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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
나는 비 오는 날에 골라서 쓰고 나갈 여러 개의 우산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비 맞은 아들을 닦아주는 어머니의 손길을 잃었습니다.
나는 저녁 식사 후에 매일 다른 간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을에 묻어 두고 겨울밤에 꺼내 먹는 시원한 무우 맛을 잃었습니다.
나는 신고 나갈 것을 고민하는 여러 개의 신발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 신발을 베게 옆에 두고 잠드는 설레는 밤을 잃었습니다.
나는 운동기구 즐비한 곳에서 매일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벼 벤 밑둥이 있는 논에서 찜뽕을 하는 즐거움을 잃었습니다.
나는 고급진 목도리를 둘러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굴이 얼었다며 내 뺨 감싸주던 그녀의 손길을 잃었습니다.
나는 무선 이어폰을 끼고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물 오른 나무껍질을 빼내어 불던 버드나무 피리를 잃었습니다.
나는 보고싶은 사람과 언제든 연결되는 모발폰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공중전화기에 동전을 넣으며 그녀가 받기를 바라는 떨리는 가슴을 잃어버렸습니다.
나는 집에 편히 않아 큰 화면으로 넷플릭스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싼 값에 두 개나 보는 동시상영의 횡재한 기쁨을 잃었습니다.
나는 버리지도 입지도 않아 가득히 걸린 옷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땀 한 땀 꿰멘 낡은 옷에서 어머니의 바느질 흔적을 잃었습니다.
나는 편한 것을 얻었지만 낡아서 안쓰러운 소박함을 잃었고
세련된 것을 얻었지만 다듬지 않은 투박한 나를 잃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