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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빈 씨 삼부자의 서울 석불사 템플스테이 체험기
사진을 찍는 아버지는 어린 두 아들을 프레임에 담는다.
작은 나무 같은 소년들이 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들 때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것은 간절한 희망.
이제 막 찾아온 시작의 계절, 봄이라는 희망이다.
미국의 시인 헨리 팀로드는 ‘봄이야말로 진정한 재건주의자다’고 말했다. 무채색의 마른 들판에 신선하고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부드러운 초록과 꽃들이 세상의 얼굴을 바꾸어 놓는 시간. 겨우내 모질게 얼어붙은 대지가 천국으로 재건되는 그 시간을 우리는 봄이라고 부른다. 도심의 거리와 산천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꽃처럼 퍼져나가는 시기, 오늘의 주인공 유영빈 씨와 든든한 두 아들 선우, 준우 형제도 설레는 여행을 떠난다. 서울 마포구에 자리한 ‘석불사’에서 만나는 특별한 봄맞이, 삼부자의 첫번째 템플스테이가 시작되는 날이다.
세상 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기를
마포구 한강 공원 곁에 자리한 석불사는 이웃들의 삶을 담장처럼 두른 자그마한 도심 사찰이다. 지금은 사라진 옛 전차의 종착지이자, 오래된 유행가의 제목인 ‘마포종점’이 바로 석불사 근경에 있다. 이제는 옛 종점 대신 지하철 5호선 마포역이 인근에 있어 누구라도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사찰, 연중 활짝 문 열린 이곳에서 오늘 유영빈 씨 가족은 템플스테이를 만난다.
“두 아이가 워낙 힘이 넘치다 보니 가끔은 정적인 공간에서 마음을 차분히 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어린이를 위한 템플스테이 사찰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코로나19가 시작되며 기회를 놓쳤지요. 시간이 지나 이제야 함께 오게 되었네요.”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유영빈 씨와 축구를 좋아하는 형제. 웃는 모습이 꼭 닮은 삼부자의 첫 번째 템플스테이는 21세기가 겪어낸 몇 번의 팬데믹 가운데 가장 길었던 코로나 시대, 그 지난 시간을 묵묵히 이겨낸 가족을 위한 선물이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오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조심스레 템플스테이 사무국의 문을 넘는 삼부자에게 가장 먼저 반가운 인사를 건넨 사람은 바로 석불사의 주지경륜 스님. 한 사찰의 수장을 맡은 지 오래지만 지금도 석불사 살림의 중심에는 스님이 있다. 저녁 공양 준비가 한창이었다며 구수한 밥 냄새와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들을 맞아주는 스님의 모습에서 마치 외가를 찾은 듯한 푸근함이 물씬 전해져 온다.
“먼저 차를 한잔할까요. 봄이 되었으니 매화차를 마시면 좋겠네요.”
단 하루의 인연이라고 귀하지 않을리 없다. 스님은 직접 재배한 차와 함께 아직은 사찰이 낯선 삼부자에게 환영과 기원의 당부를 전했다.
“차를 마시는 것은 부처님이 되는 연습과 같아요. 깨끗하고 좋은 공기와 음식을 먹으면 건강해지듯, 독한 것을 많이 먹으면 사람도 독해지지요. 순한 것, 좋은 기운만 먹으면 좋은 말과 생각이 절로 납니다. 차나무는 땅의 독하고 오염된 것은 스스로 흡수하지 않아요. 그런 차를 즐겨마시는 것은 나를 사랑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 가장 사랑해 주는 것도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석불사에 오신 여러분이 누구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씁쓸한 차 맛에 코를 찡그리며 멋쩍게 웃던 소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스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조금은 낯설지만 따뜻하고 향기로운 차의 맛, 오랜 뒤에도 두 형제에게 이 봄날의 여행이 그렇게 기억되기를!
두려워 하지마, 다 잘될 거야!
잠시 후 여장을 푼 삼부자의 본격적인 템플스테이 일정이 시작된다. 석불사의 템플스테이 지도법사를 맡고 있는 여목 스님과 함께 사찰 곳곳을 둘러보는 시간. 참가자의 눈높이에 맞춘 쉽고, 다정한 설명은 석불사의 기원부터 사찰 예절, 전각 설명까지 자분자분 이어졌다.
“대웅전은 큰 영웅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을 왜 영웅이라고 할까요?
영웅은 다른 이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지요. 석가모니 부처님은 고통과 번뇌의 바다에서 나오는 법을 팔만대장경에 담아 전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누군가를 위해 그런 마음을 낸다면 그것이 바로 영웅입니다.”
석불사는 300년의 역사와 함께 서울의 근현대사가 오롯이 새겨진 사찰이다. 지금도 석불사 삼성각에는 6·25 전쟁 당시의 총알 자국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사찰이라하여 피해갈 수 없었던 고통의 현장 위에서 스님은 새 시대의 벽돌을 쌓듯 자비의 의미를 전한다.
“극락세계에서는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해요. 누군가는 길고, 또 누군가는 너무 짧은 수저밖에 없다 해도 서로가 음식을 먹여주기에 아무도 굶는 사람이 생기지 않지요. 서로를 향해 마음을 나눌 때 그곳이 어디든 극락세계가 됩니다. 여러분도 한번 해보시겠어요?”
