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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던 해가 서산마루로 기울어간다. 황금빛 노을로 불타던 하늘이 서서히 검푸르게 변해가면서 어둠이 내려앉는다.
기다렸다는듯 검은 장막속에서 남십자성이 아주 가깝게 모습을 들어낸다.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마치 시녀들처럼 거느리고 . . . 남쪽나라 십자성을 눈앞에 바라보며 과연 내가 멀리도 와 있구나 실감을 한다.
오직 부지런한 며느리만이 본다는 초사흘 달. 가느다란 손톱달을 보기도 아사다. 옛날 우리 조상 어른들이 지어낸 말 이 재미있긴 했지만 일 많은 며느리들 더 부지런하라고 채근하는 말같아 깊이 생각하면 씁쓸하다.
그 방향에 새로운 내 고향 티티랑이가 있다. 때없이 시선이 가는 곳. 처음와서 정 붙이고 살던 곳. 제 3의 고향이다.
해질무렵 골목길에 나서면 이집 저집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던 연기. 나무타는 냄새가 묘하게 코 끝을 자극했다.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서울내기의 시골집 향수랄까?
어디선가 머리하얀 할머니가 불쑥 나타나 내 손을 잡아줄것만 같다. 밥냄새 폴폴 풍기는 부엌으로 데리고 들어갈 것 같은 외할머니의 따사로운 손길.
안개인지 연기인지 뿌옇게 내려앉은 거리를 서성이면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가슴속을 휘저어 놓았다.
뭔지모를 한숨같은게 길게 토해졌다. 불안에서 놓여 나는듯한 안도의 느긋함이랄까?
사람하나 볼 수 없는 이 조용한 초저녁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던 낮과는 너무나 달랐다. 길게 산을 등지고 앉은 이 마을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는 느낌이 들어 그지없이 평온 해졌다.
이른아침 산책길에 나서면 알싸한 찬바람에 머리가 맑아졌다. 제일먼저 눈에 띄는 것. 집집마다 마당끝에 세워진 편지함을 보는게 너무도 재미 있었다. 그 작은것 하나에도 세심한 집 주인의 개성이 느껴졌다. 티티랑이가 예술가의 마을이란 걸 왜 몰랐을까?
바퀴가 달린 나무기차가 금방이라도 달릴 것 같은 기세다. 가느다란 나무 기둥에 올라있지만 않다면 말이다. 달구지같은 자동차가 있는가하면 귀가 쫑긋한 토끼며 양들. 그것들만 보고다녀도 산책길이 지루하지가 않았다.
획일적인 회색의 아파트 속에서 많은 인파에 휘둘려 살아온 나에게 이 느슨하고 평화로운 풍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드물게 산책나온 사람과 마주치면 어김없이 하이~ 하며 손을 들어 환하게 웃어준다. 처음 보는 사람 같지않아 어디서 본 사람인가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기분은 좋아지고 발걸음은 가볍다.
블라인드 창문 너머로 남의 집 아침 풍경을 훔쳐보는 것도 놓치면 안되는 구경꺼리였다. 바쁘게 주방을 서성거리는 남자. 아내인듯한 여인은 까운을 걸친채 식탁앞에 앉아서 뭔가를 마시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이 먼저 일어나 내려준 모닝커피겠지 . . . 그 여유로움이. 따스한 가정의 그림이 부럽기도 했다.
그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색안경으로 흘끔거리는 나는 어쩔수없는 이방인. 한국 할머니였다.
수선화가 한창이던 계절이었다. 수선화 꽃이름이 붙여진 동네를 색다른 기분으로 걸었다. 그래서일까? 집집마다 수선화가 없는 집이 없었다.
바람은 아직도 차가운데 파란 줄기를 타고 저마다 노란 꽃잎을 나풀거린다. 수런수런 정다운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답답한 땅속에 갇혀 이 날을 기다렸다는 수다일까? 그 노란 꽃물이 내 옷에도 묻어올 것 같은데 걸친 옷들이 거추장 스러웠다. 자연을 이길 장사는 없으니 그들앞에 부끄럽기만 했다.
아이들 등교길에 따라나서면 더러 신을 신지않은 맨발의 아이가 보여 마음이 편치않았다. 신발도 못 신을 정도로 가난한 아이가 있다니 . . . 의아해서 바라 보노라면 아이는 밝은 얼굴로 ‘하~이’하면서 다정스럽게 웃어준다.
정스럽고 기특한 아이들에게 괜한 오지랖 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손주 손녀가 할머니의 편지를 하나씩 나눠들고 학교앞 우편함으로 달려간다. 발돋음을 하고 서로 먼저 넣으려고 밀치며 장난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눈에 넣어도 안아플 그림을 넋을 놓고 바라본다.
