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온 두 청년의 동화사 템플스테이와 팔공산 여행
길은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어진다.
이탈리아에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마르코는 ‘자기만의 길’을 찾아 많은 나라를 여행했고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그는 어쩌면 이탈리아에서는 만나기 힘들었을 친구 키아라도 만났다.
새로운 것을 향한 호기심이 닮은 두 친구는 함께 동화사로 가는 길에 올랐다.
겨울의 시작이라는 절기, 입동이 이틀 앞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산사에 부는 찬바람의 기세가 부쩍 강해졌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낙엽과 막바지 단풍은 가을의 뒷모습을 눈부시게 각인시키며 다시 한번 떠날 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환기한다. 바야흐로 앞모습을 보이고 있는 겨울, 이 계절이면 동화사를 찾아갈 일이다. 천년 전부터 전해져 오는 신비한 이야기를 닮은 치유의 풍경을 만날 수 있고 마음의 힘을 얻을 수 있을 터이다. 신라시대 어느 한겨울, 유가사(瑜伽寺)로 불리던 이 사찰을 중건할 당시 사찰에 있던 오동나무에 꽃이 만발하게 피어났다고 한다.
5~6월의 온화함 속에서 피는 꽃이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 피어났으니 그 상서로움으로 하여 ‘오동나무꽃 핀 절’이란 뜻의 동화사(桐華寺)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낯선 길, 낯익은 길
이탈리아 청년 마르코(MARCO MALETTI)는 3년 전부터 서울에 살고 있다. 그가 나고 자란 이탈리아 모데나는 세계적인 명차 페라리가 탄생한 곳이고 문화를 전공한 그는 페라리박물관에서 가이드로 일했다. 평탄한 학창생활을 거쳐 안정적인 직장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길을 걷고 싶어서 미국, 영국, 그리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12개 나라를 여행했다. 2016년에는 더욱 낯선 한국을 여행했고 그로부터 3년 뒤 한국에서 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한 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어요. 단역배우, 모델 등의 일을 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있어요. 템플스테이도 한국에만 있는 문화라는 점에서 관심이 있었어요. 이곳에 와보니 동화사 대웅전을 비롯해 건축미가 아름다워요. 단청의 문양과 빛깔도 독특하고요.”
마르코와 함께 템플스테이를 하러 온 친구 키아라(CHIARA VARINELLI)는 6년 전, 고향 밀라노를 떠나 한국에 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여행을 왔는데 이곳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들었어요.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진학해서 국제학을 전공한 뒤 지금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꼭 해보고 싶은데 취업문이 쉽게 열리지 않네요, 하하. 면접을 통과하기도 어렵고요. 동화사에서 그동안 취업준비로 쌓인 스트레스를 좀 풀고 싶어요.”
동화사 일주문을 지나 왼쪽 길로 접어들면 동화사 사적비와 당간지주를 만난다. 그 위 오솔길로 10여 분을 걸으면 단정한 한옥의 템플스테이 숙소가 있고 바로 위편에 참선, 차담 등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참선당이 있다. 숙소로 향하는 오솔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마르코와 키아라의 목소리에서 또 하나의 새로움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자아내는 설렘이 느껴졌다.
한 잔의 차에서 발견하는 나
짐을 풀고 나서 찾은 참선당에는 동화사 연수원장을 맡고 있는 범준 스님께서 차를 준비하고 계셨다. 스님께 은은한 차 한 잔을 받아든 마르코가 왜 스님의 길에 드셨는지 질문했다. 차분한 음성으로 들려주는 스님의 답변이 명쾌했다.
“부처의 가르침을 사랑해서 라고 할 수 있겠네요. 부처는 ‘너 자신을 찾으라’고 가르치셨죠. 부처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완벽히 이해했고 그에 입각해서 인간이 겪는 여러 괴로움을 완전히 해결하고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분이죠. 저는 특히 『금강경』을 읽고 수행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어요.”
참선당에 감도는 차향처럼 은은한 웃음을 짓던 키아라는 명상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스님의 답변에 두 사람은 잠시 찻잔을 응시했다.
“자, 찻잔을 한번 볼까요? 맑은 차가 담겼지만 잠시 두고 보면 미세한 앙금이 보이지요. 이처럼 고요함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것을 명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차담을 마치고 나서 범준 스님은 두 사람에게 동화사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셨다. 성철 스님 등 당대 고승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금당선원을 보는 것은 템플스테이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특전이었다.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는 곳이기에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로암 극락전의 석조비로자나불을 보고 마르코와 키아라는 불상의 수인(手印)에 대해 질문했다. 스님은 그것이 지권인(智拳印)이라고 알려주셨다.
“수인은 부처와 보살의 서원을 나타내는 손의 모양이지요.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펴서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오른손의 엄지손가락과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서로 대는 손모양의 지권인은 부처와 중생, 깨달음과 어리석음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스님을 따라 지권인을 해보았다. 너와 나, 성과 속, 이것과 저것을 경계 짓지 않고 서로를 견인하여 성장할 수 있는 동력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어느새 땅거미가 드리웠고 뭇생명에게 위안과 지혜를 전하는 북, 범종, 운판, 목어의 사물소리를 들으며 템플스테이의 첫날을 마무리지었다.
