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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집에 간 후 나는 몸살을 앓았다. 올 한 해의 반을 여행으로 다 보냈으니 몸살이 안 나고 배길 수 있었을까? 어제부터 몸이 조금 괜찮아지고 있음을 느꼈으나, 아침에 일어나니 뱃속이 전쟁을 일으켰다. 커스타드 빵을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막내가 두꺼운 종이를 사각으로 잘라서 콘 모양으로 만든 후 그 위에 쿠킹호일을 싸서 빵 틀들을 여러 개 만들었다. 이스트 발효를 시킨 밀가루 반죽을 그 틀 거죽에 돌돌 감아서 오븐에 구웠다.
안이 콘 모양으로 비어 있는 소라 모양의 빵들이 완성되었다. 표면에 발린 계란 물이 반짝이는 갈색을 띄어 먹음직스럽고 보기 좋았다. 초콜릿을 섞어 만든 카스타드를 빵의 빈 구멍에 채워 넣으니 영락없는 제과점의 소라 빵이었다.
떠나는 이모를 위해 쉬폰케이크을 만들고, 카스타드빵을 만들었는데, 모처럼만에 베이킹을 하더니 발동이 걸렸나 보다. 그 다음 날, 새로운 방법으로 마카롱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더니 그건 실패를 했고, 다시 소라 빵을 만들었다.
그 빵이 하도 먹음직스러워서 자기 전에 반쪽 먹은 것이 그만 탈이 나고 만 것이다. 아직도 뱃속의 전쟁은 멈추질 않았으나, 그래도 몸살기는 좀 사라진 거 같다. 반 년 동안 그렇게 여행을 다녀 놓고도 이 정도의 몸살로 마무리 지었으니, 나로서는 대단한 성공이다.
비행기와 배 그리고 기차까지 다 타 본 올해의 여행. 갑자기 봇물 터지듯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한 해가 되어 버렸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감히 할 수도 없는 일인데, 자식들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하나씩 천천히 해나가고 있다.
내가 이렇듯 천천히 배워나가는데 비하여 손녀 유은이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몸동작이 크지는 않지만, 계속 움직이고 있으며, 한 가지 놀이에 빠지면 반복적으로 그 동작을 해나간다. 잠 잘 때 말고는 가만히 있는 걸 보지 못했다.
유은이를 가만히 지켜보면 유은이로부터 배울 게 많다. 내가 지금 유은이 반만큼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은이의 에너지가 부러울 따름이다. 8월 한 달 동안 유은이와 함께 지내면서 유은이의 기를 팍팍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어제 웰링턴에 있는 맏사위가 잠시 집에 다녀갔다. 국가고시인 전기기사 자격증 시험에 필요한 코스 하나를 합격했다고 한다. 어제 하루 동안 로어헛과 어퍼헛에 있는 회사 8군데에 들려 이력서를 돌리고, 파미에도 네 군데를 들렸다고 한다.
전국 곳곳마다 다 이력서를 보내고 있는데, 직접 이력서를 들고 가서 대면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인 거 같다. 웰링턴 근처에서 직장을 못 구하면 오클랜드와 해밀턴으로 가서 부딪힐 예정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이 직장 구하기는 더 쉬울 것이다.
마침 해밀턴에 잘 아는 지인이 있어서 그분께 전화를 했다. 사위가 그곳에 잠깐 기거할 수 있는 지의 여부를 묻는 전화였다. 단번에 승낙을 받았다. 언제든지 사위가 들어갈 때 연락만 하면 된다. 고마웠다.
사위의 밝은 표정을 보니 내 마음이 다 환해졌다. 어둡기 전에 웰링턴으로 돌아가는 사위에게 친구가 만들어 놓은 김치를 손에 쥐어 보냈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 덕분에 내 삶이 참 풍요로워서 모두에게 감사하기만 하다.
지난 주 일요일에는 내 친구 집에 갔었다. 그 친구의 남편은 커피를 아주 맛있게 잘 내린다. 오랜 세월 커피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 나에게 커피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보통 전문가가 아니다.
