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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서 만나는 구들 이야기
빈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훤하다. 낙하한 잎새들이 수북이 쌓인 산길을 걸으며 낙엽의 깊이를 재어 본다. 적엽량이라고 해야 할까. 이미 삭아버린 것들과 그 위에 하염없이 쌓여가는 것들. 찬란했던 나무의 유해를 밟으며 살아 있음에 대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추운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제 잎을 떨구는 나무. 비워진 가지만큼 북돋는 뿌리.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자연은 비움과 채움 사이로 흘러간다.
그 흐름 속에 침잠하며 계절보다 쓸쓸한 사람이고 싶었던 어느 가을.
적멸의 불사리탑을 보러 설악으로 향했다. 백담의 계곡에 저마다의 소망으로 이룬 자갈탑을 지나,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눈 속에 묻혔다는 오세암의 길손이를 떠올리다가, 설악의 절경에 감탄하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깔딱고개를 넘어갔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발을 디디며 걷고 또 걸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은 산이 되고, 산은 물이 되었다. 그러다 잠시 쉬어 간 어디쯤에서 내가 산이고 물이구나 하고 ‘하마터면 깨달을 뻔’했다.
설악산에서 만났던 따뜻함
단풍철이 지난 평일 오후의 봉정암은 한산했다. 그 한적함이 불길한 징조였음을 하산하는 길에 알아차렸다. 설악의 수많은 봉우리들을 두루 살피듯 허공에 우뚝 선 불사리탑은 여전히 경외로웠다.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탑 앞에 서니 목적지에 다다른 성취감과 내면으로의 몰입도가 드높아졌다. 몸으로부터 오는 아픔이나 감각이 사라지고, 마음의 작용 또한 잠시 멈춘 듯 고요해졌다. 한동안 그렇게 탑 앞에 앉아 꼼짝없이 시간을 보냈다.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오후가 되어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이제 서둘러 내려가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어두워지는 하산의 시간은 산을 오를 때와 사뭇 달랐다. 풍경도 호흡도 느끼지 못하고 줄곧 발밑만 보며 뛰다시피 걸었다. 하지만 서두를수록 쉽게 지쳤다. 산행은 백미터 달리기가 아니다. 오히려 마라톤에 가깝다. 나는 전환점을 늦게 돈 마라톤 선수처럼 뒤처지고 있었다. 아, 산행의 목적지는 산 정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정상은 도착점이 아니라 하프 지점인 것이다!
이윽고 해가 저물고 어둠이 빠르게 찾아왔다. 산속의 밤은 그야말로 칠흑 같았다. 핸드폰을 꺼내 발 밑을 비춰 보았지만 두세 걸음 앞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쩌자고 랜턴 하나 챙기지 않았을까. 눈앞이 캄캄한 짙은 어둠 속에서 걷는 일은 허공에 발을 내딛는 것처럼 느껴졌다. 등줄기가 오싹했다. 이렇게 암담한 길을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모를 두려움이 어둠보다 더 깊이 엄습해 왔다.
육안(肉眼)이 아니라 마음의 눈, 심안(心眼)으로 보라 하신 선지식들을 떠올렸다. 그 옛날 수행자들은 이런 어둠 속에서 어떻게 산중수행을 했을까. 추위는 또 얼마나 혹독했을까. 차원 높은 가르침보다 현실적인 고충들이 실감 나게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도 어둠은 점점 더 깊어갔다. 한참을 걸어 내려오니 울퉁불퉁 불안했던 바윗길이 어느새 평평해지고 있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걸음도 어느덧 차분해졌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멀리, 저 멀리 별처럼 불빛이 아른거렸다. 동화 속에 나오는 도깨비불이 그런 모습이었을까. 밤바다를 헤매다 만난 등대의 불빛이 그랬을까. 끝 모를 어둠 속에서 만난 문명의 불빛은 너무나도 환희로웠다!
