 한다. 거기에 더하여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경치, 해수욕장등을 제공하는 심미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 밀물일 때는 바다에 잠기고 썰물 때는 물 밖으로 드러내는 모래 점토질의 땅인 갯벌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치열한 삶을 꾸려가고 있으며 철새들이 장거리 비행 중 잠시 지친 날개를 쉬어 가는 안식처이기도 하다.
한국의 서해안과 남해안 갯벌은 조수 간만의 차이가 만들어낸 신(神)의 선물로 생물 다양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유네스코에서도 생물권 보전지역의 핵심지역으로 주목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일찍이 갯벌의 생태, 문화, 경제적 가치를 인식하고 복원 사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 30여 년간 산업단지 조성과 농지 확보를 위한 매립과 간척사업으로 여의도 면적 247개의 갯벌이 우리국토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새만금 사업!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세계 최장이라고 자랑하는 무려 33.9km에 이르는 방조제(防潮堤)를 쌓아서 바다와 갯벌을 분리하고 갯벌을 토지로 환원하여 산업단지와 농토로 만들고 나머지는 호수로 조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면적이 서울시 전체의 3분의 2, 여의도의 140배에 달하는 국토를 넓혔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국토를 넓힌 게 아니라 생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갯벌을 엎어버리고 죽음을 강요한 다음 토지로 형질변경을 한 바보스러운 사업을 벌인 것이다. 갯벌의 가치를 말살하고 수 십 조원을 퍼부어 조성한 토지에서 얼마만큼의 수익을 창출해낼 수 있을까?
한국정부의 환경정책은 세계경제포럼 2005년 환경지속성 지수 평가에서 146개국 가운데 122위였을 만큼 문제투성이로 드러났다. 새만금 사업의 첫 삽을 든 지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해서 헛된 청사진을 제시하며 국민들을 현혹하는 경향이 강하다. 새만금은 그렇게 악용되어 왔고 갯벌은 이미 죽었고 갯벌을 뺏긴 바다는 말이 없다. 갯벌에 산업단지를 조성하려면 천문학적인 흙을 퍼부어야하고 호수를 만드는데도 강줄기를 끌어와 소금물을 희석해야하는 작업이 수반된다. 간척지 일부는 농지로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인구는 줄어들고 쌀은 남아돌아 정부에서는 콩 농사를 권장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밭을 일구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흙을 쌓아 올려야 하겠는지를 검토할 일이다.
갯벌의 저주가 시작되고 말았다.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층 높이고 세계 속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새만금에 조성된 야영장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개영식 첫 날 시작부터 수백명의 온열환자가 발생하여 문제를 일으키더니 밤에는 모기 때들의 습격으로 대원들이 고통을 겪었다. 야영장 바닥에 물이 고이는가 하면 화장실 가동이 엉망이었고 제공된 음식에서 곰팡이가 발견되는가하면 심지어는 여자 샤워시설에 남자가 들어가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드디어 태풍 예보로 대회를 중단하고 대원들을 야영지로부터 분리 수용하여 억지로 대회를 마무리하는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새만금 사업은 애초부터 잘 못 낀 단추라고 하더라도 잼버리 대회는 왜 실패해야 했는가? 문제점을 사전에 충분히 예견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었는데 준비가 부실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한국의 여름철은 장마와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때이고 허허벌판인 갯벌에 약 5만 명이 2주에 걸쳐 생활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을 갖춘다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야했다. 야영장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시설은 주거 시설과 같이 기반이 조성되었어야 했고 일반 도시 기능을 갖춘 부대시설이 요청되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젊은이들이 대회 목적에 맞게 행사를 진행해야 되었기에 더욱 시설에 만전을 기했어야 했다. 비만 조금 와도 물웅덩이가 되어버리는 허허벌판 갯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35년 전 서울 88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하고 32년 전 금년과 동일한 고성 세계 잼버리 대회도 성공했다. 2002년 세계 월드컵 대회도 일본과 공동주최했지만 성공적으로 치렀고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신화도 이루어 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도 감격적으로 개최되었다. 남북 간 화해무드도 조성되어 한민족이 고무되었던 대회이기도 하였다. 한류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는 차제에 한민족 중흥의 깃발을 내세울 차례이다. 그러나 지난 잼버리 대회의 개망신으로 민족의 운명이 한 풀 꺾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보다도 더 긴 세월동안 필요에 의해서 그렇게 되어 온 것이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오만 방자 해진 인간들이 자연을 지배하려고 못하는 짓이 없게 되었다. 끽해야 80여 년 살다가 자연의 품속으로 다시 사라지는 인간이 수만 년을 이어온 자연의 생태계를 개발(開發)이라는 명분으로 함부로 유린하는 행태가 가소롭다. 개발이 아니라 개악(改惡)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박남준 시인의 절규 ‘저주가 있으리라’라는 시는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내게 만약 끔찍한 저주가 있다면 그 뻘밭을 막아 없애려는 무리에게 쏟아내야겠네. 심심한 것들로 온통 번쩍이는 생명으로 꿈틀거리는 저 소중한 선물의 뻘밭, 살아서 아름답게 흘러온 것들을 흐르는 대로 두어야 하듯, 밀물과 썰물로 들고 나는 뻘밭의 바닷길을 막아서는 아니 되네. 이 땅에 내린 축복의 뻘밭, 우리 아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하네. 그 뻘밭의 바다에 무릎 꿇고 입 맞추며 엎어지고 자빠지며 내달리게 해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