스님의 이야기에 아버지와 아이들은 서로의 입에 밥을 넣어주는 모습을 하며 연신 웃음을 터트린다. “아빠도 먹어요! 너희도 먹으렴!” 소꿉장난을 치듯 내민 손들이 어느새 서로를 꼭 부여잡고, 끌어안아 따뜻한 하나가 된다. 마음을 나눈 순간 현실이 되고 마는 세상, 이 순간 가족은 마치 작은 극락을 엿본 것만 같은 얼굴이다.
스님은 석불사를 상징하는 거대한 석불의 손을 가리키며, 세상을 향해 보내는 수인의 메시지를 스님은 담백하게 전해 준다.
“오른쪽의 수인인 ‘시무외인’은 두려워 하지마, 걱정하지마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왼손의 ‘여원인’은 다 이루어질거야 라는 의미지요.”
아! 하고 작은 탄성을 내는 아이들. 2,000여 년을 거슬러 전해지는 부처님의 위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도 큰 울림으로 전해지는 것일까. 조용히 스님을 따라 수인을 따라 하는 아빠와 아이들. 어느새 한강 위로 노을이 번지는 시간, 모두의 하루에 다정한 위안이 함께 내린다.
“두려워 하지마. 걱정 하지마. 다 잘 될 거야.”
도심 속 산사의 특별한 선물
석불사 템플스테이를 일반인들에게 알린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다양한 사찰음식의 향연이다.
“우리 절은 다른 사찰처럼 멋들어진 자연경관이나 오랜 고건축물이 없어요. 그런데도 힘들게 이곳을 찾아온 분들에게 우리가 대접할 수 있는 건 정성껏 차린 공양 한 끼니까,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 1박2일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위해 며칠을 꼬박 준비한다는 정성 어린 밥상. 공양에 쓰이는 재료는 대웅전 뒤의 작은 텃밭에서 자급자족으로 일군 채소들, 그리고 석불사의 말사인 10여개 사찰에서 공수한 농산물이다. 쌀 한 톨, 들깨며 고춧가루까지 석불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의 공양을 위해 전국의 스님들이 힘을 모은 셈이다.
쉼 없이 공양간을 살피던 주지스님은 내내 아이들을 향해 당부를 거듭한다. “먹고 또 먹으렴. 기름기가 적고 채식이라 소화도 잘되지만 그만큼 배가 금방 꺼지니까 배부르게 먹어야 한다.”
푸짐한 저녁 공양을 마친 뒤, 유영빈 씨와 아이들은 스님과 함께 또 한 번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바로 연등과 염주 만들기 체험! 서툰 손길로 정성껏 만든 연등이 완성되자, 누구라도 할것 없이 가족들은 법당에 들어서 저마다의 기도를 올리고, 어느새 팔에 끼워진 염주는 내내 가족의 추억과 행복을 지켜줄 선물이 될 것이다. 스님의 밥상처럼 건강하게, 오롯이 채워진 하루. 삼부자의 템플스테이 첫날 밤이 그렇게 저문다.
봄날 같은 추억이 되기를
산사의 하루는 새벽 별이 머무는 때에 시작된다. 유영빈 씨와 아이들이 생애 첫 새벽 예불을 함께 하며 템플스테이의 두 번째 아침을 맞이하는 날. 석불사 템플스테이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한강 명상을 떠난다.
아침 공양을 마친 삼부자와 다른 참가자들이 여목 스님과 함께 길을 나섰다. 신선한 봄날의 아침 공기는 이곳이 서울 도심의 한복판인 것마저 잊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과거 전국의 물자를 서울로 모으던 마포나루터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길게 이어진 한강 수변로를 따라 걷는 시간. 꽤 이른 시간이지만 조깅을 하는 사람들과 연신 힘차게 달려가는 자전거들, 곳곳에 피어나기 시작한 꽃들까지 이 순간 생동하는 봄을 상기시킨다.
여느 사찰의 침묵 어린 포행과는 조금 다른 석불사의 아침 산책길.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다 보며 어느새 ‘석불사 명상센터’라는 애칭(?)을 지닌 공원에 도착한다. 시원하게 달려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지금 부는 바람에 지친 마음, 아픈 마음, 나쁜 마음 모두 훨훨 날려 보내세요. 이 순간이 지나면 또다시 새로운 내가 되어있을 겁니다.”
여목 스님이 전하는 일상의 지혜, 어둡고, 해묵은 것은 그저 바람결에 날려 보내면 그만이다.
봄날 아침의 시원한 바람과 함께 선우와 준우도 그렇게 다시 새로운 하루를 맞는다.
“전학 간 우리 학교에는 축구부가 있어요. 저도 축구부 할 거예요!” “저도요!” 힘차게 내달리며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외침은 단단히 굳었던 땅을 뚫는 새싹처럼 명료하다.
팬데믹의 시대를 당당히 이겨낸 가족에게 선물처럼 전해진 첫 번째 템플스테이. 그 어떤 계절이 오더라도 늘 봄꽃 같은 추억이 되기를. 오래오래 피어나기를.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