매일 새롭게 경험하는 낯설음을 고국의 친구들과 공유하려는 할머니의 일상이 담겨있는 편지. 편지가 하나뿐일땐 서로 뺏어가려고 다툼도 곧잘 해서 애들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쓰기도 했던 것 같다.
그 어린것들이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그 애들은 어렸을적 살았던 그 곳을 잊지 않고 있을까?
길 건너 바로 앞집에 살면서 자주 놀러오는 ‘메튜’는 손주의 친구였다. 엄마와 둘이서만 사는 결손가정의 아이였지만 항상 밝고 명랑했다. 이혼을 한 아빠가 금요일 오후만되면 어김없이 아이를 데려갔다. 주말을 아빠와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메튜는 외식도 하고 주로 여행을 다니며 보낸다고 했다. 다녀온 이야기를 신이나서 자랑을 했다 방학중엔 외국여행을 하기도 한다며 선물들을 들고와 좋아했다. 아이가 불편함이 없도록 모임이나 행사에는 반드시 아빠엄마가 함께 참석을 했다. 이혼을 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함께하는 모습이 가까운 친구 같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손 가정을 정상처럼 지켜가는 그들의 노력이 참으로 돋보였다. 교사출신 메튜 엄마는 이웃에게 대하는 마음도 늘 따뜻해서 존경을 받았다.
가끔씩 팔망아지처럼 뛰어드는 꼬랑지 머리의 ‘쥴리앙’은 손녀의 친구다. 현관에 들어서면 손녀의 고무신부터 찾아신고 집 안을 휘젓고 다녔다. 고국에서 어린애 코 고무신이 하도 예쁘고 앙징스러워 사 들고 온 우리집 신발장의 장식품이었다. 그 애가 그 것을 어찌 보았는지 . . . 처음으로 보았을 색다른 신발에 뿅 가버린 모양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무도 못 말리는 말괄량이 꼬마 천사는 과자 그릇까지 마치 제 것 처럼 들고 거침없이 먹어제꼈다.
너무 어지럽고 정신이 없어 더러 눈치를 주어도 아랑곳 할리없는 배짱 두둑한 아이 쥴리앙. 그래서 내 기억속에 스타?로 각인되어 있다.
그 아이는 노랑 머리가 항상 엉켜있는 상태로 꼬랑지처럼 가느다랗게 길었다.
문화의 충격을 정말 심하게 안겨준 ‘토니’가 있다. 그는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온 사람이었다. 나이 서른아홉에 할아버지가 된걸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남자였다. 벌써 팔개월이나 되었다며 무거운 아이를 들춰안고 입이 함박만해서 웃고 다닌다. 시집도 가지않은 열여덟살 짜리 딸 아이가 낳은 아이라니 . . .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사실 우리가 편견 때문에 불편했을 뿐이지. 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누구도 수군대는 사람없이 다들 축하 해주고 기뻐해 주었다.
나름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더할 수 없이 인간다운 사람들이었다. 순수하고 속임수 없는 정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 이웃이라는 걸 알게되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차츰 정이 들어갔다.
소낙비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이 찬란하게 눈부신 어느 날이었다.
양지바른 뜨락에 후리지아가 만발했다. 잔잔한 바람을 타고 나풀거리는 꽃잎들이 너무 귀엽다. 지나치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사뿐이 다가갔다. 꽃잎을 만지려는 순간이었다. 뭔가가 후다닥 꽃덤불속에서 뛰쳐나왔다. 너무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았다. 저만치 오리 한쌍이 급한 걸음으로 도망을 치고 있었다. 마당가운데 우둑커니 도사려 앉았던 한마리 오리가 생각났다. 살며시 덤불속을 살피니 파르스름한 알 세개가 거기 있었다. 알을 품은 엄마오리를 아빠 오리가 마당에서 지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불시의 습격에 얼마나 놀랐을까? 어디쯤에선가 나를 지켜보며 원망을 하고 있겠지. 자식을 품은 모정이야 동물이라고 다르지 않았을텐데 . . . 너무 미안했다. 다시 돌아오려나 기다렸지만 그들은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나 큰 죄를 지었던 것인지. 지금도 나란히 오리 한쌍이 지나가는걸 보면 그 때의 일이 떠오른다. 평생 내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죄책감도 함께 말이다.
내 아이가 어쩌다가 여기에 짐을 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너무 좋았다. 유별나지 않은 평범함 속에 무언가 특별함이 있는 것 같은 거기 이웃들.
문화가 다르고 서툴러도 서로 표정만으로 교감이 되었던 감동의 사람들. 지극히 인간적이고 참으로 따뜻했다.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고향이 되어버린 티티랑이. 제 3의 고향이다. 그래서 지금도 해넘이엔 자주 그 쪽을 바라본다.
이름조차 발음이 힘들었던 사람들 안부를 물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