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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그 날이라고 평범한 일상을 투정했던 날들이 있었다. 비젼 없는 삶이 나름 따분하다는 불평이었다.
그게 바로 한치 앞을 모르는 어리석음이었다. 세월앞에 오는 변화가 어떤 것인지 깨닫지 못한 자만. 그렇게 제자리 걸음으로 있어준다는게 얼마나 축복인지 헤아리지 못했던건 건강을 과신한 때문이었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세월 붙들어 두는 장사는 없으니 속수무책. 그동안 많이 써먹은 기계가 다 낡아서 여기저기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빨간불 신호가 쉴새없이 바쁘게 울려댄다. 어디로 데려가려는지 . . .
이제 남은 인생중에 오늘이야말로 제일 젊은 날 인걸 절실하게 실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운동신경이 둔해도 걷는 것 하나만은 자신 있었는데 그 가볍던 다리가 천근으로 무겁다.
‘누죽걸산’이란 말이 떠올랐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노인들에게 경고를 먼 훗날의 이야기로 들었다.
이제 때없이 침대곁으로 다가가는 스스로가 민망스럽다.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려고 애를 쓰지만 번번히 지고만다.
바야흐로 누죽을 향해 돌진하는 꼴 이잖은가. 누워봐야 편할리가 없다. 가슴속에 꿈틀대는 알지못할 분노 때문이다.
그러려면 차라리 일어나야지.
주섬주섬 옷을 찾아 걸치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럴만한 기운이라도 있다는게 그나마 고맙다.
뻐근하게 땡겨오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보려고 다리에 힘을 준다. 쳐지려는 어깨를 추스르며 고개도 힘껏 추켜세운다.
자꾸만 앞으로 굽어지는 몸을 펴려고 노력을 해 보지만 힘이든다. 문득 거울속에서 만난 내 모습에 기겁을 했다.
통증으로 부대끼는 동안에 내 몸은 서서히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아뿔사! . . .
보폭도 줄어들어 아장아장 아기걸음이 되었다. 힘껏 팔을 휘두르며 다리를 벌려 보폭을 늘려본다. 그 노력이 보잘것없는 힘에 눌려 오래 갈리가 없다. 그렇게 늙어가는 거라나. 내 나이에 맞다는 손녀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래 많이 살아왔음을 수긍해야지.
썰물처럼 학생들이 빠져나간 빈 교정은 고요롭다못해 적막하다. 스산한 겨울바람이 몰고온 젖은 낙엽들만 바쁘게 굴러다닌다. 그 한 귀퉁이에서 내려다 보이는 드넓은 그라운드. 빗물에 씻긴 붉은 바닥에 하얀 라인이 너무도 선명하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갔을까? 싱그러운 풀밭엔 흰 갈매기들만 한가득 모여앉아 잔치라도 벌이는지 . . .
이 겨울을 빨리 떠나보내고 싶다.
아직 학생들 체취가 남아있는 빈 벤치곁을 서성인다. 아득한 옛일처럼 지난날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른 저녁시간 집에서 나서면 10분 거리다. 이렇게 좋은 장소가 가까이 있어 기분전환을 할수 있다니 행운이다.
흰구름이 노니는 짙은 청색의 드넓은 하늘이 조화롭다. 초록이 술렁이는 바람끝에 나무들. 큰 숨쉬기 몇번으로 바짝 조여졌던 가슴 한귀퉁이가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열린 너른 마당엔 언제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힘차게 걷고 달린다. 수년을 나도 그들과 똑같이 힘있게 걷던 장소였다.
내 집 문을 열듯 펜스에 고정된 고리를 벗기고 성큼 운동장 안으로 들어선다. 젊은이들 만의 세상속으로 겁없는 진입이었다.
길게묶은 머리채를 날리며 팔을 휘젓고 달리는 자매소녀가 제일먼저 눈에 들어온다. 입구 한켠에 아예 두툼한 자리까지 깔아놓고 쉬며놀며 지치지도 않고 달리는 그 애들.
언니에게 지지 않겠다는듯 거친 숨소리를 내며 내달리는 동생애가 늘 안쓰럽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힘들어 곧 쓸어질 것 같아 보기만도 불안했다. 언니보다 저만치 뒤떨어졌어도 끝까지 견디어내는 악바리 근성의 대단한 아이다. 두어살쯤 위로 보이는 언니는 길게 뻗은 다리로 성큼성큼 시원하게 잘 달렸다. 그 애는 언니와 생김부터 다르다는걸 알기나 하는지 . . .. .
동양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중국인 소녀였지만 내 손녀들 같았다. 쵸코릿이라도 쥐어주며 힘내라고 등두드려 주고 싶은 간절함은 어쩔수 없는 할머니 마음일터.
야구모자를 돌려쓴 그 애들 엄마는 40대 쯤의 가녀린 여인이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얼른 외면을 한다. 내가 먼저 다가갈 주변까지는 없으니 영원한 이방인 이다. 그렇더라도 자녀들 훈련 시키는 모습은 수준급이어서 느끼고 배우는게 있다.
