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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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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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은 세 차례나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취임하지 않았고, 사례의 인사를 올리지도 않았다. 그랬던 그가 그동안 자신이 왜, 벼슬을 마다하였는지 이유를 밝히겠다고 하였다.


“제가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어느덧 제 나이가 60에 가까우나 학술이 거칠어 문장으로 말하면 과거시험에 말석에 뽑히지도 못할 정도로 부족하고, 행실은 집안 청소를 하기에도 부족합니다.


과거시험을 보았으나 10녀 년에 세 번이나 낙방하고 물러났으니 처음부터 과거 공부를 일삼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설사 제가 과거시험을 탐탁하게 여기 않았다 하더라도 성질이 조급하고 마음이 좁은 평범한 한 사람이라서 그랬을 뿐입니다.


큰일을 할 수 있는 인재가 아닙니다…

미천한 제가 분수에 벗어난 헛된 명성으로 집사(執事, 이조의 관리)를 그르쳤고, 집사는 헛된 명성을 듣고서 전하를 그르쳤습니다.


전하께서는 과연 저를 어떤 사람이라고 보십니까?

제게 도가 있다고 여기십니까?

문장에 능하다고 여기십니까?


문장에 능한 이가 반드시 도가 있는 것도 아니며, 도가 있는 이가 반드시 저와 같지도 않습니다. 전하께서만 이것을 모르신 것이 아니라 재상도 모른 것입니다.

그 사람 됨됨을 알지 못하고 기용하였다가 뒷날 국가의 수치가 된다면 그 죄가 어찌 미천한 제게만 있겠습니까. 헛된 이름을 위해 몸을 파는 것보다는 곡식을 바쳐 벼슬을 사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저는 차라리 제 한 몸을 저버릴지언정 차마 전하를 저버리지 못하겠으니, 이것이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첫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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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은 자신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는 이유를 두 가지라고 했다.


그중 한 가지를 위에서 말하였는데, 자신은 능력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이제 시선을 옮겨 국정의 문란을 비판한다.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이 망하여 천의(天意)가 이미 떠나갔습니다.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1백 년 된 거목에 벌레가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다 말랐고, 게다가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언제 닥쳐올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 된 지 이미 오래인 셈입니다.

조정에 있는 이들 가운데 충의(忠義)로운 선비와 근면하고 어진 신하가 없지 않으나, 그 형세가 이미 극에 달하여 그들의 손이 미칠 수 없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어찌할 수 없는 곳뿐이라는 점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낮은 벼슬아치는 아래서 낄낄거리며 주색을 탐하고, 대신들은 윗자리에서 우물거리며 재물만 불립니다.”


매우 과격한 발언이다. 

이것은 과연 사실에 근거한 지적일까.


실록의 편찬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식의) 이 말은 당시의 병통을 바로 지적한 것이다. 오늘날 공도(公道)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사문(私門)이 크게 열리어, 무리를 지어 쏘다니는 이들은 공적인 일을 할 생각은 없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 일삼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세월을 보내며 나랏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모르고 있다. 통탄한 일이다….”


역사가의 비평이 통절하고도 아름답다. 글을 쓰려거든 이 정도는 써야 할 것이다. 그럼 이제 조식의 설명을 더 들어본다.

“백성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중앙 관리들 중에는 자신을 후원하는 세력을 심어서 마치 용(龍)을 못에 끌어들이듯이 합니다.”



실록의 편찬자는 이 문장을 해석하기를, 

“이것은 이리와 승냥이 같은 무리가 권력을 잡고 있다는 뜻인데, 그 말의 뜻이 미묘하고 의미심장하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층의 부패는 모양이 비슷하다.


“지방관리는 백성의 재물을 마구 빼앗아, 이리가 들판에서 날뛰듯이 하면서도, 가죽이 다 해지면 털도 붙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신은 이 때문에 깊이 고뇌하고 길게 탄식하여, 낮에도 하늘을 우러러본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한탄하고 아픈 마음을 억누르며 밤에 멍하니 천정을 쳐다본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자전(慈殿, 명종의 모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으시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선왕(先王)의 외로운 후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천백(千百) 가지의 천연재해와 억만 갈래로 갈라진 인심을 무엇으로 감당해 내며 무엇으로 수습하겠습니까? 냇물이 말랐고 곡식이 비가 되어 내렸으니 그 조짐이 어떻다 하겠습니까? 음악 소리도 구슬프고 흰옷을 즐겨 입으니 소리와 형상에 변고의 조짐이 나타났습니다.”


실록의 편찬자는, 

“(조식은) 낙동강 상류가 끊긴 것을 말하였다. 갑인년(명종 9년, 1554) 겨울에 이런 변고가 있었다.”고 했다. 곡식이 비가 되어 내리는 기현상도, “근래 몇년 동안 이런 재변이 있었다.”고 증거하였다.


