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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문사 승가대학>
끼니의 힘은 세다. 단지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한, “무엇무엇‘이나’
먹을까?”라는 문장에서는 담기지 않는, 다른 이를 위해 마음을
다해 준비한 음식. 그런 밥상만이 갖출 수 있는 힘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끼니는 혀에서 올라오는 맛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맛을 갖춘다. 사찰음식이라는 단어에 함의된,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또 다른 면모일지도 모른다.
조왕전 앞에 서서 올리는 기도
늘 그렇듯 사찰의 아침은 새벽 4시부터 시작한다. 산문이 열리고 법고가 울린다. 차례대로 사물이 한창 몸을 울려 어두운 사위를 밝히는 동안 스님들은 줄을 맞춰 부처님 전으로 향한다. 그리고 시작하는 새벽예불. 태양이 오르기 전 세상을 깨우는 이 새벽예불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다. 딱 이 자리. 운문사에서 그랬다. 청도의 깊숙한 안쪽에 자리한 이 사찰은 승가대학이 있는 곳. 갓 출가한 이들이기에 그랬을까. 목탁이 끌어가는 장단에 올라탄 예불소리가 그렇게 간절할 수가 없었다. 청아한데 비장하다.
사찰 안쪽과 내가 살던 세상은 서로 다른 두 세계지만, 이 자리에서 인연이 맞닿아 서로가 감응하는 느낌이었다. 듣는 동안 마음이 자르르 울리고야 만다. 처음 이 모습을 보았던 그 새벽의 여운을 잊을 수가 없다. 정갈하고 간결하다. 군더더기 따위는 일절 없이 오로지 마음이 실린 사람의 목소리가 듣는 사람의 감정을 뒤흔든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교수는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산사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운문사의 답사는 반드시 새벽예불을 관람하거나 참배는 하는 음악이 있는 기행으로 엮어야 제 빛을 발하게 된다. 그것이 힘들다면 저녁예불이라도 보았을 때 운문사를 답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보았다면, 들었다면 동의할 수밖에 없는 구절이다. 물론 세상은 변했다. 250명, 300명씩 가득 들어차 있던 학승은 이제 50명 남짓이다. 그만큼 출가를 결심하는 사람이 적다. 그러나 소리에 실리는 힘은 50명이든 300명이든 별반 차이가 없다.
세상이 변했어도 삭발염의의 길로 들어서 출가의 문을 연 사람의 마음은 이렇듯 똑같다. 새벽예불은 사찰 내 모두가 참석해야 하는 의식이지만, 예외를 둬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후원, 그러니까 흔히 ‘공양간’이라 부르는 공간에서 밥을 지어야 하는 소임을 맡은 이들이다. 절의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부분은 좀처럼 생각지 못한다. 새벽예불이 끝나면 대중은 곧 아침 공양을 해야 한다. 시간을 맞추려면 소임자는 새벽예불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갈 수도 없다. 모두가 목 놓아 기도를 하는 사이, 이들은 불을 켜고 나물을 손질하며 국의 간을 맞춘다. 그 새벽에 잠시나마 할 수 있는 건 어느 정도 음식이 완성되었을 때쯤, 조왕전에 들어가 기도를 올리는 것뿐이다. 후원의 모든 일을 진두지휘하는 원주 소임을 받은 서준 스님은 5분 남짓 조왕전에 머문다. 기도 내내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어떤 기도를 하셨나요?” 서준 스님은 슬쩍 쳐다 보더니 수줍게 웃으며 답했다.
“후원에서 함께 음식 만드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혹여 마음 상하는 일이 없었으면 해요. 또 내가 만드는 이 음식으로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합니다. 매일 그런 마음을 담아서 기도를 해요.”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
음식이란 무릇 그런 존재다. 끼니를 때운다면 방편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마음을 담으면 몸이 버틸 영양분을 공급하는 동시에 마음을 위로하며 살찌우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이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은 이타적이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칼을 든다. 이것은 후원의 소임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바뀌지 않는, 바뀌지 말아야 할 단 한가지이기도 하다.
공양 시간까지 주어지는 준비 과정은 불과 두 시간 안팎이다. 그 사이에 식재료를 다듬는 것부터 시작해 익히고 간을 해서 완성한 것을 그릇에 담아낸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달라붙어도 그 시간은 언제나 풍족할 리 없다. 더구나 만들어야 할 음식의 종류는 평균 8~10가지. 토요일 저녁은 9가지를 만들어야 했다. 잡곡밥을 안치고 다시마를 넣어 물을 끓이면서 무콩나물국의 밑작업을 시작한다. 미리 2년 묵은 김치도 불 위에 올린 뒤 자작하게 채수를 부어서 익히기 시작했다.