너른 잔디 운동장 안에는 두 팀이 벌써 배구를 하고 있다. 한쪽에선 붉고 푸른 헝겊 쪼가리를 반바지곁에 펄럭이며 볼을 향해 뛰고있다. 편을 가른 럭비팀 소년들의 한판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열띤 경기에 불끈 손아귀에 힘이 주어졌다.
맨 뒤쪽 한 귀퉁이에 키가 훌쩍 큰 청년, 중학생 또래의 소년들이 뛰고 있다. 그 속에 어려도 너무 어린 아이가 함께 섞여 있다. 작은 몸이 짧은 다리로 종종걸음을 하며 이리달리고 저리 뛰어다닌다. 형아들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제 발이 꼬여 엎어지기도 잘 하지만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다시 뛴다. 멀찍이 앉아서 봐도 큰 애들 숲을 헤치고 뛰어다니는 꼬마애가 장애물처럼 눈에 들어온다. (저 꼬마는 왜 저기 들어가 휘젓고 다닐까? 방해가 될텐데) 일곱 여덟살쯤, 연령 제한이 없는 자유로운 팀인 모양이었다. 수도없이 넘어져 아프기도 할텐데 아이답잖은 패기가 제법 대단했다. 어른들이 시켜서가 아니고 제가 하고 싶어 하는게 맞을 것 같았다.
제 앞으로 볼이 굴러오면 잡아보려 뛰어가지만 형들이 번개같이 채간다. 아이는 깡충거리다가 날아간 볼을 바라보며 손뼉을 치면서 숨돌릴새도 없이 또 내달린다. 장대밭에서 어린애 노는게 그리도 깜찍하고 재미로울 수가 없다.
절로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진다. 코미디 쇼를 한컷 보면 이보다 더 재미있을까?
저 아이는 나중에 틀림없이 큰 선수가 될꺼야. 성공한 선수들은 거의가 어려서부터 시작을 했다고 한다. 미래의 유망주로 기대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주 먼 훗날, 어린 날의 지금 이야기를 한편의 추억 영상으로 떠올릴지도 모르겠지.
라인코스에서 단거리를 뛰는 사람들은 정말 총알처럼 빠르다. 뛰는게 아니라 튀는 것 같은 느낌이다. 20 전후의 패기가 참으로 부럽다. 개미 쳇바퀴돌듯 끊임없이 달리는 사람들은 티셔츠가 흥건히 젖어있는 조금 연장자들이다. 더 나이들은 사람들은 걷는데 나도 그 중의 한사람이다. 나보다 더 연장자는 없는것 같다. 그라운드에 찍힌 내 발자취가 자랑스럽다.
꼬마 아가씨들의 무용팀도 내 호기심의 대상이다. 나비 날개같은 가벼운 핑크색 치마를 걸치고 사뿐사뿐히 동작을 하는 다섯명의 꼬마 아가씨들, 무대도 아닌데 왠 의상까지 . . . 거친 운동장에 이색적으로 피어난 꽃송이들 같아 특이했다.
지도하는 선생님의 몸동작은 정말 예술이었다. 아이들은 커다란 풍선을 가지고 묘기를 부리듯 돌리기를 했다. 조금 큰 애들은 곧잘 따라했지만 맨 꼬마는 언니들처럼 되질않는다. 열심히 흉내는 내지만 안되니까 가끔씩 맥놓고 구경꾼이 되어 서 있다. 그는 하기 쉬운 딴짓을 하며 혼자서 노는데 그 짓거리가 보기에 더 즐겁다. 단체에서 이탈해 혼자 움직이는게 어디에서나 눈에 뜨이기 마련이다. 자지러지게 귀엽고 예뻐서 끌어안고 싶었다.
덤부링을 하는데도 꼬마는 발을 오므리고 깡충거리기만 할뿐, 몸이 돌아가려면 아직 멀었다.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그래도 쉬지않고 시도를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훌라후프를 위로 던졌다가 받아내는 단순한 동작도 되지않는다. 굴러다니는 것 집으러 다니기만도 바쁘다. 그 아이가 가장 잘 하는 것 한가지는 긴 리본을 혼자서서 마냥 흔드는 거였다.
다른 언니들 훌라후프 열심히 돌릴때 꼬마는 우뚝서서 오색 긴 리본을 흔든다. 나 좀 봐달라는 듯 아주 자랑스럽게 . . . 그들 주변에 털퍼덕 주저앉아서 응원을 해 주던 엄마들이 그 꼬마를 보고 짝짝 박수를 쳐준다.
일등에게도 박수를 쳐 주지만 꼴등에게 보내는 박수가 더 힘차다는 말을 실감했다.
내 입에서도 히실히실 싱거운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내 아이들도 저런 때가 분명 있었는데 왜 느끼지 못했던가?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 기분. 돌아오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다. 자꾸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하.하 . . .
이 할머니를 웃음짓게 해주던 어린 전령들아! 그만 겨울잠에서 깨어나렴. 활력을 주고 삶의 기쁨을 깨닫게 해 주는 너희들을 기다릴단다.
또 한바탕 비를 뿌렸던 저 쪽 하늘 나무사이가 화안하다. 새물새물 요술부리듯 고운 무지개가 피어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