아울러, “당시 애절한 노래 소리가 많았고, 의복 색깔은 흰 색을 숭상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말한다.”고 하여, 남명의 주장에 근거가 충분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시기가 되면 비록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의 재주를 겸한 이가 정승의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하지 못할 터입니다. 더구나 초개 같은 한 미신(微臣)의 재질로 제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위로는 위태로움을 전혀 지탱하지 못할 것이고, 아래로는 백성을 털끝만큼도 보호하지 못할 것이니, 전하의 신하 되기가 어렵겠습니다.


변변하지도 못한 명성을 팔아서 전하의 관작을 사고, 국록을 먹으면서도 맡은 일을 하지 못한다면, 신이 원하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이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둘째 이유입니다.”


요컨대 나랏일이 완전히 그릇되어 있으므로, 벼슬을 해보았자 조식이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무언중에 그는 국가의 전면적인 개혁을 요구한 셈이다.


“… 평소 조정에서는 재물로써 사람을 채용하여 그들이 재물만 모으고 백성을 흩어지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장수로서 적합한 사람이 하나도 없고, 성에는 군졸이 없는 지경입니다. 적들이 무인지경에 들어오듯이 밀고 들어온 것이 어찌 괴이한 일이겠습니까.


또, 이것은 대마도의 왜(倭)가 (본토의) 왜와 몰래 결탁하고 길을 안내하여 만고(萬古)에 남을 무궁한 치욕을 준 것입니다. 왕령(王靈)을 떨치지 못해 우리는 담이 무너지듯 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구신(舊臣)을 대우하는 법은 주(周) 나라보다 엄격하면서 구적을 총애하는 덕은 도리어 망한 송나라보다 더하였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세종 대왕께서 남정하시고 성종 대왕께서 북벌하신 일로 보더라도, 그 어느 것이 오늘날의 일과 같았습니까?”

조식은 명종 때의 을묘왜변(명종 10년, 1555)을 말하였다.


전라도 강진과 진도 및 영암에 쳐들어온 사건이다. 그때 큰 화를 입은 것은 물론이고 장수로서 벌을 받은 이도 있었다.


실록의 편자는

그때 “아마도 남정한 장사(壯士)에게 형을 준 것을 지목한 듯하다”고 주를 달았다.


“그러나 이런 일은 피부에 생긴 병에 불과하고 가슴의 병은 아닙니다. 가슴의 병이란 결리거나 맺히고, 찌르거나 막혀 상하가 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경대부(卿大夫)가 목구멍이 마르고 입술이 탈 때까지 분주하게 움직여 수고해야 합니다. 근왕병(勤王兵)을 불러 모으고 국사(國事 )를 정돈하는 것은, 자질구레한 정형(政刑)에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전하의 한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노심초사하여 큰 공을 세우는 그 기틀도 왕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학문을 좋아하십니까?

풍류와 여색을 좋아하십니까?

활쏘기와 말 달리기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바에 나라의 존망(存亡)이 달려 있습니다.


어느 날 진실로 슬퍼 놀라며 깨닫고 분연히 학문에 힘써 갑자기 덕(德)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도리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덕이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도리 가운데 만 가지 착함이 갖추어지고 백 가지 덕화(德化)도 거기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시행하면 나라를 균평(均平)하게 할 수 있고 백성도 교화시킬 수 있습니다. 위태로움도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요체를 보존하면 거울은 사물을 그대로 비추지 않음이 없고, 저울은 공평하게 달지 않음이 없습니다. 생각에도 사특함이 사라질 것입니다. 석가(‘佛氏’) 가 말한 “진정(眞定) 이란 다만 이러한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나, 다만 이러한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니, 위로 천리(天理)를 통달하는 데는 유교(儒敎)와 불교(佛敎)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인사(人事)를 돌보는 데는 (진정으로는) 실지를 실천하는 것이 없어서 우리 유가(儒家)가 배우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는 이미 불도(佛道 )를 좋아하십니다. 만약 불도를 좋아하는 마음을 학문을 좋아하는 데로 옮기신다면 이는 우리 유가의 일이 됩니다. 어찌 어려서 잃은 아이가 다시 제집으로 돌아와 부모와 친척, 형제와 친구를 만나보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조식은 그저 혹독한 비판만 일삼은 독설가는 아니다. 그는 명종이 불교를 좋아하기 때문에 “진정”이란 개념을 빌려, 마음을 잘 다스리는 왕이 되기를 당부한다. 마음 하나만 잘 움직이면 정치의 요체를 얻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분히 성리학적 해석이다. 그러나 실록의 편자는 조식이 불교의 개념을 원용하였다고 하여 비판한다.


“조식의 (유교와 불교가 다르지 않다는) 이 말은 잘못이다. 불씨의 학설(學說)에 어찌 위로 천리를 통달하는 것이 있겠는가.”


참으로 고루한 성리학자라고 생각한다. 글의 앞뒤를 헤아려보라. 언제 조식이 불교를 따르라고 하였든가?