백담사 도량의 불빛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절에 들어가 염치불구하고 방을 구했다. 행색이 딱했는지 따뜻한 데서 좀 쉬라며 안내하는 보살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똑같이 생긴 방문 앞에는 댓돌마다 등산화가 가지런히 놓였다. 문밖으로 새어 나오는 빛과 온기, 두런대는 목소리를 들으니 비로소 안도감이 찾아왔다. 방 안에는 이미 서너 사람이 묵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서 들어와 몸을 녹이라는 사람들의 손짓을 따라 이불 속으로 들어가니 방바닥이 따뜻하다 못해 지글지글 끓었다! 두 다리 펴고 누울 방만 있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는데, 기대하지도 않았던 뜻밖의 호사였다. 뼛속까지 덥혀주는 구들장의 열기에 온몸의 냉기가 쑥 빠져나가는 듯했다. 거추장스런 모자와 장갑, 겉옷들을 벗고 양말까지 벗었다. 잔뜩 긴장했던 등줄기가 어느새 노글노글해졌다. 어쩌다 이 밤에 내려왔냐고, 너무 고생했다고, 집처럼 편하게 누워 쉬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씩 건네는 사람들. 그때 알았다. 뜨끈한 구들방에서 한 이불을 덮고 모여 앉으면 아무리 초면이라도 오래된 지인처럼 금세 친숙해진다는 걸. 지쳐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건 그런 온기들의 힘이라는 걸.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딱 그때의 내 맘 같은 시, 나희덕 시인의 ‘산속에서’를 읽을 때마다 그해 가을의 봉정암 산행이 오버랩 되곤 한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한번 그 칠흑 같은 밤 속으로 야간 산행을 떠나고 싶은 무모함도 함께 스멀거린다. 그땐 다른 건 몰라도 성능 좋은 헤드랜턴 하나는 꼭 챙겨가야지, 하고 속다짐도 하면서.
사라져 가는 추억의 온기
날이 쌀쌀해질 때면 뜨끈뜨끈한 구들방이 그리워진다. 영혼까지 달궈주는 듯한 구들방에서 빈둥빈둥 하루를 보내고 나면 기나긴 겨울을 살아 낼 힘이 생길 것만 같다. 구들의 온기는 기름이나 가스, 전기 등등 여타의 난방 연료들이 내뿜는 열기와 질적으로 다르다. 나무가 타면서 뜨겁게 달궈진 구들장의 복사열로 방이 덥혀지고, 그 과정에서 방출되는 원적외선에 대해 알게 된 건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구들방이 떠오를 때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아마도 섭씨로 표시되는 ‘온도’가 아니라, 살을 부비며 함께 나누는 마음의 ‘온기’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였던 시절. 방학이 되면 할머니가 계신 외갓집에 내려가 며칠을 보내곤 했다. 서늘한 대청마루를 지나 방으로 들어가면 따뜻한 아랫목이 반겨 주었던 기억. 얇고 누런 종이 장판이 진한 갈색으로 잘 구워진 방바닥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아랫목은 늘 온기가 가시지 않아 음식을 따뜻하게 보관하는 일종의 보온밥솥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아궁이 옆에는 불쏘시개들이 쌓여 있었고, 장작 대여섯 개만 넣으면 밤새 따끈하게 잘 수 있었다. 해질 무렵이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이제 구들은 아주 오래된 전통 한옥이나 외진 시골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희귀해졌다. 하긴, 버튼 하나만 누르면 난방과 온수까지 해결되는 시대에 구들은 먼 옛날의 유물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다음 세대에는 구들이라는 말이 아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은 자연이 좋아 시골에 살면서도 자동차를 타고 기름이나 가스보일러를 가동하며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모순적인 현실의 벽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지, 편의를 위해 우린 낡고 오래된 것들을 너무나 쉽게 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더 늦기 전에 돌아볼 일이구나 싶다.
그 많던 구들장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쩌면 구들에 얽힌 추억과 더불어 사람을 살리는 그 온기까지 사라져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했던 것들, 사라져 가는 것들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견뎌야 하는 시간. 다시 겨울이다.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