일요일 점심에 그 집에 놀러 가면 그가 내린 커피를 맛 볼 수가 있다. 나는 그를 바리스타라고 부르고, 그는 나에게 ‘썬데이 커피’ 마시러 오라고 말한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나지만 언어의 장벽을 맛있는 커피가 무너뜨린다.
지난 주말에는 그 집에 들어서는 순간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땅콩 쿠키를 굽고 있었던 것이다. 오븐 속의 쿠키는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고, 또 하나의 간식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시 사이에 맛있는 커피와 쿠키 그리고 구운 땅콩이 식탁 위로 올라왔다. “와우~” 환상의 콤비가 된 커피 세트. 커피 하나만으로도 완전 그 자체인데.......
구운 땅콩이 너무 맛있어서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하니, 올리브유와 소금을 묻혀서 구운 거라고 말했다. 비닐주머니에 땅콩을 넣고 그 안에 올리브유와 소금을 조금 넣고 마구 흔들어 섞는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올리브 오일과 소금을 묻힌 땅콩을 160~180도 온도로 10~12분 정도 구우면 된다고 했다.
그때 내가 친구한테 “난 먹을 복이 너무 많아.” 라고 말했다.
“언니가 정말 먹을 복이 참 많아요. 남편이 자주 쿠키를 굽는 건 아니거든요. 오늘 굽자마자 언니가 온 거에요.”
“그러게 말이야. 어딜 가든 항상 듣는 말이야. 내가 먹을 복이 많다는 말은 말이야. 하하.”
먹을 복이 많은 것도 참 큰 복이다. 내가 갖고 있는 복중에 하나인 먹을 복. 그 덕분에 항상 맛있는 음식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장을 설렁설렁 요령껏 잘 담그더니, 산책길에 채집해 온 미나리와 부추로 나물도 무치고, 부침개까지 맛깔스럽게 부치는 친구. 손 큰 나와는 달리 모든 걸 알맞게 조절하여 힘들지 않게 잘도 만들어 냈다.
이곳에 사는 내내 산책을 하면서도 내가 발견하지 못했었던 것을 그녀는 잘도 알아냈다. 지천에 깔려 있는 것이 미나리이며 부추며 민들레였다. 산책 나갔다 하면 커다란 비닐봉투로 하나 가득 나물들을 캐왔다.
나물 캐는 일도 재미없으면 못한다. 그런데 내 친구는 산책만 가면 눈빛이 달라진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 손도 재빠르다. 보통 솜씨가 아니다. 비닐 가방 하나가 금방 꽉 찬다. 제법 무거워진 비닐가방을 들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우렁각시가 따로 없다.
오늘 날씨가 별로 좋지 않다. 새벽부터 바람이 보통 거센 게 아니다. 해는 쨍쨍한데 비도 가끔 뿌리고, 이런 날 밖에 나갔다가는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이다. 친구는 오늘 산책을 포기한 거 같다. 부엌에서 콩 콩 콩 마늘 찧는 소리가 난다. 무국을 끓인다고 하더니만.
지금 내가 이 글을 적고 있는데, 친구가 똑똑 내 방 문을 두드린다. 무국 맛을 보라는 것이다. 뭔가 조금 더 첨가를 해야 할 거 같다고 했다. 친구가 어떻게 만들었건 내 입맛에는 다 맛있지만, 그녀는 자신이 만족하기 전까지 내 조언을 필요로 한다. 하하.
친구 덕분에 지금 나는 맛있는 무국을 맛보러 부엌으로 간다. 간 김에 밥 한술 떠 넣은 국 한 사발에 배추김치를 걸쳐서 한 끼 뚝딱 해치워야겠다. 쌉쌀한 미나리 김치도 빼놓을 수 없겠다. 뱃속의 전쟁도 거의 끝나갈 무렵이니 무국이 시원하게 마지막 정리를 해 줄 것이다.
감사하다. 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
우리 모두 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아자 아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