“더구나 정사(政事)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사람을 임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을 닦음이 주가 되고, 몸을 닦는 것은 도(道)를 따라서 해야 합니다. 전하께서 사람을 등용하는데 자신의 몸을 닦아서 하실 것 같으면 조정안에 있는 사람이 모두 사직(社稷)을 보위할 것이니, 아무 일도 모르는 소신 같은 이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만약 사람을 헛된 명성만으로 등용한다면 잠자리를 벗어나면 모두 속이고 배신하는 무리일 것이니, 주변머리 없는 소신이 또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뒷날 전하께서 덕화를 왕도의 경지에 이르도록 키우신다면 신도 마부의 말석에서나마 채찍을 잡고 마음과 힘을 다하여 신하의 직분을 다할 것입니다. 임금을 섬길 날이 어찌 없겠습니까…”

글을 잘 읽어보면 뜻이 명확하지 않은가. 조식은 임금의 뜻을 저버린 것이 아니다. 그는 임금이 성리학 본연의 제 자리로 돌아오기를 촉구한다. 그때가 되면 자신도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해 돕겠노라고 약속한 것이다. 나는 그의 상소문을 그렇게 읽는다.


실록의 편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사신은 논한다. 조식은 숨은 선비로 시골에 살았다. 비록 관직(官職)을 뜬구름 같이 여겼지만, 임금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정성스럽게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이 언사(言辭)에 드러났다. 간절하고 강직하여 회피하지 않았으니, 명성을 거짓으로 얻은 자가 아니라고 하겠다. 어진 사람이다.”


나로서는 동지를 만난 기분이다. 그렇다. 조식의 이 상소문을 보면 그가 얼마나 강직하고 임금을 깊이 사랑하는 큰선비였는지를 알 수 있다.


또 다른 편자는 뭐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사신은 논한다. 세도(世道)가 쇠미해져서 염치가 모두 없어지고 기개와 절조도 사라진 듯하여, 숨은 선비란 이름을 쓰면서도 공명(功名)을 낚는 자가 참으로 많다. 어질도다, 조식이여!...


아, 마침내 뜻한 바를 대궐에 아뢰었지만 결국은 은거(隱居)하던 곳에서 일생을 마쳤구나. 그 마음은 충성스럽고 그 절개는 고상하다. 오늘날에도 이처럼 명리를 멀리하고 벼슬을 버리는 선비가 있는데, 그를 더욱 포상하거나 등용하지 않고 도리어 그더러 공손하지 못하고 공경스럽지 못하다고 책망하였다. 그러니 세도(世道)는 날로 떨어지고 명분과 절개가 추락함이 당연하다. 나라가 위태롭고 망할 조짐이 이루어진 것이다.”


옳은 평가라고 생각한다. 16세기 역사가들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럼 그 당시 조정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상소가 올라가자 명종은 승정원을 꾸짖었다. 대개 이런 식이었다. 조식의 상소를 읽어보니, 강직한 듯하지만 모후(왕의 어머니 문정대비)에게 불공한 표현이 있다. 조식은 군신(君臣)의 의리를 모르는 한심스런 이다. 승정원에서는 이러한 상소를 먼저 보았을 텐데 그렇다면 처벌을 요구했어야 마땅하다. 감히 이런 사람을 벼슬에 천거했는가? 임금이 아무리 못났더라도 신하가 어찌 이런 욕설을 하게 내버려둘 수 있는가? 이것이 어진 이가 임금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방식인가? 그렇게 험한 말을 쏟아붓고도 왕은 분이 풀리지 않았다.


“상소문에서 ‘모후(자전)는 생각이 깊으시지만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공손하지 못한 말이 아닌가. 또, ‘전하의 신하 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불손한 말이다. 더욱이 ‘노랫소리는 구슬프고 흰옷을 입기를 즐겨 소리와 형상에 나쁜 조짐이 나타났다’고 하였다. 불길한 언사이다.”


내가 보기에 명종과 그의 측근은 조식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였다. 그들은 자그만 몇 개의 구절에 얽매여 상소의 본의를 왜곡하기에 급급하였다. 이러고서도 훌륭한 임금이 된 적이 있었던가. 명종의 시대는 과연 어떤 업적을 이루었든가. 그들의 태도로 미루어 잘 될 일이 없지 않았겠는가. 실록을 편찬한 사관들의 평가는 그 당시 조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조식은 오늘날 유일(遺逸) 중에서 가장 어진 사람이다. 재능이 뛰어나고 행실이 깨끗하며, 학식도 풍부하다. 초야에서 가난하게 살았으나 영예와 이익을 꿈꾸지 않았고, 여러 차례 불렀지만 나오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고상하게 닦았다. 비록 수령으로 임명되는 영광에 응하지는 않았으나,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으로 곧은 말로 상소를 올려 당시의 폐단을 똑바로 지적하였다. 이 어찌 군신의 의리를 모르는 사람이라 나무라겠는가. ‘자전은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이다’라는 표현은 조식이 새로 만든 것도 아니고 선현(先賢)의 말을 인용하여 글에 포함한 것이다. 이것이 어찌 공손하지 못한 말이겠는가. 포상하여 장려하지는 못할망정 나무라기를 매우 엄중히 하였다. 이것은 왕을 보필하고 인도하는 사람 중에 적합한 이가 없어서 왕의 학문이 넓지 못해 생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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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승종 

사학자,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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