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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두 칼럼에 걸쳐서 Property (Relationships) Act 1976, 즉 뉴질랜드 재산분할법 상으로 언제 어떻게 ‘부부관계’(사실혼 포함)가 정의되고 기본적인 재산분할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다루어보았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contracting out agreement, 즉 혼전 및 혼중 계약서에 대해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Contracting out agreement 은 뉴질랜드 재산분할법 21조에서 인정하는 절차입니다. 즉 양측이 ‘재산분할법이 적용되게 하지 말고 우리가 따로 합의하자’라고 하는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셨다면 들어보셨을 수도 있는 소위 ‘pre-nup’ (pre-nuptual agreement) 혹은 ‘post-nup’ 과 원리는 같습니다
결혼/사실혼 시작 전에 (혼전) 작성하던, 관계 중에 (혼중) 작성하던 법률 상으로는 똑같이 contracting out agreement으로 불리고 차이가 없습니다. 21A조에 의거하여 별거 후에 작성하는 separation agreement 만 표현을 살짝 달리합니다.
양쪽 부부가 거의 비슷한 재산으로 시작을 한다면 계약서 작성은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나눌때에도 똑같이 반반 나눠가져가면 깔끔할테니깐요. 다만 특정 재산은 특정인이 가져간다라고 하는 부분을 미리 동의해 놓는 등의 경우에 쓰임새가 있을 수 있을겁니다.
위와 달리 양쪽의 재산 차이가 클 때에는 재산이 많은 쪽에서 보통 계약서 작성을 요청해오는 경우가 종종 있을겁니다. 안그러면 무조건 반반 가져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불합리해지는 경우도 있으니깐요.
혼전/혼중 계약서가 유효하려면 아래와 같은 조건들을 맞춰야 합니다.
첫째, 서면으로 (in writing) 작성되어야 하고, 양측이 모두 서명을 해야 합니다.
둘째, 양측이 모두 독립적인 법적 자문을 받아야 합니다. 한 변호사가 양측에 동시에 조언을 줄 수 없습니다. 예를들어 부부가 공동으로 집을 사려고 할 때 conveyancing을 맡아주신 변호사님께서 혼중계약서 쓰라고 추천을 해주실 수는 있지만, 그 변호사님께서는 양쪽이나 어느 한 쪽에도 재산분할에 관한 조언을 주시면 안되고, 두 부부에게 각각 다른 변호사를 쓰라고 추천을 해 주셔야 합니다.
셋째, 양측의 서명이 각각 변호사에 의해서 목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각각 자기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그 앞에서 사인을 하는게 일반적이고, 판례로 확실히 정해진 건 아직은 없지만 요새같은 전자시대에는 비디오톡 등을 이용하여 얼굴을 본 후 전자사인을 넣는 것도 유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절차나 합의내용 자체가 합리적이라면).
넷째, 각각 변호사도 “자기 고객에게 계약서의 효력과 영향에 대해서 설명했다”라고 인증하며 사인을 해야 합니다.
위와 같은 조건들 때문에, 그리고 특히 회사나 Family Trust를 소유했다거나 다른 이유로 재산이 복잡한 경우에는, 당사자끼리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보다는 변호사를 찾아가서 작성부터 부탁하게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계약서 해석이나 효력에 의문이 생기거나 적용되는 범위에 구멍이 나있거나 (소위 loophole) 한다면 가정법원 판사들은 빈틈에 대해서 가차없이 법을 적용시키기 때문에, 변호사를 통해서 빈틈없이 꼼꼼하게 작성하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A가 집도 해오고 기여한 재산도 많은데 B는 재산 한 푼도 안가져왔으니까 나갈 때에도 한 푼도 못가져간다’라고 계약서를 작성하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B의 변호사라면 위 ‘둘째’ 조건에 의해서 사인을 거부함으로써 계약을 무효화시키겠지만, 만약에 B가 A의 협박이던 기타 이유로 또 다른 변호사를 찾아갔더니 사인과 인증까지 해버렸다면?
그 경우에도 21J조에 의거하여 B는 나중에 (보통은 별거 후에 하지만 관계중이라도) 가정법원에 혼전/혼중계약서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가정법원 판사는 아래 여러가지 요인들을 고려하여 serious injustice, 즉 계약서가 심각하게 부정, 부당, 불공평하다고 판단하면 계약서를 통채로 취소시키고, 법이 통채로 적용되도록 만들겁니다:
• 계약서 조항들(과 그 안에 작성된 문구들)이 어떠한지
• 계약서 작성으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 (많이 흘렀으면 흘렀을수록 취소시키기가 어려워지긴 합니다)
• 계약 당시에도 불공정/불합리 했는지
• 계약 이후 상황이 변해서 불공정/불합리하게 변했는지
• 당시에 양측 당사자들이 계약을 함으로써 확실성을 원했다는 점
• 기타 법원에서 관련된다고 판단한 요인들
2000년대까지는 사실혼이 적용된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가정법원이 21J조에 의거하여 쉽게 계약서들을 취소시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계약서들도 많이 작성들을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 계약서를 연달아 취소시키기 시작한 판례들이 나오면서 얘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에 B라는 분이 A와 함께 오랜생활 가정에 충실하며 생활비를 벌어들이고 같이 썼다면, 혹은 집안일과 자녀양육에 집중하면서 A가 ‘바깥일’에 집중할 수 있게 조력했다면, 혹은 A가 가져온 집이나 다른 재산을 개선시켰다면, ‘한 푼도 못가져간다’라는 부분은 심각하게 불공평하다고 고려되어 계약서가 통채로 취소되고 법이 적용되어 반반 가져가게 되는 확률이 꽤 높아보입니다.
그럼 이렇게 취소될 수도 있는 혼전/혼중계약서는 애초에 작성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왜 이렇게 열심히 설명하고 앉아있냐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취소될 수도 있다’는 거지, 모든 경우 취소된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재산분할법 상으로 인정한 절차 자체를 무효화 시키는거나 다름없으니깐요. 오히려 저는 계약서 작성을 추천드립니다. 합리적으로 동의된 계약서는 긴 소송과 변호사비용을 아낄 수 있게 해줄테니깐요.
법이랑 똑같은 내용으로 작성할게 아니라면 (그럴거면 만드는 의미도 크게 없겠죠..) ‘100% 취소안되는 계약서다’라고 하는건 없을테니, 대략 (1) 한푼도 못 가져가는 것과 (2) 반반 가져가는 것의 중간 어디쯤으로 합의를 하면 적절하지 싶습니다. 예를들어 혼전에 발생한 재산들은 혼전가치를 따져서 한쪽의 재산으로 정해두고, 그 이후에 증가된 재산들은 전부 반반으로 나눈다 이런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A의 집이 결혼당시 순 가치 (value 에서 mortgage 금액 뺀 것)가 90만불이었다, 그러면 90만불만큼은 별거 이후에 A의 소유로 해두고, 그 이후의 증가분은 전부 반반 나누는 것으로 한다던지요. 그 정도도 재산을 나누고 싶지 않다면 아예 관계를 시작하지 않는게 제일 깔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