두세 가지 반찬만 내어 먹는 일반 가정집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때로 버거울 지경인데, 사찰 후원의 소임자는 8~10가지의 음식을 하루 세 번씩 매일 만들어 낸다. 그러니 손이 빠르다. 과정에서 확연하게 느끼는 건 조리법이 복잡하지 않다는 것. 원래 한국의 음식이 그렇다. 세상 모든 요리사가 입 모아 얘기하는 한 가지가 있다. 가장 훌륭한 요리는 좋은 식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 것이라고. 사찰음식이 딱 그렇다. 간결하다. 그래야만 재료의 맛이 산다. 다른 점이라면 식재료를 알뜰하게 사용한다는 점이다. 다이닝 같은 곳에서 내는 요리는 필요한 부분만 골라 쓰고 나머지는 버리기도 하지만, 사찰은 그런 일이 없다. 다시마로 국물을 낼 때도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건져낸다. 그렇지 않으면 쓴맛이 난다는 게 이유다.
운문사에서는 반대다. 끝까지 푹푹 끓인다. 진이 다 빠질 때까지 삶는다. 혹여 조금이라도 더 쓸 수 있어 보이면 건져낸 걸 다음에 또 사용한다. 원래 음식이라는 건 남의 생명으로 나의 생명을 연장하는 수단이다. 다시마 역시 생명이었으니 그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음식 만드는 출가자가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다른 생명을 취하는 게 헛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다. 한참을 우린 국물이 갈색으로 변하면 여기에 채 썬 무와 콩나물을 넣는다. 그게 끝이다. 장황하고 복잡하지 않다.
흔히 강된장이라 부르는 걸 이곳 운문사 후원에서는 빡빡장이라 이른다. 잘게 썬 무, 감자, 호박을 볶다가 된장, 고추장을 넣는다. 다른 절에서는 볶지 않고 채수를 부어 바글바글 끓이며 졸이는게 일반적인데, 여기는 살풋 볶은 후 쌀뜨물을 넣어 양을 늘리고 점도를 잡는다. 원주스님이 쌀뜨물 부어 마무리하는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
미리 손질해 둔 우엉잎은 살짜기 쪄서 낸다. 서준 스님은 쌈으로 쓰는 채소 중에 우엉잎이 제일 고소하다고 했다. 찐 우엉잎 몇 장을 집어 만져보고 맛을 본다. 빡빡장을 싸서도 간을 본다. “잘 익었어요.” 그리고는 쌈을 하나 다시 싸서 건넨다. 너무 무르지 않고 지나치게 억세지도 않다. 잘 씹히고 금세 녹는다. 처음에는 고소한 향이 일어나더니 뒤로 갈수록 쌉싸래한 맛이 입안 전체로 퍼진다. 쓴맛은 밥맛을 살린다. 그 뒤를 곧장 묵직한 된장의 향이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약간은 칼칼한 맛도 살아 있다. 잘 다진 채소는 씹는 식감을 적절히 보완한다. 이 정도면 입맛 없는 사람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도록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절에서 매일의 식단을 짜는 방법
주어진 시간은 늘 빠듯하다. 요리라는 일이 언제나 그렇다. 여유 있게 끝나는 법이 없다. 음식을 내어가기 무섭게 먹을 사람이 줄을 선다. 항상 주린 배가 음식을 내는 손길보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탓이다. 천천히 한 명씩 지켜보고 음식이 모자라지 않게 조절을 해 주면서 다른 이가 공양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후원 소임자는 비로소 한숨을 돌린다.
이렇게 빠듯한 일상에서 매일 세 끼의 음식을 정하는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아무렇게나 구성해서도 안 될 테고, 나름의 기준도 갖춰야 할 텐데.
서준 스님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나지막하게 설명을 시작한다.
“규칙이 있어요. 두부가 나오면 나물은 잎 채소로 나가야 합니다. 영양소의 보완을 생각하는 거예요. 두부가 없으면 뿌리 채소를 준비합니다. 그래야 속이 든든하니까요. 이도 저도 안 되면 요즘은 치즈를 내기도 합니다. 콩장이나 견과류 조림을 하기도 하고요. 단백질을 언제나 챙기는 거죠. 날이 흐리거나 쌀쌀하면 갱죽이나 갱떡국을 준비하고요. 몸살이 올 때나 추울 때는 이게 열을 올려주거든요. 이런 식으로 날씨도 미리 살펴서 메뉴를 짜야 해요.”
못해도 3일 전에는 이렇게 식단을 구성한다. 날씨는 급격하게 바뀌기 때문에 그 이상은 무리다. 운문사가 있는 곳이 산 한복판이라 기후 변화는 더 복잡다단하다. 이걸 일일이 맞춰가며 대응하는게 후원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다.
식단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귀가 번뜩하는 음식도 있었다. 갱죽, 갱떡국이다. 이건 전형적인 경상도의 향토음식이다. 과거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경상도에서 많이 해 먹던 것. 김치를 넣어서 끓이는 음식이다. 이걸 갱죽, 갱시기죽이라고 부른다. 떡국에 김치를 넣고 끓이면 갱떡국이다. 이런 향토색이 경북의 사찰인 운문사의 후원에도 스며있다.
