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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영혼이 다시 그대를 만나게 하라.
그것은 그대의 잊혀진 신비와 다시 가까워지는 멋진 일이다.’
켈트족의 격언이 전하는 삶의 신비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자칫 눈을 돌리면 사라져 버리고 마는 어린아이를 지키듯
내 안의 영혼과 손을 잡고,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전현주 씨가 홀로 떠난 이 겨울의 산사 여행은 그렇게 신비로 가득하다
우연처럼, 인연처럼
“아마 10년 전 겨울 즈음이었을 거예요. 법주사 템플스테이를 다녀온 친구가 이곳의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어요. 운 좋게 오랜 보수공사를 마친 팔상전의 가림막이 내려지는 순간을 보았는데, 너무나 아름다워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고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곤 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정말 이곳을 찾게 되었네요.”
작은 배낭을 메고 숲길을 따라 걷는 전현주 씨의 이야기에는 곧 당도할 목적지에 대한 작은 추억과 설레임이 담겨있다.
오늘 그녀가 찾아 선 곳은 충북 보은의 천년고찰 법주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속리산의 보물이라고 전해지는 이곳은 그야말로 눈길, 발길 닿는 곳마다 자연과 전통의 아름다움이 배어 나오는 명승지다. 그만큼 찾는 이들도 많아 법주사로 향하는 숲길에는 삼삼오오 무리 지은 관광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 전현주 씨의 여정은 여느 관광객들과는 조금 다르다. 누군가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걸음의 속도를 애써 조절할 필요도, 동행자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추고자 숲의 소리를 놓치지 않아도 좋다. 그녀는 오늘 오롯이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한 참이니까. 왁자한 사람들의 곁을 지나, 조금 더 고요한 샛길로 들어선 그녀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섰다. 사람들의 목소리 대신 속삭이듯 흐르는 겨울 산의 물소리가 귀를 어루만진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그녀의 걸음걸음.
수령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송림(松林)이 줄지어 선 ‘세조길’은 임금을 보위하듯, 홀로 걷는 여행자를 무사히 법주사로 인도한다. 이윽고 속세와 도량을 가로지른 고적한 돌담 저 너머로, 황금 대불과 팔상전의 존재가 드러났다. 오래전 친구에게 전해 들었던 팔상전의 아름다움이 눈앞에 실제 하는 순간이다.
“한번도 와보지 못한 곳인데도 오랜 시간 그리워했다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까요? 하지만 늘 이 순간을 그려왔어요. 꼭 만나야 했던 누군가를 만난 기분인걸요.”
하염없이 담장 안의 법주사 도량을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발걸음을 재촉해 템플스테이 체험관으로 향한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법주사의 세계로 들어서기 위해, 아니 오롯이 홀로 만나게 될 아름다운 이 여행을 위해.
시작은 가장 아름다운 인사!
“반갑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법주사 템플스테이 이순남 팀장의 단정한 인사가 낯선 여행자를 반긴다. 법주사로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은 바로 체온 체크! 몇 번이고 온도를 재고, 꼼꼼히 기록하는 담당자들의 손길이 바쁘다. 산문 밖의 세상에선 방역수칙의 빗장이 되려 허술한 때, 속리산 해발 350m의 산사에선 그 단순한 원칙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원칙은 비단 방역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법주사는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선택한 참가자라도 오리엔테이션과 사찰 안내 시간만큼은 꼭 참여하길 권한다.
“법주사는 천혜의 자연, 또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릴 만큼 도량의 모든 것이 국보와 보물, 문화재로 가득합니다. 먼 길 오셔서 머무는 분들인데 법주사 템플스테이가 가진 장점과 귀한 것들은 다 전해 드려야지요.”
템플스테이팀장의 이야기에는 사찰에 대한 자부심과 맞이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모두 담겨있다. 잠시 후, 한자리에 모인 이날의 참가자들에게 그녀는 불가의 정신을 쉽고, 단순하게 전하는 것으로 법주사 템플스테이의 문을 연다.
“지금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사를 알려 드릴게요. 손과 손을 맞닿도록 모아 보세요. 이렇게 너와 내가 하나 되는 것을 합장이라고 합니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닌 존재, 그리고 다 같이 한번 말해볼까요. 나마스테! 법주사에 오신 귀한 여러분을 다시 한 번 환영합니다.”
낯선 공간,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잠시 긴장해 있던 전현주 씨도 그제야 곁에 앉은 이들에게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넨다.
내 안의 나와 세상에 온통 가득한 또 다른 나와 마주하는 시간. 혼자여도 외로울 수 없는 이유를 나마스테, 한마디의 인사에서 찾는다.
선물을 받았습니다!
법주사 템플스테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시간 중 하나인 스님과 함께 하는 산책이 시작됐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500년 역사의 대가람을 걸으며 스님께 듣는 법주사 이야기는 그야말로 마르지 않는 샘과 다름없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까지 많은 임금이 찾았던 법주사는 가장 번성했을 때 절에 머무르는 스님만 3,000명이 넘는
대찰이었다고. 그 시절을 증명하듯 지금껏 경내에는 무게 20톤에 달하는 철솥과 쌀 80가마를 채울 수 있는 대형
화강암 석조가 묵직하게 남아 있다. 국내에서 유일한 목조 5층 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 신라 시대 대표적 석등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신라 시대인 8세기에 조성된 석련지(국보 제64호), 높이 5m에 이르는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까지 연신 감탄하다 보면 어느덧 뉘엿뉘엿 저무는 해가 경내를 오묘히 감싸 안는 시간이다.