흔들리지 않는 촛불처럼, 남겨둔 까치밥처럼
이튿날 새벽 4시 40분, 형형한 새벽별빛을 받으며 두 사람은 참선당으로 향했다. 서울에서는 둘 다 올빼미처럼 밤늦도록 깨어있었기에 이 시간에 일어나는 일도 처음이라고 했다. 참선당에는 범준 스님과 다른 템플스테이 참가자들 몇몇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요한 가운데 서로 눈 인사를 나눈 뒤 새벽예불을 하고 스님의 죽비소리를 따라 참선에 들었다. 사방은 깊은 침묵에 들었고 실낱같은 바람도 없었다. 여린 바람결에도 흔들리는 촛불이 불단 위에서 불상처럼 흔들림 없이 꿋꿋했다.
참선에 든 마르코와 키아라 그리고 다른 도반들의 모습도 그 촛불을 닮아 있었다.
새벽에 하루의 문을 열었으니 아침시간은 더없이 여유로웠다. 잠시 휴식을 취한 두 사람은 다시 오솔길을 걷고 해탈교를 건너 아침공양으로 속을 든든히 하고나서 봉서루, 대웅전, 산신각 등을 둘러보며 새로운 문화를 눈과 가슴에 담았다. 가장 먼저 발길이 멈춘 곳은 봉서루 앞 감나무였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주황빛이 연등인 양 눈길을 끄는 감,
‘까치밥’이 넉넉히 달려있었다. 까치밥이란 겨우내 먹이가 부족한 새들을 위해 다 따지 않고 남겨둔 감을 일컫는 이름이라고 알려주니 두 친구는 빙긋 웃으며 감을 바라봤다. 인간을 넘어 뭇 생명에 대한 존중과 깊은 연민의 마음, 부처가 가르친 ‘자비심’을 잊지 않고 삶에서 실천한 사람들에 의해 까치밥은 비롯되었을 터이다.
꽃살문이 아름다운 대웅전 앞에는 눈부신 아침볕을 담은 국화가 가득했다. 서리 내리는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국화다운 품위와 기개가 그 아름다움을 압도했다. 두 친구는 산신각 옆, 눈 내리는 한 겨울에도 초록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도 보았다. 동화사에서 만났기 때문일까. 이곳의 국화와 소나무는 또 하나의 경전 같았다. 인생길에서 겨울이라는 난관을 만나도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국화처럼 향기롭고 소나무처럼 푸를 수 있지 않을까.
팔공산 관봉에 올라 길을 찾아보다
동화사가 깃들어 있는 경산 팔공산 하면 이른바 ‘갓바위부처님’이 유명하다. 팔공산 남쪽 관봉 정상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이다. 수많은 돌계단을 숨 가쁘게 올라야 하는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관봉 정상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르코와 키아라도 그 행렬에 합류해 산을 올랐다. 등산을 시작할 땐 옷깃을 여미게 하는 추위가 느껴졌는데 어느새 땀이 흐르고 겉옷을 벗어들고 올랐다. 시야에 가득하던 돌계단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이름처럼 갓을 쓴 듯한 석조불상이 눈에 들어왔다. 불상의 수인은 왼손을 가부좌한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곧 온갖 번뇌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성취한[正覺] 석가모니 부처의 손동작이다.
이 팔공산 석조여래좌상은 오래전부터 영험한 부처로 알려져 있으며 누구나 이 불상 앞에서 정성껏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침부터 불상 앞에는 지극한 마음의 사람들이 절을 하고 있었다. 전설을 들려주며 마르코와 키아라에게 소원 하나 빌어보길 권했다. 소원이 무엇인지 묻자 키아라가 먼저 수줍게 웃으며 들려줬다.
“먼저 친구와 함께 이렇게 동화사 템플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어요. 그리고 모든 이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고 행복하길 바랐어요.”
“저도 키아라와 같은 마음이에요. 그리고, 나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빌었어요. 내가 진정으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나의 길!”
마르코가 이야기한 ‘나의 길’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팔공산을 내려와 동화사에서 높이 약 33m의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만났다. 1992년 통일을 염원하며 세워진 불상은 많은 부처 가운데 중생을 모든 병과 고난, 배고픔 등으로부터 구원하는 12가지 원력을 세운 약사여래불이다. 대불의 오른손 위에 놓인 약병, 그 안에 담긴 간절한 이타의 마음을 생각해보았다. 통일과 화합의 전제조건은 몸과 마음의 치유인 것일까. 그러고 보니 팔공산 일대에는 곳곳에 약사여래불이 많다. 동화사 입구 마애약사여래입상을 비롯하여 대웅전 삼존불이 그렇고 중봉, 미타봉, 비로봉, 삼성암 등에도 석조 약사여래불상이 있다.
눈 내린 어느날, 동화사를 다시 찾아도 좋겠다는 마르코의 말에 공감했다. 세상의 아픔을 감싸 안는 듯한 눈이 포근히 내린 날, 눈길 위에 발자국을 새기며 걷노라면 마음에 ‘나만의 길’이 오롯이 피어날 것이라 기대해 본다.
■ 대구 동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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