이튿날 점심공양으로 수제비가 나간다기에 혹여 이런 식으로 김치를 넣을까 기대를 품어봤다. 하지만 맑은 국물의 일반적인 수제비라고 했다. 수제비를 만들기 위해 후원에서는 새벽 5시 반부터 반죽을 만들어 세 시간쯤 냉장 숙성을 했다. 오전 10시부터는 반죽을 오래 치대고, 공양을 시작하기 한 시간 전부터 반죽을 뜯어서 수제비를 끓였다. 오로지 정성이다. 수제비가 간단하게 만들어 먹는 음식이라는 말은 여기서는 맞지 않다.
또 한 가지 눈에 들어온 건 만두다. 만두를 구워서 낸다. 사람들은 만두에 ‘당연히’ 고기소가 들어갈거라고 생각한다. 시중에 파는 것에 익숙해진 결과다. 사찰에서 만두를 먹는다고 하면 눈초리를 치켜 뜨는 이유일 게다. 그러나 만두는 소를 밀가루 피로 감싼 것에 불과하다. 채소만 넣는다고 해도 절대 이상한 게 아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부산의 한 가게가 채식만두를 만들어 공양한다. 고기 대신 들어간 건 두부와 버섯, 그리고 땅콩이다. 심지어 땅콩의 입자를 굵게 빻아서 아작아작 씹히는 맛을 살렸다. 땅콩 특유의 고소함이 더해지니 흔히들 말하는 이 가게만의 ‘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만두는 사찰에서 찾아낸 별미 중 별미다.
이 모든 과정에서 엿보이는 건 배우는 사람, 승가 대학에 입학한 학승을 위한 마음이다. 원주를 비롯해 별좌의 소임을 맡은 스님까지 모두가 겪어 온 시간이기에 학승의 속내를 잘 안다. 시기마다 무엇이 힘들고 필요한지도 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마음을 놓지 않도록 기도를 올리고 음식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마음이라는 이름의 조미료
오해는 금물이다. 스님이 먹는 음식은 무언가 특별할 거라고 뭇사람은 기대를 품지만, 그렇지 않다. 특별한 것이 없다. 그저 주어진 식재료를 허투루 쓰지 않을 뿐. 마음을 다해서 조리할 뿐. 그래서 소박하다. 그 소박함에 더해진 것이 마음이라는 조미료다. 그래서 먹는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그게 특별하다.
사찰음식의 본질을 두고 불교계 외부의 일부 미식평론가는 “기존의 한식이나 왕실 음식과 비교해서 다를 것이 없다. 지나치게 사찰음식을 신비로운 눈길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일부는 수긍할 구석이 있는 이야기다. 사찰음식은 레시피에 특별함이 있는 분야가 아니다. 반대로 사찰이라는 환경이 오랜 시간을 들여 층층이 쌓아놓은 면모에서 다른 분야의 음식과 차별화를 이루는 구석이 있다. 그중 하나가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먹는 이의 마음 자세를 규정하고 이를 최대한 증폭시키는 체계다. 「공양게」는 그런 특징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아주 짧은 이 문구에 깃들어 있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와 철학은 운문사의 후원에서도 확연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두 시간 만에 끓여낸 수제비 한 그릇, 배추겉절이, 오이미나리무침, 김치찜, 빡빡장에는 꼭 필요한 것만 넣어서 맛을 냈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먹는 이로 하여금 일말의 부담이 없는 상태의 간이다.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후원의 소임자는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짓는’ 경지의 마음가짐을 유지한다. 사이사이에는 먹는 사람을 배려하는 여러 고민도 들어 있다. 무를 조각내는 크기, 샐러리를 씻는 손길, 차곡차곡 쌓아서 쪄내는 우엉잎의 모양까지. 그 모든 과정에서 자식을 위해 밥을 짓던 예전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생명 대하는 태도서 전통을 보다
실상 소임자의 마음가짐도 따뜻한 아랫목까지 밥상을 손수 날라주던 어머니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갓 출가해서 배우는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 아프지 않게 그네가 하루의 공부를 이어가고 4년의 과정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국을 퍼 주는 서준 스님의 손길과 그걸 받아 가는 학승을 바라보는 눈길에도 그 마음이 담겨 있다. 지켜보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승가대학 안에서 형성된 처음 시작하는 사람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 사이의 라포(rapport)는 다른 어떤 종교, 세계 어느 사회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각별하다.
음식을 받아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학승에게서도 진중한 고마움이 깃들어 있다. 갓 출가한 사람이 이제 막 입학해 습의도 하기 전이라 발우공양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발우공양이야말로 사찰음식의 정수라 할 수 있지만, 그 핵심은 음식에 담긴 인연,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발우가 없어도 발우공양의 태도는 지닐 수 있다. 묵언 속에, 밥알 하나 남김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음식을 싹 비우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발우 없는 발우공양을 본다.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지그시 눈을 감고 이 모든 음식의 맛을 음미하는 학승. 그의 얼굴에서 감사함으로 충만해지는 표정을 읽는다.
2024년의 사찰음식은 운문사 후원 안에 이렇게 살아서 이어지고 있었다.
■ 호거산 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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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