전현주 씨는 스님의 설명이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팔상전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아무리 보고 있어도 이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천년 전에도, 그 이전에도 이 자리
에서 누군가 저처럼 이 모습을 바라보며 감동을 받았겠지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
이 들어요.”
사찰 안내를 통해 법주사의 옛 모습을 만났다면, 템플스테이 팀장이 이끄는 싱잉볼 명상은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울림을 전한다.
‘노래하는 그릇’이라는 뜻의 싱잉볼 명상은 가장 편안한 자세에서 그저 소리의 파동에 자신을 맡기는 것. 싱잉볼
명상 전문가이기도 한 이순남 팀장이 7개의 백수정 싱잉볼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놀랄 만큼 크고 아름다운 소리가 온몸을 진동시킨다. 고대의 수행법이자 치료 도구이기도 했던 싱잉볼의 노래가 모두의 몸과 마음을 맑게 정화시키는 순간이다.
30분의 명상 시간이 끝난 후, 그녀는 개운해진 얼굴로 웃는 참가자들에게 환한 미소로 축복의 말을 전했다.
“여러분, 제 선물을 받으시겠습니까? 그건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 이 순간 함께 있는 당신입니다. 우리 주변엔 들리는 것, 들리지 않는 그 모든 것과 어우러져 보세요. 하루에 단 5분이라도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세요. 오늘의 가장 귀한 선물인 당신을 위해.”
숙소로 향하는 길, 전현주 씨는 명상 시간을 복기하며 상기된 얼굴로 감사 인사를 전한다.
“감은 눈 너머로 오색찬란한 빛이 변화무쌍하게 너울거렸어요. 곁에 있는 사람의 숨소리마저 음악처럼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혼자 온 여행에서 누군가에게 정말 큰 선물을 받았어요.” 깊은 밤, 밝게 웃는 그녀의 머리 위로 수정 같은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멀리 가는 만큼 많은 것이 보인다
이튿날 새벽, 전현주 씨는 어스름한 경내를 한참 걷고, 또 걸으며 아침을 맞이했다. 이윽고 떠오른 해가 법주사를 오롯이 채우자 속리산 수정봉으로의 산행이 시작된다.
수정봉은 일반인에게는 입산이 금지된 구역으로, 법주사 스님들과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만 허락되어 더욱 특별하다. 쉬엄쉬엄 걸으면 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해발 550m의 바위 봉우리. 속리산의 기운이 시작된다는 곳으로, 정상에 도착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거대한 거북 모양의 바위가 고요한 숲속에 잠들어 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수정봉에 올라선 전현주 씨는 속리산에 내려앉은 운무에 감탄하며, 거북 바위에 소원을 빈다.
“오늘 새벽 경내를 걸을 때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나홀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순간이었어요. 혼자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경내를 거닐던 때, 불 켜진 한 전각의 반만 열린 문 사이로 불상이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회색인 세상의 틈 사이로 금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어요.” 그 찰나의 순간, 전현주 씨는 일상으로 돌아간 뒤의 작은 바람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순간, 그때가 지나니 오히려 작은 변화가 크게 느껴지더군요. 빛도, 소리도, 제 숨소리 조차도요. 정적인 것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새해에는 반복되는 일상에 쉬이 지치지 않고, 그렇게 즐거움을 찾고 싶습니다.”
산을 내려 온 전현주 씨는 법주사 도량과 이어진 천연의 솔숲인 세조길로 또 한 번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멀리 가는 만큼 많은 것이 보인다.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소중한 시간, 홀로이기에 더욱 충만한 그녀의 여행을 응원한다.
보은 법주사(報恩 法住寺)
충북 보은에 자리한 법주사는 속리산의 품에 안긴 천년고찰로서 천혜의 산세와 아름다운 문화유산, 풍부한 역사 속 이야기로 유명하다. 600년 전 세조가 걸어간 길을 따라 조성된 ‘세조길’은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원시림처럼 우거진 아름다운 숲길로서, 법주사 계곡을 지척에 두고 조성되어 더욱 청량하다. 세조길 뿐만 아니라 속리산 공용 주차장에서 법주사 경내 이르기까지 사찰 인근의 전 구역이 평탄하고, 잘 닦여져 노약자들이 걷기에도 좋다.
법주사 템플스테이의 인기 프로그램으로는 한 시간 반에 걸쳐 진행되는 능인문화원장 혜우 스님의 법주사 산책과 싱잉볼 명상(주말 운영), 그리고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만 특별히 문이 열리는 속리산 수정봉 등산. 스님의 풍성한 역사 지식과 입담으로 역사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도 뜨거운 호응을 받는 법주사 안내, 수정봉 위에서 만나는 싱잉볼 명상 또한 참가자들에게 두고두고 회자 되는 힐링 프로그램이다. 이 밖에도 사물소리 명상과 신청자에 한해 진행되는 108배도 함께 체험할 수 있다.
■ 보은 법주사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043-544-5656 I www.beopjusa.org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